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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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2차 총회 문헌 세계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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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443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2차 총회 문헌


세계 정의

CONVENIENTES EX UNIVERSO(DE IUSTITIA IN MUNDO)

1971. 11. 30.


세계 정의에 관하여


김남수 주교 번역

 

 

차례

 

서론

인간다운 세계 건설이 우리의 사명 

 

1. 정의와 국제 사회 

세계적 유대의 위기 

대량 소비와 공해는 인류의 적 

발전할 권리 

자결 의식에 기인된 용기와 희생심 

소리 없는 불의 

대화의 필요성 

 

2. 복음의 가르침과 교회의 사명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정의 

교회의 사명과 성직자와 평신도 

 

3. 정의의 실천 

교회의 증거 

정의에 대한 교육 

정의 실천의 실제 교육 

지역 교회들간의 협력 

갈라진 형제들과의 협력 

국제 활동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소망의 실천 

 

4. 희망의 한마디

 

 

서론

 

인간다운 세계 건설이 우리의 사명

 

1.* 전세계에서 모여온(Convenientes ex Universo) 우리 대표 주교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과 함께 전인류와 결합되어,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께로 마음을 향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세계 정의를 촉진해야 할 사명을 스스로 반성해 보았다.

 

2. 시대의 표징을 검토하고, 변천하는 역사의 의의를 찾으며, 세상을 좀더 인간다운 세계로 건설해 보려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과 문제점들을 함께 나누며,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인류 구원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바이다.

 

3. 본래 세계 정세를 엄밀히 분석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는 아니지만, 인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심각한 불의는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 이 불의는 지배와 억압과 남용을 확대하여, 인간의 자유를 질식시키고, 더욱 인간답고 형제다운 세계를 건설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누리려는 인류 대부분의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

 

4. 동시에 우리는 이런 세상을 근본적으로 뒤흔들려는 심각한 움직임도 발견한다. 즉, 정의를 촉진하려는 갖가지 노력도 엿보인다. 인간 조직과 민족들 가운데 새로운 자각이 싹트고 있으며, 이로써 사람들은 숙명적 체념을 극복하고 현실정에서 해방되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려는 책임을 자각한다. 사람들은 이제 더 나은 희망을 세계 건설에 걸고, 더 참을 수 없는 일들은 무엇이나 다 바꾸어보려는 의욕을 드러내 보인다.

 

5. 폭력에 짓밟히고 불의한 조직과 기구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동시에 스스로의 부패로 창조주의 계획을 거역하는 세계의 호소를 듣고, 세상 한가운데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며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어야 할 교회의 사명을 우리는 다 함께 자각하였다. 이렇게 세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는 희망과 충동은 복음의 역동적인 힘과 무관한 것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복음이야말로 성령의 힘으로 인간을 그 개인적 죄에서 구원하고 사회 생활에 미치는 죄의 결과를 제거하는 힘을 가진 것이다.

 

6. 역사가 불명확하고 발전하는 인간 공동체의 집단 노력이 곤란을 동반한다는 이 사실은 거룩한 구세사에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한다. 구세의 거룩한 역사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시고, 해방과 구원의 당신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단계적으로 그 계획을 실현시키시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모든 시대를 위하여 한번 완성하신 것이다. 따라서 정의를 위한 행동과 세계 개혁 활동에의 참여는 복음 선포의 본질적 구성 요소임이 명백하다. 즉, 인류를 구원하고 온갖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할 교회 사명의 일부인 것이다.

 

 

1. 정의와 국제 사회


세계적 유대의 위기

 

7. 교회가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는 무서운 모순 속에 갇혀 있다. 국제 사회를 통합해 보려는 세력이 오늘과 같이 강하고 활기찬 때는 일찍이 없었다. 이 세력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 절대 평등과 인간 존엄성을 자각한 데서 기인된 것이다. 인간은 동일 인간 가족의 일원이므로 상호 불가분의 유대로 세계 전체의 운명과 결부되어 있고 그 운명에 대한 책임도 분담해야 한다.

 

