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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역사적 유물로서 사형, 그 법 이론적 · 정책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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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47

역사적 유물로서 사형, 그 법 이론적 · 정책적 검토

 

 

1. 머리말 - 사형이란 무엇인가

 

- 사형은 국가에 의한 계획적인 법적 살인이다. 흔히 살인은 개인의 행위로 여겨진다. 그러나 다수에 의한 살인, 조직체에 의한 살인도 적지 않다. 가장 강력한 조직체인 국가는 다수에 의한 살인에 관여해 왔다. 국가 테러리즘(state terrorism)은 나치 하의 인종 청소처럼 대량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전쟁에서 살인이 ‘훈장’을 받을 만한 행위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형은 국가 테러리즘의 한 종류이다. 

 

- 국가 살인인 사형은 개인 살인 행위와 달리 형사 사법 절차의 단계를 밟아 완성된다. 경찰의 검거, 검사의 구형, 법관의 사형 선고, 그리고 법무부 장관의 사형 집행 명령, 마지막으로 검사 입회 하의 교도관에 의한 처형, 의사의 사형 확인의 절차를 거친다. 그렇기 때문에 사형이라는 살인은 보통 살인에서 보듯이 우발적·격정적인 것이 아니라, 냉정한 절차를 거쳐 계획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범죄 유형으로 볼 때 격정범, 우발범이 아니라 예모범(豫謀犯)에 해당한다. 

 

- 사형에 관여하는 당사자 중에서 실질적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는 법관과 법무부 장관이다. 적어도 살인 행위의 혐의가 있다고 할 때 경찰과 검사는 수사·기소하지 않을 수 없다. 검사의 구형은 법관에게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 장관의 집행 명령이 있으면 교도소로서는 집행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사형이라는 극형의 확정에서는 법관의 책임을, 사형 집행에서는 법무부 장관의 책임을 궁극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 교도소가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고 자유형이 없었던 시대에 사형은 하나의 극단적 형벌로서 기능했다. 그러나 무기 자유형이 현실적으로 실행되고 있고, 무기 자유형으로써 범죄 억제가 가능한 상황에서 사형은 무해화(無害化)의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없다. 사형은 형벌 또는 제재라기보다는 아마도 한 생명의 말살(extinction)에 해당한다. 

 

- 오늘날 사형 논의가 진공에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형 존치론과 폐지론의 논쟁은 먼저 역사적 맥락과 현대 한국의 사형 집행의 실제를 대하면서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형에 대한 기존의 실정법적 정당화가 과연 합리성과 과학성의 잣대 앞에 유지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존치론의 또 하나의 중요한 논거인 국민 정서론과 상황론의 타당성 여부도 또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사형 폐지론의 정당성이 입증된다면, 그 사형을 어떻게 폐지해 갈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논의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의 궁극적 목표는 사형을 살아 있는 제도에서 역사적 유물로 만드는 것임을 밝혀 둔다. 

 

 

2. 역사적 · 비교법적 맥락에서 본 사형 

 

1) 사형 남용에서 사형 폐지론의 등장까지 

 

18세기까지 사형은 극형인 동시에 핵심적 형벌로서의 지위를 누렸다. 사형은 평화적인 시기에는 덜 사용되었지만, 사회적 갈등기나 전쟁 시기에는 사회 통제의 일차적 수단으로 널리 쓰였고 자주 남용되었다. 

 

서양사에서는 특히 종교적 독선과 광기가 사형 남용에 큰 역할을 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죽음뿐만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교 박해사는 수많은 처형의 실례를 남겨 놓았다. 교회의 십자가는 바로 로마 제국의 사형대였기에 그리스도교는 생래적으로 사형에 무관심할 수 없는 종교이다. 그리스도교 선교 역사 초기에 그처럼 사형의 희생자가 되었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중세 후기부터 시작되는 종교적 갈등과 종교적 광기의 시대에 사형을 남용하여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들어 낸 대표적인 종교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사형 폐지론이 바로 그리스도교적 광기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1761년 유명한 칼라스 사건에서 고문과 강제 자백의 증거 아래서 무고하게 죽어간 가족들을 위해 계몽 사상의 챔피언 볼테르는 ‘종교적 관용’을 역설하였다. 그 사건의 충격을 법학적으로 감당한 것은 1764년 베카리아(C. Beccaria)였다. 베카리아는 사형을 유지하는 법률을 “폭정의 가면”으로 비판하면서, (사형과 같은 중형을 과하기 위한) 숙련된 잔혹한 법적 의식(재판)은 “만족을 모르는 전제주의라는 우상에 산제물로 인간을 바치기 위한” 것이라고 보면서 (사형이라는) 무시무시한 살인이 어떤 흥분이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저질러지고 있음을 비판하였다.1) 베카리아의 사형 폐지론은 고문 폐지론과 함께 근대 형법의 형성 단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후 각국의 형법사에서 사형은 보편적 형벌이 아니라 예외적인 형벌로서 주변화되기 시작했다. 

 

2) 사형의 제한과 처형 방법의 변화 

 

19세기 전반기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각국의 형사 입법은 사형을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하게 되었다. 물론 초기 산업화 단계, 그리고 혁명의 세기에 사형의 제한이 일직선적으로 순탄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늘어나는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한 세기의 일반적 경향으로 볼 때 사형은 현저히 줄었다. 대체로 살인죄, 반역죄, 군사상 범죄에 대해서만 사형을 과하는 쪽으로 되었으며, 그 집행 건수도 현저히 축소되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경향은 사형의 비공개화, 비잔혹화, 개별화이다. 18세기까지 사형은 공개 처형을 원칙으로 했고, 구경꾼의 존재는 사형 집행 의식의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졌다. 사형의 종류는 한 가지가 아니었고, 그 잔혹성의 정도에 따라 등급화되어 있었다. 교수형, 참수형, 화형, 능지처참형 등 잔혹한 상상력이 동원되었다. 또한 처벌 대상자도 범죄자 개인을 넘어서, 가족 및 지역 공동체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런 경향은 사형에 대한 비판과 함께 변화되었다. 사형은 가능한 한 비공개화를 원칙으로 했으며 교도소의 담 안에서 조용히 집행되었다. 사형은 잔혹한 형벌로서 과하기보다는, ‘생명권의 박탈’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되었기에 사형의 집행 방법은 가능한 한 고통이 적은 방법, 신체적 훼손이 적은 방법을 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근대 국가의 기본 원칙인 개인 주권의 관념에 따라 형사 책임도 개별화되어, 본인 외에 주위 사람이 처형되는 일은 없게 되었다. 

