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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인공수정과 그 인위적 조작에 대한 윤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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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60

인공수정과 그 인위적 조작에 대한 윤리성

 

 

머리글 

 

1993년 10월 27일 동아일보는 "인간복제 (人間複製) 윤리논쟁"이라는 기사를 일면 머릿 기사로 다루면서 세상사람들을 무척 놀라게 하였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메디컬센터 연구팀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배자(胚子)의 증식, 곧 복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동일한 유전인자를 가진 인간을 계속 출산해낼 수 있는 의학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의학계 일부에서는 이를 시험관 수정(受精) 연구의 개가로 평가하면서, 지금까지 성공율이 극히 저조했던 시험관 수정의 방법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한다. 연구팀은 2-8개의 세포로 구성된 인간 배자에서 세포를 분리시킨 뒤 여기에 난세포의 투명대와 비슷한 물질을 입혀 영양을 공급하는 방법으로 세포 분열을 유도, 48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새로운 배자를 복제하는 데 성공 하였고, 결국 이 방법을 응용하면 부부가 체외수정을 통해 배자를 복제했다가 그중 하나를 자궁에 착상시켜 나머지 배자로 첫 아기와 똑같은 아기를 나중에도 출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인간 복제인 셈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의 발표 이후 사실상 세상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부에서는 의학의 발전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지만, 윤리적으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로마 교황청에서 발간하는 신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그러한 연구결과는 모든 인류에 대한 모독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하고 나섰으며, 그 이유는 같은 모습의 사람이 여럿 출현함으로써 예기치 못한 사회적 부작용이나, 극단적으로는 인간의 질서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복제인간이나 일란성 쌍생아의 대량생산이라는 무서운 사태를 몰고올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인류학과 생명의학 분야에서의 기술 조작에 대해 경고를 하여왔고,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1987년 '인간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을 통해 인간생명과 그 기원에 관한 과학적 연구와 기술의 적용에 대해서 그 도덕적 판단 기준을 제시하면서 "과학과 기술은 그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온전한 인간으로의 발전을 도모할 때 참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못박고 있다. 

 

오늘날의 시대가 지니는 부정적 특징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정신적 혼란과 함께 인간 삶에 있어서의 윤리 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져가고 있고, 특히 인간의 생명과 관련되는 영역에서 인간은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아기를 갖고자하는 단순한 욕심이 인간 스스로를 절대자의 위치에까지 올려 놓게 되었으며, 결국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산물 때문에 위협을 받아야만하는 지경에 이르고만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 관련되는 분야에서 특별히 인간 출산의 영역인 인공수정에서 보여지는 인위적 조작은 결국에는 위에서 언급한 복제인간의 양산(量産)이라는 문제와 함께 인간 삶의 개인적 및 사회적 질서에 엄청난 위협으로까지 등장하지 않았는가? 

 

여기서는 인공수정에서의 인위적 조작의 윤리성을 논하기 위하여 먼저 인공수정이란 무엇이며, 인공수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위적 조작의 실상을 살펴본 다음에 인간학 및 심리학적 접근과 함께 윤리신학적 반성을 시도할 것이다. 

 

 

1. 인공수정이란? 

 

가축의 우량품종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던 인공수정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적용된 것은 18세기 말부터라고 한다. 처음에는 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의 형태로 시작되다가 188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으로 발전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이렇게 시작된 인공수정은 사실상 오늘날에는 아기를 갖기 원하는 부부나 미혼 여성에게는 거의 보편화된 방법이 되어버렸고, 이에 따르는 여러가지 법적 및 윤리적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1.1. 개념 

 

인공수정 (人工受精, Artificial Insemination)의 개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할 때에는 자연적인 성교(性交)로 이루어지는 자연 수정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알아듣게 되고, 따라서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방법이든지 관계없이 자연적인 성교 행위가 아닌 인위적 조작(Manipulation)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수정이라고 알아들을 수가 있는데, 보다 광의적으로 이해 한다면 자연 성교를 도와주는 보조적 수단 역시 이 범주에 포함이 되며, 후대의 보다 진보한 의학 기술의 부산물인 체외수정 (시험관 수정: In Virto Fertilization)도 인공수정의 한 방법으로 이해된다. 