8. 새로운 기술 혁신의 가능성은 과학 지식의 종합, 홍보의 집단성과 동시성, 완전 상호 의존을 강요하는 이른바 “경제 세계”의 출현에 기인한다. 더구나 사람들은 새롭고 더욱 근본적인 일치의 측면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제 사람들은 생명 유지를 위하여 없어서는 안될 공기나 물과 같은 천연 자원뿐 아니라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를 포용하는 작고 불안한 생명권(biosphaera)이 무한한 것이 못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것이야말로 온 인류의 유일한 공유 재산으로 보호받고 보존되어야 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9. 모순은 이러한 일치의 전망 속에서도 분열과 대립적 경쟁의 세력이 날로 증대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옛날의 국가, 제국, 인종, 계급이라는 분열은 오늘날 파괴를 목적하는 새로운 과학 무기의 소유 국가로 대립하고 있다. 군비 경쟁은 인간의 최상 보배인 생명 자체를 위협한다. 또한 그것은 가난한 민족과 개인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이미 부강한 사람만을 일층 부요하게 만들며, 전쟁의 계속적 위험을 내포하고, 핵무기에 이르러서는 지상의 생명 전체에게 파괴의 위협을 주고 있다. 동시에 인간을 이웃과 갈라놓는 새로운 분열도 생기고 있다. 만일 사회적 내지 정치적 활동으로써 현상태를 타도하고 극복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산업 구조와 기술 혁신은 마침내 모든 재화와 권력과 결정권을 일부 정치가나 지배층 수중에 몰아넣고 말 것이다. 경제적 불의와 사회 참여의 결핍을 방치해 두고서는 인간이 기본적 인권과 시민권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대량 소비와 공해는 인류의 적

 

10. 인류는 과거 25년 동안 굶주린 사람이, 적어도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요기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 성장은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개발 도상 국가에 있어서나, 부강한 국가에 있어서도 빈민 지역에 있어서는 헛된 기대였다. 그것은 인구의 급격한 증가, 노동력의 과잉, 농업의 침체, 농지 개혁의 부진, 대도시로의 집단 이주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 반면에, 도시에서는 자금은 흘러넘쳐도 수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산업 구조가 고용의 기회를 주지 않으므로 4분의 1에 해당되는 노동자들이 실업 상태에 있는 것도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숨막히는 압박은 방대한 대중을 계속 사회 생활에서 소외시켜 버리고 있다. 영양 실조자, 비인간적 주택 사용자, 문맹자, 참정권을 박탈당하고 책임과 도덕적 품위를 갖출 온갖 수단을 거부당한 인간군이 속출하게 되는 것이다.

 

11. 여기에 반해서 자본주의 국가이건 사회주의 국가이건, 부강한 국가들의 천연 자원과 에너지에 대한 수요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그 대량 소비의 결과로 끔찍한 폐기물이 대기와 해양을 더럽히고 있으므로 지상 생명 유지에 필수 요소인 공기와 물이 회복 불가능의 상태로 파괴되고 있다. 이 같은 대량 소비와 오염 현상을 그대로 증대되게 방치한다면 공해는 전인류에 미치게 될 것이다.

 

12. 세계의 일치를 희구하는 강력한 충동, 수익, 투자, 무역의 4분의 3을 인류 3분의 1에 해당되는 고도의 선진국들에게 독점시키려는 불공평한 분배, 순 경제 성장만으로는 불충분한 생활 조건, 생명권 안에는 물질의 제한이 있다는 새로운 지식, 이 모든 것이 현대 세계에는 인간의 품위를 존중해야 할 새로운 이유가 대두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자각시켜 준다. 

 

발전할 권리

 

13. 국제 기구가 지배적인 오늘에 있어서도 정의 구현은 발전할 확고한 결의에 더 크게 좌우된다.

개발 도상 국가나, 이른바 사회주의 세계에 있어서는 이 발전의 결의가 우선 권리 주장과 자기 주장의 조직을 요구하는 투쟁으로 제시되고, 이 투쟁은 경제 체제 자체의 개혁으로 나타난다.

 

14. 이 같은 정의에 대한 갈망은 인간 전체 내지는 인류 전체에 관한 한, “더욱 가치있게 되고 자신을 완성하려는”1) 매력 있는 초보적 의식 단계를 넘어서 스스로 발전할 권리가 있다는 권리 의식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이 발전의 권리는 개인과 국가의 갈망이 뿌리박고 있는 기본적 인권의 생동적 발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5. 이러한 기본 욕망도 만일 인간 마음의 개심과 사랑의 이상 실현을 막고 있는 현사회 구조의 객관적 장애를 모르고서는 현대의 갈망을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정의 구현의 갈망은 대중을 소외시키고 있는 사회 환경을 극복하고 만성적 장애와 악순환을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것들이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아 집단적으로 진보 전진할 것을 막고 있으며, 기회 균등과 단체 행동의 차별적 상황을 강화하여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회 균등과 단체 행동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 도상 국가와 지역이 만일 개발의 방법으로 자기 해방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일찍이 식민주의 지배로 형성되었던 생활 조건이 새로운 식민주의 형태로 변모되어, 개발 도상 국가들은 강대국들의 국제적 경제 경쟁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자결 의식에 기인된 용기와 희생심

 

발전의 권리는 무엇보다 먼저 동시대 사람들 수준과 같아지려는 희망에 대한 권리라 하겠다. 이런 희망을 충족시키려면 발전이란 개념에서 신화와 같은 그릇된 확신 요소를 제거해야 하겠다. 발전이란 숙명적이요 자동적인 것이라는 사고 방식에 기인되는 그릇된 개념을 깨끗이 씻어버려야 한다.

