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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적 가르침의 효시 노동 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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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655

사회적 가르침의 효시 노동 헌장

 

 

지금으로부터 꼭 1백 년 전 1891년 5월 15일에 레오 13세 교황이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의 토대를 놓은 회칙 “노동 헌장”을 발표하였다. 그것이 발표된 지 이미 한 세기가 흘러갔고, 우리가 금년에 그 100주년 기념 행사를 갖는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신자들은 그 회칙을 읽어 보지 않았고 일부가 조금 읽었다 해도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회칙의 내용을 고찰하고자 한다. “노동 헌장”은 주로 19세기에 새로이 산업화되던 서부 유럽 국가들의 빈부 격차와 사회 정의 문제에 관심을 두면서 몇 가지 중요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회칙이 보았던 사회 문제

 

“노동 헌장”은 교회가, 적어도 교황님이 보았던 당시의 사회문제에 대한 반응이다. 레오 교황은 무엇이 중대한 문제라고 보았던가? 세 가지의 현실이 심각한 문제였다. 첫째는 기업인이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착취하였다. 그러한 착취에도 불구하고 국가 기관이나 법률은 노동자에게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리고 중세기의 길드가 무너진 지 오래 된 까닭에 노동자를 보호할 어떤 조직도 없었다(6항). 레오 교황은 노동자가 무자비하게 착취당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 원인은 노동자를 보호할 국가 기관이나 법률, 그리고 노동자의 조직이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국가 기관의 정책 변화, 노동자 보호법의 제정, 그리고 노동 조합의 조직 등의 필요성을 암시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자본 계급과 노동 계급 간의 심각한 갈등이었다. 사회는 엄청난 장벽이 가로놓인 두 계급으로 갈라졌고 그들간에 빈번한 갈등이 벌어졌다. 이 갈등이 사람을 불안과 고민에로 몰아넣고 강구책을 모색하도록 강요하였다. 그 갈등은 소수의 자본 독점과 대다수인의 빈곤, 노동자들의 응집력, 그리고 윤리 의식의 타락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1-2항). 셋째 문제로 교황은 자본가들이 과도한 영향력을 휘두른다고 보았다. 그들이 모든 기업을 독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생산 재산을 마음대로 운영할 뿐 아니라 국가의 정책과 행정을 주무르는 것이 문제였다(66항). 레오 교황은 국가가 자본가의 이익만을 대변하지 말고 모든 계층의 복지를 위해서 좀더 강력해져야 한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태도

 

당시 서부 유럽의 신흥 산업 국가들은 모두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서 운영되었고 대중의 빈곤, 소수의 자본 독점과 횡포, 계급간 갈등, 그리고 국가의 무기력 등의 문제로 병들고 있었다. 여기에 뚜렷한 대응책을 제시하던 집단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따르는 사회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 사유 재산에 있다고 보아서 재산의 공유화를 주장하였다. 재산의 공유화만이 부의 공정한 분배와 사회악의 근절을 위한 최선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 헌장”은 사회주의를 배척하고 자본주의만을 옹호하였는가? 헌장의 내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물론 헌장은 재산의 국유화가 최선책이란 주장들을 반대한다. 교황은 국유화가 노동자에게 먼저 피해를 초래하고 인간의 기본권인 재산 소유권을 박탈하며 국가의 기능을 지나치게 확대하기 때문에 나쁜 대응책이라고 반대하였다(7-8항).

 

지난 70년 간의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국유화는 국가의 기능을 지나치게 확장시켰고 동시에 노동자의 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레오 교황은 사유 재산 제도를 유지하면서 심각한 빈부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보았으므로, 사회주의를 배격하였지만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골격을 두면서 그것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였다. 사유 재산권은 불가침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그것을 박탈하고 침해하면서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노동 헌장”은 19세기 자본주의 국가들의 심각한 문제를 인정하고 고발하였지만, 사유 재산권을 강력하게 옹호하였기 때문에 원리에 있어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였다. 생산 재산의 전면 국유화를 주장하는 사회주의는 사유 재산제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에, 재산의 사유제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노동 헌장”은 아퀴노의 토마스의 논증(신학대전, II, II, 66,2)을 원용하면서 사유 재산권이 천부적인 기본권이고 자연권이라고 주장한다.

