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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뉴미디어 문화와 영성3: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 따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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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9 ㅣ No.246

뉴미디어 문화와 영성 (3)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 따르기

 

 

문화의 복음화와 그것의 구체적 실천인 문화사목에 관한 이야기는 영성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영성의 문제는 "현대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따르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삶의 실천에 관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문화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하며, 현대문화를 향해 그분을 드러내 보이고 증언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1.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스도인의 참된 영성은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갈라 5,22)를 지향한다. 이 시대의 지배적인 문화인 대중문화가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장으로 인식된다면 우리는 대중문화를 통해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방식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고 이 시대에 적합한 영성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 영화 또는 다큐멘터리와 같은 영상물은 사랑이란 어떠한 것이고, 평화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또 소외된 이웃에게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간접적으로 복음적 가치관에 대해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더군다나 인터넷이라는 뉴미디어는 쌍방의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에 인간 존중의 태도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현 교회는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키우는 대중문화의 순기능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활용하여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게 하는 데에는 관심이 미비하다.

 

반면에 대중문화는 오히려 "육정의 열매"(갈라 5,20-21)라는 죽음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잘못된 소비문화는 사회적 차별화를 양산하고, 성의 상품화는 여성을 성적 도구로 전락시키며, 왜곡된 밤의 문화는 인간관계를 파괴시키고 있다. 대중매체가 (확대)재생산하는 여러 허위의식들(성공 이데올로기, 외모지상주의, 학벌주의, 물질만능주의, 생명경시 등)은 올바른 가치 형성과 판단을 방해하고 있다. 

또한 대중매체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최대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에 문화적 사회적으로 소외계층을 만들어낸다.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는 통제할 수 없는 포르노의 세계, 익명성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비윤리적인 내용을 노출시켜 영성을 손상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현대문화 환경 안에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더 나아가서 정보화와 세계화 시대에 서로 간의 네트워킹이 쉽게 이루어지는 반면 개인주의에 따른 군중 속의 고독을 더욱 심하게 느끼며 우울증을 호소하는 소외현상이 심화되고 있다.1)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물질문화가 발전하면 할수록 문화 지체(Cultural lag) 현상에 따른 정신문화의 황폐 속에 영성의 고갈을 경험한다. 그러나 기존의 종교제도가 현대인의 영성적 목마름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경우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대중문화(스포츠나 록음악, 쇼핑이나 인터넷 게임 등)나 '신영성(뉴에이지) 운동'2)에 빠지는 경향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의 현대문화라는 환경 속에서 어떻게 올바른 영성생활을 추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가 소비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대안의 공동체로 존속하며 사회를 복음화할 수 있을까? 여기서는 먼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교회의 쇄신과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기 위해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재개념화하고자 한다. 

 

 

2. 영성의 재개념화

 

1) 전통적인 영성 개념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영성은 주로 하느님과 개인의 관계 속에 하느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완전함을 추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것은 "사심없음, 자제력, 항구한 친절, 순수한 사랑, 분노로부터의 해방, 성욕의 극복 등 우리가 도달해야 할 높은 이상을 제시한다."3) 여러 수도회나 신비가들에 의해 형성되고 지속되어 온 전통적인 영성은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반면에 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해방신학자인 구티에레즈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전통적인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서 그에 대한 한계점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4) 하나는 폐쇄적인 소수 그룹에 알맞게 조정된 것으로서, 수도원에서 행하는 것과 같은 '완전한 상태의 종교적인 삶'을 말한다. '완전/불완전' 개념 아래, 종교적 삶과 합당한 길은 세상과 그 일상적인 행위들로부터의 모종의 분리를 전제하였다. 이러한 영성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사회적으로 두 계급, 곧 성스러운 엘리트들(성직자와 수도자)과 속된 평신도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별하는 기제로 작용해 왔다.

