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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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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48

인간 존엄성과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토론

 

 

[토론 1] 신중한 사형 존치론 - 노인수(새정치 국민회의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변호사)

 

모두 사형을 폐지하자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이 토론의 자리에 서 필자는 사형 제도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말하려 한다. 필자는 1995년까지 10여 년을 검사로 재직하여 주로 살인범 등 강력 범죄와 조직 폭력배를 수사하면서 사형을 수없이 구형하고 집행까지 한 적이 있다. 검사를 그만둔 후 조직 폭력배의 본질과 이에 대한 수사 척결 방안을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그 후 변호사로 일하면서 살인범을 포함한 모든 범죄자에 대하여, 그들과 좀더 진솔하게 만나면서 그들을 변론하여 왔다. 

 

그래서 필자는 실무자로서의 경험, 특히 피해자 측의 입장을 두둔하는 소박한 감정과 이번 토론회에 토론자로 지정된 후 한 생각과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종합하여 사형 제도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겠다. 

 

우선 필자는 사형 폐지론자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타당성은 제도적으로 보완되고 실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의 사형 제도에 대한 국민의 피해 의식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은 사형이 정권 유지 수단 또는 정책 실현 수단으로 집권자의 필요에 따라 남용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현 대통령은 광주 민주 항쟁 때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였지만 집행되지 아니하고 지금 살아서 이 나라를 지도하고 있다. 반면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에게는 선고 다음날 사형이 집행되었고 그 판결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지금까지 지식과 경험으로 볼 때 사형 제도의 존치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그 이유이다. 

 

첫째, 사회 응보적인 면이다. 쉽게 말하면 남을 죽이면 나도 죽는다는 본보기를 남겨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남을 사형시키는데 제도적으로 사형시킬 수 없다면 이는 균형 또는 비례에 맞지 않는다. 논리상 이 세상 사람들을 한 명씩 모두 잔학하게 살해하여도, 예컨대 많은 사람을 살해한 범죄자가 폐지론자들의 주장대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다가 교도소를 탈출하여 살인을 거듭했을 때조차도 가해자가 살아 남는다면 이는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째, 인간의 존엄성 문제는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측면에서도 고려해야 한다. 어떤 피해자는 용서해 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을 누가 헤아려 수습할 것인가. '불구 대천의 원수'라는 말이 있다. 곧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것인데, 살아 있으면 영원히 그 마음을 버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존엄성도 똑같이 아니 죄를 지은 가해자보다 더 중요하다. 그리고 여러 선진 제국이 사형 제도를 폐지하였다고 하지만 이는 그 나라의 사회 문화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한마디로 벌레 한 마리를 죽이는 데도 범죄처럼 인식되고 교육되는 사회와, 생명이 물건처럼 취급되는 사회에서의 범죄의 처벌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사형이 아닌 자유형의 최고인 무기 징역형이 꼭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느냐는 점이다. 

 

죄인 스스로 죽을죄를 졌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장기간 자유를 빼앗고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이 과연 죄인의 인간 존엄성을 세워 주는 것인가. 종교적으로 이승에서 잘못 살았으면 차라리 저승에서 새로운 삶을 기약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 사회적으로 죄인을 수감시키는 데 막대한 비용과 인원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교육형론적 입장에서 무기 징역형 자체로는 죄인을 아무리 교육시켜 보았자, 개인의 목숨 유지와 교도 행정에는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이 사회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필자는 1994년 10월에 사형 집행 현장에 감독관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이 사회를 강타하였던 지존파 사건 등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갱신한다고 하여 오랫동안 집행을 미루어 온 사형수 10여 명 - 어떤 사람은 8년이 넘은 사람도 있었음 - 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1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종교에 귀의하여 진실로 참회하는 것 같았고 집행을 하는 교도관들과 같이 얼싸안고 울고 찬송가, 찬불가 속에서 죽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 중에는 그 자리에서 죄가 없거나 적다며 억울해하기도 하고 또 사형 폐지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과연 이제 죄를 다시 저지를 것 같지 않은 사람을 사형할 필요가 있는가. 또 다른 재판관이나 좋은 시절에 재판을 받았으면 사형 선고를 받지 않았을 수도 있을 터인데 사형 선고가 된 사람도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 지금 회개하였다고 하여 다시 죄를 짓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수사를 해 보면 전과가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있고 상습범에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하여 감호소가 설치되어 이 사회를 방어하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모든 제도는 시대적 상황에 따른 역사적 산물이라고 보고 싶다. 문제는 다시는 위와 같은 사형수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과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고조선 때 8조 금법으로 사회의 모든 질서가 잡힌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형 제도를 폐지시킨 나라들을 살펴보면서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사형 제도가 폐지되어도 사형을 당할 만한 범죄가 이루어지지 않을 보장이 있느냐는 것이다. 

 

폐지론자들은 사형 제도와 범죄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이라는 선진국은 일부 주, 예컨대 미주리, 콜로라도 주 등은 사형 제도를 폐지하였다가 부활시켰고 최근에는 플로리다, 인디아나, 오하이오, 펜실바니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테네시, 버어지니아 주 등에서는 사형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죄목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사형 폐지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또한 미국은 1972년 사형 제도를 위헌이라고 대법원에서 판결하였다가 1975년에는 절대적 사형으로 정해진 법 외에는 위헌이 아니라고 과거 판결을 뒤엎은 바도 있다. 