 

3) 한국의 사형 제도 역사 

 

우리 나라의 경우에 위와 같은 사형의 모습은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사형은 일반적 형벌의 하나였고, 사형 종류는 교수형과 참수형, 그리고 능지처참형으로 나뉘었으며, 가끔은 예외적으로 법률로 규정되지 않은 잔혹한 사형을 과하기도 했다. 사형은 구경꾼이 많이 모일 만한 장소를 골랐다. 3족을 멸하는 식, 5가 작통제와 같은 방식의 연대 형벌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살인 등의 죄가 아니어도 통치 질서에 도전하는 죄를 묶어 사형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체계에서 조선조 말 천주교에 대한 대량의 처형이 이루어졌고, 순교자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갑오 개혁 이후 사형 제도의 변화도 두드러진다. 사형의 방법으로 참수형이 폐지되고 교수형(그리고 군사상 범죄에 대해서는 총살형)만 남게 되었다. 사형은 감옥 담 안에서 집행되었고, 개별 책임주의가 원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제 시대와 함께 대량 감옥의 시대가 도래하고, 그와 함께 사형의 중요성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4) 20세기 후반:사형 폐지의 추세와 각국의 사형 제도 

 

 19세기 서양이 사형의 제한 시대를 열었다면, 20세기 후반에는 사형 폐지의 방향으로 진전된다. 그것은 인권 의식의 신장, 사형 외의 법적 통제 수단으로 범죄자의 무력화에 충분한 제도 정비(경찰에서 교도소로 이어지는 상시적 형사 사법 제도의 정립) 등의 사정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큰 충격인 제2차 세계대전의 잔혹성, 특히 나치 하의 인종 청소의 폐해를 목격하고, 그에 대한 체계적인 반성이 뒤따르면서 사형 폐지론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사형의 폐지는 다음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먼저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국가(전면 폐지국), 전시 하 범죄 등 군사 범죄에 대한 사형 규정은 두고 있지만 일반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국가(비군사 범죄에 대한 폐지국), 그리고 사형 규정은 두고 있지만 사형 선고 및 집행을 장기간 하지 않는 국가(사실상 폐지국) 등이 있다. <표1>에서 보듯, 1997년 현재, 법률상 또는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는 모두 98개국이다. 

 

사형 폐지 국가들을 사형 폐지 시기별로 나누어 보면 폐지하게 된 동인(動因)을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형이 폐지된 국가로서 독일, 이탈리아 등이 이에 해당하며, 선진 국가라 꼽히는 많은 나라가 여기 속한다. 둘째, 군사 독재를 벗어나 정권의 민주화 또는 문민화를 이룩한 나라들은 1980년대 이후 사형 폐지의 대열에 합세했다.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여기 해당한다. 셋째,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함께 서구식 민주화를 규범으로 받아들인 나라에서 1990년 이후 사형을 폐지하고 있다. 동독, 체코 등이 이에 속한다. 

 

1989년 이후에만 모든 범죄, 또는 통상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국가가 20개국 이상에 이른다. 최근 폐지국의 대열에는 아프리카 국가(앙골라, 모리셔스, 모잠비크, 남아프리카 공화국), 라틴 아메리카(파라과이), 아시아(캄보디아, 홍콩), 동유럽 국가(헝가리, 몰도바, 루마니아), 서유럽 국가(벨기에,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오세아니아 국가(뉴질랜드) 등이 있다. 

 

사형을 폐지했다가 다시 도입한 나라도 없지는 않다. 1985년 이래 사형을 폐지한 25개국 중 4개국이 다시 사형을 도입했는데, 그 중 1개국(네팔)은 다시 사형을 폐지했으며, 다른 3개국(잠비아, 파푸아뉴기니, 필리핀)에서도 1건의 사형 집행이 없었다. 

 

물론 모든 국가가 폐지 대열에 그대로 가담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95개국이 사형을 존치하고 또 집행하고 있다. 사형 집행 건수별로 보면 중국이 가장 많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뒤를 잇고 있다. 곧 사회주의권에 있거나 사회주의를 갓 벗어났지만 여전히 억압적 통제 정책을 선호하는 국가는 사형과 친화력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도 이 대열에 속한다고 보지만, 북한은 통계를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고 있다. 두 번째 유형으로는 회교권 국가들의 사형이 높다는 것이다. 회교권에서는 국가나 종교에 반대되는 개인적 인권 개념이 덜 정착되어 있다. 나머지는 인권 후진국이라 불릴 수 있는 나라로서 사형에 관한 한 우리 나라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1996년 통계에서 사형 집행 건수는 다음과 같다. 

 

특기할 것은 미국의 사형 건수이다. 미국은 1973년 사형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내려졌으나, 1976년 다시 합헌으로 선언되었고, 1977년부터 사형이 재개되었다. 그때부터 1996년 9월까지 3,150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 50개 주 가운데 38개 주가 법률상 사형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1996년 1년 동안에 사형 집행을 당한 자는 45명에 이른다. 지난 20여 년 동안 억압적이고 보수적인 형사 정책이 지배해 온 결과, 사형이 늘어나고 수형자 수도 늘어나 과밀 수용에 따른 문제점이 심각한 것이 미국의 실정이다. 그러나 형벌 증가, 사형 증가가 범죄 증가에 어떤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은 그 동안 살인 사건이 계속 증가한 데서도 보여진다. 억압적 정책은 유권자의 정서에 일시 부합할 수는 있어도 효과적인 정책 방안이 될 수 없음이 이런 통계를 통해서도 쉽게 인정된다. 

 

5) 사형 폐지를 위한 국제적 노력 

 

1948년 세계 인권 선언에서 생명권 존중에 대한 입장을 천명한 데 이어 ‘유엔 인권 규약’에서는 “모든 인간은 천부의 생명권을 가지며, 이 권리는 함부로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사형 존치국이라 할지라도 사형은 가장 극악한 범죄에 대해서만 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형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강력히 제안하면서, 일반적인 사형 폐지를 지지하고, 사형 폐지를 향한 모든 조치가 생명권의 향유라는 점에서 진보로 간주됨을 천명했다. 

 

이 점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1984년 유엔에서 채택된 ‘사형수의 권리 보장을 위한 안전 조치’에서는 “사형 존치국에서 사형은 가장 극악한 범죄에 대해서만 부과되어야 하며, 사형의 범위 또한 살인 또는 극히 심대한 결과를 초래한 고의 범죄에 국한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지역 차원의 노력은 더욱 적극적이다. 1985년 유럽에서는 평화시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자는 ‘인권에 관한 유럽 협약 제6 의정서’(Sixth Protocol to the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가 발효하였는 바, 여기에는 24개국이 비준하고 6개국이 서명하고 있다. 또한 ‘사형 폐지 미주 협약 의정서’(Protocol to the Americ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to Abolish the Death Penalty)에는 4개국 비준, 3개국의 서명이 이루어진 상태다. 