인공수정은 수정되는 장소에 따라 체내수정(體內受精: In Vivo Fertilization)과 체외수정(體外受精: In Vitro Fertilization)으로 구분되며, 체내수정은 또한 성교 행위의 유무에 따라 성교행위 안에서의 보조수정과 성교행위 밖에서의 인공수정으로 구분된다. 성교행위 밖에서의 인공수정이란 정액의 출처에 따라 또 다시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Artificial Insemination by Donor: A.I.D.)과 배우자간 인공수정 (Artificial Insemination by Homologous: A.I.H.)로 나뉘어진다. 체외수정은 체내수정과는 달리 체외에서 보다 적극적인 인위적 조작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는데 특히 부인의 자궁 이상으로 인해 수정란의 자궁내 착상이 불가능한 경우 다른 여인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대리모 수정 형태가 이미 등장했고, 또한 체외에서 수정된 수정란의 상실을 최소화시키고 인공수정의 확실성을 기하기 위해 개발된, 소위 복제인간의 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는 수정란 증식 형태를 사용하는 인공수정의 방법까지도 예견케 한다. 

 

1.2. 인공수정 응용의 원인 

 

인공수정이 응용되는 원인은 크게 나누어서 의학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을 들 수 있다. 의학적 원인에 대해서 상술하기 전에 먼저 심리적 원인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자면 그것은 결혼이나 부부생활은 원하지 않으면서 아이만을 갖기 원하는 여성들이 선택하는 '기증자에 의한 인공수정' 방법이다. 사회가 극도로 이기주의화 되어 가면서 가정의 참된 의미는 상실되고 있으며, 따라서 남녀가 결혼하여 함께 산다는 것이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그렇지만 여성으로서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이기적 욕심이 구체화되는 한 방법일 것이다. 

 

의학적 원인으로서는 무엇보다도 부부의 한 편이 불임의 원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이다. 남성 측의 원인으로는 무정자증, 정자감소증, 정액과소증, 정자무력증, 정자 수송로가 막혀있는 경우, 그리고 성기능 이상 등을 열거할 수 있겠고, 여성 측으로부터는 무배란, 희발 배란, 이상난자 배란, 과잉 비만증, 질 협착, 자궁내막 유착, 기형 자궁 등의 원인을 열거할 수 있다. 이상에서 열거한 인공수정이 요구되는 원인들 중에서 남성 측의 무정자증이나 극단적인 정자 감소증과 같이 절대적 남성 불임인 경우에는 배우자간 인공수정 (A.I.H.)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임신을 원한다면 기증자에 의한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의 방법이 요구된다. 

 

그러나 비록 남성이나 여성에게 있어서 위에서 열거한 여러가지 원인이 불임을 야기시킨다 하더라도 그 불임의 해결을 위해서 반드시 인공수정의 방법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부부의 불임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인공수정의 방법이 아닌 기본치료의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자연배란주기를 관리한다거나, 뇌하수체 및 시상하부 호르몬을 투여하여 배란을 유도하고, 혹은 자궁내막이 유착되어 있는 경우 레이저를 이용하여 수정란의 정상적인 착상을 도와주는 일, 그리고 질염이나 자궁내막염, 난관염 등의 감염증으로 인한 불임이라면 감염증의 치료를 통해 임신이 가능하게하는 일 등이 기본치료의 방법이며, 실제로 이러한 기본치료로 인해 불임의 부부가 아기를 갖게되는 비율은 40% 이상이나 된다고 한다. 

 

1.3. 특수치료로서의 인공수정을 위한 인위적 조작 

 

먼저 체내수정을 위해 사용되는 방법으로서는 남편의 정액을 얻기 위해서 성교 중단이나 자위 행위 등과 같은 질외 사정의 방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기증자에 의한 수정이라면 정자은행을 통해서 구매된 정자가 사용된다. 

