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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신학적 측면에서 보는 생명복제의 현실과 인류의 미래: 인간 복제의 현실과 윤리 신학적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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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53

신학적 측면에서 보는 생명 복제의 현실과 인류의 미래


- 인간 복제의 현실과 윤리 신학적 반성 -

 

 

머리말 

 

우리 나라에서도 복제 동물이 만들어졌다. 서울 대학교 수의과 대학의 황우석 교수 팀이 만든 복제 송아지 ‘영롱이’이다. 이 소는 보통 젖소보다 3배나 많은 연간 1만 8천 리터의 우유를 생산할 것이라고 한다. 1996년 7월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 방법으로 복제 양 ‘돌리’가 태어난 지 2년 반만의 일이다. 생명 공학 분야는 우리 나라도 다른 선진국에 뒤떨어지지 않는 선두 주자라고 주장할 만하다. 더욱이 복제 송아지 ‘영롱이’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성공한 체세포 복제 방법에 따른 복제 동물이지만 이전의 다른 복제 동물보다 훨씬 우수한 기술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세포 배양 단계에서 이미 염색체 검사를 해서 유전성 기형이나 전염성 질병들을 미리 제거하는 기술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복제 송아지 ‘영롱이’의 어머니라고도 할 수 있는 황우석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인간 복제의 기술은 이번에 복제 송아지를 만들어 낸 기술보다도 오히려 쉽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복제 인간이 현실화되어 이 지상에 출현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이렇게 가까운 현실로 다가온 복제 기술은 인간에게까지 적용되면서 앞으로는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갖기 원하는 여성에게 자신의 혈통을 지닌 자녀를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고, 세계적 희귀종인 팬더를 멸종 위기에서 구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도 복제하여 다시 살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인간 복제에 관한 연구 수준은 이미 인간을 자유롭게 복제할 정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것도 그냥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 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도 있고, 나아가 미리 태어날 아이의 신체적 조건도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곧 그러한 유전 정보를 가진 유전자가 이미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을 이용한 인간 복제와 관련하여 영국의 세계적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다음 세기에 유전적으로 변형된 새 인간들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한다. 개조된 인간이나 맞춤 인간이 한낱 공상이 아니고 현실로 다가올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며, 멀지 않은 미래의 인간은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외모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생명 복제 기술의 발달에 대해 일부에서는 인류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할 만큼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있기도 하다. 장기 이식 수술을 위한 새로운 발판을 마련하고, 고가의 의약품을 대량으로 생산 보급함으로써 인류의 생명과 건강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불치병으로 여겼던 질병들이 이 기술로 극복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인류에게 장밋빛 희망을 준다고 하는 이러한 연구나 실험의 이면에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 이식 수술을 위한 장기를 좀더 용이하게 공급하려고 장기 이식용 인간을 복제한다면 그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또 죽은 사람에게서 유전자 정보를 취하여 그 사람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유전자 조작 등의 실험으로 인간을 특수한 목적을 위해 복제, 생산한다면 그 사회의 모습은 어떠하겠는가? 

 

필자는 이 발표를 통하여 인간 복제 기술의 현실을 살펴본 다음에 그 구체적 현실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윤리 신학적 관점에서 지적하면서 인간 복제 기술의 엄격한 금지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이 머리말에서 미리 밝혀 둘 것은 용어 문제로 ‘인간 복제’와 ‘인간 배아 복제’는 서로 다른 용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 복제란 개체로서 인간 복제(human individual cloning)의 의미로 어떤 한 인간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인간을 만드는 방법인데 이 방법을 인간 배아 복제 방법과 구분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없기 때문이며, 우리에게는 인간 배아(人間胚兒, human embryo) 역시 개체로서의 인간과 동일한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 생명 복제 기술의 현실

 

1) 생명 복제 기술이란? 