 

16. 개발 도상 국가들의 사람들이 확고한 발전 결의로써 스스로의 장래 운명을 책임질 때, 비록 최종 목표에 아직 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자신들의 인격을 진정하게 드러낼 수는 있을 것이다. 또 그들 스스로가 현대 세계의 복잡한 사회 속에서 맺어지는 인간 관계의 부당한 불평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책임 있는 민족주의의 필요한 자극을 받아 이른바 자아 발견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런 기본적 자결 의식에서 그들에게 충분한 발전을 보장하는 새로운 정치 조직을 결성할 노력도 생길 수 있고, 지금까지의 노력을 헛되게 돌려보내던 나태나, 때로는 인구 증가의 압력마저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 강구될 수도 있고, 또는 발전 계획을 수행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장래를 개선하려는, 한 세대가 각오해야 할 새로운 희생 의욕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17. 또 한편 어떤 정치 형태를 선택하였다면, 그 속에서 경제 성장과 국민들의 참여를 동반하는 발전을 도모하고, 지역간의 불의한 불평등이나 재화의 편재를 극복할 수 있도록 국가 공동체 전체의 부를 도모할 때에 비로소 진정한 진보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국민들의 참여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각 분야에서의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18. 각 민족이 그 고유성(identitas)을 보존할 권리를 인정하지만, 그 특수성을 파괴하는 근대화의 방법과 양상을 규탄하기 위해서, 신성한 역사적 관습이나 옛 생활 양식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무 소용없는 일임을 알았다. 근대화가 그 민족의 복지를 위한 것이라고 인정만 된다면 국민들은 거기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문화야말로 진정한 사회적 기념비처럼 고유한 유산이 될 것이고, 국제 사회 안에서도 진정 생생한 창조적 개성의 발전으로 나타날 것이다. 

 

소리 없는 불의

 

19. 현대 세계에서는 무수한 불의가 발견되며, 이 불의가 현대 문제들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의 각계 각층, 국제적 모든 기구의 노력과 책임이 필요하다. 우리는 20세기의 최후를 장식할 마지막 4반세기에 이 문제를 속히 해결하고자 한다. 따라서 진정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 활동 각 분야에서 특히 국제 사회 분야에서 새로운 임무와 새로운 기구를 출현시킬 준비를 갖추어야 하겠다. 우선 우리는 갖가지 억압과 특수한 환경과 현대 사회의 특수성 때문에 소리 없이 불의의 희생물이 되고 호소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사람들과 국가들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겠다.

 

20. 이민의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일거리를 찾으려고 가끔 자기 고향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차별 대우 때문에 자주 이민의 길이 막히거나, 혹 입국할 수 있더라도 불안한 생활을 계속해야 하든지 비인간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 또 사회적 발전을 위해 불리한 조건에 놓인 계층의 사람들, 특히 국가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와 농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개탄해야 할 일은, 무수한 피난민들과, 그리고 인종, 민족,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때로는 조직화된 박해를 받고 있는 집단이나 백성의 처참한 생활 조건이다. 이런 인종 차별의 박해는 가끔 대량 학살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또 여러 지역에서는 종교인들에 대하여 정의가 극심하게 침해되고 있다. 신앙 때문에 박해를 받거나, 어떤 정당이나 국가 권력의 부당한 간섭으로 억압을 당하며, 여러 모양으로 계속 무신론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함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빼앗긴다. 공식으로 하느님께 예배드릴 수 없도록 방해를 받고, 공적으로 신앙을 가르치고 선전하지 못하도록 금지되며, 자기 종교의 원리대로 현세 활동을 전개하는 것마저 금지당하는 수가 많다.

 

21. 정의의 침해는 개인의 인권을 제한하는 고금의 온갖 억압 형태로 저질러진다. 정치 권력의 억압도 있을 수 있고 거기에 반발하는 민간의 폭력 행위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억압이 극단에 달하면 인격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거부해 버린다. 특히 잘 알려진 바는 정치범들에 대한 고문이다. 고문뿐 아니라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재판도 거부되거나, 재판을 받더라도 일방적으로 독단적 판결에 맡겨져 버린다. 전쟁 포로들의 학대도 잊을 수 없다. 제네바 협정이 있은 후에도 그들은 아직도 비인간적으로 취급받고 있다.

 

22. 합법화된 낙태와 피임 방법의 강요와 전쟁 등에 반대하는 운동은 생명권(생존권) 방어의 중요한 방법이라 하겠다.