 

도리어 지금 사형 폐지론자들이 할 일은 대책 없이 사형 폐지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상황을 정확히 살펴 제도적 보완을 계속하고 사회 분위기를 진작시켜 사형 선고받을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우선 사형 존치 법률을 헌법의 원칙에 맞추어 최소화하고, 일단 사법 절차가 끝난 사건이라도 새로 설치하고자 하는 인권위원회나 제3의 기관을 통하여 재심의 기회를 확대하고 나아가 경제적, 사회적 약자인 피고인을 실질적으로 변호하도록 국선 변호인 제도를 개선하고 집행 기간을 적어도 2년 또는 5년 등을 경과하도록 하여 재심의 기간을 일정 기간 보장하는 방안 등이다. 

 

또 대통령의 특별 사면권을 적극 활용하며 시대적 상황에 따른 억울한 사형수를 구제하고 정치적인 사건은 사형 선고를 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거나 재판관들이 사형 선고를 하지 않는 불문율을 확립하는 것 등이다.

 

더 현실적인 것은 현행 교도 제도를 검토하여 죄 지었던 사람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교화 선도가 제대로 되도록 하는 것이다. 

 

아무튼 필자도 사형 제도가 없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조직 범죄나 마약 범죄 등에서는 사형 제도가 아직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돈과 권력에 눈이 어두운 그들에게 사형 제도가 없어진다면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범죄는 어디까지 파급될지 알 수 없다. 그들은 적어도 목숨만은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곧 사형 선고만은 면하려고 살인죄가 되지 않는 곧 생명을 직접 노리지 않는 방법으로 상해를 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차제에 사형 제도에 대한 올바른 대책을 위하여 현재까지 주로 사형수 곧 가해자 입장에서 형사 철학적 범주에만 머문 것으로 보이는 바, 앞으로는 형사 정책학, 범죄 사회학, 범죄 심리학, 행형학, 피해자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연구하고 이를 집대성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론 2] 사형장 체험을 통한 사형 제도 폐지 운동 - 문장식(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목사)

 

1. 한국 사형 제도 폐지 운동의 연혁

 

1) 윤형중 신부(존치론), 권순형 판사(폐지론), 강원룡 목사(폐지론) 등이 잡지를 통해 논쟁([동아춘추], 1962년 12호; 1963년 4월 호). 

 

2) 국제 사면 위원회 사형 제도 폐지 운동.

 

1989년을 ‘사형 폐지의 해’로 정했다. 한국에서는 유신 정권 때 정치적 억압으로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금은 활발하다. 

 

3) 한국 사형 폐지 운동 협의회(‘사폐협’으로 약기. 1989년 5월 30일 창립) 

 

서울 구치소 교화 협의회의 사형장 입회 - 성직자와 사형수 자매, 독지 법조인, 학계 인사들로 조직. 

 

4) 기독교 사형 폐지 운동 

 

(1) 예장 통합 제75차 총회(1990년 9월 20-26일)에서 결의. 현재 7회째 사형 폐지 정책 협의회 개최. 대정부 성명과 사형수 구명 운동 전개. 

 

(2) 1993년 12월 21일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KNCC) 인권위원회 사형 폐지 분과위원회를 조직하고 폐지 운동 전개. 국제 엠네스티 한국지부, 예장 통합 사형 폐지 분과위원회 등과 연합으로 사형 폐지 심포지엄 개최. 

 

5) 천주교 사형 폐지 운동 

 

(1) 서울 구치소 사형수 담당 신부, 수녀와 자매들 

 

서울대교구 추영호 신부가 1989년 5월 30일 사형 폐지 운동 협의회 공동 회장으로 참여했고, 그 후 김우성 신부가 공동 회장을 맡았고 김자선 씨, 조성애 수녀 등이 이 운동에 참여. 

 

(2) 1992년 8월 김수환 추기경 등에게 사형 제도 폐지 서명을 받아 헌법 재판소에 제출. 

 

(3) 1991년 여의도 광장 차량 질주 사건으로 손자를 숨지게 한 사형수 김용제를 용서한 서윤범 씨는 1993년 가톨릭 대상 수상. 개신교에서는 손양원 목사가 6.25 때 두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양아들로 입적시킴. 

 

(4) 그 외에 서울대교구 사회 사목부 산하 사회 교정 사목 위원회 주최로 사형 폐지 세미나 개최. 

 

(5) 1997년 말 정부의 사형 집행에 위 위원회와 인권 단체들이 명동 성당에서 항의 시위. 

 

2. 사형장 체험

 

1) 생명의 귀중함을 인식하게 되었다. 생명을 몇 분이라도 더 연장하고자 물 한 컵 달라. 담배 한 대 피우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2)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 의혹이 있다. “돈 없어 변호사 선임 못해 억울하게 죽습니다.” 

3) 오판의 가능성이 있다.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무기 또는 종신형이 차선책이다. 

4) 처형의 잔인성을 체험했다. 

5) 사형수 교화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선하게 교화된 후 사형시키는 것은 모순이다. 

6) 사형수 처형은 그가 속한 가정까지 파괴한다. 아들 따라 자살한 어머니도 있다. 

7) 억울하다고 생각한 사형수 가족은 국가에 원한을 갖고, 고소한 피해자에게 보복심을 갖는다. 

