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신학ㅣ사회윤리

[환경] 생태 영성: 산처럼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8-14 ㅣ No.764

[생태 영성] 산처럼

 

 

산이 주는 생태적 가치

 

휴가철을 맞이하여 강과 바다만큼 많이 찾는 곳이 산이다. 산속엔 맑고 신선한 공기와 시원한 물이 있는 계곡이 있으니 더위를 피해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쉰다는 뜻의 한자인 ‘휴(休)’도 나무(木)와 사람(人)이란 뜻을 가진 한자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인 것을 보면 휴가를 위해 나무가 많은 산을 찾는 것은 일리가 있다.

 

산은 인간들에게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의 생태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산속 숲의 나무들은 뿌리로부터 물을 흡수하고,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와 태양광을 이용하여 대기에 신선한 산소와 에너지원을 제공한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주요 물질로서, 나무들이 이를 흡수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방지해 준다. 그리하여 숲을 ‘자연 탄소 통조림 공장’ 또는 ‘천연 공기 청정기’라 부르기도 한다.

 

인간과 모든 동물은 산으로부터 음식물을 취하고 산소를 호흡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 산은 지구 표면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12%가 나무로 집을 짓고 산다. 또한 산은 세상의 큰 강들의 원천으로 지표수의 50%가 산으로부터 온다. 이러한 생명부양 능력으로 말미암아 산은 많은 동식물들의 서식처이며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10여 년 전 우리 사회는 영월 동강댐 건설에 대한 논란을 통해 물 부족을 해결하는 데 댐이 어느 정도 필요하기도 하지만, 인공 댐은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수질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선진국들에서는 기존의 대형 댐들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인공 댐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 가운데 하나로 부각되는 것이 녹색 댐이다. 녹색 댐은 다름 아닌 숲이 우거진 산 자체이다. 산이 빗물을 머금었다가 서서히 흘려보내는 유출 조절 기능이 높은데 이는 인공 댐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오염된 빗물을 깨끗한 계류수로 바꾸어주는 수질 정화기능도 있다.

 

산이 지니는 이러한 기능은 숲이 만드는 토양구조로 말미암아 가능하다. 나뭇잎이 떨어져 만들어진 토양은 스펀지와 같은 구조를 지니게 된다.

 

그럼에도 물 부족을 해결한다고 강을 준설하고, 댐과 다름이 없는 높이의 보를 건설하여 물을 가두어놓겠다는 4대강 사업의 목적은 비합리적이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성경에서의 산

 

성경에서 산은 하느님을 만나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로 나타나며 인간의 영혼을 창조주에게 오르게 하는 상징으로 나타난다. 곧 산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 하느님의 자기 계시이자 성사인 것이다.

 

세상을 창조한 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하느님과 함께 지냈다. 그 동산은 그야말로 4대강(피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의 발원지가 되었다(창세 2장 참조).  아브라함이 아들을 재물로 바치려고 한 곳이자 하느님을 만난 곳은 모리야의 산이다(창세 22장 참조). 노아의 방주가 정착한 곳도 아라랏 산이었다(창세 8,4).

 

시나이에 있는 ‘하느님의 산’이란 별칭의 호렙 산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곳(탈출 3,1-6)이며, 모세가 소명을 받은 거룩한 곳이다(탈출 3,15). 또한 엘리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소명을 받으려고 올라가 하느님을 만났던 산이기도 하다(1열왕 19,8).

 

일반적으로 제사를 거행하는 장소는 지면보다 높다. 그리하여 산은 하느님과 소통하기 위한 제단을 세우는 장소가 된다(탈출 24,4-5). 필리스티아인들에게서 돌아온 주님의 궤를 모신 곳도 언덕 위였다(1사무 7,1).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안에서 산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올라가서(시편 24,3)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거룩한 곳이고, 주님과 더불어 사는 희망을 지니고(시편 15,1) 끊임없이 올라가야 하는(시편 43,3) 곳이다.

