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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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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19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

 

 

1. 대구 참사 보도에서 드러난 장애인에 대한 편견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이튿날, 보건복지부에서 하나의 보도 자료를 내놓았다. 보건복지부 행정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내용이어서 언론에서는 ‘이례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보도하였다. 내용은 곧,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 용의자인 김대한 씨가 정신 질환자인 장애인으로 보도되어, 정신 질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2월 18일, 대부분의 언론은 용의자의 신원을 밝힐 때 ‘정신 질환자’, ‘정신 지체인’등의 언급을 하였다. “전동차에 정신 질환자가 방화를 했다.”라고 하기도 하였고, “정신과 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재난”이라거나 “정신 지체 장애인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아무나 죽어라’식 범죄”라고 보도하여 결국 대구 지하철 참사는 ‘장애인의 범죄’에 따른 것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심어 주었다. 

 

결국 이날 보도 이후,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장애인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글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심지어는 ‘장애인들을 격리수용해야 한다’는 격한 의견까지 등장하기도 하였다. 바야흐로 사회적 약자였던 장애인이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공격자가 되어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고 만 것이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장애인 단체들과 보건복지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2월 19일 보건 복지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용의자 김씨는 단지 뇌병변 장애인으로, 이는 정신 질환이나 정신 지체와는 분명히 다르다. 정신 질환은 정신 분열증, 반복성 우울 장애, 양극성 정동 장애(조울증), 그리고 정신 분열증과 정동 장애가 복합된 분열형 정동 장애 등을 일컫고, 정신 지체는 유전적 원인, 또는 질병 및 뇌장애에 따른 청년기 전에 생긴 정신 발달 저지 또는 지체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지능 지수(IQ)가 70 이하인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비해 용의자 김씨는 중풍에 따른 후유 장애로 한 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때문에 용의자 김씨가 그를 치료한 병원이나 사회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게 되었겠지만 그러한 불만이 곧 정신 질환일 수는 없으며, 그를 정신 질환자라고 판단할 아무런 근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입장인 것이다. 

 

뇌병변 장애인을 정신 질환자로 판단하여 보도한 언론의 무지도 문제이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장애를 범죄와 연결시키고자 하는 편견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보도 자료에서 인용한 ‘2000년도 범죄 백서’에 따르면, 교통 범죄를 제외한 범죄 발생률에서 일반인은 10만 명당 2,545명으로 2.5%였고, 정신병적 장애인은 전체 17만 6,396명 가운데 3,201명으로 1.8%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통계적으로도 장애인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일반인의 범죄율보다 낮은 것이다. 그럼에도 장애인에 대한 이러한 편견이 가능한 것은 어떤 까닭일까?

 

 

2.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인색한 주류 사회

 

우리 사회는 철저히 주류 중심 사회이다.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는 잣대는 경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우리 사회 일반은 건강한 성인 남성 위주로 주류가 구성되어 있고, 주류는 소수자를 배려하는 데 인색하다. 이번 대구 참사 보도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번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용의자의 장애가 가장 크게 부각되어 보도된 것은 장애인이 주류가 아니라 소수자인 탓이 크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인색한 주류 사회에서 소수자는 늘 시혜의 대상이거나 격리의 대상이어야 한다. 

 

「세계일보」 2월 20일자 칼럼 ‘설왕설래’는 이러한 소수자에 대한 주류 사회의 편견을 잘 보여 준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50대 중풍 정신 질환자의 소행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 정신 질환자가 나의 불행은 사회 탓이라며, 불특정 다수를 향해 증오심을 나타내는 것은 매우 걱정스런 일이다. 강제 입원을 시켜야 하거나 범죄를 저질러 치료 감호의 대상이 되는 중증 정신 질환자가 국민의 3`-`4%에 이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부 중증 질환자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점에서 국가적 관심이 필요하다. 중증 질환자를 관리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범죄를 방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회적 방어 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이 온통 한 장애인에게 떠넘겨지는 순간이다. 결국 주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수자를 희생시켜 버리는 편리함이 여기서도 그대로 남용되고 있는 것이다.

 

 

3. 장애인 차별의 실상

 

장애인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은 일상화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차별은 국가 기관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국가 기관이 차별에 앞장서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장애인 복지법 제8조 등에서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을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많은 장애인들은 투표권 행사를 포기해 버린다. 아무런 승강 시설이 없는 2층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지방 자치 단체의 무관심 앞에서 장애인의 투표권이란 휴지 조각보다 못한 것일 뿐이다.

