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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정신 지체인의 성적 권리: 보호와 두려움의 이름으로 박탈된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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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22

보호와 두려움의 이름으로 박탈된 인권 - 정신 지체인의 성적 권리

 

 

들어가는 말

 

우리는 요즘 개인의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하며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마음껏 채굴하는 21세기의 지식, 정보화 시대를 숨가쁘게 살고 있다. 세상이 복잡하고 다양해질수록 사람들이 요구하는 권리 또한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해지며,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특권과 혜택을 누리는 세상이 되고 있다. 반면, 물질적인 부와 정신적인 부를 모두 갖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 격차를 느끼며 세상 변두리로 더욱 멀리 밀려나고 있다. 그래서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아나윔’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물질과 정신적인 면에서 모두 빈곤한 이들이다. 특히 자신들의 장애 때문에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는 데 크게 제한받는 정신 지체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지도 행사하지도 못하기에 아나윔 중의 아나윔으로 정보화 시대에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시대가 가치롭게 여기는 유능성과 효율성을 지닌 기능적이고 경제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하느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자녀 됨이라는 평등한 존엄성에 인권이 그 뿌리를 두기 때문에 인권은 본질적으로 모든 사람과 관련된 보편적인 것이다. 우리가 지닌 이러한 인권은 살면서 획득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첫 숨을 쉬는 순간에 하느님께 받은 천부적인 권리로 이것은 하느님 외의 어느 누가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빼앗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역사 안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하느님과 같은 행세를 해 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일들을 우리는 무수히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 구석구석에는 다양한 행태로 인권을 짓밟힌 채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인권의 사각 지대에 있는 사람들 중 필자의 소임지에서 삶을 함께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정신 지체인들의 인권을 살펴보면서, 이들이 비장애인들에게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박탈당해 온 권리가 무엇이며 또 그러한 권리 실현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정신 지체인, 이들은 누구인가?

 

장애인을 만나 본 적이 없는 초등학생들이 언젠가 재활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필자는 그들에게 “정신 지체인들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모습이 흉칙하고, 포악하고, 무섭고, 사람들을 해치고, 더럽고, 바보인 사람들”이라는 아이들의 대답에서 정신 지체인에 대한 이미지는 장애인을 대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장애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교적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정신 지체인들을 “천치, 바보, 정신 박약, 모자라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무의식적으로 경멸하거나 지나치게 온정적인 태도를 보여 준다. 우리는 간혹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거나 도움을 줌으로써 내가 더 낫다는 우월감을 은연중에 지니기 쉽다. 정신 지체인들은 지체 장애인이나 시각 장애인처럼 외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의 즉각적인 관심을 끌기 어려운 면이 있다. 정신 지체인들의 장애는 신체 기형이나 불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정신 능력과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정신 지체인이라고 판별할 때 뒤떨어진 지능(IQ 75-70미만)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비장애인들이 거의 절대 비중을 두는 지능은 정신 지체인으로 판별되는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지능 외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정신 지체인들이 실제 적응 기술 영역들인 의사 소통과 자기 관리, 가정 생활, 사회성 기술, 지역 사회 활용, 자기 지시, 건강과 안전, 기능적 학업 교과, 여가, 직업 중에서 두 가지 이상에 제한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 두 번째 조건이다. 그리고 현재 기능하는 데 있어서 실질적으로 제한성을 나타내는 연령이 18세 이전이어야 하는 것이 마지막 조건이다. 간단히 말해 정신 지체는 평균 이하의 지적 기능과 적응적인 제한성이 두 가지 이상 있으며, 18세 이전에 나타나는 현재 기능하는 데 있어서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지 하나의 고정 불변한 특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는 적응 행동 능력의 향상 유무에 따라 생의 주기 속에서 달라질 수 있다. 

 

비장애인들이 다양한 것처럼 정신 지체인들도 개인마다 매우 다양하다. 비장애인들은 자주 ‘정신 지체’라는 표찰 때문에 이들을 모두 하나의 획일화된 틀 속에 넣어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수녀들에 대한 전형화된 하나의 틀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이 개별적으로 수녀들을 만날 때 상당히 당혹스러워하거나 의아해하는 모습을 간혹 보게 된다. 이런 모습은 바로 한 집단에게 붙여진 표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로, 사람들의 사고 속에 있는 고정화된 수녀라는 틀에 모든 수녀들을 집어넣고 똑같이 보려는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표찰된 집단 속에 있는 모든 개인들은 이렇듯 집단적으로 취급되는 일을 한두 번은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집단 속의 개인은 자신이 그 집단의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다르며 또 고유한지를 분명히 인식한다. 그러므로 정신 지체라는 표찰을 달고 사는 사람들도 비장애인들처럼 자신만의 개성과 기호, 잠재력 그리고 독특한 스타일을 지닌 고유한 사람들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내 생각과 주장이 강해질수록 있는 그대로 사물과 사람들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더욱 절감하게 된다. 내가 지닌 프리즘을 통해 세상과 사람들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런 자신의 프리즘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지를 오해로 갈등이 생길 때마다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붙여 놓은 표찰로부터 우리의 사고가 얼마나 막혀 있는지, 그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필자는 정신 지체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더욱 많이 체험하고 있다. 

