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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회와 사회교리: 오늘날 가톨릭교회 사회교리는 우리 사회의 등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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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7-16 ㅣ No.752

[경향 돋보기 - 교회와 사회교리] 오늘날 가톨릭교회 사회교리는 우리 사회의 등대인가?


사회교리에 대한 이해와 교회의 사회 참여

 

 

전쟁으로 얼룩진 20세기가 역사 속으로 저물고 21세기가 시작 된 지도 10년째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전쟁과 폭력의 악순환이 정의와 평화의 물결로 덮이기보다는 정의실현이라는 미명 아래 더욱 집요하고 탐욕스러운 폭력과 다양한 형태의 전쟁들이 죽음의 그림자를 우리 위에 드리우고 있다. 특히 한반도의 상황에서는 더욱 ‘평화’의 목마름이 간절하다.

 

하지만 이 목마름은 우리에게 희망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엄청난 좌절과 절망의 암울한 지경에서 허우적대지만 그러나 바로 거기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고 또 찾을 수 있는 이가 교회다. 특히 근대사회 안에서 교회는 인류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찾았다. 더욱 폭넓은 사회영역에서 교회의 역할을 실천한 것이다.

 

교회의 역할이 필요한 때가 차면 세상 속 교회는 사회문제에 관해 세상을 향하여 깊은 관심을 표명한다. 세상의 흐름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는 교회 본연의 직무인 예언자직과 사제직 그리고 왕직(봉사직)의 실행으로 이루어지는데 그것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교회는 스승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하며, 예언자로서의 필수적인 역할을 빠트려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성숙되고 번영하는 인류공동체를 이루고자 “교회는 사회교리로 복음을 선포하고, 사회관계의 복잡한 구조 안에 복음을 현존시키고자 한다. … 따라서 교회가 인간의 요구를 돌본다는 것은 선교와 구원 활동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한다”(“간추린 사회교리”, 62항 - 이하 인용 동일).

 

그러면 교회의 사회적인 가르침인 ‘사회교리’가 ‘우리 사회의 등대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하느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며, 그 계획이 실천되는 데 교회는 사회교리를 어떻게 활용하며, 최근대사 안에서 교회의 사회교리가 실제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물어보자.

 

 

하느님은 세상을 향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가?

 

2000년 전 중동의 매우 작은 곳 나자렛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밀알 하나의 모습으로, 온 인류를 뒤바꾸는 폭탄선언(?)을 한다. 그의 선언은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한처음에 … 창조하셨다.”는 창조주 하느님의 바로 그 ‘말씀’처럼,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18-21).

 

이렇게 시작된 은혜로운 때,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보여주었다. 행복선언의 가르침, 치유의 기적들과 비유들 그리고 십자가의 수난으로 참사람을 통해 참하느님이 되시는 진리를 보여주었다.

 

‘하느님의 계획’의 출발점은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의 ‘사랑의 계획’으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품위를 지닌 존재가 되었다. 하느님과 관계 안에서 모든 인간은 품위, 권리와 존엄성을 지니며, 제2의 ‘그리스도’로서 존중을 받아야 한다.

 

교회는 이렇게 존중받아야 할 인간 곧, 신자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 안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구원의 봉사자인 교회는 추상적 차원이나 단지 영적 차원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과 역사의 구체적인 상황 안에 있다. 그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고, 하느님 계획에 협력하도록 부름을 받는다”(60항). 따라서 교회는 교회 본연의 사명을 세상 안에서 실천해 나가야 하며 또 지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과 육신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진 인간은 자율성과 사회성을 본성으로 갖는다는 것을 교회는 확신한다. 또한 그 본성의 완벽한 조화로움을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에서 찾는다. 그래서 “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하여‘구원의 길에 있는 인간을 돕고자’ 한다. 이것이 교회의 첫째가는 유일한 목적이다. … 교회가 고유한 사회교리를 발전시키고, 사회교리와 그것이 부여하는 책임과 임무로써 사회와 사회 구조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야말로 교회의 권리이자 의무이다”(69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세상)은 교회가 하느님을 찬미하고 흠숭하는 터전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과 모든 피조물에게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도록,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계획)이 우리(땅) 안에서 실현되도록 교회 구성원 모두는 기도하며 증언해야 한다.

