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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칼럼: 희생 - 천국보다 낯선 영화 세계로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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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 희생(1986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희생>, 천국보다 낯선 영화 세계로의 초대
영화 매체는 새로운 영화 형식을 꾸준히 모색해왔습니다. 우연의 요소와 비논리적 전개 방식의 고의적인 채택, 인간의 심리와 감정의 미묘한 움직임 그 자체에 대한 탐구, 꿈과 환상과 현실을 뒤섞으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야기 전개, 관객이 환상에 몰두하지 못하도록 비평적인 거리감을 유지하게 하려는 장치들의 활용 등 새로운 미학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영화들이 탄생하여 왔습니다. 새롭고 다양한 영화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기준과 틀을 보다 유연하게 확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신고전주의 회화의 걸작인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감상하는 기준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감상한다면 과연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보다 유연한 감상의 틀을 가지고 감상한다면 <희생>은 경이로운 미학적 체험을 안겨줄 것입니다. 감독은 시간과 공간을 조각하여 움직이는 이미지들의 거대한 조각상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각 장면들은 단지 이야기 전개를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 이유를 갖고 그 조각상 속의 독립된 조각상이 됩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로댕의 거대한 조각 작품 <지옥의 문>을 감상할 때 우리는 우선 멀리서 직관적으로 감상합니다. 그 후 가까이 다가서서 그 안에 자체의 존재 이유를 갖고 존재하는 부분적인 조각상들, 즉, <생각하는 사람>이나 <웅크린 여인>이나 <아담>이나 <이브>의 존재 이유를 해석합니다. 그리고 직관적이고 전체적인 인상과 부분적인 해석들을 종합하면서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한 예술적 체험을 완성합니다.
<희생>에서, 아버지 알렉산더와 함께 바닷가에 이미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던 어린 아들 고센. 3년 동안 매일같이 물을 주어 죽은 나무에서 꽃이 피어나게 했다는 한 수도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 나무 아래에서 고센은 질문을 던집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데, 아빠, 그게 무슨 뜻이죠?” 영화 안에서 제시되었던 문제들을 마지막 장면에서 완벽하게 해결하려는 대부분의 할리우드의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이렇게 질문으로 끝납니다. 관객들을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로 만들려는 것이 이 영화가 추구하는 미학이기 때문입니다.
[2020년 12월 27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서울주보 5면, 이광모 프란치스코(영화사 백두대간 대표)] 0 2,42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