 

1993년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학교 의학 연구소의 제리 홀과 로버트 스틸먼 박사 팀이 인위적인 수정란 증식 방식으로 인간 배아 복제 연구를 성공시켰다는 발표가 있자 교황청의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이 결과에 대해 매우 강한 어조로 “인류 전체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논평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영국에서 발간되는 과학 학술지 [네이쳐](Nature, 1997년 2월 27일자)의 에딘버러 소재 로슬린 연구소 팀이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켰다는 발표는 전세계를 경악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첫 번째의 조지 워싱턴 대학의 방법을 분할 방법이라고 한다면 로슬린 연구소의 방법은 복제 방법이었고, 성숙한 포유류의 체세포를 이용하여 복제에 성공했기에 매우 새롭기는 하지만 동시에 인류 전체를 당혹스럽게 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수정란 분할의 방법은 수정란이 4-8개의 세포로 분열한 상태에서 각각의 생식 세포들을 여러 물리, 화학, 생물학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분리해 내는 기술이다. 이렇게 분할된 세포들은 다시 완전한 개체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각각을 자궁에 착상시킨다면 인공적인 일란성 다태아(쌍둥이)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복제 양 돌리를 만드는 데 사용된 복제 방법은 이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이다. 체세포 핵 이식법이라는 이 방법은 성숙한 포유류의 체세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곧 성체(成體)의 체세포 핵을 분리하여 여러 처리 과정을 거쳐 재프로그래밍한 후 수핵 세포질(사람 또는 다른 동물의 난자)과 수정시켜 새로 분화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여 생긴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킨다면 핵을 떼어 낸 성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 복제 기술은 사실상 지금까지 인류의 상상력을 완전히 뛰어넘는 매우 급진적인 기술 혁신의 결과이기 때문에 매우 충격적이다. 일반적인 생물학적 개념으로는 포유류의 생명은 양성의 생식 세포의 만남으로 생성되고, 또한 종의 유전적 장벽을 넘어서 다른 종간의 잡종은 만들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이제 이러한 생명 복제 기술은 이종간의 잡종체까지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으며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복제해 내는 데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필요에 따라 특성화된 생명체를 조작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2) 인간 배아 복제 기술은 어떤 분야에 응용되는가? 

 

(1) 생명 복제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 예상될 수 있는 결과는 일차적으로 자녀를 갖지 못하는 불임 부부들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측면이다. 지금까지는 배우자 어느 한 쪽의 생식적 결함으로 임신을 할 수 없었다면 핵 치환에 따른 체세포 복제 기술은 단성 생식으로도 생명의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불임 문제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체세포를 이용하여 완전한 2세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 곧 이 방법인 것이다. 더욱이 핵 치환의 방법으로 만들어진 인간 배아를 어머니의 자궁에 이식하기 전에 부모에게서 볼 수 있었던 유전자적 결함을 미리 교정하거나 제거함으로써 더 우량한 2세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나아가 아들, 딸도 미리 선택하여 출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은 결국 인간 유전자 조작의 방법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러한 발전은 결국 인간을 어떤 특수 목적에 맞게 생산해 내는 맞춤 인간의 시대를 예견하기도 한다.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유전적으로 변형된, 진보된 새 인간들이 다음 세기에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허용된 동식물에 대한 유전자 조작이 결국 인간에게 확대될 것이고, 이러한 조작은 결국 인간을 ‘개조-개선’하는 연구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가 예언하는 것처럼 몇 세기 후의 인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외모를 가진 모습으로 바뀌리라고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2) 인간 배아 복제 기술에서 진일보한 기술로 평가되는 인간 세포의 배양 기술이 성공함으로써([동아일보], 1998년 11월 7일 보도) 앞으로는 파킨슨 병이나 알츠하이머 병과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일부 암까지도 완치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세포 및 장기의 생산이 가능해져 인간의 각종 신체 조직을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교 발달 생물학자 제임스 톰프슨 박사와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생리학 교수 존 기어하트 박사의 이 연구는 인간의 기간 세포를 배양해 이들이 시험관 속에서 연골, 뼈, 근육, 신경세포, 장세포 등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이 연구는 인간의 노화를 방지하고 장기 부족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장기를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획기적인 연구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들이 연구에 사용한 기간 세포는 임신 3개월 이전의 태아에서 추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인간 생명체로서 태아가 과학 발전의 이름으로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윤리적 비난도 함께 받고 있다. 