 

교회의 사명인 ‘하느님 나라의 실현’을 위한 안내 지침서가 바로 ‘사회교리’라 할 수 있다. “교회는 자신의 사회교리로써 주님께서 교회에 믿고 맡기신 것을 선포하는 과업을 수행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어주신 자유와 구원의 메시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인간 역사 안에 현존하게 한다.”(63항)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으로 시작된 구원계획의 성취는 교회의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시작될 수 있다.

 

 

사회교리를 통한 하느님의 계획 실천하기

 

그렇다면 과연 교회는 주님께 받은 이 사회적 가르침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은혜로운 주님의 때가 왔음을 알 수 있을까? 어떻게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도록, 어떻게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도록, 어떻게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우리가 사는 이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할 것인가?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서로 사랑하여라!”라는 마지막 계명의 실천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교회의 사회교리는 복음화 직무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다. 정의, 자유, 발전, 민족들의 관계, 평화에 관한 문제들이나 상황처럼 인간공동체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 어느 것도 복음화와 무관하지 않으며, … 만일 정의와 평화로 참된 인간 발전을 증진시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사랑의 새 계명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66항) 인류 문명이 태양으로부터 방출된 에너지를 통해 인간 삶을 향상시킬 수 있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이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의 제 분야들(인간의 존엄성, 노동, 정치, 평화, 환경 등) 안에 스며들어 영향을 발휘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톨릭교회 사회교리가 지침이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른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신앙인들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를 인도해 주는 “가톨릭 사회교리는 어떤 특성과 원리들로 체계화되어 있는가?”라는 물음과 이에 따르는 구체적인 주제들에 관한 부분은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특히 사회교리에 담겨진 ‘보편성’, ‘연속(지속)성’, ‘일관성’, ‘쇄신’ 등과 연관되는 원리들, 곧 인간 존엄성의 원리를 기초한 공동선, 연대성, 보조성, 재화의 보편 목적,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 등에 관해서는 참고문헌과 사회교리 학교 등의 과정을 통해 좀 더 깊게 살펴보기를 바란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어떻게 역사 안에서 자리를 잡았나?

 

하느님의 계획이 담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 안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가톨릭교회의 사회교리’는 교회의 시작과 함께, 교회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더욱이 교회의 쇄신을 가져온 수도원 운동과 복음 실천의 상징인 수많은 성인들의 행적과 가르침 등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산업혁명이라는 변혁기를 지나며 ‘인간 존엄성의 수호’라는 교회의 핵심 사명은 매우 구체적으로 수행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교회를 둘러싼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극심한 빈부의 갈등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을 불러왔으며, 그 갈등을 조정하고자 교회는 회칙 “새로운 사태”(1891년, 교황 레오 13세)를 반포하였다. 교회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의 극단적 대립을 넘어, 고통 받는 인간(노동자)에게로 초점을 맞추며 평화와 정의를 이루려는 세상의 이정표를 제시하고자 했다.

 

80년 전에는 계층, 국가 간의 대립과 혼란,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그에 따른 후유증, 나아가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한 해결방안이 인간의 존엄성(노동자의 환경)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회칙 “사십주년”(1931년)이 이러한 목적으로 반포되었다.

