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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자궁밖에 남겨진 잔여 배아에 대한 윤리적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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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7 ㅣ No.367

자궁밖에 남겨진 잔여 배아에 대한 윤리적 보호


- 생명윤리연구회 제2회 세미나 -

 

 

오늘날 고도로 발달된 인공수정의 기술들은 인간 생명의 실존과 관련하여, 그리고 어머니의 자궁밖에 남겨진 잔여 배아들의 운명과 관련하여 수많은 윤리적 문제들을 일으킨다.

 

이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일종의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인간적 출산에 관한 윤리적 진리의 기초는 반드시 존중되어야 하는 인간 생명과, 또한 결혼을 통해서 인간 생명이 전수되는 특별한 본성(생명의 선물, 사목 112호, 123쪽)이라고 할 때 비록 인공출산을 위해 생산되는 불법적인 인간 배아라고 하더라도 이는 반드시 치료적 목적에 의해서만 개입이 가능한 것이지, 그외에는 어떠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조작, 폐기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자궁밖에 남겨진 잔여 배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모성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일, 실험이나 연구를 위해 잔여 배아를 이용하는 일, 잔여 배아를 장기나 의약품 생산을 위한 생물학적 재료로 이용하는 일 등에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일들은 인간 배아가 지니고 있는 생명의 가치를 무효화시키고 일탈시키는 행위이며, 따라서 그러한 일들이 비록 선한 목적을 가진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매우 한탄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 배아의 자궁외적 상황에서 윤리적으로 심각하게 우려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배아들이 온전한 인간생명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그것을 조작하는 사람들의 목적에 따라 일종의 물건으로 취급되고, 급기야는 인간의 생명으로 온전하게 보호되지 못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들에서 제기되는 몇몇 윤리적 문제는 우선적으로 냉동보관, 선택적 도태, 상업화, 폐기 등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1. 인간 배아에 대한 존중

 

인간 생명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과 과학적 근거를 심사숙고해보면 한 마디로 인간은 그 존재의 첫 순간부터 인격체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 출산의 발달된 기술이 인간 배아와 태아에 대한 각종 개입을 가능하게 했지만 과연 과학적 연구 목적으로까지 인간 배아에 대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이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이고도 확실한 가르침, 즉 인간의 생명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성심껏 보호해야 하며, 낙태와 유아 살해는 가능할 죄악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가정권리헌장'도 "인간의 생명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며 임신되는 그 순간부터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가정권리헌장 제 4조)고 가르친다.

 

1974년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인공유산 반대선언문'도 이렇게 선언한다: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한 새로운 사람의 생명이 시작된다. 그것은 그 자신의 성장을 가지는 한 새로운 사람의 생명인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면 결코 그것이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 현대 유전학은 이 자명한 불변의 원리를 확인해 준다. 이 생명체가 자라나서 충분히 독자적인 특징을 지닌 한 사람이 될 프로그램이, 임신되는 첫 순간부터 수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유전학은 증명해 주었다. 임신되는 첫 순간부터 인간생명의 모험이 시작되는데, 모든 잠재력이 각기 제자리를 발견하고, 행동할 태세를 취하려면 꽤 긴 시간이 요구된다.(12-13항)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생명의 선물'도 이렇게 언급한다: "영혼의 존재를 확인할 만한 실험적 자료는 물론 없다. 그러나 인간 배아에 관한 과학적 결론들은 인간생명의 최초 순간에 이미 하나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성적 판단으로 지적하고 있다. 인격적 인간이 아닌 인간 개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교도권은 철학적 형태의 단언으로까지 이를 명백히 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형태의 인공 유산도 그것은 도덕적 비난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재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결코 변화되지도 않았고 또 변화될 수도 없다.(교황 바오로 6세, 이탈리아 가톨릭 법률가협회 제23차 전국대회 참가자들에게 하신 연설, 1972년 12월 9일, AAS 64(1972) 777 참조) 따라서 인간 생식의 결실인 생명은 그 존재의 시작, 즉 남녀 생식세포 접합체의 형성시기부터 육체와 정신의 합일체인 인간 존재로서 무조건의 존경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경받고 대접받아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인격자로서 그의 권리 또한 인정받아야하며 이런 권리 가운데 가장 우선되는 것이 바로 무죄한 생명이 침해받지 않아야 하는 권리인 것이다,. 이 교리적 가르침이야말로 생명의학 연구 발전에 의해 야기된 이 분야의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의 올바른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배아가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상 이들 인간 배아는 의학적 도움에 있어서도 다른 모든 인간들이 받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의 상태대로 모든 형태의 보호를 받아야 할 것이다."(생명의 선물, 사목 112호, 125쪽)

 

이렇듯이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인간 배아의 지위는 모든 인간과 동일한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온전한 생명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공출산기술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간 배아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들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겠다.

