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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올바른 이해, 안락사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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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2-14 ㅣ No.622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올바른 이해 -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 안락사와는 다르다

 

 

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 판결이 우리사회에서 처음으로 내려졌다.

 

가톨릭교회는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소생불가능하다는 의료진의 전문적이며 양심적인 판단을 존중하는 가운데,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해 동의한다. 이는 안락사와는 명백히 다르다. 이번 판결 또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이하 무의미한 치료 중단)’이라는 관점, 즉 인간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러운 죽음의 진행과정을 누릴 권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만 유효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소극적 안락사의 물꼬를 텄다’거나 ‘자기운명결정권이 생명권보다 우선할 수 있다’며 호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이해나, 사회 각계의 입장은 앞으로도 안락사 등 생명에 대해 그릇된 판단의 허용으로 확대해갈 개연성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이번 판결을 중심으로 교회가 말하는 무의미한 치료 중단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안락사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짚어본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지’ 판결

 

서울 서부지방법원 민사 제12부는 11월 28일 환자 김모(76·여)씨와 관련한 소송에 대해 “회복 가능성이 없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고 환자가 치료 중단을 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의해 병원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는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재판부는 이번 판결은 소위 적극적 안락사 및 모든 유형의 치료 중단에 관해 다룬 것은 아니며, 단지 무의미한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문제만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씨의 경우 호흡기를 떼도 3~4개월 이상 연명할 수 있다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치료 장치를 제거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러한 객관적 내용만 볼 때 이번 판결은 인간 존엄성을 지닌 자연스러운 죽음 과정을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판결에서 확대되는 문제점

 

용어 인식과 사용

 

하지만 이번 판결과 관련해 앞으로 파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간과할 수 없다.

 

우선 김씨의 경우 아직 뇌사 상태에 이르지 않았는데 치료 중단을 판정했다는 것이 성급했다는 의견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논란은 용어의 혼용 문제다. 일반 의학계 등에서는 ‘무의미한 치료 중단’과 ‘소극적 안락사’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안락사와 존엄사도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혼용된다. 특히 일반 언론 등에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중단’을 ‘소극적 안락사 허용’으로 표현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무의미한 치료 중단은 결코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킬 목적을 갖지 않는다. 인간 실존에 있어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 명확한 경우 기계적 장치 등에 의한 치료 지원을 더하는 것은,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거나 소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시간만을 연장하고 죽음 자체의 의미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교황 비오 12세가 1957년 의사들과의 담화에서 언급한 내용에 기초로 한다. 또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문헌 ‘중환자와 임종자에 관한 윤리문제’와 보건사목평의회 문헌 ‘의료인 헌장’에서도 일반적인 치료 수단에 의한 ‘통상적 방법’과 특수한 치료 방법에 의한 ‘예외적 방법’을 구분하고, 예외적 치료수단의 사용은 정당하나 의무는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른바 ‘최소한’이라고 부르는 치료수단, 즉 생명 유지를 위한 영양과 수분 공급 등은 언제나 사용돼야 한다고 명시한다.

 

아울러 말기환자에 대한 무의미한 치료 행위의 중단은 소위 ‘의료 집착’ 행위를 포기해 자연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맞도록 하는 차원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안락사에 관한 선언’, 교황청 신앙교리성성).

 

일반 사회에서 사용하는 ‘존엄사’와 관련해서도 용어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존엄사는 ‘인간 존엄성을 지닌 품위 있는 인간적 죽음(Death with Dignity)를 뜻하지만 사회에서는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 무의미한 치료 중단을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

 

안락사 논쟁의 핵심은 ‘인간적인 죽음’이다. 안락사 찬성론자들도 무의미한 치료 중단을 통해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고 있어, ‘존엄사’라는 용어 사용도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올바른 사회적 합의가 있기 전까지는 무의미한 치료 중단이라는 표현을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치료 중단 결정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추정동의를 취했다고 밝혔다. 즉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환자의 자율성을 어디까지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치료 중단이 필요한 경우 그 판단의 주체는 의사도 가족도 아닌 환자 본인이다. 때문에 환자는 회피할 수 없는 죽음에 임박했을 때 치료를 거부한다는 의견을 미리 제시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살적 선택이 아니라면 환자의 의견은 받아들여진다. 또 환자가 치료를 원한다면 그의 선익을 위해 치료를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환자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자율성이 절대적 권리는 아니다. 환자 자신의 자율성 존중은 환자의 이성적인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인간의 자유와 판단은 항상 주변 상황·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이 생명을 선택하고 죽일 수 있는 자유는 결코 없다. 생명을 선택한다는 문제는 하느님에게만 유보된 신성불가침권으로서 인간의 자율성 존중을 벗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어 고통을 멈추기 위해 생명을 끊는 자살적 선택은 자율성 존중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울러 의사 표현을 미처 하지 못하고 의식불명이 된 경우라면 의사는 ‘추정 동의’ 등의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의 경우에도 의식불명 환자의 의사표현에 대해 ‘추정 동의’를 취했다. 법원에서 추정 동의를 취하는 방법은 대개 가족들의 증언을 통해서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서도 추정 동의가 무리였다는 판단이 있을 수 있다. 말못하는 환자의 속내가 실제 치료 중단을 의미했는지 판단이 모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 추정 동의를 계속 인정한다면 수많은 말기환자 가족들의 판단에 의해 악용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하다. 더욱이 이러한 판단에서 경제적인 부분이 고려되는 폐해가 겹쳐진다면 물질이 생명 가치에 우선하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법제화 문제

 

이번 판결 직후 보건복지가족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소위 ‘존엄사’에 대한 국민 의식과 실태조사에 착수, 존엄사 법제화에 대한 검토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회에서도 말기암 환자에 대한 존엄사를 인정하는 법률안 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무의미한 치료 중단과 안락사 등에 대한 올바른 용어 정의도 이뤄지지 않고, 엄격한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현실에서 법제화 추진은 너무 앞서가는 의견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의식을 세우고, 다양한 용어에 대한 폭넓고 분명한 사회적 논의가 있은 후 ‘자연사법’ 제정 등은 논의될 수 있다.

 

무의미한 치료 중단 판정을 위해서는 무엇이 환자를 위한 참된 선인지에 대해 고려하는 것이 우선이다. 실제 어떠한 의료행위가 무익한 것이고, 또 예외적인 치료 방법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자칫 가족들의 경제적 이익이나 병원의 수익 구조 등에 따라 진행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이에 따라 생명윤리 전문가들은 우선 병원 생명윤리위원회가 올바로 가동되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호스피스 확산 등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환자가 사전의료지시서 등을 미리 작성하게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제도화를 추진할 때는 안락사의 제도화로 인식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용어해설

 

- 적극적 안락사 : 안락사를 수행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킬 의도로 구체적인 행위를 능동적으로 행하는 행태.

 

- 소극적 안락사 : 당사자가 이전부터 앓던 질병 등으로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이제 죽음을 회피할 수 없다고 판단, 환자에게 당연히 베풀어져야 하는 기본적인 치료까지도 중단하는 것. 예컨대 정상적인 간호 행위라든가 수분 공급, 영양공급까지도 중단하는 행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행위에 이러한 것들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신문, 2008년 12월 7일,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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