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생명칼럼: 인공 수정과 인공 출산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0 ㅣ No.574

[생명칼럼] 인공 수정과 인공 출산

 

 

1. 생명의 선물

 

- 인간 출산에 관한 개입

 

체외 수정을 시도하려면 수도 없이 많은 수정 과정과 인간 배아의 파괴가 따르게 마련이다. 오늘날에도 이 기술은 우선 여자의 활발한 배란을 전제로 하여, 여기서 많은 난자를 채취하여 수정시킨 다음에는 또 며칠 동안 이것을 체외에서 배양해야만 한다. 통상 모든 배아가 다 여자의 생식기 안에 옮겨 심어지는 것이 아니며, 더러 남게 되는 이른바 ‘잔여 배아’는 파괴되거나 냉동시켜 보관하게 된다. 때때로 자궁에 착상시킨 어떤 배아는 여러 가지 우생학적, 경제적 또는 심리적 이유로 도중에 희생되기도 한다. 이런 고의적 인간 배아의 파괴나 다른 목적으로의 사용은 이들 생명과 주체성에 피해를 줌으로써 결국 인공 유산과 같이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 되는 것이다.

 

1) 비배우자간 인공 수정 또한 부부의 권위와 혼인의 진실성을 따르는 것인가?

 

비배우자간 체외 수정이나 배아의 자궁 내 이전 그리고 남편 아닌 사람의 정자를 주입하는 일 등은 모두 혼인한 부부 이외의 적어도 다른 한 사람에게서 받은 생식 세포를 접합시킴으로써 수정(임신)시키는 것이다. 이런 비배우자간 인공 수정은 혼인의 일치와 부부의 권위 그리고 합당하고 올바른 부모의 사명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 혼인 안에서 임신되고 그 혼인 속에서 자라나 세상에 나오도록 부여받은 아이들의 권리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혼인의 일치와 부부간의 정절에 대한 존엄성은 모든 아이가 혼인 속에서 임신될 것을 요구한다. 다시 말하면 남편과 아내 사이의 유대가 객관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부부를 일치시킴으로써, 이들은 서로를 통해서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독점적 권리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정자나 난자를 얻고자 제삼자에게서 생식 세포를 받는 것은 부부가 서로의 신의를 해치는 일로써, 일치라는 혼인의 중대한 성격에 결함을 자초하는 일인 것이다.

 

또한 비배우자간 인공 수정은 아이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부모-자식간의 근본 관계가 인위적으로 박탈되는 것으로, 이로 인해 그의 인격적 주체성의 성숙에도 장애를 입게 된다.

 

2) 배우자간 인공 수정에 따른 임신은 도덕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혼인 안에서 남편의 정자를 인공적으로 부인의 생식기 안에 주입시켜서 임신을 유도하는 이른바 배우자간 인공 수정 행위는 그것이 부부 행위를 대신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촉진하고 도와줌으로써 그 행위가 본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 주는 일이 아닌 이상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본질적으로, 부부 행위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동시적이고 직접적인 협력을 표시하는 인격적 행위로, 이것은 성서에도 기록된 대로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양심은 “자연적인 부부 행위를 촉진하거나,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행위가 만족한 결과를 얻도록 해 주는 목적으로만 쓰인다면 어떤 인공적 방법도 그 사용을 꼭 막지는 않는다.”

 

곧 기술적 수단이 부부 행위를 촉진시켜 주고 본래의 목적 달성을 위해 도움을 주는 일들이면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 과정이 실제적인 부부 행위를 대신해 주는 것이라면 도덕적으로 타당하지가 못한 것이다.<출처:교황청 신앙교리성,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 “생명의 선물(Donum Vitae)”, 1987.2.2>

 

 

2. 그리스도교 도덕 규범

 

1. 인간과 관련한 문제를 다룰 때, 인공 수정의 문제는 도덕적·법률적 관점을 제쳐 둔 채 생물학적·의학적 측면에서만 오로지 또는 주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2. 비배우자간 인공 수정은 전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으로 단죄되어야 한다. 실제로 자연법과 신법은 혼인 밖에서는 새 생명의 출산이 있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혼인만이 부부의 존엄, 특히 여성의 존엄과 부부의 행복을 지키는 동시에 자녀와 그의 양육을 보장할 수 있다. 따라서 부부의 결합과 분리되어 이루어지는 인공 수정의 단죄와 관련하여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는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3. 혼인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제삼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인공 수정 역시 비도덕적이며 호소할 여지없이 단죄되어야 한다.