 

 

2. 인간 배아의 냉동

 

인간 배아의 냉동 보관은 인공 출산의 기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체외수정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여성의 몸에서 과배란을 유도하고, 이렇게 여럿 생산된 난자로써 다수의 수정란(인간 배아)을 만든 다음 필요량의 인간 배아를 인공 출산을 위해 사용, 나머지는 다음의 시술을 위해 냉동 보관시키는 것이다. 이렇게해서 냉동 보관된 인간 배아가 우리나라에도 80만이 넘는다고 한다.

 

배아의 냉동 보관은 배아 성장의 중지이다. 인간 개체로서의 배아는 액체 질소 상태에서 냉동됨으로써 생물학적으로는 죽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낮은 기온으로 보관된다. 이는 명백히 인간 생명의 주기에 대한 불법적 남용이다. 한번 생성된 인간 생명은 어느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자연적인 진행 과정을 가진다. 이 과정은 결코 순서를 바꾸어놓을 수도 없는, 그리고 중지될 수도 없는 일정한 계열 안에서 진행되며, 이는 순간 순간이 새롭고 일회적이며, 어떤 반복도 인정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인간 생명은 또한 항상 어딘가를 향하여 움직이는 특성으로서의 시간적 및 역사적 연속성을 갖는데, 이러한 특성이 곧 인간의 본질이며, 권리인 것이다. 인간 존재에게 있어서 나이는 시간적인 것 이상이며, 시간적 및 공간적 조건 안에서 정체적을 갖는 인격적 생명과 조화를 이룬다. 한 인격의 실존에서 시간을 무효화시키면서 그 실존을 변질시키는 것은 그 의미와 의식까지도 뒤집어놓으려는 악한 의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 배아를 냉동시키는 것은 살아있는 인간 존재가 부여받은 놀라운 신비의 과정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그야말로 신비롭고 위대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빠른 속도로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냉동은 이렇게 무례하고 고의적이고 무자비하게도, 인간 배아가 자신을 준비하는 것을 강압적으로 중단하는 행위이다. 만일 배아가 착상을 의도하면서 만들어진 후에 냉동 당한다면 그것은 강폭한 자의 폭력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인간 배아의 생명 주기를 뒤바꾸려는 것은 약하고 방어능력이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힘의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만일 실험이나 치료를 위해 배아가 일종의 재료로서 냉동된다면 그것 또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배아를 냉동시키는 것은 마치 배아를 필요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소모품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 배아의 존엄성은 어떠한 위험에서라도 그 생명성과 육체적 완전성이 존중되는 가운데 마지막 순간까지 주체로서 보호되어야 한다.

 

 

3. 잔여배아

 

이미 언급했듯이 시험관에서 배아를 생산해내는 일은 운명적으로 과다 혹은 잉여 배아들을 만들어내는 매우 중대한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곧 이 배아들은 그 부모들이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냉동 보관된 인간 배아 생명이다. 단지 체외에서 실험적으로 얻어진 배아들이라는 이유로해서 어머니 자궁 속에 이식되지 못하고 소위 '잔여배아'(spare embryo)들은 당연히 생존을 위한 안전 수단이 제공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매우 불합리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체외에서 얻은 인간 배아도 어디까지나 인간이며 따라서 그들의 생명권과 존엄성은 그 존재의 시작으로부터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번 쓰고 버리는(disposable) "생물학적 물질"로서의 인간 배아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예 사라질 때에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우리가 이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곧 현재 남아 있는 잔여 배아들의 운명에 관한 문제이다. 이 잔여 배아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잔여 배아들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 그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누가 결정하는가? 등등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의학계 일부에서는 체외수정의 방법을 통해 얻어진 인간 배아 중 잉여분을 줄기세포 추출을 위한 연구와 실험에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신앙교리성의 '생명의 선물' 훈령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상 체외수정을 시켜 배아를 만드는 경우, 이들 배아가 모두 어머니자궁 속에 착상시켜지는 것이 아니고 더러는 파괴되고 만다. 인공유산에 대해서 교회가 비난하듯 인간 배아에 대한 이런 행위들에 대해서도 교회는 이를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인공적 정자주입(artificial insemination)에 의해서건 "분체생식"(twin fission)에 의해서건 순전히 연구를 목적으로 실험실적으로 얻은 인간 배아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중대한 잘못에 대해서 이를 비난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연구자는 하느님의 자리를 빼앗게 되는 것이며, 설사 그 자신이 이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는 멋대로 어떤 사람은 살리고 또 어떤 힘없는 사람은 죽여버리는 등 결국 다른 사람의 운명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는 주인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체외에서 얻은 배아를 해치거나 그들에게 중대하고도 부당한 위험을 주는 관찰이나 실험 방법들도 같은 이유에서 도덕적으로 부당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그 자신 스스로를 위해서 존경받아야 하며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단순한 도구가 됨으로써 그 가치가 떨어뜨려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체외에서 얻은 인간 배아를 의도적으로 죽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은 결코 도덕률과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다."(사목 112호, 128쪽)

