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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만성질환처럼 번진 사회적 병폐,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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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1 ㅣ No.656

[세상살이 복음살이] 만성질환처럼 번진 사회적 병폐, 자살 - 지금 필요한 건 ‘따뜻한 말 한 마디’

 

 

“나도 그냥 죽어버릴까.”

 

혼자 생각을 별 뜻 없이 블로그에 채워넣는 순간, “그럼 같이 죽자” “000에 가면 독극물을 공동구매 해요” 등등의 댓글이 순식간에 달린다.

 

한마디의 투덜거림이 죽음을 충동질한 순간이었다. 자칫 감정적인 선택을 한다면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끊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만이 남는다. 투덜거림을 토닥여주고 위로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가입국 중 1위라는 사실은 더 이상 충격으로도 다가오지 않는다. 최근엔 전 세계에서도 이례적으로 국민을 대표했던 최고 지도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근절되도록 힘써야 할 성직자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전문가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1명이 자살을 하면 평균 6명 이상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특히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나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엔 그 영향력이 15배를 넘어선다. 유명인들의 자살 사건 이후 실제 우리 사회 곳곳에선 평소 두 배 이상의 모방 사건과 충동 사건이 연이었다.

 

자살은 개개인 뿐 아니라 사회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시급한 병폐다. 자신을 죽인 ‘살인’이며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절대권을 침해하는 그릇된 행위다. 그러나 이러한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갈등 완화와 사회통합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마치 만성질환처럼 자살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사회 전체에 대한 응급처치에 이어 예방접종이 필요하다.

 

 

자살에 관대한 사회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난 몇 년간 수차례 사회 유명인들의 자살이 가져온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를 절감했다.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사회 일각에서는 국민 정서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애도기간 중 수명의 국민이 동조자살 또는 추종자살을 기도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평소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생각해왔던 이들도 ‘저렇게 높은 분도 저리 가시는데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라는 감상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자살에 대한 비뚤어진 국민 의식은 도를 넘어섰다는 문제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오죽했으면…’이라면서 자살을 관대하게 보는 분위기가 개개인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의식 속에 자리 잡았다는 설명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조사에서도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인 상황이 있다고 보는 이들이 조사대상의 21.8%로 나타났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자살을 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는 대답은 무려 70%에 육박했다.

 

 

자살불감증 일등공신은 언론

 

국민 3명 중 1명 이상은 살면서 한 번 이상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특히 속보 경쟁에만 나섰던 일반 언론들은 자살 불감증을 만연케 한 일등공식으로 지적받는다.

 

자살, 그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우리나라 매스미디어들은 무분별하게 또는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살과 자살행위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다. 몇몇 이론들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발표된 어떠한 이론도 가장 근본적인 질문, 즉 비슷한 상황에서 누구는 자살을 감행하고 또 누구는 그렇지 않은 이유 등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자살예방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문의 70%, 방송의 80% 이상이 자살에 대해 부적절한 내용을 언급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도에 자살을 극복할 수 있는 치료법이나 정보가 포함된 경우도 크게 부족했다.

 

그 결과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는 폐해는 생명경시풍조의 확산과 직접적인 자살률 증가다. 기사에 실린 자살자와 비슷한 현실적·심리적 문제를 갖고 있거나, 잠재적인 자살 시도 가능성을 안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보도내용에 영향을 받고, 자살에 이를 수 있다. 나아가 유명인의 자살에 대해 동정적인 여론이 보도되면 모방자살은 더욱 확산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식의 반응은 자신도 자살하면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사회 환경 개선해야 자살 예방 가능

 

따라서 자살과 관련한 보도지침에서는 기사 제목 등에서 ‘자살’이라는 표현을 직접 언급하면 위험하다고 밝히고 있다.

 

자살을 흥미 위주의 기사로 다루거나, 자세한 경위를 묘사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한다.

 

한국자살예방협회와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2004년 자살보도 지침을 내고, 자살 관련 보도에서는 자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와 자살 시도로 인한 후유증 등도 함께 밝힐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또 자살에 대한 편견과 유가족 및 주변인들이 겪을 고통, 자살을 극복할 수 있는 치유법과 정보도 함께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사회·심리 전문가들은 “자살이 사회적이나 문화적인 변화 혹은 타락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켜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또 “자살한 사람을 순교자 등으로 미화하거나 자살 행위 자체를 용감하다거나 아름답다는 식으로 묘사할 경우, 자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자살을 실행에 옮기도록 부추기는 결과가 된다”며 굳이 보도를 해야 한다면 사망 사실에 대한 애도를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대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어떠한 알권리보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 우선돼야 한다. 무엇보다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사회갈등 완화와 사회통합 노력이 필수라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홍강희 회장은 “유명 정치인이나 배움이 많은 지식인들이라고 해서 일반 사람들보다 더 강한 자살 면역력을 갖고 있진 않다”며 “자살은 사회 전체 구성원이 함께 책임감을 느껴야할 사회적 문제”라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생애 단계별로 올바른 생명윤리 교육을 의무화하는 공적 지원이 자리 잡아야 한다.

 

사회·심리 전문가들도 “개인이 스스로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사회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며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고, 국민 전체의 정신건강과 생명존중 의식 고양을 위한 사회안전망과 교육 시스템을 적극 확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넘쳐나는 자살 관련 보도 한편에 나온 한 탤런트의 목소리가 긴 여운을 남긴다.

 

“모두가 나를 외면하고 욕할 때, 나와 가장 친하다고 해준 친구의 한마디 말이 나를 죽음에서 건져냈습니다.”

 

※ 자살 관련 상담 전화 1588-9191, www.lifeline.or.kr  www.counselling.or.kr [가톨릭신문, 2009년 6월 14일, 주정아 기자]

 

 

자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 명백한 '죄' … 정신 질환 등 상황 고려

 

 

최고 인기를 누리던 연예인들, 한 국가의 대통령까지 역임한 정치인과 원로 성직자 등이 연달아 스스로 생명을 끊음에 따라,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한 ‘자살 불감증’이 더욱 번지는 추세다. ‘자살’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며 교회 가르침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반론조차 곳곳에서 고개를 듦에 따라, 올바른 인간존중과 사회의식 함양이 촉구된다.

 

가톨릭교회는 자살에 대해 그 자체가 큰 죄이며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부당한 행위로 간주한다.

 

자신을 죽이는 것은 타인을 죽이는 것과 같이 직접 살인이다. 자살은 특히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과 사랑의 계획을 거스르는 행위다. 자신을 사랑하고 완성하도록 노력해야할 의무와 사회공동체 안에서의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로서, 결코 그 정당함을 인정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교회법적 전통에서는 자살자는 순교자의 대열에서 제외하고, 자살한 사람을 위해서는 장례식도 금지된 바 있었다.

 

하지만 교회는 자살자의 인간적인 나약성에 대해서도 충분한 이해를 보인다. 사회 연구 조사에 따르면 자살자의 과반수 이상이 정신병적인 성격과 질환을 겪는 상황에서 자살을 감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교회는 자살자의 주관적인 죄책을 판단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임을 인정하고 해당 교구 주교의 사목적 판단에 따라 돌볼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한 사목적 차원에서 교회는 자살 예방을 위해 생명존중 교육과 사목상담 등을 확산하며, 범국가적인 사회안전망 운영에도 적극 협조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9년 6월 14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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