 

그리고 체외수정을 위하여 여성의 몸에서 난자를 체취하게 되며, 난자의 체취를 더욱 용이할 수 있도록 과배란 유도 등의 방법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추출된 정자와 난자는 유리 접시 위에서 의사의 손에 의해 수정란으로 만들어지고 결국 수정란 세포의 배양과 세포의 발달은 어머니의 자궁 밖에서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발달된 수정란은 의료적인 기술에 의해 어머니의 자궁에로 옮겨지게 되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수정란의 손실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착상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개의 수정란을 배양하여 복수 다수이식을 시도하게 되고, 다태 임신이 되었을 경우 선택적 흡출에 의한 감수 유산이 불가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정란 손실의 윤리성 문제가 제기되자 수정란 손실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의학 및 기술적 연구가 한층 활발해졌고 결국 의학계 일부에서 불임부부에게 커다란 희망을 가져가 주었다고 평가하기도 하는 수정란 증식의 방법이 성공하게 되었고, 머지않아 복제 인간의 양산까지도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닌 것으로 되고 말았다. 

 

얼마전 동아일보는 영국의 에딘버러 대학 연구팀에 의해서 인공수정의 또 다른 방법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곧 가능성의 한 방법으로서 생쥐의 태아 난소조직에서 난세포를 체취, 시험관에서 배양한 후 체외수정을 거쳐 별도의 성숙한 생쥐의 자궁에 이식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인공수정을 위해 필요한 난자의 부족으로 그 부족한 난자의 공급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이러한 실험은 결국 인간에의 적용을 전제로 하고 있는 실험이며, 생쥐를 통해 성공한 이 방법은 머지않아 분명히 인간에게도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는 어렵지않은 예상을 해본다. 이 방법은 난자를 만들기 위해 난세포를 체취하게 되는데 난세포의 공급원은 낙태된 태아가 되고, 결국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모친 (낙태된 태아)의 난자로 아이들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공수정의 예외적인 방법의 하나로 대리모에 의한 인공수정의 방법이 있다. 곧 다른 여인의 자궁을 빌어 수정란을 착상시키는 방법으로 자궁을 빌려줄 제 3의 여인을 찾아 출산의 댓가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거나 가족 중의 한 사람의 자궁을 빌어 출산하게 되는 방법이다. 물론 이 경우에 여러가지 법적, 윤리적 문제가 함께 뒤따르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 인공수정에서의 인위적 조작의 개념과 형태 

 

2.1. 개념 

 

'조작' (Manipulation) 혹은 '조작하다' (To manipulate)의 개념은 라틴어의 '손'을 의미하는 'manus'와 '채우다'를 의미하는 'plere'의 합성어로부터 유래하는 것으로 보아 본래 '사람의 손 안으로 사물을 집어넣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조작이란 원래 기술의 분야에서 널리 사용된 개념이지만 지난 세기말 이후 이 개념은 사실상 인간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교육과 학습의 분야, 나아가 시민들의 여론을 조작한다는 의미에서 정치 분야에까지도 이 개념은 통용되고 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는 경제 분야에도 널리 통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작은 특별히 생물학이나 의학, 유전공학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십 수년전 부터 우리는 개구리가 실험실에서 튀어나오고, 코끼리만한 돼지가 조작 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왔고, 최근의 신문 보도에 의하면 영국에서는 이미 사람의 유전자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돼지가 사육되고 있고, 몇 년 후에는 그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조작이 처음에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범위가 서서히 넓혀지면서 인간 삶의 모든 분야에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었고, 결국에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도 예외가 아니게 되었다는 데 있다. 

 

실상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인공수정의 분야에서도 인위적 조작의 문제는 심각하다. 이 조작으로 인해 아기를 원하던 부부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그 기쁨의 이면에는 인간학적-심리적 문제를 비롯하여 윤리적 문제까지도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조작에 대해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한다: "그동안 개발된 여러가지 인공적 기술 조작들 가운데는 단지 인간 출산과정을 돕는 정도의 것도 있으나 어떤 것은 이미 출산과정을 임의로 유도해서 조작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해 온 것도 있다. 이런 기술들은 어떻게 보면 이제 인간이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까지 해준 셈이 됐지만,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인간이 범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도록 유혹하는 상태에 이르게까지 한 셈이 됐다. 말하자면 이런 기술들은 사람을 도울 수도 있지만 또한 스스로 해칠 수도 있는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들 인간 출산과정에 쓰이는 기술들로부터 인간의 참된 가치와 권리가 어떻게 보호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2.2. 인위적 조작의 형태 