 

3. 사형 제도 폐지 운동의 자세

 

1) 사형 제도 폐지 운동을 위하여 새로운 이론들을 개발해야 한다. 이론이 답보 상태인 것 같다. 

 

2) 씨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결과는 하느님께 맡기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3) 김대중 대통령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일본의 사형 제도 폐지 운동가 기쿠타 교수는 1999년 5월 27일 열린 한국 사형 제도 폐지 운동 협의회 1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한국이 사형을 폐지하거나 사형 집행만이라도 정지하면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사형제를 고수한 나라는 대부분 인권 후진국들이다. 종신형으로도 단죄의 효과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권 투쟁 경력이 있고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지난 사폐협 세미나 토론자 중에는 20-30년 내에는 폐지가 어렵다는 견해도 나왔으나 2000년 대희년을 기점으로 해서 사형 폐지 또는 집행 정지라도 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날 세미나 토론 연사 중 하나인 [한국일보] 정달영 씨는 사형 폐지는 사형수였던 대통령의 몫이라고 했다. 곧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살아난 김 대통령이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일에 솔선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권의 큰 진전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건의했지만 집권 말기에 무더기로 집행하고 말았다. 

 

4. 사형 제도 폐지 운동의 방법

 

1) 이론이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 믿음은 행동이 있어야 한다. 

 

2) 계몽 운동 

 

(1) 형법 조문 줄이기 운동(형법 개정 운동) 

 

우리의 사형 규정 법률은 형법 제250조(살인죄)를 포함하여 89개나 된다. 건국 이후 사형 집행된 사람의 수가 911명이나 된다고 한다. 문민 정부에서 모두 57명 집행되었는데, 여성 4명 포함 23명은 정권 말기인 1997년 12월에 무더기로 집행되었다. 

 

(2) 응보적 고정 관념을 깨고 용서와 사랑이 고차원적 복수이며 사형 폐지 국가들에서 오히려 살인율이 더 줄고 있다는 것을 홍보하자. 한 가지 방법으로 사형수들의 삶을 방영하고 사형 집행시에 있는 인정 심문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녹화 방영하면 용서와 사랑 운동이 전개될 것이다. 

 

(3) 사형 제도 폐지 운동에 대한 거부감을 바꿀 수 있는 말들을 개발하자. 예를 들면, “사형보다 고통스런 종신형으로”와 같은 표어들은 어떨까. 

 

(4) 일반 단체와 각종 종교 단체와 연대하자. 

 

(5) 대통령과 장관 면담을 요청하고 건의하자. 

 

(6) 사형 반대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가 오판이 있을 때 사형 제도를 뒤집어야 한다. 

 

(7) 대통령 결재를 위한 헌법 소원을 내자. 사형 집행시 장관 전결은 위헌임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 

 

(8) 국회 의원 등 지도급 인사들에게 사형 폐지 홍보물을 발송하고 설문지를 발송하여 의견을 듣자. 침묵하는 지도층을 계몽해야 한다. 

 

(9)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 운동 센터를 창립하자. 미국의 SOLACE(흉악 범죄 희생자 가족 및 사형수 가족 대책 위원회)와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 

 

(10) 사형 제도 폐지 설문을 만들어 국민 여론을 재조사해야 한다. 흉포한 사형수가 교화되어 선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래도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가. 

 

5. 맺는 말

 

사형 제도가 인간의 고귀한 생명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온 세상보다 귀한 생명의 가치를 존귀하게 여기는 차원에서 사형 제도는 꼭 폐지되어야 한다. 폐지 운동 단체가 연대하여 국민의 정부에서 꼭 사형이 폐지되게 하자.

 

 

[토론 3] 교화 현장에서 본 사형수, 사형 제도 - 박삼중(부산 자비사 주지, 스님)

 

