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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인간의 생명을 위한 윤리적 가치의 회복: 신앙교리성의 훈령 생명의 선물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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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61

인간의 생명을 위한 윤리적 가치의 회복


신앙교리성의 훈령 '생명의 선물'을 중심으로

 

 

1. 서론 : 인간 생명에 대한 위협 

 

오늘날의 사회에서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아주 중대한 위기를 한가지 말한다면 그 어느 것 보다도 인간의 생명에 대한 위협일 것이다. 이 위기의 발생은 여러 가지 사회적 및 문화적 요인으로 인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사회가 세속화됨으로써 종교 및 전통적 문화 양식 아래 형성되어온 인간 사회의 관습 및 의식의 급진적인 변화의 영향과 함께 나타난 성과 출산, 그리고 가정이라는 인간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실재의 변질된 형태가 그 으뜸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며 이는 직접적으로는 세속화된 대중적 사고 안에서 드러나고 있는 일종의 현상으로서 인간생명에 대한 가치의 전락이라는 중대한 위기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생명의 위기적 상황을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한 특징이라고 규정지을 때 대두되는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생명윤리'라는 주제일 것이다. '생명윤리'란 글자 그대로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윤리적 책임에 대해 논하는 학문이다. 특별히 생명윤리는 의학 분야에서의 새로운 기술들의 발전에 따르는 의사들의 윤리의식의 형성에 커다른 영향을 미치는 분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의사들은 인간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의 모든 과정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생명윤리라는 주제 아래서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은 특별히 인간의 출생과 삶에 관련되어 활발하게 연구되어 오고 있는 인공수정, 시험관 아기의 문제를 비롯해서 출생전 성별 감식, 대리모, 그리고 낙태의 문제 등에 관한 생물학 및 유전공학에서의 끊임없는 새로운 발견으로 야기되는 윤리적 질서에 관한 문제들일 것이다. 

 

이러한 분야에서 제기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인간의 삶에서의 윤리의식과 아주 밀접하게 연루되어 있으며, 특별히 1987년 2월 22일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반포한 훈령(訓令) '생명의 선물'(Donum Vitae)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입장을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 훈령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인간학적 및 윤리적 성격의 기본적인 원리들을 제시, 설명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인간 생명에 관련된 의학기술에 대한 도덕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러한 문제들 안에서의 윤리적 가치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훈령 '생명의 선물'을 통해서 제시되는 가톨릭 교회의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기본적 가르침을 제시, 설명하고, 그 다음으로는 생명 윤리 안에서 다루어 질 수 있는 몇가지 분야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개괄적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2. 인간 배아(胚兒)가 지니는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이 훈령의 첫 부분은 인간 배아(胚兒)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항목 별로 개괄적으로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가. 인간 배아(胚兒)는 그의 본성상, 그리고 그의 정체성(正體性)으로 볼 때 어떠한 존엄성을 지니고 있는가?라는 인간이 자신의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지니게 되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훈령에서 가르치고 있는 일관된 입장은 인간은 그 존재의 첫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할 존재라는 점이다. 비록 오늘날 인간생명의 시작과 인간의 개별성, 그리고 인간의 주체성에 대해서 여러 형태의 논란이 일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생명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하나의 새로운 인간생명이 시작됨을 재확인한다. 

 

나. 출생전 태아의 성별 진단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의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진단이 태아를 하나의 개체로서 보호하고 치료하는 목적으로 행해진다면 그 대답은 긍정적일 수 있겠지만, 만일의 경우 결과에 따라서 유산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이는 분명 태아의 생명권을 침애하는 것이고 의사와 부모가 가지고 있는 권리와 의무의 분명한 남용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다. 인간 배아에 대한 치료행위는 정당한가?의 문제에 있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설명한다. 즉 "어떤 직접적인 치료행위가 인간 생명의 조건이나 완전성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태아의 여러가지 질병의 치유나 염색체의 결함으로 인한 이상을 바로잡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원칙상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학적 노력은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전통에 부합된다". 

 

라. 인간의 배아와 태아에 관한 연구와 실험이 지니는 윤리적 가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살아있는 배아에 관한 의학적 연구는 오직 태아와 어머니의 생명과 그 온전성에 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윤리적 확실성 아래서만 가능하며, 또한 실험이나 상업적 목적으로 진행되는 인간 배아에 대한 의료조작이나 사용이 인간의 존엄성을 명백하게 거스리는 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마. 체외수정으로 얻어진 인간 배아를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음을 단언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 번 쓰고 버리는 생물학적 재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인간 배아를 생산해 내는 것은 명백히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바. 인간 출산 기술에 의해 배아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의료조작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조작들이 장차 인류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으로써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 온전성, 그리고 정체성(正體性)에 전적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3. 인간의 출산을 위한 의학의 개입과 윤리성 

 

훈령의 둘째 부분에서는 인간의 출산을 위한 인위적 개입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훈령은 인간의 출생은 부모와 자녀 모두의 인격적 존엄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반드시 혼인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비배우자간 인공수정과 배우자간 인공수정에 따르는 윤리성을 설명한다. 의학적 기술로서의 인공수정의 개념은 협의적인 의미로서 남성의 정자를 주사기를 사용하여 여성의 질, 경관, 또는 자궁에 주입함으로써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으로 남편의 정자를 부인에게 수정하는 배우자간 인공수정과 남의 정자를 받는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의 두 가지가 있다. 인공수정의 이러한 협의적인 의미와 함께 보다 광의적인 개념으로 볼 때 체외수정 (In Vitro) 역시 인공수정의 개념 안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훈령에서 다루고 있는 인공수정과 대리모의 문제를 살펴 본다. 