 

한편 국제 사면 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1989년 “사형 없는 세계를 향하여”라는 구호를 내걸고, 사형을 폐지하거나 최소한 사형 집행의 중지를 달성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89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사형의 폐지를 목적으로 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조약”의 제2선택 의정서도 주목을 끈다.2) 이는 인권 규약상의 생명권 개념에 사형 폐지를 당연히 포함하는 데까지 진전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 의정서 전문에는 “모든 사형 폐지 조치가 생명권을 향유하는 데 있어 일대 진전으로 간주된다.”라고 한다. 사형 금지는 모든 범죄에 미치나, “전시 하에서 범해진 군사적 성질을 가진 극도로 중대한 범죄에 대한 사형 판결에 따라 전시에 사형을 집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보 조항을 둘 것을 인정하고 있다. 

 

6) 사형의 집행 정지 - 모라토리움 2000 

 

사형 폐지를 향한 가톨릭 교회의 역할도 매우 주목된다. 1997년의 가톨릭 교회의 교리 문답에는 “사형이 불의의 가해자에 대해 인간 생명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유일의 가능한 방법일 경우에 한하여 사형은 이론적으로 허용될 수 있지만, 오늘날 세계에서 그러한 경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범죄자를 억제할 수 있는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라고 한다. 또한 사형은 “야만적”인 형벌이며, 낙태의 반대자가 사형을 지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모순”임이 선언되고 있다. 이러한 교리상의 해석에 기반하여, 서기 2000년에는 사형의 집행을 유예하자는 ‘모라토리움 2000년’을 국제적 캠페인으로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궁극적 목표는 사형 폐지이지만, 존폐론의 소모전에 들어가기보다는 실용적 방법으로 사형의 집행만은 막아보자는 것인데 방법상의 진일보로 평가된다. 

 

 

3. 한국의 사형 실태 

 

한국의 사형 집행 실태는 <표 3>에서 알 수 있다. 

 

- 1948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의 사형 집행 건수는 총 902명으로 연평균 19명이다. 

 

- 1989년부터 1998년까지 사형 집행 건수는 총 96명으로 연평균 9.6명이다. 10년 단위로 보면 사형 집행 건수는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 1996년 1월 1일 이후 사형이 확정된 자는 1996년 9명, 1997년 8명, 1998년 9월 1일 현재까지 3명 등 총 20명이다. 이들의 죄명은 살인 등 12명, 강도 살인 등 7명, 해상 강도 살인 등 1명이다. 현재 사형이 확정되고 집행을 대기 중인 자는 30여 명이다. 

 

- 1998년에는 사형 집행이 없었다. 이것이 ‘인권 정부’로서 면모를 보여 주는 확고한 정책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 동안 신정권이 출범한 해에는 사형 집행이 없었기 때문이다. 1981년, 1988년, 1993년에도 사형 집행이 없었다. 다른 과제가 많았기 때문인지, 선정(善政)을 과시하려는 것인지, 처음부터 처형에 서명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고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형을 꺼리는 경향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다음 해에는 사형 건수가 크게 증가하여, 전 해에 미루어 둔(?) 사형 집행을 하는 경향이 있다. 

 

- <표 4>는 제1심 공판 사건에서 사형이 선고된 사안을 죄명별로 정리한 것이다. 물론 사형이 선고되는 사안은 살인, 강도 살인 (치사), 특정 범죄 가중 처벌법상 위반 행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가법 위반도 살인 관련 행위로 짐작되는데, 그렇다면 사형은 거의 살인범죄에 대해서 과해진다고 볼 수 있다.

 

-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시기별로 볼 때 1987년 전후하여 사형 선고 사건의 분포가 매우 달라진다는 것이다. <표 5>는 일반 범과 정치범을 분류하여 재정리한 것이다. 곧 국가 보안법, 반공법, 내란·외환 죄 등을 정치범으로 분류하면, 결국 국가 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치범에 대한 사형 선고 건수가 1970년대까지는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으나, 1980년대 초반에는 그보다 축소된 범위 내에서의 사형이 선고된다. 그러다 1987년 이후에는 국보법 위반에 대한 사형 건수가 거의 사라지며, 1991년 이후에는 국보법 관련 사형 선고가 사라진다. 국가 보안법이 그 동안 정치적 남용의 위험성, 존폐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는데, 1990년대 들어서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를 씌워 정적을 제거하는 등의 악용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1) 사형의 정치적 남용 

 

<표 5>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날 사형의 정치적 남용의 경향이 뚜렷하다. 제1공화국 때의 조봉암, 5·16 직후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에 대한 처형은 분명히 정치적 목적을 위한 사형이었다. ‘인혁당’ 사건의 경우에는 사형이 확정된 다음날 집행되기도 했다. 5·17 쿠데타와 함께 집권한 신군부 세력은 김대중 씨에 대한 사형을 확정지었고,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과 관련하여 문부식에 대한 사형을 확정지었다. 또한 반미 운동과 관련하여 김성만 등을 국가 보안법 위반으로 사형 확정지었다. 

 

이러한 사형은 통상적 사형과 구분되는 몇 가지 특색을 보인다. 먼저 집권 세력이 정치적 반대 세력을 분쇄하거나 봉쇄하기 위하여 공포 정치를 단행하거나, 집권 세력이 정치적 위기에 몰릴 때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속죄양을 찾아내는 성격이 짙다. 이럴 때 사형은 정치 테러의 수단이다. 둘째, 재판의 적법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상 사태를 이용하여 사법권이 매우 위축된 가운데 사형을 선고한다는 것이고, 변호인의 실질적 조력을 받을 권리가 매우 억압당하며, 방청권의 제한 등 적법 절차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셋째, 사형의 집행 역시 대단히 신속하게 이루어진다. 통상의 사형수들에게는 (오판 가능성, 재심의 경과 등을 감안하여) 몇 년 이상 살려 두고 있으나, 정치범의 경우에는 매우 신속하게 사형이 집행된다. 그것은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신속하게 달성하자는 것과 나중에 제기될 비난이나 구명 운동의 가능성에 대해 아예 쐐기를 박아 버리자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 점이야말로 가장 비난받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 사형 규정의 증감 

 