 

23. 또한 현대인의 양심은 홍보 수단의 진실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홍보 수단이 제공하는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릇된 보도를 시정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24. 오늘날 교육과 생활 조건과 건전한 홍보 수단에 대한 청소년들의 권리가 다시 위기에 봉착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생활에서의 가정의 역할이 국가 기관으로부터 인정되는 일이 드물고 또는 불충분하게 인정될 뿐이다.

오늘날 가정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노인, 고아, 병자 등의 수가 증가 일로에 있다는 사실도 잊을 수 없다. 

 

대화의 필요성

 

25. 세계의 인류가 소망하는 의견의 진정한 일치를 얻으려면, 한층 인간다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노력 중에서 만나게 되는 대립과 장애와 특권을 극복하기 위한 이른바 중재 역할이 필요하다.

 

26. 이 중재 역할이 효과를 거두려면 우선 계속적인 대화의 분위기를 마련해야 하고, 이 대화의 효과를 위해서는 지정학이나 관념론이나 사회 경제학의 자기 입장과 세대차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 크게 공헌할 수 있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 위에서 인생의 의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 못지않게 자라나고 있는 젊은이들의 참여와 증언이 필요하다. 

 

 

2. 복음의 가르침과 교회의 사명

 

27. 불의라는 죄악으로 특징지어지는 오늘의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절감하는 동시에, 이 불의를 극복하기에 우리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겸손되이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하느님만이 세계의 정의를 재건하는 새로운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겠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정의

 

28. 구약을 읽으면 하느님께서는 억눌린 사람들의 해방자,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자로 당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인간에게는 당신을 믿고 이웃에게 정의를 실천하라고 명하셨다. 따라서 인간이 정의의 의무를 다해야만 하느님께서 억눌린 사람들의 해방자로 나타나신다.

 

29.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행동과 말씀으로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와 인간끼리의 관계를 불가분의 것으로 보여주셨다. 지상 생활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설교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시요, 하느님의 정의는 가난한 사람과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섭하신다(루가 6,21-23)고 가르치셨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장 작은 형제들과 결합시키시고, “이 작은 형제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은 바로 내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까지 주장하셨다.

 

30.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시초부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파스카 신비를 생활화하고 바로 이해하였으며, 그 때문에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자발적으로 재산을 공유하기까지 서로 도움으로써 완성된 형제애를 바로 하느님의 성소라고 받아들였다.

 

31. 하느님의 아들이시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신약 저술자들의 주제였던 것이다. 사도 성 바오로에 의하면 그리스도인 생활 전체는 정의의 의무를 실천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 봉사하는 신앙으로 요약된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내적 자유라는 법을 지키며 살아간다. 즉, 인간으로서 자기 충족에서 벗어나 하느님께 신뢰를 가지며, 무절제한 이기심을 버리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도록 마음의 회개를 요구하시는 하느님의 계속적 부르심 안에서 살아간다. 이렇게 스스로의 자유를 획득하고 인간들의 자유를 위해 공헌하는 것이다.

 

32.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인간과 하느님의 관계에 직결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에 드리는 응답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가장 힘 있게 나타난다.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정의는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사랑은 이웃의 존엄성과 권리를 인정하라는 정의의 절대적 요청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사랑 안에서만 그 내적 충실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 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이는 모상이요, 그리스도의 형제이므로, 그리스도인은 각 사람 안에서 하느님 자신과, 정의와 사랑의 절대적 요청을 발견한다.

 

33. 신앙의 빛으로 오늘의 세계 정세를 바라보고 우리는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참뜻을 상기하게 된다. 복음은 그 참뜻을 이해하고 그 시대에 긴급히 요청되는 바를 실천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복음을 전해야 할 우리의 사명은 오늘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전인적 해방을 위하여 몸바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사실 사랑과 정의에 관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세계 정의 구현을 위한 활동에서 효과를 보이지 못한다면, 현대인들이 그 메시지를 믿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교회의 사명과 성직자와 평신도

 

34. 교회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할 사명을 받았다. 복음에는 인간이 죄에서 구원되어,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사랑과 보편적 형제애와 세계 정의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기에 교회는 사회적 국가적 국제적 각 분야에서 정의를 선포하고, 인간의 기본권과 구원이 요구할 때에 불의한 현실을 고발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만이 세계 정의에 대하여 유일한 책임자는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고유하고 특수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 즉, 복음에 포함된 사랑과 정의의 필요성을 세상에 증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증명은 교회 조직과 그리스도인 실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35. 교계적 종교 단체로서의 교회는 본래 사회, 경제, 정치 분야에서 세계 정의에 관한 구체적 해결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교회는 오직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증진시키면 되는 것이다.

 

36. 교회의 구성원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공익을 도모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그리스도인들도 현세적 직무는 가능한 능력을 다하여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또한 이 세상에서, 가정과 직장에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생활을 통하여 누룩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모든 분야에서 복음의 정신과 교회의 가르침대로 스스로의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이렇게 신자들은 인간의 존재와 그 장래 운명을 위해서 봉사함으로써 성령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증거한다. 신자들이 이러한 활동을 자율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교회 성직계의 책임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르나, 신자들이 교회의 구성원인 한 교회의 책임과 무관할 수는 없다. 