 

그리스도교의 두 번째 전통적인 영성은 '개인주의적 성향'을 드러낸다. 영적인 삶은 개인적인 완전에 이르는 길로서, 외부세계와는 거의 무관한 '내면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고유한 공동체적인 차원들이 형식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성서가 지닌 사회적이고 역사적 현실을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축소시키는 '영성의 사유화'를 초래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가난한 자와 부자의 대립은 겸손한 자와 교만한 자 사이의 대립으로 환원시킴으로써 현실적인 불평등 문제에 무감각한 '도피의 영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조차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위에서 언급된 전통적인 영성들에 대해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아무 비판없이 수용하는 단순한 '영성의 소비자'이기를 거부해야 한다. 낡은 부대(전통적인 영성)에 새 술(문화의 복음화)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2) 새로운 영성 개념

 

전통적인 영성들이 세계를 초월한 하느님을 찾는 수직적인 길이라면 새로운 영성은 그리스도 신앙의 경험으로서 삶의 현세적 충만함을 강조한다. 곧 "현대 영성은 삶을 확장하고 육화하며, 각 개인 안에 있는 성령을 자유롭게 하면서 역사의 투쟁에 더욱 접촉하기를 선호한다."5) 따라서 현대 영성은 세 가지 면에서 그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6)

 

(1) 살아있는 신앙 체험을 강조하고, 교의보다는 하느님께 신앙의 응답을 하는 데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

(2) 관상적이며 실천적인 사랑으로 성숙한다는 의미에서 발전지향적이다.

(3) 기도와 그 밖의 성찰 행위를 통해 하느님과의 의식적인 관계를 키우는 실제적인 기능을 알려준다. 

 

위의 세 가지 면을 토대로 유추해 볼 때, 새로운 영성은 인간의 경험, 사회적 현실, 그리고 실천적 투신을 중요시함을 알 수 있다. 문화의 복음화를 위한 문화의 영성 역시 이 새로운 영성의 개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보겠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문화의 영성은 "아래로부터의 영성"7)에서 출발한다. 기쁨과 즐거움만이 아니라 고통, 괴로움, 절망과 갈등을 겪는 삶의 자리로서 문화 속에서 갖는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고 느끼는 신앙이 이 시대에 필요한 영성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화의 영성은 성서와 교회를 통해 주어지는 '위로부터의 영성'과 접목됨으로써 더욱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3. 문화는 영성과 신앙의 사이트

 

문화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삶의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옳게 사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옳지 않게 사는 면도 있다. 윤리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영성의 문제이다. 문화의 복음화는 "어떻게 하면 신자로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대안이다.

 

문화가 일상화된 이 시대에 문화는 '일상성의 영성'과 관련이 있다. 먹고, 마시고, 보고, 입는 것부터 즐기고 소비하는 모든 일상적인 삶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실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가르침이 일상문화 안에서 실천되도록 교리교수법이 상황화되어야 한다. 삶의 상황, 사회적 현실을 상실한 신앙은 구호로 외치는 '신앙의 신비여!'로,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문화가 영성과 신앙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시대에 우리는 혼란을 겪고 있다. 현대문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선물로 주신 우리 마음의 다양한 영적 능력들을 단절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경이로움, 탐구, 경청, 수용 능력 그리고 연민과 사랑을 선택할 삶의 권리들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영적 차원이며 신앙이 생겨나게 하는 들음의 기반이 된다.

 

현대문화는 이러한 영적 차원들이 계발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문화적 영양실조'의 형태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 이야기(마르 4,1-9)로 말한다면, 문화가 신앙이라는 씨앗을 탈취하기도 하고,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기도 하며, 또는 허약한 식물을 숨막히게 하는 다면적인 신앙의 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8)

 

우리의 삶에 지배적인 현대문화가 가져다주는 최대 유혹은 주어진 문화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구약의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큰 위험은 각종 폭력과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이집트에서의 노예적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사고방식이었다. 패션문화, 음식문화, 레저문화, 소비문화, 게임문화, 미디어문화, 조직문화 등의 각종 문화가 낯설지 않게 자연스레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현대인은 문화의 부정적 측면마저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는 신앙과 영성에서 멀어지고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현대문화 속에서 올바른 영성이 열매맺기 위해서는 먼저 문화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문화적 분별력은 현대문화가 미치는 영향이 영성에 이로운지 아닌 지를 판단하게 한다. 밭에서 자라고 있는 '밀과 가라지'(마태 13,24-30)를 식별할 수 있어야 하며, 종국에 가라지를 통해 밀이라는 문화의 긍정성을 더욱 재생산하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4. 올바른 영성을 위한 문화적 행위의 중요성

 

영성이 삶의 방식인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면 우리는 삶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다양하고 복잡한 삶의 방식 속에 살아간다. 운전하는 방식, 술을 마시는 방식, 이성을 대하는 방식, 진리를 다루는 방식, 돈을 생각하거나 사용하는 방식 등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방식은 반복을 통해 습관화되고 고정화된다. 어떤 고정적인 형태로 유형화된 삶의 방식을 '삶의 구조(Life Structure)'9)라고 부른다. 

