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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교회와 생명: 자살예방을 위한 사목적 대안과 노력 - 경찰사목 H.A.T.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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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9-23 ㅣ No.689

[경향 돋보기 - 교회와 생명] 자살예방을 위한 사목적 대안과 노력 - 서울대교구 경찰사목 H.A.T.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신부님, 저희 중대 한 대원이 근무 중 심야에 부대를 무단이탈하여 죽으려고 칼로 손목을 그었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졌습니다.” 벌써 상당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바로 엊그제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기억에 생생하다. 경찰사목을 하는 상황에서 가끔 해당 기관의 선교사한테 이런 말들을 전해 들을 때마다 무척 당황하기도 하고 막막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다행히 이번 경우 그 대원은 우리 선교사가 엄마같이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사랑의 마음을 심어준 결과 정상적으로 돌아와 부대생활을 잘 하고 제대를 하였다.

 

이 일로 말미암아 부대 지휘관들은 우리 가톨릭 선교사의 자세와 노력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부대 대원들 가운데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있거나 상담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서 이제는 공식적으로 우리 선교사가 부대 전담 심리상담관으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 선교사는 현재 자신의 활동에 더욱 보람과 의미를 가지고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서울시내 31개 경찰서와 5개 기동단을 비롯하여 83개의 중대를 방문관리하며 사목하는 서울대교구 특수사목부의 경찰사목위원회는 유치장 내의 유치인들과 경찰을 직업으로 하는 교우들도 사목적으로 만나고 있지만, 많은 관계가 이뤄지는 대상은 군복무의 일환으로 경찰기관에서 근무하는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인 전 · 의경들이다. 그러나 간혹 미래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불규칙한 사회현상에 따라 움직이는 군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군생활의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모든 영역에서 이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통계로 나온 수치에서 이러한 현상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20-30대의 사망원인 가운데 1위가 자살임이 조사결과 확인된 것이다. 왜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고 이러한 문제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추상적이 아니라 실체적인 생명운동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는 21세기의 다양한 문화현상 안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그릇된 신관과 인간관,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개념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문화로 오늘날의 상황 속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그 심각성을 분석하면서 각 교회의 생명문화운동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정신에 따라 서울대교구에서도 생명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다양한 생명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그러나 생명경시 풍조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반생명적 결과를 드러내는 통계들이 계속 발표되어 모든 생명운동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너무나 피상적으로 생명운동을 다루어온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현상에 대한 합리적인 이론적 분석과 그럴듯한 이상적인 대책은 언뜻 보기에는 완전한 그림인 것 같으나, 추상화가 아닌 생동감 있는 실체를 나타낸 사실화가 일반 관람객에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예를 들어 경찰사목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한 사제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실체적 사회현실을 거의 날마다 피부로 느끼면서 생활하게 된다. 서울지방경찰청 각 기동단에는 전문적인 학위를 가진 여성경찰관들이 인권심리상담관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해당 부대 전 · 의경들의 모든 인적 사항을 컴퓨터 파일로 정리해 놓고 관리하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활동해 오고 있다. 물론 이들의 활동이 어느 정도 대원들의 부대생활 안정에 기여해 오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대원들의 자살충동 사건이나 탈영, 대원들 간의 심리적 갈등 같은 심각한 사안이 발생했을 경우 부대 지휘관들은 그들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선교사들을 찾아 어려움을 토로하고 도와줄 것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바로 여기에 추상화와 실체화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04년부터 경찰사목은 전 · 의경대원들의 자살을 예방하고 올바른 부대적응과 심리적 갈등해결에 도움을 주려고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자문과 도움으로 H.A.T.*(Happy Art Therapy. 특허등록번호 제41-0184772호)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경찰기관의 대원들에게 많은 성과를 거두어왔다. 그리고 H.A.T. 프로그램에서는 자살예방이라는 단어를 되도록 자제하는데, 자살이라는 부정적 용어 사용이 자살예방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사랑이라는 긍정적인 관점의 접근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프로그램 현장에서는 스트레스 관리와 부대 적응력 향상과 행복감 증진에 초점을 두고 실시되고 있다.

 

각종 시위진압에 동원되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대원들에게 H.A.T. 프로그램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라 상담과 심리학의 토대에서 사랑으로 이해하고 개개인의 고유한 상태를 배려하는 맞춤형 생명문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먼저 육체적인 긴장감을 해소하고 갈등으로 얼룩져 있는 그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면서 생명의 가치를 심어주는 단계적 전략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대원들의 각종 부대 사고가 2008년도 통계결과 전년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었고, 이를 인지한 경찰당국의 지휘부서에서 이를 정기적인 대원들의 부대 적응 관리 시스템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우리 선교사들은 표현예술상담사 교육을 이수하고 정부에 등록된 민간자격증을 받아서 활동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격도 자격이지만 선교사들이 부대에서 엄마와 아빠 같은 사랑으로 대원들을 감싸 안고 아무 조건 없이 오직 그리스도 사랑의 정신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심리상담기술의 이론으로 무장하고 여기에 순수한 사랑의 정신이 곁들여지면서 우리 선교사들은 경직된 부대에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는 H.A.T. 프로그램을 지도하면서 생명의 가치와 군생활의 의미를 심어주는 새로운 생명보호의 수호천사가 되었으며 해당부대에서 많은 기적을 자아내고 있다. 이 프로그램과 활동으로 수많은 대원들이 자살의 문턱에서 벗어나 활력소를 찾은 뒤 이에 감사하는 감동적인 서신이 책상에 수북이 쌓여있을 정도이다. 아울러 이를 통해 예비신자로 등록한 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품을 찾은 대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연간 약 1,000명 세례)인 것은 당연하다.