 

(3) 아직까지는 상상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지난 1998년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교의 오스틴 스미스 박사는 인간 배아를 복제해 개인 고유의 유전자 정보를 복제한 ‘쌍둥이 복제 인간’을 만들 계획이라고 발표하여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러한 발상은 쌍둥이 복제 인간을 이용하여 개인 장기 이식용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곧 장기 이식을 위해 보조용 인간을 만든다는 발상이다. 이러한 복제 인간이 가능하다면 신체가 손상을 입거나 병이 들었을 때에 스스로의 신체를 복제하여 이식함으로써 다시 완전한 육체를 갖추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 윤리 신학적 반성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까운 미래의 현실로 다가온 복제 인간의 문제는 비록 그 결과가 인간의 건강을 보호하고, 극복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질병들을 극복시키는 일뿐 아니라 나아가 인간의 장기를 대체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키는 등의 마치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보장한다고 떠들지만 이러한 현실이 가져오게 될 사회적, 윤리적 문제는 참으로 엄청나다. 공상 과학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이미 죽은 역사적 인물의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하거나 어떤 특정 목적을 위한 인간을 대량 생산하여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일들이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생명 조작이 안고 있는 윤리 신학적 문제점들을 지적함으로써 복제 인간은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1) 인간 생명의 절대성과 인간 존엄성의 문제 

 

복제 인간이 내포하는 윤리 신학적 문제 중에 첫 번째 문제는 하느님께서 인간 생명의 주인이신데 여기에 인간이 감히 도전장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생명 복제 기술은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것처럼 어떤 특정 목적을 위해 인간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하니 이는 이미 하느님의 영역을 인간이 침범하는 것이 아닌가? 생명이란 참으로 신비하고 경이롭다. 언제나 알 수 없는 신비에 싸여 우리에게 놀라움을 준다.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기도 하기에 우리는 이 생명에 대해서 어떤 때에는 두려움조차 느끼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생명의 절대성까지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 생명의 복제는 어떤가? 그것은 생명 복제 기술이 인간에게 확대 적용될 때에 비록 존재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인간이 복제된다는 의미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간 또는 육체적으로 강인한 인간을 만들어 내는 일과 같은 가상적인 상황이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매우 엄청난 충격이고 통탄스런 행위이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으시고(2,7) 모든 것을 살아 숨쉬게 하신다는 점을 그 핵심 주제로 삼는다. 이는 생명이 하느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인간 생명이 인간의 능력이나 기술로써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의 창조적 힘으로 생겨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인의 살인(4,8 이하)은 절대적인 것에 대해서 인위적인 개입이 있을 때 그 결과가 어떠한가를 잘 알려 주는 사건이 된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이다. 

 

생명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오직 그것은 하느님의 창조로 이루어진 것이며 하느님께만 유보된 절대적인 것이다. 구약성서에서의 생명을 나타내는 어휘 중의 하나인 ‘hayya’라는 말이 있는데, 히브리 사상에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존재를 ‘hayya’, 곧 생명으로 기술하고 있어 ‘hayya’는 하느님의 현현(顯現), 하느님 섭리의 성취를 위한 끊임없는 활동, 곧 생명의 현상으로 상징되고 있다. 이는 히브리인의 생활 안에서 생명의 절대성이 정착되어 있었다는 것이며, 생명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라는 점을 알려 준다. 이 생명은 오직 하느님의 손에만 달려 있는 절대적인 것이다. 

