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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인간생명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모순 - 생명 보호한다면서 파괴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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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7-16 ㅣ No.754

[생명의 문화] 인간생명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의 모순 - 생명 보호한다면서 파괴 허용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8년 7월 31일 형성 중에 있는 생명인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존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했다(사건번호: 2004헌바81).

 

다만 ① 수정 후 14일이 경과하여 원시선이 나타나기 전의 수정란 상태를 '초기배아'로 ② 수정란이 모체에 착상되어 원시선이 나타나는 시점의 배아는 '인간배아'로 구분하면서 인간배아를 다른 연구목적에 이용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했으나(생명윤리법 제17조), 초기배아에 대해서는 임신 이외의 연구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헌법재판소는 생명을 보호한다면서 동시에 생명을 파괴하는 모순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27일 어떤 부부로부터 임신 목적으로 채취한 정자와 난자를 체외 인공수정하여 생성된 초기 배아의 생명과 가치에 관한 결정을 내렸을 때도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이 사건의 청구인들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일부 조항이 인공수정배아를 인간이 아닌 세포군으로 규정하고, 체세포핵이식 행위를 통해 생성된 체세포복제배아의 연구 및 그 결과물의 폐기를 허용함으로써(제16조와 제17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배아의 생명권 등을 침해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판결이다.

 

헌법재판소는 "인간으로 발전할 잠재성을 갖고 있는 초기배아라는 원시생명체에 대하여도 위와 같은 헌법적 가치가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국가의 보호의무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언하는 한편 "수정된 배아를 불임이나 질병치료 연구에 이용하고 5년이 지나면 폐기할 수 있도록 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조항은 인간 생명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초기배아'를 보호한다면서 배아를 인간생명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모순을 드러낸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문에서 '인간으로 발전할 잠재성을 갖고 있는 초기배아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라는 부분은 지극히 바람직한 선언으로 본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초기배아를 임신 이외의 연구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생명윤리법 제17조를 바로 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이 결정문에서 배아를 인간생명이 아닌 것으로 규정한 것은 어린이 보호에 관한 국제규범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본다. 국제연맹 총회는 1924년 11월 26일 '세계어린이 복지헌장'을 채택함으로써 어린이 보호 원칙을 확립했고, 국제연합(UN)은 1949년 '어린이 권리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은 "어린이는 그의 신체적 또는 정신적 미숙으로 인하여 특별한 안전과 보호가 필요한데, 특히 출생 전과 출생 후의 적정한 법적 보호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출생 후는 물론 '출생 전(before birth)'을 명기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어머니에게서 공급되는 영양을 받아 성장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이러한 진리를 전제로 한 '어린이 권리선언'은 태중의 어린이도 태어난 인간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선언을 담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권리선언' 제1원칙을 보면 태아를 출생 전과 출생 후로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생명체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대 원칙 중 제1원칙은 "어린이는 이 선언이 규정하는 모든 권리를 향유한다"고 선언하는데, 그 문장 마지막 부문에서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출생 또는 다른 지위"를 이유로 하는 어떤 '구별이나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여기에서 출생 이전의 의미는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태어난 새로운 생명체(초기배아)가 2주 간의 여행 끝에 자궁 내에 자리를 잡고(착상) 사람의 골격을 갖춘 뒤 출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다 포괄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최근 결정으로 인해 국내 (배아)줄기세포산업계는 크게 기뻐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인 줄기세포치료시장은 미화 400억 달러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 시장의 대부분은 주름을 없애고 피부를 젊게 하며 상처를 신속히 복구해 준다는 미용술과 관련된다.

 

정부는 2015년까지 줄기세포 연구사업에 대한 투자를 세배로 증액하겠다고 지난해 발표한 바 있다. 최근의 헌법재판소 결정이 생명의 존엄성을 위태롭게 하면서 반생명적 기업의 이익을 지나치게 고려한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드 1세는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라"고 주장했다. 배아의 생명권은 절대적으로 보호돼야 하기에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거나 국회가 관계법률을 개정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평화신문, 2010년 7월 11일, 김찬진 변호사(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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