 

 

전문적 고찰과 대상의 환경에 맞는 문화적 활동

 

늘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이천 년 전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선포할 당시의 상황을 많이 묵상해 본다. 그리스도가 당시 바리사이파의 형식적 이론을 넘어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가치를 심어주고 갖가지 병을 고쳐주면서 삶의 희망을 찾게 해준 것이 바로 생명수호의 기본적 가치가 아닐까 하고. 그리고 이러한 가치는 21세기 오늘날 자살, 낙태, 이혼, 마약 등 반복음적 가치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에서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론은 실체와 접목이 되어 그 생명력이 살아날 때 가치가 있게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복음적 가치도 바로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펼쳐질 때 최고의 가치가 구현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자살예방을 위한 생명의 복음도 바로 이러한 큰 맥락 안에서 집이 지어질 때 완전하고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기본 가르침인 사랑의 정신에 충실할 때만이 현대의 반생명적인 죽음의 문화는 사라지게 되어있다. 어둠은 그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빛이 들어오면 자연적으로 사라지게 되어있다. 사랑의 햇빛으로 자살이라는 어둠의 그림자를 벗겨내는 것만이 이 문제를 푸는 핵심적인 열쇠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사랑의 운동을 또 단순하게 이론적으로 접근을 하다보면 문제풀이가 형식적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랑에 자기희생이 없다면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진리가 너무나 쉽게 이야기되다 보니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우리가 오늘 화두로 삼고 있는 자살예방과 생명수호는 한마디로 복잡하고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로잡는 것이다. 여기에는 방법적으로도 단순한 자선이나 노력봉사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세상이 되었다. 오히려 전문적인 깊은 고찰과 대상의 환경에 맞는 문화적 활동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과거 경찰기관 종사자들이 가톨릭 신자로서 활동하기에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 서울대교구에도 특수사목으로 경찰사목이 생기고 사목이 시작되었지만 어려운 점이 참 많았다. 과거의 역사적 배경 속에 존재하는 어쩔 수 없었던 냉담교우들, 특히 개신교와 불교 등 이미 타종파에서 30-40년 동안 준비된 타종교인들의 체계를 넘고 들어가기에는 얼마 되지 않은 가톨릭 신앙의 입지는 다윗과 골리앗의 경우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이를 사목적으로 해결하고자 시도한 수많은 노력 가운데 제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 것은 생명복음화의 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수호 운동을 단순한 이론이 아닌 젊은이들의 환경에 알맞은 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나가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이렇게 준비된 선물(?)이 바로 H.A.T.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경찰사목에서는 이러한 생명문화 활동을 또 다른 영역인 경찰서 유치인들을 대상으로 한 활동에도 접목시켜 나가고 있다. 유치장의 특수한 구조상 정식 H.A.T. 프로그램을 진행시킬 수는 없지만, 이 프로그램으로 훈련되고 표현예술상담사 자격을 갖춘 선교사들이 유치인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주고 비언어와 언어를 구별해 가며 개별대화를 하고 그들의 심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마음의 길을 잃은 이들이 유치장에 들어와 자살의 문턱에서 방황을 하다 우리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새로운 삶을 찾은 뒤 보내오는 서신도 역시 부지기수이다.

 

 

그리스도의 기본 가르침인 이웃사랑의 실천

 

자살예방 활동의 사목적 대안 과정이 경찰사목을 설명하는 것처럼 되었지만 사실 많은 자살시도자들과 그들의 개선과정을 경험했기에 이 자리를 빌려 과감하게 사고의 틀을 바꾸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그것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늘이라는 현실에서 구체화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그 시대 정서를 읽고 그 시대가 들을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나머지는 성령께서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살예방 생명수호의 근본적인 길은 그리스도의 기본 가르침인 이웃사랑의 실천에서 찾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사랑 실천은 대상자에게 알맞은 전문적이고 문화적인 방법으로 연구 고찰되어 접근할 때 사막의 오아시스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그동안 많은 분야에서 활동의 영역을 넓혀왔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적 가치가 이땅에 뿌리내리는 데 많은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자살 등 반생명적 움직임은 우리의 복음 영역 확장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는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각 본당과 특수사목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목활동이 이론이 아닌 실천적 기본에 기초를 하고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이러한 활동이 도움을 주고 있는 대상 기관이나 개별 대상자에게 맞춤형 생명수호 문화사목과 연계되어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반생명문화 퇴치를 위한 활동은 어느 한 기관이나 개인이 추구해야 할 사안은 아니다. 개별 교회는 본당 차원에서 그 나름대로 해당 영역 안에서 활동을 해나가되 크게 보면 범교회 차원에서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교구에서는 정부의 해당 부서나 NGO 사회단체와도 긴밀히 협의해 나가되 구체적 프로젝트를 가지고 접근해 나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종파와 협력해나가는 것도 기피하면 안 된다.

 

무릇 한 시대의 역사는 그 흐름을 잘 읽고 그 흐름에 잘 적응해 나갈 때 선순환이 되는 것이며, 이천 년의 우리 가톨릭교회 역사도 같은 맥락에서 많은 성찰을 필요로 하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추진해 나가야 할 분야는 자살, 폭력 등 반생명적 죽음의 문화 퇴치이며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교회가 앞장설 때 먼 훗날 21세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역사는 하느님 구원의 손길이 깊이 체험되는 신앙의 역사였다고 고백되리라 생각한다.

 

* 음악, 미술, 문학, (율동) 동작 등 예술(이 지닌)의 치유적인(부분) 특성을 활용하여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고 (자신감 회복으로) 삶의 긍정감과 행복감을 증진시켜 주는 통합 예술 치료 프로그램. 문의 ☎ 02-742-9471

 

[경향잡지, 2009년 9월호, 강혁준 아우구스티노 신부(서울대교구 경찰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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