 

신약성서 안에서도 생명에 관한 내용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와의 관련 아래 나타난다.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마르 5,21-43; 마태 9,18-26; 루가 7,11-17; 8,40-56; 요한 11,38-44) 그리스도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후 다시 살아나시는 그리스도 자신은 인간의 능력에 의한 임의적인 행위로써가 아니라 하느님의 권능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생명은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비롯되는 것이다. 

성서가 인간 생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언제나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과 관련을 가지며, 하느님의 창조 행위의 절정이며, 따라서 성서는 인간 생명과 관련되는 모든 것은 하느님만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직간접으로 가르치고 있다. 곧 인간 생명은 인간의 임의적인 조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절대자 하느님께만 속하는 절대성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인간 생명은 인간이 만들어 내거나 창조한 것이 아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살아갈 뿐이지 생명의 주인은 아니다. 부여받은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면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지킬 뿐이다. 이 생명은 임의적으로 거두어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을 조작하거나 만들어 내는 일, 파괴하는 일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도전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다. “인간 복제는 방법은 가장 냉혹하고 목적은 가장 비열한 유전자 조작의 형태이다. 그것의 목표는 유전 형질을 임의로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지배적인 방법과는 달리 유전 형질을 임의로 균일하게 고정시키는 것”이라고 한스 요나스가 인간 복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처럼 인간 복제는 생물학 측면이나 인격 측면에서 인간 생식의 기원에 있는 구조적 상관성과 상호 보완성을 근본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다. 곧 복제 배아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인간 생식의 고유한 의미가 바뀐다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고유한 권리를 자녀 대신에, 부모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에 의해 실험실에서 생산되는 복제 인간이라면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게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산업 생산의 논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논리는 늘 새로운 실험을 거쳐 새로운 모델로서 상품을 개발 생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복제된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해야만 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격적 주체성에서 드러나고, 그 구체적 표현으로써 인간은 “유일무이하고도 반복되어질 수 없는 존재”(사목헌장, 22항)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 자신이 다른 사람에 의해 조작당하고, 프로그래밍된다면 인간의 근본 개념은 필연적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인간 복제의 문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기본 인권의 차원을 전적으로 위배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인간을 복제하여 치료용 의약품을 개발하고, 부족한 장기를 원활히 공급한다는 발상 자체가 인간을 도구화시키는 일이며,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인 것이다. 

 

2) 인간 생명의 시작 문제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문제는 생명 복제 기술의 윤리적 쟁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이다. 인간 복제 기술은 그 방법이 분할의 방법이건 복제의 방법이건 인간으로서 유전적 특성을 온전하게 포함하고 있는 인간 배아(胚兒)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이에 따르는 윤리적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필자는 여기서 인간 생명의 시작과 관련한 몇몇 주장들을 소개하면서 인간 배아 역시 온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인간 배아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실험용으로 쓰일 수 있고, 조작될 수 있고, 또 손실되거나 폐기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인간 생명을 그렇게 취급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1)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과거 수세기 동안 가톨릭 교회는 인간에게 영혼의 주입은 임신의 순간에 일어나며 인간 생명은 그 즉시 시작된다고 믿어 왔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에 각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모친 마리아의 생명이 시작된 것을 축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명 역시 임신의 순간에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아의 영혼 주입 순간에 대한 가르침은 계시나 교의에 속하는 내용은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은 인간 생명의 시작 문제를 매우 분명하게 가르친다. 곧 낙태와 유아 살해는 중대한 죄이기 때문에 인간 생명은 임신의 순간부터 각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사목헌장, 5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목헌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어머니 자궁 내의 생명 …”으로 표현하였는데 이에 대해 공의회의 많은 교부들은 아직 자궁 내에 있지 않은 수정란도 인간 생명으로서 신성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궁 내의”라는 표현이 삭제되어야 한다는 수정안을 내어놓는다. 이러한 제안과 함께 다른 교부들도 낙태의 좀더 명백한 구분을 요구한다. 이에 대한 위원회의 대답은 “임신의 순간부터”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것이었고, 이러한 결정은 “생명 현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어떠한 접촉 없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 다음의 요구, 곧 낙태의 더욱더 정확한 정의를 요구하는 물음에 대해서 위원회는 정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왜냐하면 그 구분의 문제는 교회의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철저한 과학적 자료와 철학적 반성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이론에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견해가 있다. 우선 ‘연속적인 영혼 주입 이론’으로 이 이론은 주로 성 대 알베르토 시대 이전에 활기를 띠던 이론으로서 태아에게 영혼이 단계적으로 주입된다는 주장을 한다. 성 대 알베르토는 태아에게 영혼은 한 순간에 즉각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하면서 위의 이론을 반대하였다. 곧 인간에게 있어서 영혼은 인간으로서 첫 순간에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그의 학파들은 다시금 영혼의 연속적인 주입 이론을 주장한다. 곧 태아가 최종적으로 인간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영혼은 처음에는 식물의 상태와 같은 상태에서 서서히 동물의 상태와 같은 상태로 변해가기 때문에 영혼은 연속적으로 서서히 주입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생명에 대한 불멸의 원리는 임신의 행위를 통한 수정의 순간에 이루어진다고 확신해 왔던 생물학자들과 의사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 생물학자와 의사들 사이의 의견이 벌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최근이다.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논의는 생물학, 특히 발생학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음에 볼 것은 현대 발생학에서 연구되고 있는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다양한 이론인데 가톨릭 교회의 윤리는 유전자형이 시작되는 최초의 순간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2) 유전자형의 시작