군사 정권에서 사형 범죄의 목록은 계속 증가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서 안보 관계, 군사 관계법에서 사형 범죄 목록이 대량으로 양산되었다. 다시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는 특정 범죄 가중 처벌법 및 특정 경제 범죄 가중 처벌법에서 공무원 범죄, 경제 범죄에 대해 사형 규정을 추가하였다. 특가법에서 다액의 뇌물 수수, 관세 포탈, 횡령·배임, 산림 훼손 등이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로 규정되었다. 더욱이 사고 운전자가 치사한 피해자를 사고 장소에서 옮겨 유기하고 도주하거나 도주 후 피해자가 사망한 이른바 뺑소니 사망의 경우에도 사형 조항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1983년에 제정된 특정 경제 범죄 가중 처벌법에는 다액의 사기 · 공갈 · 횡령 · 배임, 다액의 재산 국외 도피범, 금융 기관 임직원의 금품 수수 등에 대해 사형을 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범죄 및 공무원 범죄에 대해서는 어떤 사형 선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조항들은 실제 집행 의지를 갖고 제정된 조문이라기보다는, 공무원 범죄 및 경제 범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그런 범죄의 정경 유착적 특성에 대한 세론의 압박에 대해 상징 효과를 노린 것에 불과하다. 이 법률들 가운데 일부는 위헌 결정을 받기도 했고(뇌물 죄, 뺑소니 운전의 경우), 1990년 이후 법률의 재정비에 따라 사형 규정이 삭제되었다(1990년, 특가법 및 특경가법의 일부 개정으로 사형 규정 삭제됨). 따라서 오늘날 사형 규정은 아직도 많은 군사 범죄에 남아 있고, 살인을 포함한 범죄, 조직 범죄 및 마약 범죄에 남아 있으며, 국가적 법익에 관련된 범죄에 그 모습을 갖고 있다. 

 

3) 사형수의 사회적 지위 

 

사형수의 사회적 지위를 분석하기 위한 기초 자료의 확보가 쉽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사형수들을 보면 대체로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고, 가족 관계에서 불우한 경우가 대부분으로 짐작된다. 범죄 수법도 지능범적 유형보다는 격정범이고 범행 도구 또는 방법도 칼(과도, 식도), 방화, 독극물 등을 사용하는 등 더 원시적인 경향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전형적인 사형수는 20대의 전과자 또는 비전과자로서, 원시적 수단을 사용하여 격정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며, 그러한 격정성과 무경험성은 범행의 잔혹화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범죄는 잔혹하고 가장 중한 범죄 유형임에는 틀림없겠지만, 이들 범죄자가 무기 자유형을 선고받은 자와 어떤 질적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당시의 재판 풍토에서 극형을 무엇으로 설정하게 되는가, 처벌 가치를 어떻게 설정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4) 일본과의 비교 

 

일본의 살인율(인구 10만 명 당 살인 건수)은 우리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연간 사형 선고 건수 및 집행 건수는 우리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표 6>에서 보듯, 일본에서 사형 선고 및 집행 건수는 계속 감소되어 왔다. <표 7>에서 일본의 사형 집행 인원을 더욱 구체화해서 보면, 1980년대에 이르러 사형 집행은 거의 행해지지 않다가, 1990년대 들어 7명 이내의 사형 집행이 행해짐을 볼 수 있다. 

 

 

4. 판례에 나타난 사형 존치론의 비판 

 

사형이 과연 필요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 규정에 합치하는가. 이 점에 대한 우리 판례의 태도는 몇 십 년 간 변함이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법원은 사형에 대한 합헌론으로만 시종일관해 왔다. 헌법 재판소는 그보다 나아갔지만 역시 합헌론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곧 헌재결 1996.11.28. 95헌바1 (형법 제250조 등 위헌 소원) 사건에서 헌법 재판관들은 7인의 다수 의견으로 사형의 합헌을 선언했으며, 2인이 위헌 의견을 소수 의견으로 남겼다. 대법원과 헌법 재판소 결정 중 다수 의견의 논거를 정리한 다음 토론을 행하고자 한다. 

 

1) 대법원 판례의 요약 

 

다음은 사형에 관한 대법원 판례 중에서 인용한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은 전 지구보다 무겁고 또 귀중하고도 엄숙한 것이며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인 것이다. 이와 같이 존귀한 생명을 잃게 하는 사형은 형벌 중에서도 냉혹한 형벌임은 틀림없다(대판 1963. 2. 28. 대판 62도241). 

 

사형은 인간 존재의 근원이 되는 생명 자체를 영원히 박탈해 버리는 극형으로서 그 생명을 존치시킬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되어야 할 궁극의 형벌이므로 사형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범행의 동기, 태양, 죄질, 살해의 수단, 방법의 집요성, 잔학성, 결과의 중요성, 피해자의 수, 피해 감정, 범인의 연령, 전과, 범행 후의 정황, 범인의 환경, 교육 정도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죄책이 심히 중대하고 죄형의 균형이나 범죄의 일반적 예방의 견지에서도 극형이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사형의 선택도 허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대판 1985. 6. 11. 85도926). 

 

인도적 종교적 견지에서 존귀한 생명을 빼앗아 가는 사형 제도는 모름지기 피해야 할 일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범죄로 인하여 침해되는 또 다른 귀중한 생명을 외면할 수 없고 사회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하여 국가의 형사 정책상 사형 제도를 존치하는 것도 정당하게 긍인할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 법정형으로 사형을 규정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헌법에 위반되는 조문이라고 할 수 없다(대판 1987. 9. 8. 87도1458). 

 

현재 우리 나라의 실정과 국민의 도덕적 감정 등을 고려하여 국가의 형사 정책으로 질서 유지와 공공 복리를 위하여 형법 등에 사형이라는 처벌의 종류를 규정하였다 하여 이것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대판 1991. 2. 26. 90도2906). 

 

이러한 판례에서 보여지는 사형의 근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① 사형은 존엄한 인간 생명을 영원히 박탈하므로 부득이한 경우에 만 적용되어야 한다. 사형은 다음 논거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 뿐이다(사형의 예외적 정당화 가능성). 

② 제반 사정을 참작할 때, 죄책이 극히 중할 때 사형을 할 수 있다(범죄의 중대성). 

③ 범죄로 인해 침해되는 다른 생명을 외면할 수 없으므로 죄형의 균형상 허용될 수 있다(응보적 근거). 

④ 범죄의 일반 예방적 견지에서 극형의 불가피성이 인정된다면 사형의 선택도 허용될 수 있다(일반 예방적 근거). 

⑤ 사회 공공의 안녕과 질서(질서 유지와 공공 복리)를 위해서도 사형 선택이 허용된다(사회 방위적 근거). 

⑥ 우리 나라의 실정도 고려되어야 한다(특수 상황론). 

⑦ (살인 사건을 대하는) 우리 국민의 도덕적 감정도 고려되어야 한다(정서적 근거). 