 

첫째로 재산의 사유 제도는 생산 활동을 촉진하고 생산성을 높여 준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것을 아끼고 늘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자기 것을 가지려는 욕구와 본능이 매우 깊고 강하기 때문이다(9, 67항). 둘째로, 사유 재산은 인간에게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자유와 안정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현재를 살뿐 아니라 미래를 설계한다. 그래서 미래가 안정되고 보장되어야만 그가 인간다워지는 것이고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미래가 전연 불확실한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로울 수도 없고 인간적일 수도 없다(11-12항).

 

셋째로, 재산의 사유제는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정은 국가보다도 먼저 생겨난 사회이고 독자적언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자녀 양육은 가장의 성스러운 권리이며 그 책임의 완수를 위해서 가장은 재산을 소유하고 상속할 수 있는 권리를 필요로 한다(19항). “노동 헌장”은 소련에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기 이전에 반포된 것이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의 설제적 경험은 적어도 이상의 첫 번째 주장의 타당성을 입증하였다고 보인다. 1980년대에 나타난 사회주의 국가들의 변화를 몰고 온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전면적 국유화가, 현장의 예측대로, 생산 활동을 침체시키며 따라서 생산성을 저해한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은 경제적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서 사유 제도를 도입하고 국유화의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

 

레오 교황이 사회주의적 해결책을 배척하였다면, 그는 어떤 해결책을 제안하였는가? 사실 교황은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였는데, 하나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좀더 강력한 개입과 입법이고 다른 것은 노동 조합의 옹호와 육성이었다. 이 두 가지 해결책을 놓고 보아도, 당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레오 교황의 지지가 무조건적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알게 된다. 당시의 자유 방임적 자본주의는 자유 경쟁과 시장 법칙을 경제 활동의 철칙이라고 주장하면서,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나 입법, 또는 노동 조합의 존재나 활동을 모두 중대한 장애물로만 간주하였다. 이 점을 고려하면, 당시의 심각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자본주의 체제의 중대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교황은 본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업인이나 노동자의 윤리 의식과 도덕적 행동만을 강조하는 도덕주의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그라나 레오 13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와 기업인, 그리고 노동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교회의 활동도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새로운 법률이나 제도의 개선, 그리고 조직의 개편만 있으면 충분한 것이 아니고 인간 마음의 순화와 윤리 의식의 고취, 즉 의식 구조의 개혁이 또한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교회의 역할에 관하여 상당히 길게 이야기한다(24-45항). “노동 헌장”은 교회의 역할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하는데, 하나는 마음의 순화와 윤리 의식을 고취시키는 교회의 역할이고, 다른 것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자선 사업 활동이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 교황은 노동자나 기업인의 윤리와 의무, 재산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사용법, 그리고 노동의 존엄성에 대하여 말한다.

 

1870~80년대에 빈부 격차와 노동 대중의 빈곤에 관하여 대책을 모색하던 신자들 가운데 안제르(Angers) 학파는 국가의 개입과 입법보다도 자선 사업이나 복지 사업이 더욱 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국가의 개입과 입법은 국가 사회주의를 초래한다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레오 교황은 교회의 교화적 역할과 자선 사업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의 개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는 자선 사업이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레오 교황은 교회의 자선 사업이 부족한 해결책이기 때문에,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였다. 그는 당시의 국가들이 노동자의 빈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소극적이고 태만하다는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래서 우선 교황은 국가의 중대한 임무는 노동자의 조건을 개선하고 분배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국민 각 계층의 복리를 증진시키며, 그중에서도 각별히 노동자의 근로 조건을 개선시키는 일은 국가 통치자의 당연한 본분이다”(48항).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국가 통치자에게 맡겨진 여러 가지 중요한 책임 가운데 일차적이고도 가장 큰 임무는 국민 모두와 각 계층에 대해 엄격하게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며, 특히 분배 정의를 적용하는 것이다.”(49항).