 

인공수정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조작의 형태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배아에 대한 기술조작이다. 1987년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에서 반포된 '인간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에서는 인간 배아가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확인하면서 인간 배아에 가해지는 기술적 조작의 형태에 대한 윤리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인간 배아의 생명과 그 온전성에 대한 존엄성을 유지한다는 확신과 함께, 그리고 그 조작에 대한 부모의 자유로운 동의가 전제될 때, 그 연구나 실험이 지지될 뿐, 그 외에는 비윤리적이라는 점을 명백히 한다. 곧 체외에서 얻은 인간 배아도 어디까지나 온전한 인간이며, 따라서 그들의 생명권과 존엄성은 그 존재의 시작에서부터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앙교리성이 상기시키는 인간생명의 시작의 입장은 단호하다. 동 성성은 '인공유산 반대 선언'의 가르침을 재확인 하면서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한 새로운 사람의 생명이 시작된다"고 못박고 있다. 곧 수정란 자체가 "그 자신의 성장을 가지는 한 새로운 사람의 생명"으로서의 인간 개체이고, "이 가르침은 결코 변화되지도 않았고 또 변화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으로써 인간 배아에 대한 연구나 실험에서 야기될 수 있는 배아의 생명이나 형태에 해악(害惡)이 가해지는 일이나, 또한 통상 체외수정으로 얻은 배아가 파괴되는 경우에 대해서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훈령은 또한 인간 출산 기술과 관련된 배아를 다루는 다른 기술적 조작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사람과 동물 생식세포 사이의 수정이라든지 인간 배아를 동물 자궁에 착상시키는 일에 대한 시도나 계획, 그리고 인간 배아를 위해서 인공 자궁을 만들어내는 일이나 더 나아가서 인간을 성(性)과 무관하게 분체생식이라든지 복제, 처녀생식 과정 등에 대해서도 이러한 모든 조작들이 배아에 대한 인간 존엄성이라든지 인간적 출산과 부부일치의 존엄성에 반대되는 일들이기에 비윤리적이라는 입장을 명백히 한다. 

 

인공수정 과정에서 보여지는 기술적 조작은 위에서 열거한 형태들 외에도 더욱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여러가지 형태를 볼 수가 있다. 체외수정의 방법 안에서 보여지는 정자와 난자라는 생식세포의 추출, 이렇게 추출된 세포들의 결합인 수정란의 체외수정과 시험관 배양, 그리고 배아의 자궁내 이전 등의 복잡한 과정도 역시 인위적 조작의 여러 형태이다. 

 

체외수정과 수정란 이식에 의한 대리모 수정에서도 보여지는 조작의 형태는 실상 극히 비인간적이다. 대리모로서 동의를 했거나 혹은 돈으로 고용된 대리모 스스로가 생각할 때 자신을 단순히 인큐베이터(Incubator)로 만든다는 사실은 너무나 비인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대리모 수정을 용이하게 하는 한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수정란 은행이라는 것도 있다. 이미 만들어진 인간생명을 냉동 보관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판매할 수도 있는 인위적 조작의 한 형태이다. 

 

 

3. 인위적 조작에 의한 출산과 그 윤리성 

 

