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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의 문화: 이타적 존재, 이기적 존재 - 과학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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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2-23 ㅣ No.623

[생명의 문화] 이타적 존재, 이기적 존재 - 과학이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

 

 

경제위기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곳곳에서 미국식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합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는 철학에 바탕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 우리 문화에서는 인간을 이렇게 이해하는 관점이 매우 넓게 퍼져있다. 거기에 계몽주의 이래 인간을 이성을 지닌 존재로 이해하는 생각이 덧붙여져 있다. 그래서 일상 삶에서는 경쟁과 투쟁을 통해 남에게 이겨야 하고, 어려운 사회생활에서 여하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과연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며 합리적 존재인가. 이 질문은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나아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오랜 철학적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이런 문제는 이미 시편에서도 보듯이 인류의 가장 오랜 숙제 가운데 하나이며, 철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한 지적 노력에서 문화와 학문, 예술이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진화론 이래 급속하게 발전한 현대 생물학은 온갖 형태로 오랜 철학적 질문에 대해 과학주의적 토대에서 답을 찾아가고 있다. 분명 진화생물학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생물 과학적 지식과 발견은 이런 질문에 객관적 지식과 근거를 제공했다. 과학의 발견이 있었기에 그저 추정에 그치거나 선언적이며 당위적 대답에 매여있었을 수많은 어려운 문제가 해소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날 많은 진화생물학자들은 개체와 종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과정을 통해 생명이 진화한다고 말한다. 극단적인 경우, 개별 생명체는 이기적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한 '생존 기계'라는 비유까지도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인간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생명과 생존을, 그 뒤에 혈연이 통하는, 즉 유전자를 많이 공유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할 때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다른 학자들은 인간은 종의 생존, 즉 공동체의 생존을 생각하는 이타적 존재라고 말한다. 그런 경우조차도 자신의 생존을 위한 방편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주장은 일면적이며, 사실의 한 측면만 보는 반달보기의 전형적 모습일 뿐이다. 잘못 놓여진 문제 지평에 자리하기에 잘못된 대답이, 사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과학의 지식과 발견은 올바르게 수용돼야 한다. 생명을 살리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밝혀진 사실을 부정하고 자신의 신념에만 갇혀 독단적 주장을 펼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과학적 발견이 곧 존재의 진리는 아니다. 생명체의 생존과 진화를 해명하는 과학에는 과학자들의 신념체계가 고스란히 반영된다.

 

진화의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우리의 본성에 대한 사실을 유비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런 사실에 국한돼 있지 않는다. 인간은 도덕과 윤리, 종교와 믿음, 의미와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여기에는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학문과 예술, 신앙을 비롯한 온갖 문화적 차원에서 주어지는 존재론적 진리가 자리한다.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고 인간을 단지 생물학적 차원으로 환원시켜 보는 것은 반쪽의 진리, 그래서 진리에 반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이기적인가 아니면 이타적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가 잘못 제기된 것이다. 인간은 미시적 차원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차원을 넘어 자신의 믿음과 의미를 추구하며, 존재의 근원에서부터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심지어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수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을 공존재, 더불어 사는 존재, 타자와 함께 살아야만 올바르게 살 수 있는 존재라고 주장해왔다. 굳이 신학적 관점에 기대지 않더라도 일반적 학문과 문화에서도 이런 사실은 자명하게 확인된다.

 

오늘날 우리 문화 안에 유행처럼 생물학적 발견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에 관한 진리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른바 생물학주의(Biologism)다. 그러나 생물학적 발견이 올바르게 이해되고 진리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 지식을 수용하는 존재론적 지평이 타당하게 정초돼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과학이 스스로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철학과 우리의 존재론적 결단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인간을 타당하게 이해하려면 이 두 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 문화도 올바르게 이뤄질 것이다.

 

[평화신문, 2008년 12월 21일, 신승환 교수(가톨릭대 철학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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