필자는 사형수를 만나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한다. 10명 가운데 8명이 억울하다고 주장을 한다. 살고 싶어서? 생존 욕구 때문에? 필자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필자한테 억울하다고 주장을 해도 생명이 회복될 수는 없다. 이미 죽음은 결정 나 있다. 저승의 삶을 준비해야 할 사람이 이승의 사람을 보고 억울하다고 자기 가슴을 터놓고 말한다. 이미 모든 재판 절차가 끝났다. 그런데 왜 필자한테 억울하다고 그럴까? 억울하니까 억울하다고 말할 것인데 억울하다고 아무리 절규해도 그 사실이 증명될 수는 없다. 필자는 그 사실을 증명하려고 최고수를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필자가 그들을 만나는 목적은 죽음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죽음을 준비시키는 사람에게 그런 범행을 안 했다는 주장은 무슨 말인가? 그러면 다시 말하겠다. 10명 가운데 8명이 억울하다. 그 8명 가운데 한 사람은 사건 현장에도 없었다. 사건 현장에 없었을 뿐 아니라 사건과 연계된 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무죄라는 주장이다. 그러면 필자는 범행과 관계없는 사람이 어떻게 사형수가 되느냐고 물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사건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되도록 그런 질문을 하지 않지만 너무도 애절하게 호소하여 필자는 물을 수밖에 없다. 물으면 답하는 내용들이 문제다. 그것을 믿을 수 있는가? 필자는 믿는다. 그러면 어떤 얘기를 하는가? 이건 경찰의 문제이다. 경찰이 고문을 해서, 조작을 해서 사건을 만들어 낸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검찰에 가서 이런 내용을 뒤집으면 되지 않을까?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하면 되지 않을까? 여기서 필자는 사형 제도에 관한 찬반 토론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그런 논리를 전개할 자신이 없다. 다만 필자가 만났던 슬픈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털어놓으려 할 뿐이다. 그러면 경찰이 그렇게 만들어 낸 사건에 대한 기록만으로 검찰 쪽에서 사형을 구형한다, 죽음을 요구한다. 이에 대해 아니라고 부인한다. 나는 그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부인한다. 그래도 일부 검사는 사형을 구형한다. 그럼 재판부가 신중히 사건을 다루는가? 여러 가지 조작된 증거이지만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러이러한 흉악범이라고 진술할 때 판사는 그 사형수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법률 상식이 풍부한 검사가 법의 근거를 앞세워서 또 확실한 반증을 제시하면서 사형을 구형할 때 '아니다'는 반증을 제시해야 되지 않을까? 지금 사형을 받기 직전에 있는 사람이 억울하다고 주장을 해도 전혀 방어 능력이 없다. 사형수들이 억울하다고 필자한테 주장을 해도 필자에게 무슨 힘이 있는가? 아무 힘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사형 집행 현장에 입회를 해 보면 사형 폐지론자가 되고 사건 현장에 있으면 사형 존치론자가 된다.”고 … 필자는 그런 차원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범인이 아니다. 전혀 그 사건과 관계가 없다. 누가 죽이는 것인가? 법이라는 미명 아래 … 그런 걸 사법 살인이라고 한다. 그 근거를 필자의 입장에서 본 것이다.

 

1997년 12월 30일 23명에게 사형을 집행했다. 그것도 문민 정부라고 자처했던 김영삼 정부가 집행했다. 그들 중에 필자가 만나서 대화했던 사형수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 다 무죄를 주장했다. 필자는 그들이 무죄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 그를 죽였는가? 바로 우리가 죽였다. 그러니 슬픔이 언제까지나 가슴에 남아 있다. 스님네들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산중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산에 살지 않는가? 불행하게도 필자는 산을 등지고 교도소를 다니면서 300여 명의 사형수를 만났다. 이것이 우리에게 참 슬픈 이야기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 50년 100년이 지나서 이 나라 인권이 제대로 자리잡을 때 가장 슬픈 역사로 남을 것이다. 필자에게 간절한 바람이 있다. 필자는 교도소를 등지고 다시 산으로 돌아가서 수행자로서 살고 싶다. 필자가 수행자로서 살려면 이땅에 죄 없이 억울하게 사형장에서 떠나는 사람이 없어져야 한다. 필자는 그런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천주교 쪽에 감사한다. 문민 정부의 김영삼 전 대통령이 4년 동안 사형수 한 사람도 감형시킨 경우가 없다. 이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국민의 결의를 거쳐서 특별 감행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회복하지 못한다. 그러면 김대중 대통령은 본인이 사형수였는데 한 사람의 사형수라도 감형했는가? 과거 전제주의 아래에서도 임금이 주재하면 죽을 사람을 한두 사람 살려 준다. 또 우리가 말하는 독재 정권이라는 군사 정권이 들어서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씨가 취임하면서 사형수를 몇 사람씩 감형했다. 그런데 어째서 국민의 정부라는 정통성 있는 김대중 정부는 한 사람의 사형수도 무기로 감형시키지 않고 있는가. 억울한 사형수, 억울하지 않다 하더라도 심한 격정으로 죽을죄를 졌다 하더라도 그가 제대로 인간성을 회복해서 참 사람으로 되어 있다면 그 많은 사형수 중에 하나 둘은 감형해 주어야 되지 않을까? 사형수들이 필자한테 20,000여 통의 편지를 보내 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사형수들이 만세를 부르고 춤을 추었단다. 왜 춤을 추었을까? “사형수였던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우리는 살았다.”라고 … 마땅히 죽을죄를 지었다는 사람들 말고 모두 만세를 불렀는데 요새 편지에는 “자기들 잔치로 끝나는군요.” 하는 말을 한다. 부디 천주교 쪽이 힘을 모아 천주교 쪽에서 갖는 이런 모임이 좋은 결실을 얻어 이런 토론회를 거치지 않아도 ‘이젠 된다’는 그때가 오기를 간절히 주님의 이름으로, 부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토론 4] 국제 인권법의 입장에서 본 우리 나라 사형 제도의 문제점 - 박찬윤(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연대위원장, 변호사)

 

1. 사형에 관한 국제 인권법과 한국의 위반 가능성

 

1) 사형의 금지 또는 제한을 규정한 국제 원칙(International Norms)

 

세계 인권 선언 제3조:“모든 사람은 생명권을 갖는다.” 

자유권 규약 제6조

1항:생명권 보장 

2항:“사형을 존치하는 경우라도 가장 중한 범죄에 대하여만 사형을 부과하여야 한다”(사형은 마지막 수단이자 최소한의 범위이어야 한다는 원칙). 

5항:18세 이하의 청소년에 대한 사형의 금지 

자유권 규약 제7조:“어떤 사람도 고문이나 잔인한 그리고 비인도적 처우나 형벌을 받지 않는다.”(No one shall be subjected to torture or to cruel, inhuman or degrading treatment or punishment.) 