 

4. 배우자간 인공 수정의 합법성은 어떠한가? 여기에 대해서는 자연법의 이러한 원칙들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충분하겠다. 의도한 목적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만으로 그러한 방법의 사용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자녀를 바라는 것은 혼인한 부부라면 합당하게 가질 수 있는 소망이지만, 인공 수정이 이 소망을 충족시켜 준다고 해서 그러한 방법에 의존하는 것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어 줄 수는 없다.<출처:교황 비오 12세, “그리스도교 도덕 규범(Christian Norms of Morality)”, 1949.9.29, The Human Body:Papal Teachings, 117-119면>

 

 

3. 정리

 

인공 수정(Artifical Insemination)은 문자 그대로 이해할 때 자연적인 성교로 이루어지는 자연 수정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그것이 어떠한 방법이든지 관계없이 자연적인 성교 행위가 아닌 인위적 조작(Manipulation)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수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좀더 넓은 의미로 볼 때 자연 성교를 도와주는 보조적 수단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되며, 후대의 진보한 의학 기술의 부산물인 체외 수정도 인공 수정의 한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공 수정은 수정되는 장소에 따라 크게 체내 수정(In Vivo Fertilization)과 체외 수정(In Vitro Fertilization)으로 구분된다. 체내 수정은 성교 행위의 유무에 따라 성교 행위 안에서의 보조 수정과 성교 행위 밖에서의 인공 수정으로 구분된다. 성교 행위 밖에서의 인공 수정이란 정액의 출처에 따라 또다시 비배우자간 인공 수정(Artifical Insemination by Donor : A.I.D.)과 배우자간 인공 수정(Artifical Insemination by Hom ologous : A.I.H.)으로 나뉜다.

 

체외 수정은 체내 수정과는 달리 체외에서 더욱 적극적인 인위적 조작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여성의 자궁 이상으로 수정란의 자궁 내 착상이 불가능한 경우, 다른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대리모 수정 형태가 있고, 체외에서 수정된 수정란의 상실을 최소화하고 인공 수정의 확실성을 높이고자 개발된, 이른바 복제 인간의 문제를 야기하는 수정란 증식 형태를 사용하는 인공 수정 방법도 있다.

 

인공 수정의 과정에서 보이는 조작의 형태는 무엇보다도 인간 배아에 대한 인위적 조작, 곧 기술적 조작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공 수정을 통한 인공 출산은 무엇보다도 비인격적인 형태로서의 인간 생명 출산을 의미한다. 그러한 행위는 마치 인간 생명을 물건을 생산하듯 취급하는 것으로, 이는 분명 부부 상호 간의 인격적 자기 증여와는 대립되는 행위이다. 왜냐하면 인공 수정을 통한 인간 생명의 출산에서는 인간 본성의 신원과 생동하는 임신의 인격적 품위를 전혀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에 대한 인위적 조작(인공 수정과 인공 출산)에 대한 윤리성 평가의 출발점은 무엇보다도 인간 생명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무상의 선물이자 은총이라는 점에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하느님께 생명의 선물을 받은 인간은 생명의 근본적 소유자가 아니라, 단지 그 생명의 관리자일 뿐이다. 나아가 인간 생명은 인간의 전체성(육체와 정신이 통합된 존재) 안에서 그 가치가 평가되는 것이지 단순히 생물학적 필요성만을 절대화시켜서 평가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가정 공동체」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선물이다. 그리고 부부 사랑은 한 몸이 되게 하는 상호 인식으로 부부를 이끌어 가지만 부부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부부 사랑은 그들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을 갖게 하며, 부부는 새로운 인간에게 생명을 전달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협력자가 된다. 이렇게 해서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을 주면서도 자신들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주는 것이다.”

 

부모에게 자녀는 부부 사랑의 표상이며, 부부 일치의 징표이다. 또한 자녀는 부부 상호 간의 완전한 자기 봉헌의 산 증거이다. 이렇듯 자녀는 부모와의 본질적인 관계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자녀를 가지겠다는 부모의 욕심이 결코 모든 윤리적 질서를 넘어설 수는 없으며, 나아가 그 질서를 무너뜨릴 수도 없다. 

 

[월간빛, 2003년 11월호, 이창영 바오로 신부(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국장,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총무)]



688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