 

 

3. 정의의 실천

 

교회의 증거

 

37. 많은 신자들은 정의를 위한 여러 가지 행동으로써 정의를 실질적으로 증거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이런 행동은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기인되는 사랑의 행동이다. 어떤 신자들은 사회적 내지 정치적 투쟁 분야에서 이런 행동을 전개하게 된다. 이런 투쟁 속에서도 신자들은 역사적으로 보면 투쟁 그 자체보다 사랑과 정의라는 발전의 원동력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복음의 위력을 입증한다. 이런 사랑의 우위성을 인정하였기에 다른 신자들도 비폭력적 행동을 앞세우고 정의를 여론에 호소하는 분야에서 활약하는 것이다.

 

38. 교회가 정의를 증거해야 한다면, 교회는 먼저 사람들 앞에서 감히 정의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 눈에 정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교회 안에서의 행동 규범, 교회 재산, 그 생활 양식 등을 검토해 보아야 하겠다.

 

39. 교회 안에서도 권리는 존중되어야 한다. 누가 어떠한 모양으로 교회에 속하든 교회에 속했다고 해서 정당한 권리를 빼앗길 수는 없다. 교회에 봉사하는 일꾼들은 사제이든, 수도자이든, 누구나 넉넉한 생활을 보장받고 그 지역 일반인들과 마찬가지의 사회 보장도 받아야 한다. 평신도인 경우에는 정당한 보수와 적절한 승급의 가능성이 제공되어야 한다. 평신도들이 교회 재산에 관해서는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재산 관리 운영에도 참여하기 바란다는 소망을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40. 여성들도 사회 공동 생활과 교회 생활 안에서 책임과 참여를 분담하도록 권장하는 바이다.

적당한 방법을 강구해서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하도록 제안한다. 예를 들면, 남녀 수도자와 평신도, 생활 조건과 정도의 여러 계층 사람들로 구성된 합동 위원회를 통해서 깊이 연구하기 바란다.

 

41.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사상과 표현의 정당한 자유의 권리를 인정한다. 여기에는 또한 대화의 정신으로 각자의 의견이 충분히 청취된다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로써 교회 안에는 의견의 다양성과 상위성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한다.

사법 제도와 그 수속에 있어서 피고에게 원고를 알아볼 권리와 변호의 권리를 인정해야 하고, 완전한 정의는 또한 수속과 처리의 신속성도 요구한다. 이것은 특히 혼인 문제에 관해서 요구된다.

교회의 구성원은 교회가 무엇을 결정할 때에 어느 정도 거기에 간여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경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교황청의 여러 가지 지시를 지켜야 한다. 예컨대 각종 협의회를 설치하는 경우에 위의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

 

42. 현대 물질에 관해서는 그 사용 목적이 무엇이든, 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복음의 증거를 절대로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교회 안의 어떤 직무나 지위의 특권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도 역시 복음의 증거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일반적으로 올바른 용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어느 정도이며 복음의 증거를 위해서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명확한 한계를 정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다음과 같은 원칙을 고수해야 할 것은 명백하다. 즉, 물질 사용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절약은 필요하다고 우리 신앙이 요구하므로 교회는 복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검소하게 살며 세상 물질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와 반대로 교회가 만일 현세의 부유하고 권력있는 존재로 나타난다면 교회에 대한 신뢰감은 감소될 것이다.

 

43. 우리 양심의 반성은 주교, 사제, 남녀 수도자, 평신도, 우리 모두의 생활 수준을 검토해 보아야 하겠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교회에 속한다는 그 자체로써, 주위 사람들은 가난에 신음하는데 우리만이 부자들의 외딴 섬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 보아야 하겠고, 또 소비성이 높은 국가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우리 자신의 생활 수준이 그 소비면에 있어서, 온 세계의 무수한 굶주린 사람들에게 식량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우리가 남들에게 설교하는 그 검약의 모범이 되는가 자문해 보아야 하겠다. 

 

정의에 대한 교육

 

44. 그리스도인들은 가정, 학교, 직장, 사회-시민 생활 속에서 일상 생활을 통하여 복음적 누룩의 역할을 함으로써 정의를 위하여 특별한 공헌을 한다. 이로써 신자들은 정의를 위한 인간 노력에 참 보람과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육 방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합적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는 복음의 개인적 내지 사회적 윤리 원칙대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45. 그러나 우리 자신과 전인류의 발전을 원하면서도 그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도 발견하게 된다. 아직도 도처에서 옹졸한 개인주의를 조장하는 교육 방법이 취해지고 있다. 인간 가족의 일부는 소유권을 지나치게 예찬하는 정신 상태에 빠져 있다. 일정한 체제 속에 갇혀 있는 학교나 홍보 수단들은 그 체제대로의 인간상만을 계속 형성할 뿐, 새 인간상을 형성해 나아가지 못하도록 장애를 받는다.