 

사형 금지에 관한 3개의 조약:Second Optional Protocol to the Internation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현재 35개국 가입, 2개국 서명); Protocol No.6 to the European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현재 30개국 가입, 3개국 서명); Protocol to the Americ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to Abolish the Death Penalty(현재 6개국 가입, 1개국 서명) 

 

2) 한국의 사형은 국제법적 의무를 위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형 존폐의 문제와 관계 없이 생명권은 하나의 국제 관습법상 제한할 수 없는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여기에서 생명권이란 자의적인 생명의 침해는 어떠한 경우에도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1990년 유엔 가입과 동시에 위의 자유권 규약에 가입하였지만 사형 금지에 관한 제2 의정서에는 가입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국이 자유권 규약에 가입한 이상 비록 사형 제도를 존치한다고 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도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한국의 사형 제도는 위의 자유권 규약 제6조 2항의 최소 적용의 원칙에 충실한가? 그 답은 부정적이다. 

 

자유권 규약의 의미는 사형이 일반적인 형벌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고 아주 엄격한 제한 내에서 가장 예외적인 방법으로 사용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유권 규약 위원회의 일반 의견(General Comment 6)에서 확인되었다. 거기에서 사형 제도는 “상당히 예외적인 수단”(quite exceptional measure)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자유권 규약에 가입한 나라는 비록 사형을 존치한다 해도 그것은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므로 가장 중대한 범죄(사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제외하고는 다른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매우 광범위한 종류의 범죄에 대하여 사형을 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형법은 내란죄, 간첩죄와 살인죄를 비롯한 15개 조문에서, 군(軍)형법은 45개 조문에서, 국가 보안법은 모두 50개 이상의 범죄 유형에 대하여 사형을 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밖에도 특정 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의 특별 형법에서 여전히 사형을 정하고 있다. 특히 형법 제93조 범죄를 비롯하여 군형법은 모두 13개 조문에서 법정형을 오로지 사형만으로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은 자유권 규약의 제6조 2항의 위반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국의 사형 제도와 현실은 적어도 자유권 규약 제7조의 “비인도적 처우” 금지 원칙에 위반되지는 않는가? 이에 대한 답 또한 부정적이다. 

 

어떤 경우에 사형 제도가 비인도적 처우에 해당하는가? 이것을 판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국제 인권법적 판례는 1989년 유럽 인권 재판소가 판결한 소링(Soering)의 경우다. 이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사건 내용:소링은 1966년 출생하였으며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85년 미국 버어지니아주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두 명의 노인이 살해되었음)의 용의자로서 미국을 탈출하여 영국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1986년 수표 사기 사건으로 영국 경찰에게 조사를 받던 중 미국에서 살인 용의자로 추적을 받고 있음이 밝혀졌다. 미국은 영국 정부에게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인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영국 정부는 그를 미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소링은 유럽 인권 협약의 절차에 따라 자신에 대한 미국의 인도 요청이 유럽 인권 협약에 위반되는 것이라 다투었다. 

 

쟁점:소링은 자신이 인도되면 사형될 것이고, 미국의 사형 집행 현실(death row phenomenon)은 인권 협약 제3조(비인도적 처우 금지)에 위반된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의 판단:법원은 먼저 만일 도망자가 인도되어 고문이나 비인도적 처우를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 범죄인 인도는 인권 협약 제3조 위반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법원은 이 사건에서 관건은 미국의 사형 제도와 현실이 과연 인권 협약상 금지하고 있는 비인도적 처우에 해당하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라 하였다. 

 

법원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 버어지니아 주의 사형은 비인도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첫째, 사형 확정 후 집행까지의 기간(평균적으로 6-8년)이 너무 길다. 이로써 오랜 기간 사형 대상자들은 사형에 대한 불안감으로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둘째, 사형 대상자들의 수감 상황이 매우 참기 어렵다. 사형 대기자들의 폭력과 동성 연애에 대한 위험이 명백하다. 

 

셋째, 소링의 정신적 상태와 나이(범죄 발생 당시 18세)를 고려할 때 사형이 예상되는 곳으로 보내는 것은 부적당하다. 

 

위의 사건을 염두에 둘 때 과연 우리의 사형 제도와 현실은 유럽 인권 협약과 동일한 조문을 두고 있는 자유권 규약 제7조에 위반되는지가 문제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서는 좀더 실증적인 우리의 행형 현실(사형수에 대한 행형 실태)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지만 집행까지의 기간이 일반적으로 수년 걸리고 그 기간 동안 사형수들이 죽음에 대한 매우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는 점은 공통적일 것이다. 