 

2) 헌법 재판소 결정례에서 나타난 합헌 의견 

 

헌법 재판소의 다수 의견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 사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형벌로서 범죄에 대한 근원적 응보 방법이며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으로 인식되어 왔다(사형의 역사성). 

- 생명권이라고 해서 영구히 타당한 권리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생명권의 비절대성). 

- 사형은 국민 일반에 대한 심리적 위하를 통하여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고, 이를 집행함으로써 특수한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하여 사회를 방어한다는 공익상의 목적을 가진 형벌이다(사형의 공리성-일반 예방 + 특별 예방). 

- 사형의 일반 예방 효과는 무기 징역형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무기형보다 우월성). 

- 사형은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형은 헌법상 비례의 원칙에 반하지 아니한다(비례의 원칙에의 합치). 

- 우리의 문화 수준이나 사회 현실에 미루어 보아 완전히 사형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문화론·사회 실정론). 

- 문화의 발전,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의 실현 등 시대 상황이 바뀌어 사형이 가진 위하에 의한 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되면 사형은 곧바로 폐지되어야 한다(사회의 수준). 

- 국민의 법 감정이 사형을 원하지 않으면 사형은 폐지되어야 한다(법 감정론). 

 

이러한 대법원 판례와 헌법 재판소 결정을 통해 우리는 사형의 존치론의 논거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자 한다. 사형의 역사성, 중대 범죄에 대한 형벌의 비례성 확보, 위하에 의한 일반 예방 효과 확보,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하여 사회 방어를 달성하고자 하는 무해화 이론, 우리 국가의 특수 사정(아마도 남북 관계 등)으로 필요하다는 특수 상황론, 우리 사회의 문화 수준이나 사회 현실에 비추어 본 폐지의 시기상조론, 국민의 법 감정론 등이다. 이를 하나하나 논박하기로 하되, 논거가 한층 구체화되어 있는 헌법 재판소 결정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이하에서 고딕체 글씨는 헌법 재판소 결정을 인용한 것임) 

 

(1) 사형의 역사성? 

 

“사형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형벌의 하나로서 범죄에 대한 근원적 응보 방법이며 또한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으로 인식되어 왔고, 우리 나라에서는 고대의 소위 기자 8조 금법에 相殺者資以死償 이라고 규정된 이래 현행의 형법 및 특별 형법에 이르기까지 계속하여 하나의 형벌로 인정되어 오고 있다.” 

 

이 진술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형의 위헌성을 다투는 장에서, 고조선의 법령까지 언급하는 것은 초점을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예컨대 태형(笞刑), 고문(拷問)의 위헌성을 다툴 때도 이런 논법은 얼마든지 동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사형의 위헌성을 묻는다면 사형의 기능이 나날이 축소되고, 나아가 사형 폐지라는 세계적 추세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며, 그 사형 폐지의 물결 속에서 한국의 형벌 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방향으로 심각한 고려가 있었어야 할 것이다. 기자 조선의 제도가 지금 한국의 사형 제도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2) 중대 범죄에 대한 비례성 확보? 

 

“사형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서로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이며 지금도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헌법상의 비례의 원칙에 반하지 아니한다 할 것이다.” 

 

헌법상 비례의 원칙은 비교 가능한 법익간의 형량을 통해 우월한 법익을 사회적으로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은 비교 가능한 법익에 속하지 않는다. 예컨대 1인의 살아 있는 생명을 희생하여 그 사람의 장기를 통해 여러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어떤 경우에나 정당화될 수 없다. 

 

범죄에 비례하는 형벌은 ‘역사 및 문명화의 단계에 맞추어’ 변화해 왔다. “생명에는 생명으로,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라는 탈리오의 법률은 오직 고대 이전에나 가능했던 비례관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비례 관계는 근대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비례 관계는 기계적 단순 비례가 아니라, 무거운 범죄에는 (법률적으로 정해진 형벌 중) 무거운 형벌로, 가벼운 범죄에는 가벼운 처벌로 하는 ‘형벌 상호간의 비례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다만 생명의 경우 아직도 상명(償命)의 관념이 잔존하고 있으나, 그것도 극히 예외적으로만 잔존하고 있을 뿐이다. 예컨대 매년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몇 백 명에 이르나, 가해자 중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는 자는 평균 10명 안팎이다. 눈과 이를 해하는 중상해에 대하여 중상해의 보복이 아니라 자유형이 집행될 뿐이다. 

 

(3) 위하에 의한 일반 예방 효과 확보? 

 

“사형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 본능을 이용한 가장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그 위하력이 강한 만큼 이를 통한 일반적 범죄 예방 효과도 더 클 것이라고 추정되고 또 그렇게 기대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나 소박한 국민 일반의 법 감정에 비추어 볼 때 결코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 

 

사형이 과연 흉악 범죄(특히 살인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deterrent effect)가 있는가 하는 점은 엄격한 과학적 입증과 과학적 추론이 필요한 것이다. 사형이 범죄 억제 효과가 없다면 가장 결정적인 부분에서 사형의 ‘필요성’이 부인되는 것이며, 그럴 때 이른바 ‘필요악’의 주장은 ‘절대악’일 뿐이다. 그런데 헌법 재판소는 이 결정적 논거의 과학적 추론화의 시도를 완전히 피해 가면서 “위하력이 강한 만큼 …… 효과도 더 클 것”이라고 막연히 “추정”하고 있다. 이는 지극히 비논리적이다. 더욱이 그러한 예방 효과를 거론하는 데 있어 “소박한 국민 일반의 법 감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은 정밀 과학에 대하여 소박한 의식을 대치시켜 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1건의 사형이 과연 후속 살인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가. 이 쟁점은 그 동안 범죄 학자들의 많은 논쟁의 주제였다. “소박한 법 감정”으로 사형의 범죄 억제 효과가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러한 느낌은 과학적 자료에 의한 지원을 얻지 못하고 있다. 

