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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제21회 인권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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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88

2002년 제21회 인권주일 담화문


생명의 시초부터 인권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올해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축일에 제21회 인권주일을 맞이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데 앞장서 왔습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 40). 하신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을 언제나 강조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권위주의 시대에 공권력의 온갖 인권 침해에 시달려 왔으나, 민주화의 회복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 보장도 개선되어 왔습니다. 과거의 군사 정권에서 저질러진 의문사의 진상이 일부 밝혀지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출범 등 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이 그 보기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차별, 인신매매, 낙태, 성폭행, 환경 파괴와 교통 법규를 비롯한 기본 질서를 무시한 각종의 사고 등 크고 작은 인명 피해와 인권 침해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속죄하지 아니했을 뿐 아니라 이기주의를 버리지 못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민주국가에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있음을 다시 환기하면서 다음 세 가지 사항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가톨릭 병원노조의 파업과 관련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의 노조가 부당한 장기파업을 하는 서글픈 현상은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병원과 노조의 문제이지 교회와 노동자의 대립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희생을 감수해 왔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일관된 노력은 60년대 이후 한국사회가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노사 관계는 갈등과 대립의 구조가 아니라 "자본은 노동없이 있을 수 없고, 노동은 자본없이 있을 수 없다."는 레오 13세 교황의 가르침대로 상호 협조 관계를 유지하여야 하고, 근로자가 자기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경우에도 폭력의 사용은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근로자의 단체행동권은 보장되어야 하나 그것은 "정당한 파업"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구비한 단체행동에 국한되는 것입니다. 집단적 이기주의를 앞세워 환자를 볼모로 한 부당한 주장은 어느 경우에도 근로자의 권리행사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둘째는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인권에 대한 것입니다. 특히 낙태의 끊임없는 증가와 이에 대한 공권력의 묵인이라는 충격적이고도 비극적인 현실은 인권에 대한 여러 고결한 선언들이 실제로는 비참하게 거부되고 있다는 증거이고, 이 사회가 인권의 증진과 보호를 최우선 목표와 자랑으로 내세우면서도 그러한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현실은 커다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의 초기 생명에 대한 공격은 낙태만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른바 생명과학의 일부 분야에서 주장하고, 정부가 법 제정까지 추진하고 있는 인간 배아의 생산과 이용은 그야말로 반생명적이고 반인권적이라고 고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전한 인간 생명으로서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할 인간 배아를 죽이는 행위를 의료 발전을 위한 숭고한 행위로 포장하려는 시도는 즉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셋째 12월 19일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 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회는 결코 정치 공동체와 혼동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남북의 분단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갖가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지고, 지역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서글픈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고, 용서가 없으면 정의도 없다." 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올 평화의 날 담화를 깊이 새기면서 정치 질서를 바로 잡고 공동선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 번 대선에서 우리는 모두 지역 감정이나 사사로운 정을 버리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지도자를 신중하게 선택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도우심에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맡겨 드리면서,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2002년 12월 8일

제21회 인권주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영수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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