 

2. 국제 인권 절차를 통한 한국의 사형 제도의 비판 가능성

 

위에서 본대로 현재 한국의 사형 제도와 현실은 국제 인권법(자유권 규약)에 위반될 소지가 많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국제 인권법적 시각에서 시정할 방법은 없을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1) 유엔의 Thematic Mechanism을 이용하는 방법

 

현재 유엔은 각국의 고문 또는 비인도적 처우를 감시하기 위해 특별 보고관(Mr. Rodley, UK)을 설치하여 운용하고 있다. 특별 보고관은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비인도적인 처우를 발견하면 이를 조사하여 유엔에 보고한다. 따라서 우리의 사형수와 관련된 사건 중에서 특히 비인도적이거나 자의적인 집행의 우려가 있는 경우는 이 보고관에게 자료를 제공하여 유엔 절차(관련 정부에 정보 요구, 긴급 사태인 경우 관련 정부에 집행 정지 요청, 현장 방문을 통한 조사 등)를 통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2) 자유권 규약에 따른 정부 보고서 심의 과정에서 NGO의 활동

 

한국은 자유권 규약에 가입한 뒤, 동 규약에 의거한 정부 보고서를 1991년 규약 위원회에 제출하여 1992년에 검토 받은 바 있다. 제2차 보고서는 현재 제출 중이며 올 10월에 검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의 인권 단체들은 규약 위원회에 대해 한국의 사형 제도를 문제화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반박 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현재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이를 준비하고 있다. 

 

3) 자유권 규약에 따른 개인 통보 제도의 이용

 

자유권 규약의 제1선택 의정서는 정부가 규약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 피해자는 위원회에 통보(Communication)를 제출하여 개인적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 이 선택 의정서를 유보없이 가입하였기 때문에 사형수들 가운데 자신의 사건이 정부의 규약 위반으로 빚어진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통보 제도를 이용해 볼 만하다. 이 절차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한국에서 구제 절차를 우선 끝마칠 필요가 있다. 만일 이 절차로 위원회가 정부의 행위(곧 피해자를 구속하여 사형 선고를 한 것)가 규약에 위반되었다고 판단하면 정부에 시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적절한 구제 절차의 이행을 촉구한다. 이 결정은 국제법상 법적 구속력은 없다고는 설명하나 사형 집행 정지의 강력한 제지 수단이 될 것이다. 

 

 

[토론 5]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현재의 사형 제도 - 이상혁(한국 사형 제도 폐지 운동 협의회, 변호사)

 

1. 머리말

 

1) 인간의 존엄은 무조건 존중되어야 할 것이지만 ‘인명’에 대하여는 똑같다고 할 수 없다. 존엄스러운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하나 인명은(인간의 존엄과는 달리) 가치를 갖고 있지 못하므로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사형이란 저지른 범죄의 벌로서 국가 권력이 그 목숨(생명)을 박탈하는 것인데, 그것이 허용되느냐의 판단은 먼저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의 여부가 명확해야 한다. 

 

2) 사형이 과거 어느 시대에나 국가의 부당한 제도였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야만 비로소 이 제도의 존폐를 논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곧 인간의 생사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국가의 권리 또는 의무가 있느냐는 판단은 역사적 현실적 상황에 따라 그 존부 이유를 고려할 수 있다. 

 

3) 만약 현시점에서 한국에 오랫동안 존속되어 온 이 제도의 필요성이 완전히 증명되지 않는다면 이 제도는 하루빨리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확실치 않은 이유로 인간의 생명이 박탈되어서는 안 됨"은 확실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4) 이에 우리가 검토해야 할 사안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제도가 꼭 있어야 할 것이라는 그 이유이다. 그것은 ‘동기’와 ‘이유’를 구별해서 이 사안을 분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일반론으로서 이 두 개념의 본질적인 상위점을 설명하고 그리고 이런 구별을 염두에 두면서 사형 제도를 검토하고자 한다. 

 

5) 인간 행위의 단순한 ‘동기’와 그 행위의 ‘이유’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오히려 ‘동기’와 ‘이유’는 서로 용인되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같은 동의어는 아니다. 예컨대 유죄가 선고된 자에게는 죄를 범할 강한 '동기'가 있었을지언정 이를 정당화할 ‘이유’가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동기(Motive)란 인간을 실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나 인간은 정당한 이유(Reason) 없이 곧 욕망, 동기만으로도(Unreasonably) 행동하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행동할 확실한 ‘이유’가 있어도 인간이 움직이지 않는 수도 있다. 참된 이유는 정당성을 갖는 터인데 동기는 하여튼 주관적이다. 이유에는 합리성이 있음에 대하여 동기에는 감정성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동기는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있으나 이유는 동기가 없으면 그 힘을 가질 수 없다. 

 

위와 같은 구별에 터잡아서 사형 제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사형 제도를 존속시키는 동기는 확실히 있다. 사형 폐지에 관한 국민의 의견을 조사하여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형 지지율이 상당히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통계가 사형을 존속시킬 이유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형 존속의 문제는 여론 조사를 참고하는 것만으로는 존속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전문가의 우수하고도 방대한 문헌을 보면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제도의 존재 이유에 관한 것이지만 사형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는 전문가는 대단히 예외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런 시점에서 이 제도의 존속에 관한 정당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2. 사형 존치론자가 열거하는 이유는 참된 이유일 수 있는가?

 

사형은 형벌의 일종이다. 형벌의 목적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사형 존치론을 검토하여 보기로 한다. 

 

1) 이른바 '교육형' 사상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저승으로 보내진 사형수에게 교육이란 있을 수 없어 사형이 정당화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2) 현재의 형법학에서 그다지 지지를 못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사형 제도를 정당화하고자 하는 유파의 논거에는 ‘응보’와 ‘속죄’의 필요성이 지금도 제기되고 있다. 

 

‘응보’는 정의의 요구라 할 수 있고, ‘속죄’는 범죄인의 자기에 대한 또 사회에 대한 도덕적 속죄라 할 수 있다. 