 

냉동을 연장시키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윤리적이든 생물학적이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아직 두 가지 해결 방법이 남는다. 하나는 원하는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방법이고, 나머지 방법은 폐기시키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이 두 방법 모두 매우 중대한 윤리적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대체 임신은 생명을 임신하는 데 있어서 불법적인 방법이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것은 아닐지라도 하나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된다. 이는 대리모 임신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입양식의 임신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온전한 해결 방법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는 일종의 예외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설령 이 방법이 권고된다하더라도 이는 아무에게도 강제로 요구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니며, 또한 통상적인 방법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상황이든지, 어느 부부 혹은 어느 여성에게 있어서 모성애와는 동떨어진 방법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보다는 모성애에 호소하는 것은 오히려 낫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거듭 말하지만 이 방법도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는 일종의 불균형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법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또한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도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배아들의 냉동과 실질적인 배아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의도와 확실성이 없는 상황에서는 입양식의 임신에 대한 체계적인 호소도 어쩌면 효과를 낼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소악의 원리)

 

그 다음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해결 방법은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의 예외적인 치료 거부의 맥락과 함께하는 해결 방법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은 신앙교리성의 '안락사에 관한 선언'(1980년, 신앙교리성)을 인용하면서 안락사와 '과도한 의학적 치료'를 구분할 것을 언급한다. 곧 환자는 반드시 필요한 정상적인 간호를 중단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결과가 불확실하고 큰 부담이 되는 생명의 연장밖에 보장하지 못하는 종류의 치료행위들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는 안락사나 자살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을 돌보아야 하고, 자신을 남들이 돌보도록 허락해야 할 도덕적인 의무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의무는 반드시 구체적인 상황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생명의 복음, 65항 참조)

 

'생명의 복음'은 사용 가능한 치료 방법들이, 호전될 가망성을 위해서 객관적으로 적절한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특별하거나 또는 부적절한 수단들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같은 항) '생명의 복음'의 이러한 언급은 곧 말기 환자가 자신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온 죽음에 순응하는 것이 죽음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생명유지에 있어서 불균형적인 방법이나 예외적인 방법이 아닌 균형적 방법, 통상적인 방법이 사용되는 것을 지지한다. 물론 불균형적 방법이나 예외적인 방법이 정당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정당하기는 하지만 의무는 아니라는 뜻이다.(안락사에 관한 선언)

 

이렇게 말기 환자의 치료에 관한 윤리적 판단은 정상적인 임신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냉동 보관된 잔여 배아의 문제와 직접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생명으로서의 배아에게 지워진 냉동이라는 굴레를 불균형적 방법, 혹은 예외적인 방법의 차원에서 윤리적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물론 이 방법에 있어서도 배아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당연히 존중되는 가운데 시행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여전히 신앙교리성 훈령 '생명의 선물'이 언급하고 있는 다음의 전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체외에서 얻은 인간 배아를 의도적으로 죽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은 결코 도덕률과 일치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지 체외에서 실험실적으로 얻어진 것들이라는 이유로 해서 저들 어머니 자궁 속에 심어지지 못한 소위 "잔여(spare) 배아"들은 당연히 생존을 위한 안전 수단이 제공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불합리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생명의 선물, 사목 112호 128쪽)

 

이제 마지막으로 잔여배아가 안고 있는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는 '생존을 위한 안전 장치'의 마련이다. 입양 형식의 대리모 출산이나 불균형적 방법, 혹은 예외적 수단 사용의 철회라는 측면에서의 문제 해결이 직접적으로 인간적 출산이 지니는 존엄성을 훼손하고, 또한 인간 배아의 생존을 위한 안전적 장치의 포기라는 측면에서 윤리적 비난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에 또 하나의 해결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인간 배아의 영구 보존의 방법이다. 냉동을 계속 연장시키는 것 역시 윤리적 해결의 방법은 아니라는 비난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고의에 의한 냉동 배아의 폐기가 결국은 생명으로서의 인간 배아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이러한 악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는 가운데 냉동을 해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4. 위에서 제시된 3가지 해결 방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가장 윤리적인 방법이라고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단지 이렇게 제시되는 해결 방법보다도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잔여 배아가 생산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이는 곧 인위적인 방법에 의한 배아 생산 역시 엄격히 금지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인간 배아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또 냉동 보관되는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잔여 배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배아에 대한 냉동 보관 역시 철저하게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에 거부된다. 이렇게 해서 더 이상 잔여 배아와 냉동 배아가 만들어져서는 안된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할 때 오늘의 현실이 드러내고 있는 잔여 배아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동익 신부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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