 

비장애인들이 정신 지체인들을 생각할 때 다음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하는데, 첫째,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과, 둘째, 그들은 단지 정신 지체라는 인지적 차원에서의 결함을 가졌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정신 지체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감정 세계를 갖고, 느끼고 바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모든 사람은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여성 또는 남성으로서의 삶을 살며 일생을 통해 성적 발달을 하게 된다. 인간이란 성을 가진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성에 대한 욕구와 기대는 우리의 지적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서,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안에 있는 성을 거부하는 것은 재앙과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다. 정신 지체인들도 이러한 욕구와 느낌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하며 또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과 똑같이 성적인 감정과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로써 자신들의 그러한 감정과 욕구를 좀 더 편안히 다루는 방법을 배우며,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것과 수용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

 

모든 사람과 똑같은 감정 세계를 지닌 정신 지체인들은 자신들의 두드러진 인지적 결함 때문에 늘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통제와 지시를 받으며 산다. 상황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고, 사리 분별력이 떨어지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자기 감정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종종 유치한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나타내며, 어색하고 부적절한 성적인 표현과 행동을 하는 것은 이들이 이성적 차원과 의지적 차원에서 결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해야 할 바를 잘 알고 있으며, 좋은 것과 참된 것 그리고 바른 것에 대한 깊은 직관력을 지니고 있는 정신 지체인들도 상당히 많다. 정신 지체인들이 지닌 인지적인 면에서의 결함을 깊이 이해할 때 우리는 이들이 나타내는 여러 가지 행동의 발상적 의미를 더욱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2. 정신 지체인의 성적인 삶 속에 새겨진 박탈의 역사

 

우리 사회가 정신 지체인들의 성을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억압했으며 모질게 대해 왔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성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두려움을 단순화시켜서 정신 지체인들에게 투사해 왔다. 정신 지체인들의 성 욕구를 무시하거나 성적인 행동에 벌을 주고, 마구 불임 수술을 시켰으며, 집 안에 가둬 두거나, 대형 시설에 남녀를 격리하여 수용시킴으로써 임신의 가능성을 없애려고 했다. 개방된 성문화가 범람하는 현대에도 정신 지체인들의 성에 대한 일반 대중의 편견은 여전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성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어쩌다 인정하더라도 권리 실행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신 지체인들 스스로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 안에는 여전히 성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혼란 그리고 저항이 존재하고 있다. 

 

서양 역사 안에서 성과 관련하여 정신 지체인들이 당해 온 박탈의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정신 지체인의 성적인 삶 속에 새겨진 상처의 역사와 더불어 비장애인들의 변화를 위한 시도들을 이해할 수 있다. 

 

18세기까지 가정에서 돌보아지지 못한 장애인들은 맹인들이나 정신 병자를 수용하는 시설에 갇혀서 생을 보냈다. 정신 지체인들의 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으며 이들의 성적인 요구는 완전히 무시당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게 했고, 일그러진 몸과 발육이 덜 된 정신을 가진 분별없는 사람들이 나중에 호색가나 범죄자가 된다고 생각하면서 정신 지체인들이 성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 된다고 믿었다. 

 