 

정의의 이념에 비추어 살인자의 생명(목숨)을 빼앗는 것이 피해자에게 배상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가해자의 생명을 박탈하여도 피해자의 생명이 다시 부여될 수 없으므로 이로써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 

 

도덕적 속죄에 관하여서도 사형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가해자가 재판을 받으면서 반성하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가 있다.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한다고 해도 범죄자 자신이 반성하지 않는다면 속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곧 속죄 사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반성하고 있는 범죄자를 사형할 수는 있지만, 반성하지 않고 있는 범죄자를 사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것은 사실 국가 사회적 관점에서 사형으로써 속죄하게 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사적 복수 대신에 탈리오의 법칙인 동해 보복률에 따라 공적 복수를 행하는 동기적 요소가 강하게 형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피해자 유족(가족)의 기분(분노의 감정)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으나 그것이 지고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이유는 될 수 없다. 

 

어느 사형수의 유언 중에 “나는 참으로 잘못했지만 내가 죽는 것이 내가 살해한 피해자나 그 가족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느냐?”라는 구절은 사형수의 기분과 “죽여라” 하고 울부짖는 유족의 기분을 대비할 때 어느 쪽이 합리적인지 생각하게 한다. 

 

3) 사회 또는 국가의 정당 방위권을 사형 존치의 정당 이유로 드는 안전설이 있다. 그러나 라두부르흐는 국가의 정당 방위권은 없다고 논증한 바가 있다. 

 

개선 가능성이 없는 범죄자나 사회적으로 위험한 이상자가 가끔 있지만 사형보다는 무기 징역으로도 충분히 방위할 수 있다. 또 가석방이 없는 종신 징역형으로도 가능하다. 그런 자에게는 감호 시설 내에서 복지 정책으로 충분히 뜻 있는 생활을 보내게 할 수 있다. 

 

4) “사형이 없으면 사회가 혼란해진다.”는 생각에 터잡은 위하(겁주는) 사상이 있다. 

 

사형이 폐지되면 살인 범죄가 창궐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사형에 위하력이 있느냐의 여부는 가치 문제가 아니라 사실 문제이다. 그러나 통계학 연구에 따르면 그런 우려는 근거 없음이 명백하다(쎄링의 연구). 

 

사형 제도 폐지 국가의 폐지 전후와 폐지했다가 부활시킨 국가의 부활 전후의 범죄 통계를 검토한 범죄 학자의 결론은 ‘사형이 범죄에 대한 억지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으며, 있다고 해도 그 효과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서독의 경우 사형 폐지 뒤에 범죄는 증가하지 않았다. 

 

“살인범의 대부분은 격정범으로 대부분 범죄의 순간에 이성의 제어력이 상실된 경우가 많고 냉혹한 범죄자라도 자기가 잡히느냐의 여부만 생각하지 사형이 되느냐의 여부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조사 결과 나타났는데 이는 사형 규정이 범죄 억지력이 없음을 나타낸 단적인 예이다.” 

 

미국 데라바르 주에선 사형 폐지 후 4년 동안에 잔혹한 범죄가 몇 건 있어서 1961년에 다시 이를 부활시켰는데 그 결과를 보면 오히려 부활시킨 뒤에 살인 사건이 늘었다. 

 

5) 국민 감정과 법적 확신 그리고 국민성을 고려하여 존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 있지만 사형 제도가 이로써 해결될 여지는 없다. 법원이 재판할 때 실정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면서 국민 감정을 고려할 수는 있지만 입법에서 그런 고려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 

 

6) 사형수 중에는 재범자가 그 대부분이다. 또 완전 범죄의 몽상가가 있다. 이를 막는 길은, 

(1) 범죄자의 도덕적 재활을 도와 주는 인적, 물적 제도의 확립 

(2) 범죄의 예방을 위한 민간의 자구 노력의 제고 

(3) 처벌의 확실성을 제고할 수 있는 검경의 수사 과학화 또는 효율화를 들 수 있다. 

 

3. 단순한 ‘동기’를 가진 사형 폐지론

 

1) 사형 폐지의 논거 중 오판 위험성에 관하여 본다. 

 

형법에서의 이른바 “허용될 위험”이란 원칙에 비추어 때로는 오판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자동차 운전에는 그 운전에 따른 위험성이 꽤 높지만 이 때문에 운전을 도덕적 율법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2) 정치적 이유에 따른 사형 남용 문제 

 

사형 남용이 그 폐지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독일에서 폐지한 것은 나치 시대의 남용에 대한 경험적 참고에 지나지 않는다. 

 

3) 범죄자의 책임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신만이 한다는 사고도 폐지의 이유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이유가 타당하려면 인간이 내리는 재판 그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최종적 판단은 신이 내리는 것이고 인간이 행하는 재판은 신의 심판을 대신하는 것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4.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될 참 ‘이유’

 

사형 폐지론자가 들고 있는 몇 가지 근거에는 이유보다는 이 제도를 폐지할 동기적 측면이 적지 않으며 존치론자가 들고 있는 근거에도 참된 이유로 볼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한국의 현실에서 사형을 폐지할 참된 이유를 검토하여 보기로 한다. 