 

50년 전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비극적인 재앙을 경험하였다.  이에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를 개최하며 변화된 새 세상을 위한 희망의 장을 펼쳤다. 그 가운데 특별히 사회교리와 관련한 문헌은 ‘사목헌장’(1965년)이다. 이 문헌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멸망의 표징과 인간성 상실이라는 시대적 표징을 깨닫고, 인간의 존엄성 수호와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였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90주년을 기념하며 “노동하는 인간”(1981년)을 반포한다. 이를 통하여 인간 존엄성과 노동의 밀접한 측면을 신앙적으로 확인하였다. 또한 소련의 붕괴,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냉전을 넘어 새로운 세상의 주제가 된 ‘인간다운 삶의 조건(환경)’을 교회의 가르침 안에서 찾으며 회칙 “백주년”(1991년)을 반포하였다. 이는 회칙 “새로운 사태” 반포 100년을 맞는 해였기에 ‘백주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교회는 꼭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문헌을 발표한다

 

최근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교회의 자선 활동(사회복지)과 관련한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2005년)를 반포하였고, 또 회칙 “진리 안의 사랑”(2009년)을 반포하면서 온전한 인간 발전은 인간과 자연환경 사이의 관계와 직결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교회는 인류공동체의 존속과 번영을 위하여 그 중심 위치에서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문헌을 발표함으로써 ‘하느님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개략적으로 살펴본 것처럼 “교회의 사회교리는 본래 하나의 유기적 체계로 고안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도권이 사회문제에 수없이 개입하면서 만들어졌다. … 교회의 사회교리는 인간실존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사회 안에서 또 국제적 차원에서, 신앙의 빛과 교회 전통의 빛 안에서 주의 깊게 고찰한 결과를 면밀하게 형식화하여 나타낸 것이다”(72항).

 

그렇다면 2010년 이후의 교회, 특히 한국 사회 안에서 가톨릭교회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고 현실화할 수 있을까?

 

“교회는 역사 안에 존재하며 역사 안에서 활동한다. 교회는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와 교류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새로움을 알리는 사명을 수행하고, 구체적으로 여러 가지 힘든 상황 속에서 분투하며 도전한다. … 교회는 온 인류에게 ‘참된 해방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사회와 문화에 신앙의 빛을 비추어줌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524항)

 

 

맺음말

 

2010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새해 첫날 발표한 세계 평화의 날 담화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를 통해 생태계의 파괴와 지구온난화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환경문제를 평화의 주제와 직접 관련시키고 있다.

 

‘세상 안에서 종교 질서와 도덕 질서의 수립’과 ‘완전한 형태의 인도주의’ 그리고 ‘전인류와 인간의 해방과 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의 사회교리는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의 세부적인 영역까지 밀접히 연관된다. 인류의 역사가 변화하는 그 자리에 교회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교회의 사회교리는 ‘인류공동체의 희망 실현의 이정표’라 할 수 있다. 21세기 인류는 미증유의 위험들 앞에 놓여있다. 한 민족, 한 나라, 한 대륙의 범위를 넘어서 전 인류 차원의 주제와 개념들이 개개인의 생활 속까지 스며들고 있다. 교회의 사회교리가 방향을 제시하는 주제들(인간의 존엄성-인권, 가정과 생명, 인간 노동, 경제생활, 정치, 세계 공동체, 평화, 환경과 생태계, 문화와 교육)은 우리 인류가 구원에 이르는 길과 직결된다.

 

“교회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관계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사회교리를 전달한다. 인간 문제에 대한 전문가인 교회는 … 인간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 안에서 울려 퍼지는 생명의 말씀을 이야기할 수 있다”(61항). 나아가 “교회의 사회교리는 ‘그 자체로써 복음선교를 위한 도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복음 메시지와 사회생활의 늘 새로운 만남에서 생겨난다. 이러한 교회의 사회교리는 교회가 말씀의 봉사직과 예언자직을 수행하는 특별한 방법이다. 사실, 사회교리를 가르치고 보급하는 것은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속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필수적인 부분이다”(67항).

 

특별히 평신도들은 세상 안에 살아가기에 ‘영신’ 생활과 가정생활과 노동, 사회적 관계, 정치, 문화생활 등의 ‘세속’ 생활이 따로 존재할 수 없으며, 세상 안에서 삶의 증언을 통해 복음을 선포해야 할 고유한 소명을 지녔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최부식 사도 요한 - 서울대교구 신도림동성당 주임신부,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경향잡지, 2010년 7월호, 최부식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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