19세기 말에 와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고와 함께 정신 지체인들을 범죄를 저지르는 성적으로 난잡한 자들로 여기면서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켰다. 이 시기의 일반인들은 정신 지체인을 생식 능력과 성관계를 가질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1940년대부터 정신 지체아가 대부분 정상 부모에게서 태어난다는 사실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면서 정신 지체인들의 불임 수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태도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의 성에 대해서는 잘못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많은 정신 지체인들이 성 범죄자를 수용하는 곳과 비슷한 대형 시설에 수용되었다. 이런 시설들에서는 성적인 행동에 상당히 부당한 취급을 하거나 완전히 묵인하는 이중적 잣대를 행사하였다. 가정에서 부모들은 정신 지체 자녀를 순진무구하고 성이 없는 무성적인 존재로 여겼다. 사춘기에 이르면 정신 지체인 딸을 둔 부모들은 임신을 막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서 격리시키곤 했다. 1950년대에 들어서야 진정한 진보가 이루어졌는데, 행동 과학에서의 발전으로 수용 시설의 폐쇄적인 방식에서 ‘치료적인 지역 사회’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1960년대는 정상화 철학의 기치 아래 정신 지체인들에 대한 격리와 보호 대신 ‘위기에 대한 존엄성’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정상화 개념은 탈시설화를 이끌었고, 이로써 시설에 수용되었던 많은 정신 지체인들이 그룹홈과 독립 주거 시설로 옮겨졌다. 그러나 사회적 통합이 아닌 물리적 통합 차원에서 단순히 지역 사회 안에 옮겨와 살게 된 정신 지체인들은 사회성 기술이 부족하고 성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거나 성폭력에 심각히 노출되었다. 수용 시설에서의 삶이 정신 지체인들에게 지역 사회에서의 삶을 준비시키지 못했으므로, 성적 행동에 대한 사회 관습과 규범을 이들이 모를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정신 지체인들을 성적 존재로 보며, 사회적 행동을 향상시키고, 자위 행위와 같은 성적 표현을 중요한 성적 돌파구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성 혁명과 성적 권리를 주장하면서 정신 지체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학교에서 가족 계획 형태로 성교육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정신 지체인들의 성을 포함하여 정상화, 탈시설화, 시민권, 성 혁명, 학교 성교육, 출산 조절 등에서의 많은 변화가 심리학자, 사회복지사와 교사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정신 지체인들이 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일반인들이 수용하도록 돕고, 정신 지체인들이 성에 대해 알도록 하며, 이들의 성적 권리를 정의하고 지지하며, 책임감 있는 성적 표현을 하도록 돕기 위해 사회성 기술 훈련과 성교육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성에 관한 전문 훈련 과정과 성적 행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불임 수술의 종식을 도우며 대안적인 출산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했다. 

 

1980년대는 에이즈와 성 학대가 시대의 주요한 사건이었다. 정신 지체인들에 대한 성 학대는 늘 있어 왔으나, 1980년대 성 개방의 물결로 이들에 대한 성 학대 사례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정신 지체인에 대한 성 학대는 비장애인에 비해 4`-10배 높으며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보다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정신 지체인들 스스로 성 학대를 막을 수 있도록 많은 교육과 훈련이 제공되었다. 에이즈 때문에 정신 지체인들에게 더욱 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는데, 지역 사회에 사는 정신 지체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성적 착취에 더 취약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정신 지체인들은 판단력이 부족하고 충동 조절이 잘 안 되므로 비장애인보다 에이즈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 

 

1990년대에는 사회성 기술 훈련을 받은 정신 지체인들이 지역 사회에서의 삶을 잘 영위해 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시설에서 했던 부적절한 껴안기보다는 악수나 인사를 했다. 이들에게 사회적인 활동을 제공하는 사회-성교육 프로그램은 사회 적응 훈련으로 고무되었다. 이성과의 접촉이 많이 허용되기는 하였으나 상황적인 동성애와 성관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안해 했다. 정신 지체인들의 자위 행위를 더 이상 금기시하지 않았으며 성적인 문제에 대한 상담도 제공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과거에 행해졌던 정신 지체인들에 대한 불임 수술이 법정에 다시 올랐으며, 이들에 대한 성교육은 과거의 문제 예방 차원이 아닌 성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더 나아가 정신 지체인들의 성적 권리에 대해 극단적인 해석을 내리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곧 이들도 쾌락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자신이 좋으면 성적인 활동을 하도록 적극 장려해야 하고, 의사 표현이 어렵거나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도 돌보는 사람들이 이들의 성적 활동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정신과 영혼이 없는 기계적이고 물질적인 인간만을 강조하고 있으며 성적 권리에 따른 성적 책임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 지체인의 성에 대해 과거와는 아주 다르지만 닮은꼴인 또 다른 극단적인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정신 지체를 가졌기에 또 성적인 욕구와 느낌 그리고 가능성을 가지고도 자기보다 힘있는 자들에게 역사 안에서 이렇듯 지속적으로 무시와 거부를 당해 오며 올바르게 다루어지지 못하는 정신 지체인들의 성적인 삶은 부모와 전문가들을 비롯하여 관련된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고민과 갈등 그리고 두려움과 혼란을 안겨 주는 영역이다. 