 

1) 현시점에서 사형 제도의 정당성과 필요성이 있느냐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음은 사실인데 그렇다면 사형 제도의 존재 이유가 명료하지 않음은 단언할 수 있다. 존재 이유가 명백하지 않다면 이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명료치 않은 이유로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목숨을 빼앗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라는 명백한 원칙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곧 그 거증 책임은 사형 존치론자가 부담해야 한다. 

 

사형 제도를 정당화함에 족한 충분한 증거가 거증되지 않고 있음은 이미 증명한 바와 같다. 

 

말할 것도 없이 “사람을 죽이지 마라.”라는 원칙은 일반 원칙으로서 타당성을 갖고 있으나 예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형을 그 일반 원칙의 하나의 예외로 확정하자면 그 정당성과 필요성이 적극적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적극적 증명이 없으면 그 예외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명백한 이치로서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죽이지 마라.”라는 원칙은 타당한 것이다. 

 

위와 같은 사형 폐지의 이유는 직접적으로 ‘인간의 존엄’과 ‘인간의 존중’과도 관련되는 문제이다. 

 

국가 권력은 인간의 생명과 인간의 자유(자유권적, 생명권적 기본권)를 보장하여야 하는데 이런 기본권은 국가에게서 부여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국가 권력으로 인간의 생명이나 자유를 제한 박탈함에는 명백한 필요성이 있어야 하는데 만약 그런 필요성이 있을 경우(예컨대 정당 방위)에도 “처벌하기 위하여 인간 생명을 빼앗을 필요성의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근거 없는 제도의 존속으로 인간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인간의 생명을 박탈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2) 사형되는 자에게는 두 종류, 곧 반성하는 자와 반성하지 않는 자가 있다. 

 

반성하는 자도 처벌해야 하지만 반성하고 있는 범죄자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그 인간의 새로운 시작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유해 동물 사살과 동일).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도 인간인 이상 개심(마음 고침) 가능성은 언제나 갖고 있다. 살해하여 버린다면 그 가능성까지도 빼앗고 부정하는 것이다. 

 

종교적 시점에서 죄인은 하느님에게 용서받는다는 신앙에 비추어 신(하느님)이 아닌 인간이 어떻게 살인자의 생명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반성하지 않은 범죄자를 반성하지 않은 채로 죽이는 것은 그를 영구히 지옥으로 보내는 것이 되지 않는가. 

 

하여튼 명료한 이유 없이 교수대에서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다는 것은 냉혹한 살인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실정법의 입장에서도 한국의 사형 제도 존속은 헌법 위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형은 사형수의 생명을 근원적으로 박탈하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 제10조와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 규정인 헌법 제37조 2항에 위배된다. 

 

또 사형에 관여하는 판사, 검사, 사형 집행관, 검시자, 사면권자의 인간 존엄성도 침해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존재와 구별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생명과 인격을 가진 존재로서 그 개개인 모두 최고의 독자적 가치를 가지며 그 자체가 최종적 목적적 존재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면 인간의 생명 그 자체는 이러한 인간 존엄과 가치의 한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이고 그 근거로 헌법 제10조를 드는 학자가 많다(김철수, 권영옥, 구겸명 교수). 

 

김철수 교수는 “수형자의 생명권의 본질적인 내용의 침해도 위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독일 기본법 제102조는 사형을 명문으로 금지하고 있고 국제 연합도 사형 폐지 조약을 1991년 7월 1일에 발효했다. 

 

4. 맺음말

 

1) 생명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며 원천이므로 이의 박탈은 바로 인간 존엄성의 침해이며 기본권의 본질적 침해라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인간 개개인에게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사회이며, 사회 자체가 개인과 절연된 독자적 목적과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도 분명히 이해된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사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 제10조와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 금지를 규정하는 헌법 제37조 2항에 위배되므로 위헌이라고 생각한다. 

 

2) 특히 국제 연합의 사형 폐지를 목표로 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의 제2선택 의정서’(사형 폐지 조약)의 채택으로 전세계적으로 생명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으며, 사형 폐지국이 매우 빠르게 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아직도 많은 국가가 사형 제도를 두고 있다든가, 국민 의식이 이를 용인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합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우리 헌법의 인권 존중 사상에 역행하는 사고라 아니할 수 없다. 

 

3) 사형 제도는 수형자의 생명권의 침해일 뿐만 아니라 사형 집행인, 사형 선고인, 사형 집행 확인인 등의 인권도 침해한 것으로, 또 사형이 아니라 할지라도 무기 징역형으로도 국가의 안전 보장, 질서 유지, 공공 복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사형은 위헌이라 할 것이다. 곧 사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헌법 제10조와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의 침해 금지에 대한 헌법 제37조 2항에 위배되므로 위헌이라 하겠다. 

 

4) 더구나 응보가 형사 정책의 유일한 목적이 될 수 없으며, 범죄 발생의 억지나 재방지를 위해 무기 징역형으로도 사형에 못지않는 효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사형은 사회에 공헌한 바도 없는 과도한 형벌로서 위헌이라 하겠다. 곧 사형이 아니라 할지라도 무기 징역형으로 국가의 안전 보장, 질서 유지, 공공 복리를 유지하는 데에는 어떠한 지장도 없을 것으로 보이기에 사형은 위헌이다. 

 

5) 결국 사형 제도 폐지 주장의 철학적 배경은 인간 존엄성의 고양을 통한 도덕성 회복 운동이고 평화 운동이다.

 

[사목, 199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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