 

① 우선 전체 살인 건수의 극히 일부만 사형이 선고되고 일부만 사형 집행이 이루어진다. 극히 일부의 처형으로 전체 살인 건수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그 수치는 극히 미미할 것이다. 과거 사형의 억제 효과를 입증했다는 학자들은 1건의 사형이 적어도 7건의 살인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런 논지를 따른다 해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만한 살인 감소율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몇 십 배의 사형을 더 선고·집행해야 한다는 추산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만큼의 사형도 비판의 십자 포화를 받고 있는데, 몇 십 배의 사형을 이 문명 사회에서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② 사형을 폐지한 나라에서 살인율에 의미 있는 변화가 초래되지 않거나, 오히려 살인이 감소되는 나라가 더 많다. 일본의 경우 지난 몇 십 년 동안 사형은 감소되어 왔으며, 살인 사건도 약간씩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표 8>에서 보듯이 미국의 경우 1976년 이후 사형은 20여 년 동안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인구 10만 명 당 살인 건수는 거의 변동이 없다. 우리의 경우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해도 있으며(1981, 1988, 1993년 등), 사형의 집행을 매우 억제한 해도 있지만, 그것과 살인율과는 무관하다. 살인을 하는 자가 사형 선고와 집행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질 리 없다. 상당한 정보를 가진다면 “어느 사건의 당사자가 사형당했다더라.” 하는 정도일 것이며, 살인범에게 사형에 관한 정보를 묻는다면 정보라고도 하기 힘든 막연한 느낌밖에 없을 것이다. 그 막연한 느낌으로 살인이라는 강력한 행동을 억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매우 어렵다. 

 

③ 범죄를 사전에 계획하는 예모범(豫謀犯)의 경우에도 범죄자들은 자신의 범행이 적발, 체포, 처벌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고심하지,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고 실감도 덜한 사형이란 위협 때문에 범죄가 억제되지 않는다. 예모범들은 자신의 범행이 적발되지 않고 체포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므로 범행에 이르게 되며, 그 경우 사형이란 멀리 떨어져 있고, 실행 가능성도 극히 낮은 형벌을 통해 범행을 억제한다는 것은 논리상 성립하기 어렵다. 

 

④ 많은 살인 범죄들은 격정적인 심리 상태에서 저질러지며, 그런 격정 상태에서는 범행이 줄 수 있는 가능한 결과에 대한 냉철한 성찰 없이 행동이 저질러진다. 살인의 현장이 처참할수록 높은 형의 선고 가능성이 높을 것인데, 그런 처참한 상황 중의 다수는 범행에 익숙하지 않은 자에 의해 저질러진다. 살인죄는 다른 폭력범이나 재산범보다 비전과자가 다수라는 사실에서도 이 점은 입증된다. 

 

⑤ 정치적, 종교적 목적에 도취되어 있는 자에게 사형은 아무런 억제 효과가 없다. 오히려 사형은 순교자 의식을 고양시키며, 사형 자체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여겨질 수 있다. 

 

⑥ 살인을 억제하기 위해 사형이라는 주변적이고 제한적인 수단을 쓴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살인율은 그 사회의 총기 및 흉기에의 접근 가능성, 사회적 갈등의 정도와 처리 방식, 가정 내 갈등의 정도, 알코올 및 마약 중독, 범죄성 정신 장애, 그 사회의 문화 풍토 등의 한 단면이다. 사형은 살인을 포함한 범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쓸모 있는 무기가 될 수 없다. 

 

(4) 범죄 예방 효과 면에서 사형은 무기형보다 우월하다?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가 무기 징역형의 그것보다 명백히 그리고 현저히 높다는 데 대한 합리적·실증적 근거가 박약하다고는 하나 반대로 무기 징역형이 사형과 대등한 혹은 더 높은 범죄 억제의 효과를 가지므로 무기 징역형만으로도 사형의 일반 예방적 효과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로 현재로서는 가설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헌법 재판소는 무기 징역형과 비교하여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가 현저히 높다는 데 대한 합리적·실증적 근거가 박약함을 수동적이나마 승인하고 있거나 그러한 근거에 무관심한 듯한 표현을 하고 있다. 이는 대단히 무책임하다. 무기 징역형보다 훨씬 우월한 예방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사형을 택하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례와 헌법 재판소는 생명권의 박탈을 “부득이한 경우에 한하여” 인정될 수 있을 뿐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사형 존치에 반대하고 무기 징역으로 범죄자의 무해화를 달성할 수 있는 이상, 적어도 장래에 범죄자의 반사회성 방지라는 점에서 무기형은 사형과 효과를 같이한다. 그러나 일반 예방 효과에서 사형과 무기 징역형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점인데, 실제로 사형의 현저한 우월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사형 대신 무기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사형 폐지론을 제창한 베카리아는 이 같은 주먹구구식 가설에 의거하여 사형을 과하는 데 반대하고, 형벌에는 정밀한 기하학을 구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사형과 무기형 중 무기형이 사형보다 더 인도적일 뿐더러 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그의 주장을 지지하든 않든 간에, 사형이냐 무기형이냐의 선택이 주먹구구식이 아니라 과학적 입론으로 다듬어 내고, 그것을 비교하려는 자세가 최소한 필요한 것이다. 

 

많은 자료들은 사형이 무기형보다 더 큰 범죄 억제 효과가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지 못한다. 미국의 경우 사형 폐지주의가 사형 존치주의보다 더 낮은 살인율을 기록하고 있다. 사형을 폐지했다가 다시 사형을 둔 나라의 살인율이 오히려 더 높아짐을 기록한다. 사형의 도입이 잠재적 범죄자의 공포심을 증대시켜 범죄를 억제하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일정한 효과가 있다면 그 효과는) 체포를 면하기 위하여 총기 사용의 억제선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 한 효과는 경찰에 대한 총격 살인의 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보고도 있다. 곧 사형이 무기형과 구분되는 효과가 존재한다면, 그 효과는 오히려 범죄 억제가 아닌 쪽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5) 사형은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할 수 있다? 

 

우선 이러한 견해는 사형에 처할 만한 특정한 인간은 개선 불가능한 인간이고, 따라서 그는 격리 무해화되어야 하며, 그 영구적 무해화의 수단으로 사형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우선 인간관부터가 문제다. 영원히 개선 불가능한 인간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범행 당시의 흉악범들은 인간적으로도 황폐하고, 잔학성에 대한 무감각, 범죄 자체에 대한 쾌감을 느끼는 인간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범죄인들은 주로 지면이나 화면에 비친, 범행 직후 또는 체포 당시의 얼굴이다. 그때는 대개 극도의 긴장과 당황, 흥분 상태이며, 그러한 상태나 모습이 동정 받을 만한 인간으로 비쳐질 리 없다. 그러나 재판 및 수감 생활을 통해 그들에게 ‘교화’와 ‘종교’의 손길이 닿을 때, 그들의 대다수는 내심으로부터 변화한다. 교정 시설 내에서 다른 재소자의 귀감이 되고, 범죄를 버릴 것을 권유하며, 죽음을 맞아 신장을 기증하는 등의 선행도 한다. 우리는 잊혀지지 않는 전율할 살인 사건을 알고 있다. 가령 김대두, 주영형, 서진 룸살롱 사건의 당사자들, 그리고 지존파. 범행 당시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들은 인간의 탈을 쓴 짐승만도 못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개선되었다. 범행시엔 “사회악의 근원”이었지만 영구히 사회악 자체였던 것은 아니다.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몰이해에 터잡은 재판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드물게 도저히 개선되지 않을 인간들에 대해서는 무기 자유형을 통해 (영구히) 무해화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형 존치론이 바탕에 두고 있는 인간상은 실제에도 맞지 않으며 정당화될 수도 없다. 