 

새 생명이 탄생하는 최초의 결정적 순간은 난자의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이 순간에 유일하고도 반복될 수 없는 유전 인자로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명과 구별되는 새 생명이 주어진다는 이론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일치된다. 이 유전 인자는 많은 유전적 성질을 지니고 있는 아주 작은 그 어떤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어머니와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무한하게 많은 복합적인 특성들은 새 생명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새 생명이 존재하는 동안 나타날 수 있는 타고난 잠재력 때문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유전자형은 이렇게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배아 세포는 자신의 생명을 역동적으로 전개해 간다. 어머니의 것과는 구분되는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팔관 속에서 세포 분열이 시작되고 5-7일 후에 수정란은 자궁을 향하고 있는 자신의 길을 발견하게 되고 자궁은 수정란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이 때부터 수정란의 빠른 움직임이 시작된다. 

 

이 단계에서 가장 놀랄 만한 사실은 동일한 유전자형에서 고유한 특성을 가지게 된 세포의 자기 복제 능력과 경탄할 만한 생명력을 보여 주는 점이다. 배아(胚兒) 세포는 착상과 태아의 발달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동시에 수행한다. 태반 조직과 양막의 구조는 이미 미분화 배아 세포 안에 자리잡고 있다. 그 구조 중의 하나인 외배엽층은 자궁으로 진행하게 되며, 수정란이 거기에 파고든다. 이 태반은 후에 태아 조직에서 가장 본질적인, 한 부분인 양수가 되며 그 반대극은 배아가 된다. 이렇게 미리 예정된 세포 분열과 함께 배아는 어머니의 혈관 조직과 연결됨으로써 살아 있는 생명의 연결 구조를 지니게 된다. 배아는 착상 전에 이미 자신이 기생하게 될 어머니의 기생 기관에 호르몬에 관한 정보를 전달할 고유한 의사 소통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배아는 어머니의 기생 기관에 앞으로 9개월 동안 공동 생활을 위한 준비를 요청하게 된다. 의사 소통의 전체적인 체계를 포함한 이 모든 신비스런 생명은 그 자체가 결국 완전히 발달된 아이와 어른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명백히 하는 생명 원리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경이로운 사실은 하나의 개체가 더 놀랍게, 더 새롭게 바뀌면서 현재의 형태를 계속해서 능가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명 활동은 적당한 환경과 그 활동을 위한 일정한 의사 소통에 의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고 하지만 분명 어떤 초월의 원리를 타고난 것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발생학의 자료는 인간 생명의 유전 안에서 수정이 인간 생명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주장하는 윤리학자, 생물학자, 철학자들의 입장을 지지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영혼 또는 인간의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전형적인 인간 생명의 한 원리에서부터 모든 것이 지배된다고 확신한다. 