 

 

3. 박탈될 수 없는 권리 중의 권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백주년」에서 다음과 같은 권리들을 강조하였다. “이 권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권리는 생명의 권리이다. 아기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모체 내에서 발육할 수 있는 권리는 이 권리 가운데서도 필수적이다. 여기에는 인격 성장에 도움이 되는 정신적 환경과 화목한 가정에서 살 권리, 진리 추구와 인식에서 자신의 지성과 자유를 발전시킬 권리, 자신과 식구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지상의 물질적 재화를 올바르게 취득하고 노동할 권리, 자유롭게 가정을 이루고 책임 있는 성생활을 함으로써 자녀를 낳고 기를 권리가 있다”(47항). 비장애인들도 이러한 권리들을 일부 침해당하고 사는 경우가 있지만 정신 지체인들은 대부분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살고 있다.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 지체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오고 있다. 사람들은 정신 지체인들에게 의식주뿐 아니라 교육과 훈련, 일자리 등 다양한 재활 훈련을 제공하면 잘 성장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부모들이 심혈을 기울여 온 온갖 재활 방법은 정신 지체인들의 생존을 위한 기술 습득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제3자가 계획하고 설계한 삶의 구도 속에서 정신 지체인들은 빗나감 없는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삶의 주기들을 살아 주기만 하면 되었다. 철저히 안전한 생존 방식만이 이들을 위한 최선의 삶의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장애인인 삶은 어떠한가? 생존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삶을 향유하기 위해서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삶의 도전과 성취를 통해서 자신의 권리 행사 범위를 확장시켜 가고 있지 않은가. 

 

인간답게 그리고 자기답게 산다는 것은 외적인 조건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먼저 내적인 차원의 답을 요구한다. 정신 지체인들이 인간답게 살고 자기답게 살도록 돕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우리가 무시했고 감히 엄두도 못 냈던 일들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 지체인들을 성적으로도 완전한 존재로 인식하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는 이들이 성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일이다. 그런데 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가 건강하지 않거나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에 실패하거나 아예 시작조차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남녀간의 생식기적인 성적 활동이나 음침하거나 위험하거나 부자연스러운 본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요 본질적인 부분이며, 인격의 일부다. 모든 사람의 자아상은 자신의 성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여자와 남자로서 자기 자신의 발달과 떨어질 수 없다. 성은 우리가 하는 행동이 아니라 총체적인 존재성에 관한 것으로, 생명의 생물학적, 생리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인 모든 면들과 관련되며 우리의 인격 발달과 대인 관계에 심오한 영향을 미친다. 성은 이론의 여지 없이 창조적인 힘이며, 생명의 기본적인 기원이고, 정신적인 생명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요소이다. 결국 성은 우리를 역동적으로 살아 있게 하는 생명력인 것이다. 

 

역사 안에서 정신 지체인의 성은 비장애인들의 성이 겪어온 수난보다 더 엄청난 시련을 당해 왔다. 정신 지체인들의 성은 더 불순하며, 더 위험하고, 더 동물적이며, 더 죄스러운 어떤 것으로 여겨져 왔다. 정신 지체인들이 자기 몸을 탐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성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금해 왔으며 억압했고, 심지어 범죄적인 행위로 내몰기까지 했다. 하급 인간 취급을 했고, 성인이 되어도 성장을 멈춘 아동처럼 취급했기에 이들에게 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정신 지체인의 성은 비장애인들의 성과 다른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들도 우리처럼 사람 사이의 친밀감을 원하며, 사랑을 주거나 받고 싶어한다. 삶의 주기 속에서 일어나는 성과 관련된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변화가 비록 지체되거나 그 기간이 연장될지라도 반드시 겪게 된다. 멋지고 잘생긴 사람과 연애하고 싶고, 결혼하여 자신만의 가정을 꾸미고 자녀를 낳아 기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비장애인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이러한 욕구가 정신 지체인들에게서 발견될 때는 이상하고 잘못된, 골치 아픈 문제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은 어떤 조건의 사람들만이 소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전용물은 절대 아니다. 정신 지체인의 성에 대한 경험이 이들의 지적 능력의 영향을 받지만 성을 소유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알려진 넘을 수 없는 지적 문턱이란 없다. 