여기서는 위에서 제기된 인공수정 과정에서의 인위적 조작 형태들을 열거하면서 각각의 윤리성을 살펴볼 것이다. 인간 출생이라는 측면에서 무엇보다도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은 인간적 출산의 측면이며, 따라서 부부 사랑과 가정 안에서의 인간관계의 측면도 윤리적 평가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3.1. 먼저 배우자간 인공수정에서의 정자 추출을 위한 자위행위의 윤리성 문제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오 12세는 부부행위 동안의 질내 사정(射精)을 보조하는 방법들, 예컨대 경부(頸部) 스푼 (Cervical spoon)과 주사기 사용과 같은 방법은 정당하게 평가되지만 비록 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을 위해서 사용될 정자를 얻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의 자위행위라 하더라도 그러한 방법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자위행위의 윤리성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면서 비오 12세의 의도는 새로운 윤리적 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실제로 헤링(B.Haring)과 같은 윤리신학자는 "정당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의도적 사정이 자위행위적 태도의 병상을 유발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경험으로 입증되는만큼 남편으로부터 정자를 얻었고 결혼생활이 사랑의 분위기 속에서 영위되고 있을 때 그 남편은 생물학적으로도 아버지가 되는 것은 물론이며 결혼이 지니는 일회적이며 출산적인 의미로부터 단절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페쉬케(C.Peschke) 신부도 인공수정을 목적으로 한 남편의 의도적인 사정이라면 사정(射精)의 직접적인 목적이 임신이기 때문에 인공수정을 목적으로 하는 남편의 자위행위라 할지라도 본연의 의미로서의 자위행위의 특징적인 결함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즉 부부행위 밖에서의 의도된 사정 (Voluntary ejaculation)인 경우에는 성기능의 불법적이고 직접적인 남용으로서의 죄로 판단되는 자위행위 (Masturbatio)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현대 윤리신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1949년 비오 12세가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을 단호하게 단죄하면서도, "자연적 행위를 도모하는 수단과 자연대로 이루어진 행위가 그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수단까지도 금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언급하신데에 기초를 두면서, 비오 12세도 구체적 상황에서의 가능한 한계를 결정하지 않았기에 의도적인 사정행위는 반드시 본연의 의미에서의 자위행위와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며,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이 문제와 관련된 윤리적 성찰이 끊임없이 뒤따르고 있다. 

 

3.2. 이제 출산의 의의와 부부 일치의 의미의 관점에서 체외수정의 윤리성에 관한 문제에 접근해 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언급하는대로 "출산력은 부부애의 결실이고 징표이며, 아울러 부부상호간의 완전한 자기 봉헌의 산 증거"이기 때문에 부부애(夫婦愛)에 대해 그 의미를 밝히면서 체외수정의 윤리성 문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의 사도적 권고 '가정 공동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부애는 한 몸이 되게하는 상호 인식에로 부부를 이끌어가지만 부부에게서 끝나지는 않는다. 부부애는 그들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을 갖게 하며, 부부는 새로운 인간에게 생명을 전달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협력자가 된다. 이렇게해서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을 주면서도 자신들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주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부애의 살아있는 표상이고 부부일치의 영원한 징표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그들 존재의 생생하고도 불가분한 종합이다". 부부애가 지니고 있는 이렇듯이 고유한 내적 역동성은 인격적 관계의 역동성이며, 이는 부부 상호간의 자기 증여를 통해 더욱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부부는 서로간의 온전한 자기 증여를 통해 상호간의 내적 친밀감을 지니게 되며, 이러한 내적 친밀감의 결과가 '자녀'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곧 자녀란 부부에게 있어서 부부상호간의 전적인 자기 증여, 전적인 헌신 그리고 내적 친밀감의 결과로서 주어지는 하나의 선물이며, 독립된 생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녀'란 부모의 사랑의 관계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날 당연한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체외수정에 의한 출산은 어떠한가? 신앙교리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배우자간 체외수정이나 배아의 자궁내 이전은 이 기술을 사용하는 제 3자의 기술적 확신과 의사나 생물학자로 하여금 배아의 생명과 주체성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술이 인격적 인간의 기원과 운명을 지배하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이런 기술의 지배야말로 부모나 자녀에게 있어서 공통적이어야 할 존엄성과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는 일이다". 

 