 

(6) 남북 대치와 같은 정치적 특수 사정으로 사형이 필요하다? 

 

사형은 전시에서 적군과 싸우는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니다. 법관에 의한 재판, 법무부 장관의 명령, 교도관의 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사법적 의식을 거쳐 이루어지는 살인 행위이다. 전시에도 포로에 대해서는 처형하지 못한다. 지난날 전쟁을 겪었던 긴급한 시기에 사형은 대량으로 행해졌으나, 전쟁이 끝난 뒤 사형은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나 군법 회의를 거쳐 이루어진 사형 중에서는 적법 절차와 충분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한 가운데 사형이 남발되었음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들을 사형시키지 않으면(예컨대 무기 자유형에 처하면) 국가적 위기가 초래될 어떤 현실적 위험이 발생한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예컨대 김창룡 특무 대장의 암살범을 사형시키지 않으면 국가 안전 보장과 질서 유지에 커다란 위기가 초래된다는 말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또 하나 생각할 것은 남북 대치 등의 특수 사정을 명분으로 수많은 인사들을 처형시킨 일이다. 뒤에 생각하면 무죄이거나 적어도 사형에 처할 사건이 될 수 없는 사건을 조작하거나 침소봉대하여 처형한 예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사형은 집권층의 정치적 위기 관리 차원에서 사형이 남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7) 우리의 문화 수준이나 사회 현실, 국민의 법 감정에 비추어 사형 폐지는 시기상조? 

 

“한 나라의 문화가 고도로 발전하고 인지가 발달하여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되는 등 시대 상황이 바뀌어 생명을 빼앗는 사형이 가진 위하에 의한 범죄 예방의 필요성이 거의 없게 된다거나 국민의 법 감정이 그렇다고 인식하는 시기에 이르게 되면 사형은 곧바로 폐지되어야 하며…….” 

 

우선 그런 이상 사회는 앞으로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범죄는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구성물이며,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범죄는 그 한 부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어떤 선진국도 문화와 인지가 발달하여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사형을 폐지한 것은 아니다. 흉악 범죄 없는 나라가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시기상조론은 앞으로 영구히 사형을 폐지하지 않겠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며, 사형이 바람직하다는 것의 우회 표현일 뿐이다. 그 시기상조론자에게 묻고 싶다. 반세기 동안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국민의 법 감정에 기대는 논법도 종종 등장한다. 아닌게 아니라 사형에 대한 국민 여론 조사의 결과는 존치론 쪽이 대체로 다수를 점한다. 그러나 이는 “살인에 대해 사형이 당연하다”는 식의 “소박하고 평범한 서민 감각이 여론 조사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조승형 재판관의 반대 의견 중에서 인용). 실제로 범행의 숨겨진 동기, 사형의 살인 예방 효과의 유무, 사형수의 개선 가능성, 범죄 피해자가 진실로 필요로 하는 것 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내려지는 판단일 수 있다. 이런 여론 조사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그것을 그대로 추수하여 사형 존치의 정당화 근거로 삼는 것은 부당하다. 사형과 같은 쟁점은 끝없는 계몽적 노력의 결과로써 개선되어지는 것일 뿐, 그저 여론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건국 이후 법원 판례에서 한 번도 위헌론이 비쳐지지 않은 이러한 풍토, 곧 제도권 내에 계몽적 노력을 하지 거의 하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 오직 국민의 법 감정만 개선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국민의 여론 조사 등에서 보이는 원초적인 법 감정은 계몽의 필요성을 더욱 보여 주는 자료로 삼을 수 있을 뿐이다. 

 

각국의 사형 폐지론의 진전은 국민의 여론을 액면 그대로 존중하는 가운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률가와 입법자들의 의지적 노력과 정치적 결단으로써 이루어야 할 과제를 대중의 여론에 기대어 회피하려는 것은 이제까지의 사형 폐지의 역사적 경험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5. 사형 폐지론의 적극적 논변 

 

사형 존치론의 주요 논거를 비판함으로써 사형 폐지론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하지만 사형 폐지론에서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논거들이 있다. 그것은 사형의 오판 가능성, 사형에 대한 법적 평가의 시기별 차이 및 권력 목적을 위한 사형의 남용 등이다. 그리고 사형 집행자의 인권도 배려되어야 한다. 

 

1) 사형의 오판 가능성 

 

우선 오판 사례는 역사 속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종교적 광기, 인종적 편견, 이데올로기적 편견 등 각종 편견이 오판의 구조적 배경을 제공하였다. 이 같은 편견은 지금도 여러 사법적 결정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그 같은 구조적 편견에 오염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오판의 위험성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형사 사건에서 쓰이는 증거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증거로 널리 쓰이는 것은 피고인의 자백, 목격자 증언, 그리고 살인 사건 등에서 널리 보여지는 과학적 감정 등이다. 그런데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에 따른 강압 수사의 산물인 경우이거나 심리적 곤경의 산물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자백의 증거 능력이 배제된다고 하지만, 고문이나 강압을 받았음을 입증하여야 하므로, 그 입증에 실패한 경우 그 자백은 증거로 쓰일 수 있게 된다. 고문이나 강압을 받지 않은 경우에도 회유에 따른 자백, 진범을 은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허위 자백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목격자 증언의 경우 그 목격 사실의 확실성이 종종 의심되기도 하며, 가장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사실도 매우 주관적인 해석 작용으로 왜곡될 수 있다. 인간의 목격 행위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행 지식과 편견을 통해 굴절되며, 그 목격을 기억해 내는 과정에서도 일종의 의식·무의식의 왜곡이 생겨날 수 있다. 