 

46. 교육은 마음의 쇄신을 요구한다. 그것은 인간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죄인이라는 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교육은 또한 인간에게 정의와 사랑과 순수성에 바탕을 두고 살아가는 참으로 완전히 인간다운 생활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교육은 인간에게 비판력을 길러주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관찰하고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하게 하며,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정의를 촉진하는 것이 못될 경우에는 단연 거부할 수 있도록 인간 감정을 길러주는 것이다. 개발 도상 국가에 있어서 정의를 위한 이 같은 교육의 이념과 목표는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도록 자각을 일깨워주고 사회의 완전한 발전 향상을 위한 용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이로써 이미 세계 개혁과 쇄신은 시작되는 것이다.

 

47. 모든 인간을 완전히 인간답게 만들려는 이런 교육을 실시한다면 사람들은 이제 대중 선전이나 정치적 기만의 희생물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며 인간 사회를 진정 인간답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정의 실천의 실제 교육

 

48. 이런 교육은 모든 사람과 모든 연령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므로 마땅히 항구적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교육은 행동과, 참여와, 불의한 현실과의 직접적 접촉으로 체득되는 것이므로 실제적 교육인 것이다.

정의를 위한 교육은 우선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여기에는 교회만이 아니라 다른 학교와 노동 조합과 정당까지도 함께 공헌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49. 이런 교육의 내용은 반드시 인격과 인간 존엄성의 존중을 내포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 정의에 관해서 논하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계획대로 인간이 태어나는 인류 가족의 일치성을 무엇보다 먼저 강조해야 하겠다.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일치와 유대의 표지를, 그리스도와 일치하기 위하여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실에서 발견해야 한다.

 

50. 현대 사회 생활에 관한 복음의 기본 원리는 회칙 「새로운 사태」로부터 교황 교서 「팔십주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교황 문헌들이 각 시대에 알맞게 단계적이며 조직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 헌장’을 통하여 현대 세계 안에서의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명확히 알아들었다. 즉, 신자들은 현대 세계 안에서 정의를 수호함으로써 자신의 구원을 성취한다고 깨달았다. 「지상의 평화」라는 회칙은 우리에게 인권에 관한 ‘대헌장’(magna charta)으로 주어졌다. 「어머니요 스승」이라는 회칙에서는 국제 정의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민족들의 발전」이란 회칙에서는 발전 촉진에 대한 권리로 설명되었고, 「팔십주년」이라는 문헌에는 정치 활동에 관한 지침이 제시되었다.

 

51. 우리는 사도 바오로와 함께 환영을 받든지 못받든지 하느님의 말씀이 모든 인간사 중심에 현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이 주장은 우리 자신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신앙을 표현하자는 호소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때와 장소의 환경에 알맞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이 명령은 용감한 마음으로 사랑과 지혜와 확신을 가지고 모든 관계자들과 더불어 솔직한 대화를 통하여 불의를 고발하기로 요구한다. 불의에 대한 우리의 비난은 우리의 생활 체험에서 얻은 구체적 주장이고 지칠 줄 모르는 계속적 행동으로 표현되어야만 효과적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52. 교회 생활의 중심인 전례를 집전함으로써 정의에 대한 교육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전례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행위이며, 공동 집회의 형태를 통해서 우리의 형제적 유대를 상기하며, 교회의 사명을 재삼 체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말씀의 전례, 교리 교육, 성사 거행 등을 통해서 우리는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 사도들의 정의에 관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세례성사의 준비로써 그리스도인다운 양심의 형성을 시작한다. 고해성사의 실천으로 죄와 성사의 사회적 측면을 일깨워준다. 마침내 성체성사는 교회 공동체를 강화하여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힘을 준다. 

 

지역 교회들간의 협력

 

53. 교회가 진정 세계 국가들이 원하는 유대의 표지가 되기 위해서는, 잘사는 지역 교회들과 못사는 지역 교회들 사이에 영신적 일치와 인적, 물적 자원의 나눔을 통하여 더욱 긴밀한 협력이 교회 생활에 반영되어야 하겠다. 지역 교회들끼리의 원조를 규정하고 있는 현재의 너그러운 관습을, 하느님의 선물을 공동으로 관리하며 형제다운 관계를 강화하는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조직화함으로써(예를 들면 인류복음화성과 교황청 사회복지위원회를 통해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직이 있어야만 수혜 교회의 자립 정신과 책임감을 환기시켜 스스로 판단의 기준과 구체적 계획을 선택하고 실현시킬 수 있게 보장해 줄 수 있다.