 

(3) 분할의 시기

 

이 이론은 하나의 수정란이 2개의 똑같은 개체로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인간 생명의 시작은 수정란이 자연적으로 처음 분할될 수 있는 최초 시기인 수정 후 약 5-7일이 지난 다음이라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서 한 개의 수정란이 2개의 개체로 분할되는 경우 일란성 쌍생아가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개인적인 특성은 분할되기 이전의 수정란에서 찾아볼 수 없고, 따라서 완전한 개체화가 이루어지는 분할의 시기를 인간 생명의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정의 시기에 영혼이 주입된다는 이론의 가장 큰 걸림돌은 수정된 하나의 수정란이 분열하여 2개의 똑같은 개체로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두 개의 개체가 되는 가장 경이로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분할은 착상과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문제는 개인적 특성이 완전한 개체화가 이루어질 때에만 주어진다는 사실에 있다. 동일한 한 쌍은 같은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두 개의 개체로 나타나게 된다. 만일 모든 인간의 후손이 똑같은 쌍둥이로 태어난다면 인간 생명의 시작에 대해서 생각할 때 초기 인간 생명의 가장 특징적인 순간으로써 최종 개체화 또는 분할의 시기를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더 논리적일지도 모른다. 두 쌍둥이 또는 그 이상의 쌍둥이를 출산하게 하는 분할의 과정은 여러 가지 단계를 통해서 일어날 수 있다. 그 단계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분할은 상실배 단계(분할구가 발육한 것)에서 일어난다. 곧 나팔관에서 약 8번째 세포 분열시 또는 수정 후 4일이나 5일째에 일어난다. 그런 다음 모든 쌍생아는 고유한 태반 구조를 형성하게 되고, 각각 다른 형태로 자궁벽에 자리잡게 된다.

 

② 분할은 착상 전이나 도중에 또는 착상 직후에 일어날 수 있으므로 쌍생아는 동일한 태반 구조를 갖게 된다. 이러한 진행은 주로 일란성 쌍생아의 경우에 자주 일어난다.

 

③ 아주 가끔은 둘 또는 그 이상의 배아 세포의 분열이 수정 후 두 번째 주의 후반 또는 수정 후 12-14일 사이에 일어날 수가 있다. 이런 경우 쌍생아는 동일한 양수막을 공유하게 된다. 이는 매우 특수한 경우로 이런 경우의 분할은 불완전하거나 미완성의 형태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쌍생아는 몸의 어떤 부분이 서로 붙게 될 수도 있다. 

 

최근에 와서는 또 하나의 새로운 현상이 관찰되었는데 이는 수정된 수정란은 인격으로서 존재가 아니면서 개체화의 단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가설에 깊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쌍생아는 그들이 동일한 쌍생아로 되기까지는 최소한 수정 후 14일이 지나야 한다. 이러한 둘 또는 세 쌍의 쌍생아가 처음 며칠 동안 어떻게 단 하나의 개인으로 결합되는지에 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이론에서 결국 쟁점이 되는 것은 ‘개체화’(Individualization)에 대한 정의(定義)이다. 미국의 외과 의사인 다이아몬드(James J. Diamond) 박사는 이를 생물학적 인간화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프레일링은 ‘인간화’라는 개념이 잘못 사용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한국 이데아에서 1993년 편찬한 [철학 대사전]에서는 개체의 발전은 생식을 통한 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사이클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또한 개체는 발전하면서 존재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때 개체의 발전은 질적으로 상이한 여러 단계들로 나누어진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런 관계에서 볼 때 수정란의 상태는 아직 개체의 상태가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4) 착상의 시기

 