 

하느님을 만나려고 산을 오르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전통이 되었듯이, 늘 하느님과 아버지와 일치하려 했던 예수님은 산에 오르는 것이 잡히시기 전 즈음에는 아예 일상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루카 22,39).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할 때(루카 6,12; 마르 3,13), 말씀을 선포할 때(마태 5-7장), 병자를 고쳐주고 빵의 기적을 행할 때(마태 15,29 이하), 거룩한 변모를 하실 때(마태 17,1-2) 등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는 언제나 산에 올라 기도하셨음을 알 수 있다.

 

 

산의 영성

 

인간은 물길인 유역(流域)을 따라 다양한 문화를 형성하며 살고 있는데, 이 유역을 가르는 분수령이 바로 산이다. 물을 분배하시는 분이 하느님(시편 104,6-8)이시라면 산은 그 하느님의 일을 하는 도구인 것이다.

 

나무는 하늘의 햇볕을 흡수하고 땅속의 물을 뽑아 올려 자신의 생명활동을 하고, 뭇 생명의 생명을 도와준다. 땅과 하늘을 결합시킴으로써 자신과 뭇 생명을 부양하며 다양성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산속의 나무는 땅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보여주는 표지이다.

 

하늘 높이 솟아있는 거대한 나무는 그것을 쳐다보는 인간이 나무가 뻗어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그곳을 지향하게 한다. 그런 연유로 산과 나무는 예로부터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높이 솟은 모습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로운 대기와 구름 때문에 산을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여겼다.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강원도 산골짜기이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모두 산뿐인 강원도 산골은 하늘이 오히려 산보다 작았다.

 

어릴 적 아버지는 호랑이처럼 무서우면서도 인자하셨다. 그렇게 말없이 아버지처럼 우뚝 서있기만 하던 산은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한편 속상할 때 올라가면 괜한 것으로 상처받은 어린 마음을 위로해주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지금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를 하지만 하느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하늘보다는 산이 먼저 가슴에 떠오른다.

 

이처럼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며, 뭇 생명을 키우는 산은 단순한 휴식과 여가의 장소도,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산이 마치 진보와 발전을 방해하는 장애물인 양, 조금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산을 마구잡이로 잘라놓고, 한낮 공치기 놀이를 위해 아무런 죄책감 없이 괴물 같은 중장비와 한 몸이 되어 산을 밀어버리는 현대인은, 불경을 넘어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해 버리는 패륜아라 아니할 수 없다.

 

과거 어느 때, 이렇게까지 산을 홀대한 적이 있었던가? 아들이 아버지를 함부로 대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요즘의 세태는 산을 함부로 대하는 마음도 일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산처럼

 

여름 휴가지로 가장 선호하는 강과 산은 자연 중의 으뜸이면서 서로 경쟁하지 아니한다. 강은 산을 넘지 않고, 산은 강을 건너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강과 산을 사랑하고, 그로부터 지혜를 배워, 우리도 그렇게 강과 산처럼 서로 경쟁하지 않고 보듬고 살 때 하느님 나라가 이땅에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산을 사랑하고 산과 더불어 산처럼 살면 우리 모두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 선인(仙人)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산에 가면 실천해 봅니다

 

1) 다만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명령을 들은 모세처럼(탈출 3,5) 맨발로 산길을 걸으며 거룩한 하느님을 만나봅니다.

 

2) 산에서 발견하는 나무와 여러 생물들의 모습을 한참 응시해 봅니다.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이나 도감을 찾아 그 이름을 알아봅니다.

 

3) 정상을 정복하려는 등산(登山)이 아닌, 산과 하나가 되어 천천히 걸어가는 산행(山行)을 즐겨봅니다.

 

* 이동훈 프란치스코 - 제천 남천동성당 주임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생태신학을 전공하였다. 생태영성연구원 공동대표이다.

 

[경향잡지, 2010년 8월호, 이동훈 프란치스코]



51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