 

정신 지체인들은 한 여성 또는 한 남성으로 존재할 권리가 있으며 자기 자신의 성은 물론이고 이성의 성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남녀의 몸이 지닌 신비와 이성을 향한 에로틱한 느낌뿐 아니라 자기 내부에서 생기는 다양한 느낌들과 열정을 알고 느낄 권리가 있으며 이것들을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하고 성취할 권리도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권리와 사랑받을 권리가 있는 반면 상대에게 실연당할 권리도 있고 상대를 거절할 권리도 있다. 자신들의 부족함 속에서도 자기답게 살고 성장할 권리가 있으며 삶의 가능한 부분들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들은 우리 모두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삶의 모든 순간을 경험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이들이 정신 지체를 지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 준다거나 - 호의적인 차원에서조차 - 마음대로 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인간의 아주 아주 기본적인 권리인 것이다.

 

 

4. 풍요로운 삶의 성취를 위해

 

인간은 풍요로운 물질적 조건들만으로 행복해지고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절대 아니다. 이것은 지능이 높은 비장애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정신 지체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이들과 비장애인들이 많은 면에서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필자는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비록 이성적인 능력은 뒤지지만 감성이 풍부한 정신 지체인들은 자신들의 기쁨과 갈망, 번민과 슬픔, 좌절과 고통을 훨씬 더 깊이 느끼는 것 같다. 시설에 사는 많은 성인 정신 지체인들이 외로움과 슬픔을 자신들만의 개인적인 코드로 표현해 내는 것을 이제는 많이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는 시나 노래를 통해, 어떤 이는 짜증과 울부짖음을 통해 또 어떤 이는 무단 가출과 도벽, 홀로 있음을 통해,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위 행위나 이성 또는 동성과의 신체 접촉 또는 로맨틱한 커플 관계 등을 통해서 다양하게 표출해 내고 있다. 

 

이제까지 비장애인이 정신 지체인들에게 요구하거나 제공해 온 것들은 정신 지체인들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장애인의 안전과 만족 그리고 행복을 위한 것들임을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것이다. 성에 대해 그리고 정신 지체인들에 대해 비장애인이 지녀온 오랜 두려움을 사회의 해악에서 이들을 보호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포장해서 얼마나 쉽게 그리고 얼마나 많이 이들의 인권을 박탈하는 데 사용해 왔는가! 비장애인들은 진정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신 지체인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빼앗겨 왔는지 몰랐으리라. 결코 주어져 본 적이 없었기에. 자기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도전과 기회를 주지 않은 채 그저 잘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은 결코 복지일 수가 없다. 이것은 사육이며 일종의 학대이다. 

 

지난 수년 동안 정신 지체인들에게 성교육을 해 오면서 필자는 많은 정신 지체인들의 진정한 갈망과 바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 좀 더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 나이에 맞게 대접받는 것,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 등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은 비장애인의 깊숙한 갈망과 바람이 또한 아닌가! 

 

정신 지체인들의 성적 권리와 관련하여 쾌락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하지만 의무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정신 지체인들이 성적 권리가 있다는 말은 그들이 자기 몸을 함부로 사용하고, 해로운 결과가 날 것을 뻔히 아는 상태에서도 그들이 자기 마음대로 살게 내버려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성적 권리는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인격적이고 품위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성을 사용할 권리를 의미하며, 성적 권리 행사에 따라오는 책임지는 능력도 포함하는 것이다. 성적 권리는 책임의 의무를 알 때 실현될 수 있으며, 의무가 따르지 않는 권리는 불구이다. 이러한 의무에 대한 인식은 성적 권리를 최고의 수준으로 들어올려 주며 인권이란 바로 의무에 완전히 응답하는 권리이다. 그러므로 정신 지체인들은 자신들의 성적인 삶의 권리와 이에 따른 책임이 무엇인지 알아서 응답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성적인 삶이 지닌 유희와 무게를 균형 있게 감당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오는 말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제한을 받는 정신 지체인들이 온전한 성을 지닌 사람들로 자신의 성을 긍정하며 친밀함과 사랑의 관계 안에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책임 있게 나누도록 돕는 일은, 먼저 비장애인들 자신의 성에 대한 반성과 정신 지체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 -일종의 회개- 을 요구한다. 그리고 정신 지체인들의 인간다운 삶과 참다운 성장과 행복을 위해 진정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지를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때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거나 못 보고 못 듣는 경우가 있다. 우리 자신의 무지와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보호와 돌봄의 책무 때문에. 비장애인들의 성과 성적인 삶이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면 정신 지체인들의 그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인권을 지킨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권 실현을 위해 일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서로 인간다움과 자기다움을 이루어 내기 위해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하는 평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애 유무를 떠나 서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며, 서툰 사랑의 표시에도 진실하게 응답하고 귀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 모두의 인권이 인간적이고 성적인 삶 안에서 더욱더 품위 있고 아름다우며 풍요롭게 실현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사목, 2003년 4월호, 정진옥(성가소비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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