 

또한 동법 제21조에서 “국가와 지방 자치 단체는 장애인이 공공 시설 및 교통 수단 등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 시설의 설치와 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제4조에서는 “장애인 등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과 설비를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동등하게 이용하고 장애인 등이 아닌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휠체어가 오를 수 없도록 턱 높게 설계된 버스는 지체 장애인들에게는 애초부터 그림의 떡이었으며, 그나마 이용 가능한 것이 지하철인 것인데 현재 지하철의 리프트에 몸을 싣는다는 것도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곡예일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은 이동을 통하여 다른 사람도 만나고,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며, 교육을 받고, 문화 생활을 즐기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 따라서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는 장애인들에게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기본적 인권에 속하지만 장애인들은 이러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심지어 장애인은 보험 가입과 헌혈을 제한받기도 한다. 국가 인권 위원회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간 국내 주요 10개 보험 회사와 6개 손해 보험 회사의 보험 계약 인수 지침 등을 조사하여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정신적 장애를 신체 질병과 구별해 보상에서 제외하거나 신체 장애인의 경우 ‘유진단’으로 명시하여 보험 가입시 장애의 상태나 정도 및 보험 상품의 종류를 불문하고 건강 진단을 받도록 하는 등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심신 상실, 심신 박약자의 사망을 보험 사고로 하는 보험 계약의 무효를 약관에 명시하고 있어 정신 장애인은 장애의 경중에 관계없이 사실상 생명 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다.

 

또 제주의 한 청각 장애인은 헌혈을 하러 갔다가 거부당하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하였다. 이에 한 장애인 단체가 사연을 알아보았더니 대한적십자사 내부 지침에 “헌혈 부작용시 의사소통의 장애 등을 이유로 청각 장애인을 영구 배제”시키며, 시각 장애인에 대해서는 “건강 상태가 양호하면 채혈 가능”하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헌혈 부작용은 일반인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인데 유독 청각 장애인에게만 영구히 헌혈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은 삭제되어야 하고, 시각 장애인 역시 건강 상태가 양호하면 채혈 가능하다고 한 규정은 평상시 맹인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진 것으로밖에 볼 수 없으므로 이를 규정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드러낸 것이라는 단체의 지적을 받고 시각·청각 장애인은 공히 “헌혈 부작용 대처 및 문진을 위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경우 채혈 가능”하다고 수정하였다. 

 

 

4. 생계를 위협하는 차별

 

이렇듯 일상화된 차별은 단지 불편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위협하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자못 크다. 200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전국 장애인 취업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장애인 실업률은 28.4%로 나왔다. 이는 전체 실업률 4.8%에 비해 6배 가량 높은 것이다. 이마저도 적극적인 의미의 실업자, 곧 취업을 포기한 사람은 제외하고 꾸준히 직장을 찾아나서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실제 실업 상태에 놓인 사람은 70% 가까이에 이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장애인 실업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장애인 취업의 험난함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장애인 고용 및 승진 실태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들을 다양하게 차별하고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더욱 충격을 주는 것은 국가 기관이 이러한 차별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구인 업체의 93.8%가 채용 과정에서 ‘신체 건강’ ‘용모 단정한 자’ ‘연령 제한’ 등의 방법으로 장애인을 차별하였는데, ‘신체 건강’ ‘용모 단정한 자’ ‘군필’ 등은 개인 회사·정부 및 지자체, ‘학력 제한’은 300인 이상의 대기업체와 정부 및 지자체·전문 직종이 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에 따라 채용하지 않을 수 있는 ‘채용 전 신체 검사’도 그 기준이 모호했으며, 공무원 신체 검사 규정은 시각, 청각, 언어, 신장, 심장, 뇌병변 장애 등 거의 모든 장애를 포함시키고 있었다. 

 

물론 이런 공식적이고 공개적인 차별은 보이지 않는 차별에 비할 때 조족지혈일 뿐이다. 장애인의 50.7%가 면접시 ‘장애가 있음에도 일을 잘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22.5%는 승진이나 승급의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채용시 직급 배치 차별을 당했다’고 응답한 장애인이 17.7%에 이르렀는데, 300인 이하 개인 회사의 단순 노무직 여성 장애 근로자의 차별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채용 후 직무 능력 개발을 위한 각종 교육에서도 장애인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심지어 일부 국영 기업체에서는 국내외 위탁 훈련 대상에 ‘신체 건강한 자’라는 직접적 차별 기준을 명시하기도 했다. 또한 조사 대상 업체의 79.1%가 장애가 발생했을 때 직권 면직이나 해고, 퇴직당할 수 있도록 명시되었다. 동등한 입장에서 일반인과 경쟁하기도 힘겨운 장애인들에게 이러한 노동 현장에서의 차별은 장애인의 능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종국에는 생계를 위협하게 되고 만다.

 

 

5. 장애인 대책의 문제점

 

이러한 장애인 차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 물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하기는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는 ‘장애인 복지법’,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등을 두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고,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 재활법을 두어 노동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을 위해 장애인 의무 고용 등의 적극적 우대 조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다지 실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구체성이 결여된 금지 조항은 벌칙 조항이 아예 없거나 약해 사문화된 지 오래이고, 몇 푼 되지 않는 벌금만 물면 더 이상의 아무런 행정 조치를 당하지 않아도 되는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 또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장애인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국가는 물론이고 사회 전 구성원이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바탕 위에서 사회적 관용을 발휘해야 한다.

