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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인간 개조와 우생학의 그림자 - 자식을 디자인하려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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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9-19 ㅣ No.773

[생명의 문화] 인간 개조와 우생학의 그림자 - 자식을 디자인하려는 부모?


유전굥학 이용해 자식을 원하는 대로... 비윤리적이며 주님 섭리 거슬러

 

 

사람은 태중에 있을 때부터 배우기 시작해 죽을 때까지 배우도록 돼 있는 '학습존재'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른바 태교와 '안심하고 죽을 수 있는 교육'(웰다잉)을 받아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자녀를 도구화

 

부모는 자식을 제대로 교육할 막중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갖는다. 그러나 인간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이듯 자녀도 하느님의 선물이다. 자녀를 선물로 여기는 것은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부모가 함부로 디자인해도 되는 대상이거나 산물, 또는 부모의 충동이나 야망을 해결해 주는 도구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타고난 소질이나 성격은 부모가 선택하거나 임의로 개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자질과 미래는 열려져 있는 것이며 부모가 예측(豫測)할 수 없는 신비이다. 어떤 부모도 자식의 모든 부분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다. 부모다움이란 어떤 경우에도 자식에게 열린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정복과 통제의 충동으로 지배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특히 자식들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한다. 자식을 디자인하는 부모의 오만, 즉 탄생의 신비를 무시하고 자식을 정복하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왜냐하면 오만과 충동은 부모와 자녀의 인격적 관계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부모의 마음과 예측불가능하게 길러질 수 있는 사람 본연의 가능성을 빼앗기 때문이다.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녀가 질병에 걸렸을 때 수수방관하라는 것이 아니다. 아픈 자녀를 치료하고 건강하게 기르는 것은 그 아이의 자연적 능력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치료는 어떤 의미에서 인위적으로 간섭을 하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 목적은 건강회복, 즉 본래적 인간 기능을 회복시켜주기 위한 것이지, 인간을 개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자연과 사람을 정복하려고 하는 수단으로, 의료가 아닌 목적으로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하려고 한다.

 

유전공학(생명공학)이 초래하는 문제들을 살펴보자. 노화에 따르는 근육손실을 보충하거나 근이영양증을 완화하기 위해 근육강화제를 치료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용인될 수 있을 것이다.

 

 

공학기술 혜택의 불공평

 

그러나 운동선수의 근육을 약물로 강화하는 것은 올림픽에서도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도핑 테스트를 통해 약물 사용 여부를 검출하고 엄금한다. 그런데도 프로경기 선수들이 도처에서 약물을 이용하는 것은 이제 항다반사이다. 더군다나 유전공학기술을 이용해 유전자변형을 하게 되면 소변이나 혈액으로 약물검출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면 운동선수는 유전공학기술에 의해 상업주의의 희생물이 되고 만다.

 

유전공학기술은 기억능력 향상에도 사용될 수 있으며, 성장 호르몬을 이용해 신장을 늘리는 일에도 이용되고 있다. 문제는 유전공학기술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이용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빈민계층은 그러한 혜택에서 제외되고, 부유층만이 보통 이상의 우수한 능력을 가지게 되면 이는 불공평한 일이다.

 

 

인간은 하느님 선물

 

그러면 과학기술에 접근하는 평등성을 확보하는 것이 해결된다면, 가령 인지력강화제를 누구든지 쉽게 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첨단 생명공학기술을 질병치료와 건강회복에만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바꾸는 데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망각한 태도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전공학기술이 자식의 성별을 미리 알아내어 원하지 않는 성을 가진 아기를 출산 전에 살해하거나. 소위 '선천적 이상'이 있는 아기를 미리 알아내어 살해하는데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전공학기술에 의해 부모의 잘못된 우생학적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아기를 출산 전에 살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우생학은 인간의 종을 개조하려는 시도이며, 미국의 인종차별정책을 비롯해 나치의 잔학상으로 알려졌지만, 오늘날 자식을 과도하게 디자인하려는 사람들도 또 다른 우생학의 그림자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닌가를 우리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 2010년 9월 19일, 진교훈 교수(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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