어머니 자궁에 착상이 된다 해도 배아 세포는 본래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착상은 불안과 고독보다는 어머니에 의해서 생명이 구제되는 접촉과 수용의 의미로 나타난다. 실제로 이런 의미에서 여성은 몸 안에서 배아 세포를 수용하기는 하지만 감성적으로도 충분한 감정이 있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착상에서 출생까지의 태아 손실률이 약 10-20%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수정된 세포의 30-50%는 이미 착상 전에 손실된다고 한다. 초기에 발생되는 수정란의 자연적 손실은 인간 생명의 최종적인 발전에 도달할 가능성을 크게 감소시키기 때문에 태아에게서 개인의 생명, 인격화에 대한 존재를 믿지 않는 많은 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간을 정의하는 데 인간의 사회적 및 대화적 특성을 중요시하면서 좀더 철학적인 근거를 요구한다. “한 사람의 인간이라고 함은 하나의 세포 그 이상이다. 한 사람의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들 사이의 관계처럼 하느님과의 근본적인 관계를 포함하는 어떤 관계, 곧 초월적인 관계를 요구한다. 인간의 육체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바로 이러한 초월의 상징이며 기초가 되는 것이다. 착상은 이러한 특수한 방법으로 가시적인 자기 초월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가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나타난 결론들 중의 한 가지는 수정란을 가지고 시험관에서 행한 실험의 경우에서는 인간의 개체 발생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단순히 원형질체의 증식이 이루어질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로써 어머니의 자궁이 배아 세포를 수용한다는 것이 매우 의미가 있고 진정한 가치를 지니는 연구라고 평가하지만 만일 인격체로서 개체 발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수정 후 약 14일이 지난 착상의 순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러한 주장은 과장된 것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이러한 주장이 좀더 과학적인 확증과 통찰력 없이 고집된다면 그것은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5) 대뇌피질과 인간화

 

인간의 생명이 끝나는 기준으로서 뇌사에 대한 새로운 이론은 인간 생명의 시작에 대한 또 다른 이론을 만들어 냈다. 이 이론은 인간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인 현상으로써 인간의 대뇌피질의 발달을 가정한다.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기 전까지 높은 비율의 수정란의 손실이 생기는 것과 함께 출산시까지 배아 및 태아의 높은 사망률을 인정할 때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전혀 인간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무뇌아의 경우도 드물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의식, 자아 반성, 사고와 자유로운 의사 결정 등으로 인간으로서 본질과 실체를 더욱 명확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은 필연적으로 대뇌피질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고생물학과 인류학적 발견에 따르면 인간은 대뇌피질의 발달에서부터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고 여기서부터 놀랄 만한 인간으로서 도약이 이루어지면서 인간화의 결정적인 순간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인간화 없이 인간의 인격적인 매력이나 인간으로서 행동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는 질문은 “생물학적 조건의 충족이라든가 인간 생명으로서 예상되는 발전 없이 단순히 움직이는 존재가 한 사람의 인간이 될 수 있는가?”이다. 이 이론은 대화적 존재로서 초기 원인과 상징으로서 착상의 순간을 고려한다. 이 이론은 또한 살아 있는 육체와 활동하는 정신 또는 정신적인 원리 사이의 놀라운 일치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신은 육체보다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이론의 일반적인 확신이다. 곧 “인간은 육체적으로 대뇌피질의 최소한의 발달 없이 단순히 영적 원리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 질문은 육체 내에 존재하는, 그리고 육체를 통해서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인격의 시작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론은 대뇌피질이 모든 인격체의 상징이며, 행위의 중심 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위의 이론이 타당하게 받아들여진다면 인간으로서 영적 정신은 태아 발달의 말기에나 가서야 가능하게 되는데 이는 수정란과 영적 생명의 원리를 지닌 인간 생명의 발달 사이에는 아직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일정한 생물학적 기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육체 안에 내재하는 인격적 존재는 영적 생명 원리의 실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대뇌피질의 발달에 의존하게 된다면 인간화는 단순히 어떤 가능성만을 보여 주는 것처럼 보여지게 된다. 만일 그렇다면 적어도 25-40일 사이 대뇌피질이 형성되기 이전의 배아는 아직 인간 인격체로 고려될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 생명에 대해 설명하는 모든 관점에서 살아 있는 육체 안에 있는 인격적 존재는 영적 생명 원리의 실체이거나 또는 배아가 인간 인격체의 모든 기본적 권리를 가진 존재가 될 때에야 비로소 인격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산모에게 수용되지 않는 한 유아는 생물학적으로는 ‘인간 생명’이지만 ‘인간화된 생명’은 아니며, 따라서 인간 인격체로서 특성과 권리가 결여되어 있고, 따라서 인간으로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오류라는 것은 뻔하다. 만일 그들의 이론을 그대로 따른다면 낙태 역시 인간 배아를 생명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할 때 정당화되며, 따라서 결코 살인이 아니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마치는 글 

