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생명칼럼: 안락사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10 ㅣ No.583

[생명칼럼] 안락사

 

 

1. 생명의 복음

 

『오늘날 과학과 의술은 고도로 발달된 첨단 장비와 체계를 이용함으로써 전에는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고, 또 고통을 감소시키거나 없앨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지극히 허약한 상태에서도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기초적인 생물학적 기능들이 갑자기 무너진 환자들을 인공적으로 소생시킬 수도 있게 되었고, 신체 기관들을 이식에 쓸 수 있도록 만드는 특별한 과정들을 이용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안락사에 의지하려는 유혹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안락사란 죽음을 조절하여, 정해진 시간 이전으로 앞당기는 것이며, 자신의 생명이나 타인의 생명을 ‘편안하게’ 끝맺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논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안락사를 잘 살펴보면 무의미하고 비인간적인 행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락사는 이른바 ‘과도한 의학적 치료’를 그만두는 것과는 반드시 구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상되는 어떠한 결과에도 부적절하거나 또는 환자나 가족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는 것들이기 때문에 더 이상 환자가 처한 실제적인 상황에 맞지 않는 의학적 치료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명히 죽음이 임박하고 피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양심 안에서 ‘비슷한 경우의 환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상적인 간호를 중단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결과가 불확실하고 큰 부담이 되는 생명의 연장밖에 보장하지 못하는 종류의 치료 행위들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보아야 하고, 자신을 남들이 돌보도록 허락해야 할 도덕적인 의무가 존재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이 의무는 반드시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사용 가능한 치료 방법들이 호전될 가망성을 위해서 객관적으로 적절한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하거나 또는 부적절한 수단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자살이나 안락사와 다릅니다. 그것은 오히려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입니다.』<출처: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생명의 복음’(1995.3.25), Origins 24: 42호(1995.4.6), 712면>

 

 

2. 안락사에 관한 선언

 

1) 인간 생명의 가치

 

인간 생명은 모든 선의 근본이고, 모든 인간 활동과 모든 사회의 필연적인 근원이고 필요조건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명을 신성한 그 무엇으로 존중하여 아무도 생명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신앙인들은 생명 안에서 더욱 위대한 그 무엇, 곧 이를 보전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부름 받은 하느님 사랑의 선물로 본다. 이러한 고찰은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1)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예외 없이 그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거스르고 근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극도의 중죄를 짓는 것이다.

 

(2)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자기 생명을 이끌어 가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 생명은 오직 영원한 생명 안에서 온전한 완성을 찾는 것이지만 이미 이 지상에서 열매를 맺어야 할 선으로, 개인에게 맡겨진 것이다.

 

(3)고의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초래하거나 자살하는 것은 살인과 마찬가지로 부당한 일이다. 인간의 편에서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하느님의 주권과 사랑의 계획에 대한 거절로 간주된다. 더 나아가 자살은 자기 사랑의 거부임과 동시에 생존 본능의 부정이며, 이웃과 여러 공동체 또는 전 사회에 대한 정의와 사랑의 의무를 회피하는 것이다. 비록 그러한 책임이 경감되거나 완전히 면제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심리적인 요인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2) 안락사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무후한 인간 존재, 갓 잉태된 태아든 좀 자란 태아든, 어린이든, 어른이든, 노인이든 불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든, 죽어가는 사람이든 결코 인간의 살해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고히 천명한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자기가 돌보는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든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살인 행위를 요청할 수 없고, 또 남자든 여자든 명시적으로나 함축적으로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어떠한 권위라도 그러한 행위를 합법적으로 권고하거나 용인할 수 없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을 침해하는 문제이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며 생명을 거스르는 범죄요 인간성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흔히 죽여 달라고 하는 중환자들의 간청이 안락사에 대한 진정한 원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 그것은 거의 언제나 도움과 사랑을 구하는 고뇌에 찬 간원의 경우다. 의학적인 간호 외에 병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부모, 자녀, 의사, 간호사 등 가까운 모든 사람이 병자를 에워쌀 수 있고 또 감싸 주어야 하는 인간적이고도 초자연적인 온정이 필요한 것이다.<출처:교황청신앙교리성, ‘안락사에 관한 선언’(1980.5.5), Vatican Council II, 제2권, 510-516면>