 

이러한 삶의 구조는 무의식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는 선택과정을 통하여 구조화되는 것이다. 햄버거를 사먹을 수도 있고, 된장찌개를 사먹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이루어지기보다는 외부의 영향력, 예를 들어 광고나 TV와 같은 대중문화의 영향력에 의해 종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한 예로 어려서부터 햄버거에 길들여진 아이는 어른이 되어도 햄버거를 즐겨 찾을 것이다. 햄버거라는 패스트푸드가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스트푸드의 소비는 사실 광고나 다른 매체들이 끊임없이 강요해 온 결과이다. 곧 광고나 다른 매체들에 의해 주어진 이미지는 패스트푸드 선택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고, 소비자는 속도를 중시하는 생산자의 의미를 당연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결과는 비만의 원인이 되고 인간관계도 소원해지게 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량생산, 규격화, 기계화된 패스트푸드에 대항하여 지역적 특성을 살린 전통 음식과 전통적인 식생활 양식을 권장하는 슬로우푸드 운동이 나타났다. 소비자는 슬로우푸드를 선택함으로써 패스트푸드가 주는 의미에 대항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소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문화적 행위(Cultural Agency)'이다. 문화적 행위가 가능한 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자율성이 인정되고, 기존의 지배문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독능력(literacy)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적 행위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의 구조를 만들어 가게 하는 기제이다.

 

현대의 지배적인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 삶의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오늘날에는 텔레비전, 신문, 영화, 인터넷, 게임 그리고 다양한 소비문화와 문화공간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규정하고 있다. 많은 경우에 현대문화는 우리를 이기주의적 경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자기 초월과 자기 증여라는 아주 다른 문화를 지향하고 있는데, 이는 복음에 기반을 둔 공동체 안에서의 삶의 방식으로 문화적인 육화를 도모하도록 촉구한다.

 

아주 다른 문화를 지향하려면 그리스도인은 공동체의 제도적 유형과 개인적 차원에서 삶의 구조에 의문을 던지는 문화적 행위를 시도해야 한다. 교회의 제도가 과연 현대문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고 또 어떻게 대항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서 교회 구성원은 자기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방식이 복음적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지를 성찰할 것이 요청된다. 

 

이러한 성찰은 문화적 식별(Cultural Discernment)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교회에게 현대문화에 저항하는 대안문화를 창출하는 문화 생산자가 되게 하거나, 현대문화 속에 담겨있는 복음적 가치관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그것을 더욱 장려,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이끌어준다. 

다음에서는 지배적인 삶의 구조, 지배적인 삶의 방식과 선택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지배적인 삶을 말하는 '저항의 영성(Culture of Resistance)'의 예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현대문화 속에 숨어있는 복음적 가치관을 찾아 그것을 더욱 증폭시키는 영성도 소개하고자 한다.

 

 

5.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 따르기

 

1) 저항의 영성

 

(1) 저항의 영성이란?

 

시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린이의 동심에서 바라본 어른의 세계를 꼬집고 있는 시다.

 

무엇을 마실 수 있겠어?

 

아빠가 구린내 나는 돈으로

가죽옷을 사주었는데도

엄마는 그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그 옷을 입고

온 동네를 돌며 구린내를 풍기고 있어

마침내 동네 엄마들이 모여

구린내의 잔치를 벌이는 거야

 

그 속에서 우리들 아이들이 

무엇을 마실 수가 있겠어?

질식할 정도야

 

아빠! 구린내 나는 돈으로

제발 우리들의 옷을 사지 마!

엄마! 구린내 나는 옷 입고

제발 우리들의 풀밭에 오지 마!10)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적으로 '부패공화국'이란 오명을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부정부패의 골이 매우 깊다.11) 여기에 나오는 아빠도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며 살고 있다. 삶의 방식이 자발적 부정행위로 일상화된 아빠는 불의라는 구린내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부정하게 번 돈은 엄마의 가죽옷에 사용된다(가죽옷뿐이겠는가? 아파트 투기, 증권투자, 과소비 등등). 구린내는 가죽옷뿐만 아니라 온 집안, 온 동네로 퍼지면서 진동시킨다. 아빠, 엄마, 동네 엄마들 모두가 부정부패의 공범이다. 이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마태 13,13) 사람들이다. 이러한 아빠, 엄마가 이루는 가정에서 자녀들이 무슨 올바른 교육을 받으며 자랄 수 있겠는가? 자녀들이 가정에서 부정으로 오염된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이 사회의 현실 속에서조차 정직이라는 어린이의 눈과 입과 코는 구린내를 맡고, 정의를 외치며, 이를 고발한다. 부패문화로 가득한 사회구조와 삶의 구조에 저항하는 것이다. 교회의 대사회적인 역할은 저항의 영성을 보이는 것이다.