 

54. 여기서 말하는 구체적 계획이라는 것은 비단 경제적 면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전인적 인간 발전을 도모하는 데에 효소 역할을 다하도록 인간의 정신적 활동을 촉진시키는 데에 관한 계획을 말하는 것이다. 

 

갈라진 형제들과의 협력

 

55. 교회 일치 분야에서 이미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음을 잘 알고 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소망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세계 정의의 촉진, 평화의 수립, 민족들의 발전 촉진을 위해서 갈라진 형제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권장하는 바이다. 이 협력은 주로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 특히 종교 자유의 권리를 수호하는 데에 주력할 것이며, 여기서 종교, 인종, 피부의 색, 문화, 기타 온갖 종류의 차별 대우를 제거하는 공동 노력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협력은 또한 그리스도인 생활 전체에 관한 복음의 가르침을 함께 연구하는 데까지 미쳐야 한다. 그리스도교 일치사무국과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는 공동으로 이런 협력의 효과적 촉진을 함께 연구하기 바란다.

 

56. 같은 정신으로 사회 정의와 평화와 자유를 옹호하기 위하여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과의 협력도 권장하는 바이다. 또 비록 우주의 창조주를 믿지는 않지만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며 정당한 방법으로 성실히 정의를 탐구하는 모든 사람들과의 협력도 촉구하는 바이다. 

 

국제 활동

 

57. 이번 대의원회의가 세계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정의에 대해서도 직접 전인류에 관계되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적 발전을 위한 국제적 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먼저 지역 교회들과 선교사들, 그리고 그 지원 단체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성취한 고귀한 사업에 대해서 찬사를 아끼지 않는 바이다. 우리는 또한 평화와 국제 정의와 인간 발전을 위한 이 같은 사업과 기관들을 더욱 활발하게 촉진시키고자 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톨릭 신자들이 다음 몇 가지 제안을 충분히 검토해 주기 바란다.

 

58. 1) 국제 질서는 인간의 불가침적 권리와 존엄성에 뿌리박고 있음을 인정한다. 유엔의 인권 선언은 모든 국가가 인정해야 한다. 아직 인준하지 않은 국가들도 속히 인준하도록 촉구하여 모든 사람이 이 인권 선언을 준수하도록 한다.

 

59. 2) 국제 연합은 그 목적에 따라 모든 국가들을 참여시켜야 할 것이며, 다른 국제 기구들과 함께 국제 질서의 터전을 마련하여, 군비 경쟁을 억제하고, 무기의 교역과 증강을 견제하고, 국제 사법이나 국제 경찰과 같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성취하는 한, 우리는 이를 지지한다. 국제 분쟁을 전쟁으로 해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 전쟁 대신에 더욱 인간다운 해결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또한 무저항(비폭력) 전략을 장려하고, 모든 국가는 이른바 양심의 저항을 법으로 인정하고 조절해야 한다.

 

60. 3) 국제 연합 제2차 10개 년 개발 계획의 목표가 달성되기를 기대한다. 그 계획 속에는 선진 제국의 연간 소득의 일정한 비율을 개발 도상 국가들에게 제공하고, (후진국들의) 1차 산품의 가격을 적정화하고, 선진국의 시장을 (후진국들에게) 개방하고, 개발 도상 국가들의 공산품 수출에 대해서는 특관세의 혜택을 제공할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국제적인 누진과세제의 첫 기본 지침이 되는 동시에, 세계를 위한 경제-사회 정책의 청사진인 것이다. 그러므로 선진 국가들이 세계적인 재화의 재분배와 상호 책임성에 관한 이 이상적 목표를 외면할 때마다 우리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적 유대의 이 같은 약화 때문에 ‘국제연합 통상개발회의’(UNCTAD)가 현재 준비하고 있는, 무역 증진에 관한 회의가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61. 4) 조사 연구, 투자, 해상 수송, 보험 등을 거의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국제적 경제권의 집중화는, 후진국들도 책임 있는 결정권 행사의 권한과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적 조치와, 개발에 관계되는 모든 국제 기구에 완전히 평등하게 참가할 수 있는 제도 혁신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균형을 잡아가도록 해야 하겠다. 최근에 개발 도상 국가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세계 무역과 세계 통화 문제의 협의와 결정에 개발 도상 국가들을 참가시키지 않는 것은 후진국들의 권한이 제한된 전형적 예였고, 이것은 정의롭고 책임감 있는 세계 질서 유지를 위해서 용납될 수 없는 처사였다.