 

우선 장애인의 차별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차별적 조항들을 국가가 앞장서서 폐기해야 하고, 이러한 차별을 예방하기 위한 관련법들을 개정해야 한다. 특히 법률적 개념들에 대한 구체성을 담아 차별이 발생했을 때 명백히 처벌할 수 있는 벌칙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장애인이 차별을 받았을 때는 어디서나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국가 기관이 마련되어야 하며, 이러한 국가 기관은 장애인이 접근하기에 쉬운 장소에 있어야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현행 300인 이상의 민간 기업에서 전체 노동자의 2%를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한 장애인 의무 고용 제도도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인 고용의 확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고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용을 강제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의무 고용률 미만일 경우 장애인 고용 의무가 있는 공공 기관과 기업체가 범칙금만 무는 것으로는 실질적인 고용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6.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그러나 이러한 몇 가지 장치의 변화만으로는 열악한 장애인의 현실을 개선하기 어렵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사회적 인식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없어질 수 있는 철학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장애 또는 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고, 같은 공동체 일원으로서 바람직한 시각을 세워 내는 것이 장애인 차별을 궁극적으로 극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물론 장애인은 형식적으로는 일반인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시민 사회와 단절된 소외 집단으로서 각종 사회적 편견과 제약으로 인권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인권은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이다. 모든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는 장애인도 동등하게 그 권리를 누려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범주에 장애인이 들어가야 함에도 현실은 장애인을 여기에서 빼버렸기 때문이다. 곧 다시 말해 사회적 주류인 일반인 중심으로 모든 사회적 장치를 구성해 놓았기 때문에 장애인은 이동권을 비롯한 많은 권리를 제약받는 것이다. 만일 일반인들 위주의 사회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나 건물이 하나 들어선다면 그것은 대단한 배려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어떠해야 하나? 일반적으로 장애인이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정신적 능력의 불완전으로 일상의 개인적 또는 사회적 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스스로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능력의 장애뿐만 아니라 능력의 장애에 따른 사회적 불리도 장애에 포함시킨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곧 능력의 장애를 극복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해 주는 사회적 기제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못한 경우에는 여전히 장애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이가 가까스로 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을 것이다. 당장 길을 나서면 인도의 높은 턱과 계단들이 길을 막아서고, 버스와 지하철이 장애인의 이동권을 비웃는다. 설령 다른 이의 도움을 받고 움직일 수 있다 하더라도 학교나 직장의 각종 시설은 장애인을 외면해 버린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장애를 변화시켜야만 장애인의 장애를 가볍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불리는 장애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핵심 역할을 수행한다.

 

이제껏 장애인 문제에 접근하는 가장 핵심적 단어는 ‘재활’이었다. 개인적 능력을 일반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장애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일반인들의 사회에 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활’ 개념에는 사회적 불리가 장애의 한 요소임이 간과되고 있다. 사회적 불리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장애인이 자신의 능력을 아무리 잘 개발한다 하더라도 사회 참여에는 한계가 있을 뿐이다. 

 

한 사회가 정말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으려면 그 사회의 가장 약자의 눈높이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아야 한다. 물론 장애인이 치료를 통하여 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장애를 가지고도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국제연합(UN)이 장애 문제를 ‘재활’이 아닌 ‘인권’의 문제로 규정하는 등 장애 문제를 보편적인 인권의 시각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전세계 흐름인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시혜적 차원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편견을 갖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분리 교육에 있다. 일반 학교에서는 장애 아동을 교육시키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일반 학교의 모든 것은 일반 학생들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장애 아동들은 결국 일반 학교에서의 교육을 포기하게 된다. 장애 아동은 비장애 아동에게서 격리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일반 학교에서 통합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장애 아동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회에 참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마찬가지로 장애인과 함께 통합 교육을 받지 못한 비장애인들도 장애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이웃으로부터의 격리는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띠든지 그것의 본질은 차별임을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알아야 한다.

 

 

7. 장애인 차별 철폐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2000년도 장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수는 144만9,496명으로 추정되었다. 이들 중 각종 사고나 질병 등 후천적 장애가 발생한 경우가 89.4%를 차지한다. 선천성은 4.4%, 출산시 장애는 2.3%, 원인 불명은 3.9%로 집계되었다. 후천적 장애가 90%에 육박하는 것은 일반인과 장애인이 애초부터 다르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고 언제나 일반인도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예비 장애인임을 웅변하는 것이다. 

 

장애는 단지 장애의 위험이 현실화되느냐 여부에 따라 현실적 장애인과 잠재적 장애인으로 나뉠 수 있을 뿐, 다른 그 어떤 차별도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상존하는 현실적 사고의 위험은 현실적 장애인과 잠재적 장애인이 공평하게 부담해야 한다. 이는 결국 잠재적 장애인인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 입구에 적혀 있는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라틴어 문장은 죽음을 준비할 것을 의미하고 있지만, 똑같이 장애인들도 우리에게 말한다. “오늘은 우리가 장애를 겪고 있지만, 내일은 그대가 장애인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마시오.”

 

[사목, 2003년 4월호, 서헌성(아름다운 재단 1%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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