 

저항의 영성은 사회와 문화가 영성, 신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정의의 실천에서 신앙을 분리시킬 때, 구체적인 문화적 실천에서 신앙이 떨어져 나갈 때 그리스도교는 존립의 의미를 상실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교회의 깊은 전통 속에 이어져 내려오는 신앙의 실천들 기도, 성사, 투신, 공동체 생활 은 저항의 영성을 일깨워주고 삶의 대안을 제시해 준다. 

 

(2) 상품문화의 대안으로서 인격문화

 

미국 예수회 소속이며 철학자인 존 카바나 신부는 현대문화(특히 미국문화)를 상품문화와 인격문화가 충돌하는 영역으로 보고 있다.12) 상품문화는 인간의 고유한 인간성을 말살하고 상품이 인간을 지배하는 형태이다. 이로 인해 인간마저 사물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이 가질수록,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하고 많이 일하는 사람일수록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은 상품문화의 근본적 요소이다. 그 속에서 모든 것은 생산성, 양적 등급, 경쟁력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생산성이 없는 인간(노약자, 환자, 가난한 사람 등등)은 소멸되고 제거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당연하게 여겨진다. 

 

상품문화는 인간의 재화 소유 여부에 따라, 소비의 종류와 양에 따라 인간을 판단한다. 이것은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낳는다. 또한 소비주의는 자아, 인간관계를 더욱 피상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일찍이 야고보서는 부자나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은 명품족만을 우대하는 태도를 경계하며, '차별대우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2,1-4). 마귀들린 사람(루가 8,26-39)은 '소비 중독자'이며, 눈먼 장님(마르 8,22-26)은 '눈먼 소비자'이다. 그러나 부자청년의 비유(마태 19,16-26)에서 나오듯이, 지나친 소유와 소비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장애가 된다. 

 

상품문화로 대표되는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바알 신이 여전히 자본과 권력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엘리야 예언자만이 참예언자로, 나머지 다수가 거짓 예언자로 남아서 투쟁하는 엘리야 예언자의 모습은 오늘날 죽음의 문화라는 거짓 신을 이데올로기로 우상숭배하는 다수의 문화, 지배문화에 맞선 대항, 생명의 질서를 지향하는 소수 문화의 투쟁이 힘겨움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소수문화의 궁극적 승리를 알려준다.

 

여기서 말하는 소수문화란 곧 인격문화이다. 그것은 복음에 근거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이다. 평화를 지향하는 가치들 용서, 치유, 나눔, 약함을 받아들이기, 자유에 대한 존중 을 실현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상품문화는 끊임없이 인간을 상품화시킴으로써 폭력을 조장한다. 폭력은 타자를 상품화하는 데 따르는 지배의 역동성에서 비롯된다. 지배, 조작, 보복, 징벌, 경쟁, 소유 등등의 태도들은 인격문화를 위협하는 것들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은 영성적 위기를 맞이한다. 자칫 우리의 성, 우리의 가정, 우리의 관계가 해체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상품화된 문화 안에서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그리스도인은 광야로 떠나야 한다. 광야에서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의 화려함(상품문화)도 결코 미천한 들꽃 한 송이(인격문화)만큼 차려입지는 못하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상품문화에 종속될 때,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으로 돌진했던 이카루스가 결국 추락하였던 것처럼 삶이 추락하고 말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상품문화에 대항하는 대안을 실천해 왔다. 문화적 고립주의에 대항하는 것으로는 그리스도교의 '공동체' 정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기도', 인격체의 삶을 형성해 주는 '성사'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카바나 신부는 다음과 같이 기도를 설명하고 있다.