실상 체외수정을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인위적 조작 과정들이 요구된다. 정자와 난자라는 생식세포의 추출, 추출된 난자를 인공배양기에서 5-12시간 동안 배양하는 일, 그 세포들의 유리 접시위에서의 결합과 세포들의 융합, 시험관 내에서의 배양 그리고 수정된 수정란의 자궁에로의 이전 등의 복잡하고도 순수한 기술적인 과정들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기까지의 성공률은 20% 내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비록 새로운 기술들이 발달하여 수정란의 손실을 최소화되고, 단 1개의 수정란으로써도 착상이 보다 쉽게 가능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수정란에서부터 인간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입장에서 온전한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가지는 배아에게 가해지는 살인적 폭력은 너무나 심각하다. 신앙교리성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생물학적 물질로 인간의 배아를 만들어 내는 일은 부도덕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도덕적인 문제들이 관여한다. 첫째는 인간을 하나의 수단으로 격하시키는 것에 대한 금지이며, 둘째는 체외수정으로 얻어진 배아에 대한 의도적인 유기의 문제이다. 연구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만들어졌거나 체외수정 시술 과정에서 남은 잉여 배아들은 당연히 생존을 위한 안전한 수단에 제공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체외수정에서의 이러한 행위들이 개별적이든 전체적이든 부부 상호간의 전적인 자기증여, 내적 친밀감을 주는 인격적 관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행위에서의 대부분의 과정은 부부의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경우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출산의 목적을 위한 결정적인 행위가 생식세포의 융합을 위하여 그것들을 시험관 안에 집어 넣는 일은 일종의 기술자로서의 의료진들의 행위라는 사실이다. 

 

체외수정에서의 출산과정과 결과를 볼 때 체외수정에 의한 잉태가 부부에게 인격적 품위를 제공해 줄 수 없다는 점과, 출산과정에서 요구되는 자녀로서의 권리가 전혀 무시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일정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영락없이 물건 생산을 위한 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주체에서 주체에 이르기까지 부부가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주면서 지향하는 인간적 출산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3.3. 이제 정자기증자에 의한 인공수정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이 경우에 있어서 사람의 정자가 시장에서 판매되는 물건이 되는 경우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행위의 의도에서조차 선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정자 기증에 의한 인공수정의 과정은 철저한 익명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아버지와 아기를 낳은 어머니와는 전혀 무관한 관계임이 주장되며, 결국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나타나게 되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전혀 바람직한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교리성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은 결혼의 일치와 부부의 권위, 그리고 부모에게 합당한 올바른 사렴에 위배됨은 물론, 결혼 안에서 임신되고 그 결혼 속에서 자라나 세상에 나오도록 부여받은 아이들의 권리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결혼의 일치와 부부간의 정절에 대한 존엄성은 모든 아이가 결혼생활 안에서 임신되는 것을 요구한다". 신앙교리성은 이러한 비윤리성의 지적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결과가 가정 안에서 미치는 부정적 결과까지도 예상하고 있다: "가정 안에서 이런 인격적 관계가 입는 상처는 사회에도 그 반작용적 영향이 미치게 된다. 그것은 가정의 일치감과 안정감을 위협하는 것이 곧 사회생활 전체에서의 불화와 혼란 그리고 불공평의 근원이 되기도"한다는 것이다. 

 

정자기증에 의한 인공수정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철저한 익명성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법적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도 심각한 상처를 안겨주게될 것이다. 이 익명성은 분명히 부모 양측의 잠재의식 깊숙한 곳에까지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게될 것이고, 만일 법적인 아버지가 그러한 인공수정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정자 판매자에 의해 생겨난 아기의 어머니와 법적 아버지 사이에서 나타나게 되는 관계는 역시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법적 남편의 동의를 얻기 위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남편을 중환자 취급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임신기간, 출산 후 그리고 아기를 교육하는 전 과정을 통해서 부부관계의 불화는 더욱 악화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어머니는 자기 남편을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말로써가 아니면 최소한 몸짓으로써, 그리고 '어머니-아기'라는 소유의 관계를 통해서 남편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 그 아기는 단지 어머니만의 아기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또한 어머니가 그러한 행동을 피해야 한다는 것을 잘 의식하고 노력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법적인 아버지는 흔히 그 아이를 대신할 다른 대상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신앙교리성의 훈령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윤리적 판단을 내린다: "결혼한 부인이 남편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자를 받아 수태했거나 남편의 정자를 가지고 부인 아닌 다른 여자의 난자와 수정시켜 임신을 하는 것은 모두 도덕적으로 옳지가 않다. 더구나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과부인 여자의 난자를 받아 수정을 시켰다면 그것은 결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오랫동안 불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를 해결하려고 애써왔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던 부부의 사랑과 또 그들이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희망은 이런 인공적 수정이라도 해보려는 충분한 동기를 유발 할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아무리 주관적인 선한 의지라 하더라도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으로 하여금 객관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결혼의 본질은 물론 아이와 부부가 갖는 권리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3.4. 이제 우리는 더욱 부정적인 단어에 직면하게 된다. 대리모 수정의 형태를 가능하게 하는 수정란 이식과 난자 은행이라는 단어이다. 난자 은행 혹은 수정란 은행과 연결된 수정란 이식은 다양한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건강한 난소를 가지고 있으나 아기를 임신할 수 없는 여성의 경우, 그 여성에게서 난자를 체취하여 체외에서 수정을 시킨 후 다른 여성의 자궁에 이식하게되는 대리모 수정의 방법이 사용된다. 계약이나 혹은 친지 관계에 의해서 자궁을 빌려주는 대리모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게 되고 출산 후에는 유전적인 보모에게 넘겨지게 된다. 또 이와는 다른 경우로 건강한 자궁은 가지고 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자신의 난자를 수정시킬 수 없는 여성은 난자 은행 등 익명의 제공자에 의해 주어진 난자에 자신의 남편의 정자를 수정시켜 자기 자신의 자궁에 이식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는 익명의 정자 제공자에 의한 인공수정과 매우 비슷하다. 