 

“노동 헌장”은 모든 계층의 복리, 특히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는 원칙만을 제시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모든 계층의 복지, 즉 공동선을 위해서 국가의 개입을 분명하게 촉구하였다. “공동선이나 어느 한 계층의 권익이 손상되고 위협받을 경우, 국가가 아니고서는 이 피해를 해결하거나 방지할 방도가 없을 때에, 국가 공권력의 개입이 인정된다”(52항). 더욱 구체적으로 국가는 노사 분규의 원인의 제거 (56항), 노동자의 건강(58항), 적정한 작업 시간(59항), 부녀자 및 연소자노동자의 보호(60항) 등을 위해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 방임적 자본주의 체제를 크게 수정하려는 주장이었고 그들의 눈에는 사회주의 냄새가 풍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주의자들이 분노할 정도로 “노동 헌장”은 구가의 개입 한도를 제한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재산의 전면 국유화와 국가의 권력 독점을 주장했으나, 레오 교황은 앞에서 사회주의의 악폐는 국가 기능의 지나친 확대라고 지적한 점을 상기해야 한다. 그는 국가의 권력 독점이나 지나친 개입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 한계는 법의 개입을 요청하는 구체적 사실의 성격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지만, 국가의 공권력은 잘못을 고치거나 위험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이상으로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공권력 개입의 한계를 결정짓는 기본 원칙이다”(53항). “임금 문제 및 이와 유사한 문제들, 이를테면 작업 시간, 공장과 작업장의 안전 보건 시설의 설치 문제에 대하여 국가는 부당한 간섭을 피해야 한다”(64항). 개인과 중간 집단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에 한해서, 그리고 필요한 한도 내에서만 국가가 개입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은 보조적이어야 한다. 교황은 보조성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노동 조합의 권리와 필요성 옹호

 

“노동 헌장”은 노동 대중의 빈곤을 해결하는 데 교회와 국가의 역할도 부족하다고 보면서 노동 조합의 권리와 필요성을 주장했다. 노동자의 역할이 필요하고 그들 자신이 조직을 통해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국가도 노동 조합을 합법화하지 못했던 1891년에 교황은 노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아가서 노조의 결성과 가입이 기본권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단체는 노동 조합이다. 노동 조합은 다른 여러 단체들이 지니는 기능을 전부 포함하기 때문이다”(69항). “이러한 단체를 결성하고 거기에 가입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 권리이기 때문에, 국가는 이 자연적 권리를 마땅히 보호하여야 하며, 그것을 부정하거나 폐지할 수 없다”(72항).

 

당시의 자본주의자는 노동 조합을 반대하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 조합 운동에 적극적이었다고 해서 교황이 사회주의에 동조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노동 조합과 국가의 관계에 있어서 교황은 사회주의자들의 주장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재산의 국유화만 아니라 권력 독점을 원했기 때문에 노동 조합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노조는 국가에 완전히 종속된다. 사회주의 국가의 역사가 그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레오 교황은 자율성이 있는 노동 조합을 옹호하고 주장했다. “각종 사회 집단이 비록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 몸담고 있고 국가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의 권력이 중간 사회 집단에 전적으로 미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72항). 노동자의 문제 해결에 유리한 노동 조합은 국가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라도 상당한 자율성을 유지하는 노동 조합이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당시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보다도 “노동 헌장”이 가장 현실적이었고 옳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주의자는 헌장이 너무 자본주의적이라고 비난했고 반대로 자본주의자는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는 1920~30년대에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통제를 강화하면서 노동 조합을 합법화하였는가 하면, 최근에 사회주의 체제들은 사유 재산제를 도입하고 경제와 노조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축소하고 있다. 그들이 함께 비난하던 “노동 헌장”의 노선에 접근하고 말았다.

 

[경향잡지, 1991년 5월호, 오경환 프란치스꼬(인천 간석동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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