 

기도는 문화에 저항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성, 정체성에 관한 재확인이며 또한 산산이 부서진 우리의 삶을 서로 다시 연결시키고 본연의 우리로 탈상품화되도록 되돌아오게 한다.13)

 

바오로 사도가 말했듯이 "믿음이 들음에서 온다면"(로마 10,14), 현대문화 안에 무엇이 영적인 '믿음의 귀머거리'(faith-deafness)로 이끄는지 그리스도인은 기도를 통해 인식하게 되고, 다시 들을 수 있는 귀를 회복하는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2) 밭에 묻혀있는 보물

 

현대문화 속에는 하느님께서 숨겨놓으신 보물이 있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보물이 있음을 거부하고 단지 쓸모없는 황무지로 홀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문화가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현대문화 속에 암호화(Encoding)하신 것을 해독(Decoding)하는 능력이 있다. 

 

현대문화가 하느님을 만나고 인식하는 신학적인 자리임을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영성적인 면에서도 하느님을 체험하고 올바른 신앙생활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근 개봉된 "오아시스"(2002년)나 "여섯 개의 시선"(2003년)과 같은 영화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면에서 복음적 가치관을 은연중에 제시하고 있다. MBC TV 프로그램 "느낌표!"와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공익성과 오락성을 잘 배합시키면서 특히 소외된 이웃을 찾아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에 그리스도 가르침과 부합되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한 장의 사진이나 화면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따라서 교회는 현대문화 속에 포함된 복음적 가치관이라는 보물을 찾아내어 이것을 적극 권장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차지하고자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밭을 사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마태 13,44). 한국교회는 아직도 현대문화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으려 하는 노력 면에서도 부족하지만, 발견된 보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투자를 하는 데에도 관심이 미미하다. 보물을 차지하려면 과감한 투자를 하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6. 연재를 마치며

 

문화의 영성을 향해 지금까지 걸어온 본인의 여정은 매우 빈약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이고 학문적 필치에 국한되는 경향도 있었고, 좀 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생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한국교회가 실천해야 할 문화의 복음화와 문화사목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필자의 작업이 문화의 복음화와 문화사목에 초석을 놓는 데 미력이나마 이바지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문화사목의 뜻을 함께하는 분들에 의해 보완 수정되어 더욱 완벽한 이론과 실천의 틀이 형성되어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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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 주부 가운데 45%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12.3%는 자살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조선일보」, 2003년 10월 27일자).

2) 신영성 운동이나 뉴에이지 운동은 서양의 인본주의, 합리주의, 과학주의와 동양의 신비주의가 결합해 이루어진 대단위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인간의 영적인 변형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인간과 관계 있는 종교, 사회, 정치, 문화, 예술, 과학 등 모든 분야에 관련되어 있으며, 특히 대중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잘못된 근대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긍정적인 면이지만 그리스도교의 신론, 그리스도론, 계시론, 교회론 등의 내용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3) 안셀름 그륀, 「하늘은 네 안에서부터」, 정하돈 옮김, 분도출판사, 1999년, 17면.

4)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 김문호 옮김, 한국신학연구소, 1986년, 34-37면 참조. 

5) Michael Paul Gallagher(S.J.), Clashing Symbols : An Introduction to Faith and Culture, Paulist Press:New York, NJ, 1998년, 137면.

6) 위의 책, 138면.

7) 안셀름 그륀, 「아래로부터의 영성」, 전헌호 옮김, 분도출판사, 1999년.

8) Michael Paul Gallagher, 앞의 책. 139면.

9) 삶의 구조는 마이클 워렌이 주장하는 용어로 영국 문화주의자인 윌리엄스의 '느낌 구조(Feeling Sturcture)'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보겠다, 삶이나 느낌은 개인의 차원이지만, 동시에 구조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Michael Warren, Seeing through the Med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Harrisburg, Pennsylvania, 1997년, 27면).

10) 김영수, 「이슬 마르지 않는 나라에서」, 가톨릭 출판사, 2001년, 82면.

11) 부패감시 국제 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10월 7일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는 핀란드이며, 한국의 청렴성 순위는 조사대상 133개 국가 중 50위라고 발표했다(「조선일보」, 2003년 10월 7일자).

12) 상품문화와 인격문화에 대해서는 John F. Kavanaugh,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오장균 옮김, 1981년, 도서출판 지평, 1998년.

13) 위의 책, 229면.

 

[사목, 2003년 12월호, 김민수(주교회의 매스컴 위원회 총무 · 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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