 

가계 (家系)의 고유한 혈통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정당화시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돈으로 고용된 임산부와 모성애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대리모와 출산된 아기와의 관계가 사랑없이 돈으로 고용된 단순한 관계라면 그 사태의 심각성은 크다. 태어나게될 아기에게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생겨나게될 내적 친밀감의 연대가 전혀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만일 고용된 대리모가 참된 모성애를 지니고 있는 여인이라면 아기와의 내적 친밀감은 난자를 제공한 어머니보다는 오히려 그 대리모와 더 깊이 연결될 것이며, 그보다 더 근본적인 점은 대리모가 자궁을 대신 빌려준다는 결정을 한다는 것 자체에서부터 이미 그와같은 내적 친밀감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아기는 두 가지 상황 사이에서 무척 방황할 것이다. 

 

또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대리모가 원래의 부부에게 유전병이나 연약한 염색체를 지니고 태어나는 아기를 낳아 준다면 어떤 일이 생겨 나겠는가?하는 점이다. 더 나아가 대리모가 난자를 제공한 여인의 어머니이거나 여동생과 같은 가족관계 안에서 선택될 경우 야기되는 법적, 윤리적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건전하지 못하고, 또 많은 상처를 주는 수많은 문제들이 야기될 것이고 그에 따라 자연적이지 못한 여러 과정들이 생겨날 것은 명백하다. 

 

신앙교리성은 이 문제에 대한 윤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리모는 모성적 사랑의 의무와 부부간의 정결, 그리고 책임있는 모성으로서의 의무를 객관적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가 자기 어머니 자궁 속에서 임신되고 발달되며 바로 그 부모에 의해 세상에 나와 성장되어야하는 권리와 아이들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인 동시에 가정에도 피해를 주어 가족의 기본 구성 단위인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도덕적 요소의 분열을 초래하기도 한다". 

 

3.5. 이제 마지막으로 인조복제인간(人造複製人間)의 가능성을 열게된 수정란 증식의 윤리성 문제를 살펴보기로 한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도 이미 인공수정 기술의 발달과 관련된 다른 형태의 생물학적 및 유전조작적 기술들이 가능하게된 것을 심각하게 우려하면서 복제인간의 가능성까지도 예견하였던 것이고, 그러한 예견은 이미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학의 메디컬센터 연구 팀의 수정란 증식 방법의 성공과 함께 그 현실화의 시기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다. 인간생명의 관리자로서의 인간이 인간생명을 지배하고 조작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고 동양이나 서양할 것없이 전통적으로 인간생명은 하늘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의 선물이라는 개념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수정란 증식의 성공 결과로 이제 대량생산에 의한 소모품 인간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전쟁의 소모품으로서의 인간, 우주인이라든가 핵무기 취급자와도 같은 생명을 내어걸어야만 하는 직종에 씌여질 인간의 양산(量産), 의학실험의 재료의 공급을 위한 인간 배아의 증식 뿐만 아니라, 수정란 증식을 통해 양산된 수정란을 장기이식을 위한 장기제공자들을 만들어 내면서 이제 인간의 존엄성은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신앙교리성은 이렇게 말한다: "순전히 연구를 목적으로 실험실적으로 얻은 인간 배아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중대한 잘못에 대해서 이를 비난하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연구자는 하느님의 자리를 빼앗게 되는 것이며, 설사 그 자신이 이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는 멋대로 어떤 사람은 살리고 또 어떤 힘 없는 사람은 죽여버리는 등 결국은 다른 사람의 운명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는 주인 행세를 하게되는 것이다". 