 

생명 공학의 연구가 희귀한 산삼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고, 인간 유전자를 가진 젖소를 통하여 모유 성분의 우유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인간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시키기 위한 좋은 의약품 개발도 가까운 미래로 다가왔으니 얼마나 경이롭고 축복받는 일이겠는가? 인류가 걱정하는 식량 부족을 해결하고 불치병이라고 여겨지던 파킨스 병, 알츠하이머 병의 극복 가능성이 열렸으니 인류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인류에게 장밋빛 희망을 준다고 하는 이러한 연구나 실험 이면에 엄청난 위험이 함께 도사리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장기 이식을 좀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장기 이식용 인간 배아를 복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이 복제되어 장기 이식용으로 희생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인간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 희생시켜야 한다면 이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 인간 생명의 시작은 엄연히 또 하나의 새로운 인격체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수정란부터인데 인간 배아를 복제하고 조작하고 실험하고 폐기하는 행위 하나 하나가 인간 생명을 죽이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한 생명 공학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유전자 조작 등의 실험이 혹시 그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우량 인간 품종이라든가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한 인간이 만들어질 때 예상되는 이 사회의 혼란과 위험은 매우 클 것이다. 더욱이 혹시라도 인간 유전자를 가진 돼지의 뇌까지 조작된다면 인간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돼지의 출현까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행복’을 목적으로 내세우는 생명 공학이라면 여기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대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이에 대한 윤리성 확립 또는 사회적 통제 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전제 아래 인간 배아 복제는 철저하게 금지되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의 손으로 실험실에서 만들어지고 또 폐기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끔찍하다. 인간은 결코 실험실에서의 조작이 아닌, 부모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권리가 있지 않는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의 재능과 창의력이 이룩해 놓은 업적이 때로는 인간 스스로를 지배하고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를 회복 불가능한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인간의 구원자], 19항).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핵 에너지가 핵무기가 되어 인류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교만과 통제되지 않는 욕구가 인간 스스로를 철저하게 위협하고 나아가 종말을 자초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시민 의식의 성숙이다. 인간 생명은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철저히 보호되어야 하며,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어떠한 연구나 실험도 마땅히 거부되어야 한다는 의식의 철저한 무장이 요구되는 때이다. 생명 공학의 모든 기술이 본래의 목적인 ‘인간’을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눈이 필요하며, 만일 그것이 인간을 위협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면 그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입법도 필요하다. 

 

생명 공학의 연구가 결국 인간 복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면 이는 곧 인간 스스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며, 다시 빠져 나올 수 없는 재앙과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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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청 신앙교리성,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 [사목] 112호(1987. 7.)

- 유네스코 한국 위원회. 인간 복제에 관한 ‘책임 있는 유전학을 위한 회의’의 입장 제1차 합의회의 자료, 생명 복제와 쟁점, 1999년.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

- [철학 대사전], 한국 이데아, 1993년.

 

[사목, 1999년 11월호, 이동익(가톨릭 대학교 교수, 신부, 윤리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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