 

 

3. 정리

 

‘안락사(Euthanasia)’라는 단어는 본래 희랍어 ‘eu(아름다운, 기쁜)’와 ‘thanatos(죽음)’의 합성어로서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또는 ‘고통 없이 빠른 죽음’, ‘잠자는 것과 같은 평화로운 죽음’, ‘가벼운 죽음’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어원적으로 풀이해 보면 고대의 안락사(Euthanasia)라는 단어는 심한 고통이 없는 ‘편안한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그 말의 본래의 의미를 잃고 그저 질병의 고통이나 단말마적 고통을 없애려는 어떤 의학적 개입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안락사라는 말은 고통을 없애기 위한 안락 살해(安樂殺害) 또는 오랜 동안의 고통스런 생명의 연장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한 안락 살해(安樂殺害)를 뜻하는 특수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날의 안락사라는 말은 첫째, 생물학적 생명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의식이 없이 인격이 소멸된 경우 둘째, 고칠 수 없으며 참을 수 없는 신체적 고통으로 사회생활이 의미 없고 불가능하게 되어 삶의 의미조차 없는 정신적 존재가 소멸된 경우 셋째, 어떤 신체적 결핍 때문에 국가나 주변 사람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게 되어서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자격이 상실된 경우에는 죽음을 앞당기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합리주의적 사상이 발상이 되어서 직접 행동으로 실행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안락사라는 말은 과거와는 달리 ‘인간 생명이 불가역적인 죽음의 방향에서 인식되었을 때 합리주의적 발상에 의해 이를 인위적으로 단축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인간의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정의를 근거로 오늘날에는 의학적 측면에서 좀더 안락사를 세분화시켜 물리적 또는 화학적 방법으로 직접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주지(周知)의 의료 행위를 환자에게 시행하지 않아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인간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무후한 인간 존재로서, 태아이든, 유아이든, 어린이든, 어른이든, 노인이든, 불치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든, 죽어 가는 사람이든 결코 인간의 살해를 용납할 수 없다.”<교황청신앙교리성, ‘안락사에 관한 선언’(1980. 5.5) 중에서>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① 죽음 직전의 환자에게 사랑으로 베푸는 행위, 곧 수분 공급이나 간호, 보편적인 투약이나 임종자와의 긴밀한 대화 등은 절대로 안락사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② 또한 환자의 조건으로 보아 이미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특정한 의료 행위를 그만 두는 것(전통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예외적 용법을 포기하는 결정’이다.)은 환자의 죽음을 방관하는 결정이 아니라 사려와 분별에 근거한 합리적인 과정에 따라 적절하게 기술적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③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는 위험이 있지만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하는 행위는 의사의 소명에 속하며, 비단 질병을 치료하거나 생명을 연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또한 환자를 돌보아 주고 고통을 덜어 주는 것도 의사의 소명이라 가르친다. 그러므로 위의 세 가지 경우는 안락사가 아니라 품위 있는 인간적 죽음 또는 존엄사(Death of Dignity)로 이해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톨릭교회는 인간 생명의 가치에 대한 절대성과 하느님의 선물로서 주어진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치고 일깨워 준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회는 ‘안락사’라는 말의 엄밀한 개념 정립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곧 본래의 참뜻인 ‘평안한 죽음’이 ‘안락 살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안락사라는 말이 ‘특수한 행위에 의하여 환자의 생명을 끝내게 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야 하고, 그러한 의미에서 안락사는 그것이 적극적인 의미에서든, 소극적인 의미에서든 결코 용인될 수 없는 행위임을 확고히 가르친다. 

 

[월간빛, 2004년 8월호, 이창영 바오로 신부(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사무국장,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위원)]



65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