 

실상 지난 20여 년간의 생물학적 혁명은 감추어진 인간생명의 엄청난 신비를 밝혀내는 가공할 만한 업적을 이룩하였다고는 하지만 동시에 인간 본연의 문제에 대한 분명하고도 총체적인 답변을 회피게함으로써 혼란만을 가중시켜 왔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수정란 증식의 가능성이 불임부부들의 염원을 보다 확실하게 채워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러한 방법에 의한 복제인간의 출현 가능성 자체가 인간과 인류 사회 전체를 해칠 수도 있는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에 이러한 기술 자체가 인류 전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지니는 참된 가치나 의의는 그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며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되는 온간한 인간으로서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곧 과학과 기술은 본질적으로 도덕율의 근본 기준을 무조건 준수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며, 또한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에 의한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참되고 온전한 선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 과학과 기술일진데 복제 인간까지도 충분히 예견케하는 수정란 증식의 방법이 과연 인간의 선(善)에 봉사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치는 글 

 

지금까지 우리는 인공수정의 개념과 형태를 살펴보면서 각각의 형태와 과정에 대한 분석과 함께 비인간적인 인위적 조작이 드러내고 있는 비윤리성에 대해 살펴 보았으며, 그 인위적 조작의 윤리성을 평가하기 위한 기초는 무엇보다도 인간생명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무상의 선물이며, 생명의 선물을 부여받은 인간은 그 생명의 관리자일 뿐이라는 점이다. 인간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인간은 육체와 정신이 통합된 존재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전체성 안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가치가 평가되어야지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손상을 가하면서 단순히 생물학적 필요성만을 절대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정자은행, 수정란 은행, 정자 체취, 유리접시 위에서의 수정, 수정란 이식, 대리모, 정자 판매자, 냉동 배아, 체외 부화(孵化), 복제 인간 등등의 인공수정에서의 인위적 조작에 관련되는 용어들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너무나 부정적이다. 이러한 용어들을 통해서 볼 때 이제 부부의 성관계를 거치지 않고서도 실험실에서 인간의 생식세포가 조작되고, 이렇게하여 인간이 기술의 산물(産物)로 전락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게 되는데, 이렇듯이 인간생명의 시작에 대한 인위적 조작을 인간적 혹은 윤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당성을 과연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교도권이 가르치는대로 "인간 출산은 하느님의 풍부한 사랑으로 무장한 부부의 책임있는 협동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인간생명의 선물은 그들 인격과 결합에 부여된 법에 따라 아내와 남편의 특별하고도 독점적인 행위를 통한 결혼 안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나야만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 공동체'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선물이다. 그리고 부부애는 한 몸이 되게하는 상호 인식에로 부부를 이끌어가지만 부부에게서 끝나지는 않는다. 부부애는 그들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을 갖게 하며, 부부는 새로운 인간에게 생명을 전달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협력자가 된다. 이렇게해서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을 주면서도 자신들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주는 것이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녀는 부부애의 표상이며, 부부 일치의 징표가 된다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와의 사이에서의 관계에서 이렇듯이 본질적인 관계에서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 자녀를 갖겠다는 욕심이 결코 모든 윤리적 질서를 능가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이기적인 욕심은 기본적인 가족 구성원의 관계, 인간 사회의 관계에 까지도 커다란 위협을 안겨줄 것이다. 인간생명이 사람의 손에 의해 조작당하는 상황에서 결국 인간은 그 조작에 의해 위협, 지배 당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 시대에 요구되는 중대한 사명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각자가 인식하고 그 수호에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며, 인간생명의 존엄성 수호를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신학전망 제105호(1994년 여름, 광주가톨릭대학교 전망편집부), 이동익(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윤리신학) / 이동익 신부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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