 

과학적 감정의 질은 종종 의심받는다. 검시 과학의 발전 수준에 따라 지금 유죄의 증거로 보이는 것도 조금만 지나면 그것을 증거로 삼기 곤란한 경우도 생겨날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생겨난다. 같은 자료를 놓고도 전문가마다 다른 해석을 내리는 것도 자주 접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의 경우 검시자가 수사의 초동 단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여, 경찰에게 들은 내용과 검시 자료를 종합하여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으므로 더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 실제로 자백과 목격자 증언, 감정을 받고 유죄로 선고된 사람 가운데에서 나중에 진범이 밝혀져 무고함이 드러난 경우(예컨대 김기웅 순경 사건)도 적지 않다. 그리고 감정의 정확성을 둘러싸고 유죄/무죄/유죄 등이 번복되는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편견 없이 대하고자 하는 사건의 경우에도 오판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며, 실제로 오판임이 드러난 사건도 적지 않음을 본다. 이럴 때 법률은 인간의 가치를 되돌이킬 수 없게 훼손하는 사형이라는 제도에 대해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사건에 대한 법적 평가의 시기별 차이 

 

특히 과거의 시점에서 정치적 이유로 사형 당한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지금의 시점에서 사형 당하지 않을 것이다. 여론 재판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정치적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권력 의지 앞에 무고한 희생자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의 책임자로 처형된 최창식 공병감은 전시의 사회적 비난 여론에 대한 속죄양으로서 기능했을 뿐이며, 사후에 열린 재심에서는 무죄로 번복되었다. 조봉암, 조용수, 인혁당, 남민전 등은 오늘날의 잣대로 보면 처벌 가치가 없거나 경미한 사건이었음에 틀림없다. 김재규 사건에서도 충분한 냉각 기간을 가졌더라면 관련자들이 모두 사형받았을지 의문이다. 따라서 당시의 시점에서 가장 큰 비난을 받는 사례라 할지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적 거리를 갖고 재평가할 수 있는 측면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사안에 대한 성급한 처형은 돌이킬 수 없는 오류를 낳을 수 있다. 

 

3) 사형 집행자의 인권 

 

처참한 범죄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사형 존치론자가 되고, 처연한 사형 장면을 본 사람은 사형 폐지론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사형에 대해 가장 고뇌하는 사람들은 사형수를 일상으로 대하는 교도관과 종교인들이다. 그들 앞에 선 사형수의 상당수는 흉악범이 아니라 반성하고 뉘우치는 인간이며, 이들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반한다. “양심에 반하여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사형의 집행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비인간적인 형벌 제도”(김진우 재판관)가 사형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사형 집행인의 고뇌를 담은 글이 별로 없지만, 외국의 문헌에서는 사형 집행인의 생생한 체험과 고뇌가 사형 반대론의 주요한 논거를 구성하고 있다. 

 

 

6. 사형 폐지의 단계적 방법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사형은 즉각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다만 사형 규정을 두고 있는 입법, 사형을 선고하고 그것이 위헌이 아님을 주장하는 법률가, 그리고 사형을 지지하는 국민을 두고 있는 이상 (그 이유가 어쨌든 간에) 사형 폐지론이 입법자, 법률가, 국민의 감정에 대세를 이루지 못함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좀더 단계적이고 현실적인 대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다음의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① 법률상 사형 규정을 고의 살인을 포함한 범죄에 국한하고 나머지 사형 조항을 삭제하는 방법. 이것은 사형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과시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② 법원은 사형 선고를 함에 있어 극히 신중하게 하여야 하며, 사형을 선고하지 않음을 양형상의 기본 원칙으로 설정해야 한다. 

 

③ 법무부 장관은 사형 집행에 서명하지 않고 집행을 사실상 유예해야 한다. 그것은 가령 1999년에는 가장 특별한 위험이 없으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또 2000년이 되어서 그 1년 동안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하면서, 연속적으로 사형 미집행의 관행을 쌓아 가야 한다. 

 

여기서 특별한 위험 또는 사정이라 함은 가령 사형 확정이 된 자가 시설 내에서 타인을 고의 살인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등 집행 유예의 혜택을 남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자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할 수 있다는 점을 미리 통고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형 대기자들의 질서 있는 생활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자포자기한 자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에 수용 관리에 매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형의 집행 유예와 남용 가능성의 봉쇄를 통해 사형 대기자들이 희망을 갖고 자기 개선에 힘쓰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전체 시설 내 질서 유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④ 이럴 경우 사형 대기자의 수가 교도소 내에서 적체될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5년 또는 7년이 경과할 때 엄밀한 심사를 하여 무기 징역으로 감형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⑤ 이 같은 경험이 축적되고, 사형의 무용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될 때, 사형의 폐지는 국민 전체의 축제로서, 우리 국민의 인도성과 문명성을 확인하는 계기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다. 

 

 

7. 맺음말 - 사형을 역사적 유물로 만들기

 

필자가 최근에 쓴 칼럼의 인용으로 맺음말을 대신할까 한다.3) 

 

우리 국민은 사형수로서의 처절하고도 소중한 체험을 가진 인사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 대통령은 당연히 인권 대통령을 표방했다. 인권 대통령이라면 사형에 대한 정치적 결단도 내려야 한다. 민주화로 이행한 나라의 첫 조치 중의 하나가 사형 폐지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자신과 함께 세계 3대 인권 지도자로 꼽는 만델라와 하벨 대통령은 재임시 사형을 폐지했다. 

 

사형 폐지의 결단은 사실 전체 국민의 몫이다. 국민 의식을 한 순간의 조치로 바꿀 수는 없다. 전면 폐지가 당장 어렵다면 사형 집행을 몇 년 간 유예하는 선언을 한 뒤 국민적 공론화를 통해 완전 폐지에 이르는 단계적 방책도 추진할 수 있다. 로마 교황청은 적어도 2000년 한 해만은 전 세계 사형 집행을 보류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사형 집행 명령을 보류하는 것도 현실적 방법일 것이다. 

파리의 세느 강변에 따라 조성된 노점상에는 한 때 세인을 전율케 했던 길로틴의 모형을 판매하고 있었다. 독일의 로텐부르크 시는 지난 날의 사형과 고문 도구를 진열해 놓은 형벌 박물관으로 이목을 끈다. 

 

언제쯤일까. 한국의 사형 도구들이 박물관에 전시되고, 사형장이 가상 공포 체험관으로 재단장할 그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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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체사레 베카리아, 「범죄와 형벌」, 이수성·한인섭 옮김, 길안사, 1995년, 93면. 

 

2) 이 선택 의정서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의정서의 체약국은, 사형 폐지가 인간의 존엄성 고양 및 인권의 점진적 발전에 기여함을 믿고, 1948년 12월 10일 채택된 세계 인권 선언 제3조 및 1966년 12월 16일 채택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제6조를 상기하면서, 동 국제 규약 제6조가 사형 폐지를 강력히 희망하는 문언으로 언급함에 유의하여, 모든 사형 폐지 조치가 생명권의 향유를 위한 진전으로 간주됨을 확신하고, 여기서 사형 폐지를 위한 국제적인 서약을 할 것을 희망하면서, 다음과 같이 협정한다.” 

 

3) 「중앙일보」, 1999. 5. 24일자, “사형대를 박물관으로”.

 

[사목, 1999년 7월호, 한인섭(서울 대학교 법과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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