 

62. 5) 모든 인간 제도와 마찬가지로 국제 기구들도 개선되고 강화되어야 함을 인정하는 바이지만, 국제적 각 전문 기구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바이다. 특히 세계의 빈곤, 농업의 혁신과 개발, 보건, 교육, 고용, 주택, 도시의 급격한 인구 팽창 등, 심각한 구체적 문제를 직접 다루는 국제 기관들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바이다. 또한 어린이들의 정신적 내지 육체적 발육을 위해 충분한 식량과 이른바 단백질을 제공할 수 있는 기금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세계 인구 급증에 관해서는 「민족들의 발전」이란 회칙에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을 되풀이하는 바이다. “의심 없이 국가는 맡겨진 권한 내에서 국민을 계몽하며 적절한 수단을 이용하여 이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도덕률에 부합하고 부부의 정당한 자유를 조금도 침해하지 않는 수단이라야 한다”(37항).

 

63. 6) 각 국가들은 개발 기금 형성에 각기 계속 기여하기 바란다. 그러나 개발 사업의 우선 순위와 투자액 결정에 있어서 후진국 자신들의 참여와 책임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개발 노력의 대부분을 다원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야 한다.

 

64. 7) 또 한 가지 지적해야 할 문제는 1972년 6월에 스톡홀름에서 개최되는 제1회 인간 환경 문제 회의에서 취급될 공해 문제이다. 선진국들의 물질적 욕구가 다른 국가들을 빈곤에 떨어뜨리고 또는 지구상의 생명체를 전멸시킬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오늘의 환경 속에서, 선진국들이 요구되는 물질을 증가시키려는 권리를 과연 어느 정도 주장할 것인지는 예측을 불허한다. 이미 부요해진 나라들은 대량 소비를 억제하고 한층 검소한 생활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가 있다. 인류의 공동 유산인 물질과 생명을 인류 전체 구성원들과 함께 나누어 누려야 할 절대적 정의의 요청에 따라, 이 유산을 파괴하지 말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65. 8) 개발과 발전에 관한 권리를 행동으로 행사하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가) 각 민족이 스스로의 고유 문화에 따라 발전하는 데에 아무 방해도 받지 않아야 하고,

나) 상호 협력을 통하여 각 민족이 그 경제적 사회적 발전의 주역을 다할 수 있어야 하고,

다) 각 민족이 인류 사회의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공동선 달성에 다른 백성들과 평등하게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소망의 실천

 

66. 우리 모두가 정의를 위한 운동에 관한 교회의 사명을 함께 반성해 보았으나, 지역 교회들이 각 분야에서 실천에 옮겨주지 않는다면 이 반성은 아무 효과도 거두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각 주교회의들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이번 며칠 동안 검토해 본 계획들을 계속 탐구하고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권고를 실천에 옮겨주기 바란다. 예컨대 사회-신학 연구원 같은 것을 설치하기 바란다.

 

67. 또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국, 기타 전문 기관들도 이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제안과 소망을 음미하고 평가하고 더 깊이 탐구함으로써 우리가 시작한 바를 실천에 옮겨주기를 바란다. 

 

 

4. 희망의 한마디

 

68.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시켜 주신 성령의 능력은 세상에서 계속 활동하신다. 하느님의 백성은 교회의 마음 너그러운 자녀들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과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 한가운데 현존해 있으면서, 자기 육체와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생활화하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입증하고 있다.

 

69. 모든 피조물이 아직은 신음하며 산고를 겪고 있으나 하느님의 자녀로서 누릴 영광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로마 8,22).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자들은 자기 본성과 스스로의 인간 노력의 결실을,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고 계시는 새로운 땅에서 모든 죄의 사함을 받은 후에 발견하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하겠다. 그 땅에는 정의와 사랑의 나라가 있을 것이요, 그 나라는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 완성될 것이다.

 

70. 다가오는 하늘 나라에 대한 희망은 사람들의 정신 속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주님의 파스카 신비를 통해서 절대적이고 완전한 세계 개혁이 이루어진다는 확신이야말로, 불의, 폭력, 미움을 감소시키고, 정의, 자유, 형제애, 사랑 속에서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진보 발전하도록 하는 모든 인간, 특히 젊은이들의 인간적 노력에 참뜻을 부여해 준다.

 

71. 교회는 구세주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며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 억눌린 사람, 고통받는 사람들을 불러, 세계를 모든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시는 하느님과 협력하기를 요구한다. 이 세계는 인간의 노력이 인간을 위해 이루어질 때에 비로소 창조의 완성이란 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2차 총회가 제시한 이 문헌은 교황 바오로 6세 성하의 재가를 받아 1971년 11월 30일 교황청 국무성장관 겸 외무평의원장 장 빌로 추기경이 발표하였다.)

 

* 이 번호는 Enchiridion Vaticanum에 매겨진 번호를 따랐다.

 

1. 「민족들의 발전」, 15항: AAS 59(1967), 265면.

 

[출처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문헌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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