 

3.1. 정자기증에 의한 수정 

 

남편의 정자를 사용힌 인공수정의 문제는 그 윤리적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 않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기증자'의 정자로써 시행되는 인공수정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이러한 인공수정의 과정을 통하여 태어나 아이들은 이미 수없이 많이 있지만,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는 전혀 바람직한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먼저 '기증자'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이는 영어의 극단적인 표현으로 'Sperm Sales-man'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정자의 판매자이며, 때로는 수많은 아기들의 익명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자손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또한 동일한 정자 판매자의 직계 후손들 사이에서도 혼인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더 극단적으로 사람의 정자가 시장에서 판매되는 물건이 된다면 이런 상황들을 어떻게 상상을 할 수가 있겠는가? 

 

'생명의 선물'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윤리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혼인한 부인이 남편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자를 받아 수태했거나 남편의 정자를 가지고 부인 아닌 다른 여자의 난자와 수정시켜 임신을 하는 것은 모두 도덕적으로 옳지가 않다. 더구나 혼인을 하지 않았거나 과부인 여자의 난자를 받아 수정을 시켰다면 그것은 결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오랫동안 불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를 해결하려고 애써왔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던 부부의 사랑과 또 그들이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희망은 이런 인공적 수정이라도 해보려는 충분한 동기를 유발할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아무리 주관적인 선한 의지라 하더라도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으로 하여금 객관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혼인의 본질은 물론 아이와 부부가 갖는 권리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3.2. 대리모 

 

동 훈령은 대해서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이 갖는 비윤리성과 같은 이유로써 대리모를 반대한다. 

 

자기 가계(家系)의 고유한 혈통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정당화 시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돈으로 고용된 임산부와 모성애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와 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는 아기의 관계가 사랑없이 단지 돈으로 고용된 단순한 관계라면 그 사태의 심각성은 어떠하겠는가? 즉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태어나게 될 아기에게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생겨나게 될 내적 친밀감의 연대가 전혀 없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고용된 대리모가 참된 모성애를 지니고 있는 여인이라면 아기와의 내적 친밀감은 난자를 제공한 어머니보다는 오히려 그 대리모와 더 깊이 연결될 것이며, 또한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는 대리모가 자궁을 대신 빌려준다는 결정을 한다는 것 그 자체에서부터 이미 그와 같은 내적 친밀감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 아기는 두 가지 상황 사이에서 무척 방황할 것이다. 또 한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대리모가 원래의 부부에게 유전병이나 연약한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를 낳아 준다면 어떤 일이 생겨 나겠는가?하는 점이다. 분명 건전하지 못하고 또한 상처를 주는 수많은 문제들이 야기될 것이고 그에 따라서 자연적이지 못한 여러 과정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3.3. 인간적 출생과 시험관 아기 

 

시험관 아기에 관한 윤리적 문제의 주된 관심은 특별히 출생의 인간적 의미와 깊이 관련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언급대로 "출산력은 부부애의 결실이고 징표이며, 아울러 부부 상호간의 완전한 자기 봉헌의 산 증거이다". 

 

즉 인간의 출산은 부부애(夫婦愛), 부부 상호간의 완전한 자기 봉헌에 대한 해석과 이해가 전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으로서의 인간적 출산에 대한 분석을 가능하게 하는 부부애에 대한 분석이 결과적으로 시험관 아기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기준이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부부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인간은 육화(肉化)된 영(靈), 즉 육체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는 영혼이요, 불멸의 영을 부여받은 육체이기에 통일된 전체로서 사랑할 소명을 받았다. 사랑은 인간의 육체를 포함하고 육체는 정신적 사랑의 참여자가 되었다". 또한 좀 더 세부적인 면에서 그는 "남자와 여자가 부부에게만 정당한 행동을 통하여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성(性)은 결코 생물학적인 것만은 아니고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와 관련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두 개의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이 부부애와 부부행위 사이에는 부부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친밀감과 생동감이 자리하며, 특수한 방법을 통하여 부부애를 실현시키고 표현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부부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부행위는 부부들에게 있어서 '고유하고도 배타적인 행위'인 것이다. 

 

부부애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고유의 내적 역동성은 인격적 관계의 역동성이며, 좀 더 자세하게는 부부상호간의 자기증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말하는 바 처럼 인격으로서의 인간의 특수성은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능력이 있다는데 있다. 인간은 "이 지상에서 당신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신 유일한 피조물"이며,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줌으로써만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즉,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처럼 인간은 선물로서, 스스로를 이해할 능력이 있는 인격을 가진 존재이며,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한 자기 자신의 증여로써 자신을 자유롭게 실현시켜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을 통해서 부부생활 안에서의 자기증여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곧 '인격적'인 관계로서 '상호적'이어야 하며, 또한 전적인 증여이어야 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 그의 담화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부부애를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서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을 선물로 주기 위하여 불리움을 받았다. 그들이 그들 자신의 아름다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호 증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A Persona in Personam이라는 단순한 말이 표현하는 것은 부부애의 완전한 진리, 인간의 내적사랑이다. 인간에게, 그리고 인간의 선을 위해 온전히 집중되는 사랑, 인간존재의 선 위에 집중되는 사랑인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은 부부가 서로 자유롭게 서로를 내어주는 선"이기 때문에 부부는 서로의 자기증여를 통하여 '오직 하나의 몸' (창세 2,24)이 되면서 극도의 친밀성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친밀성은 내적 부부관계이며, 이 내적 부부관계를 통해서 부부는 부모가 되고, 따라서 자식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육체'의 뿌리와 시작이 되는데 이는 외적 부부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부부가 서로 자신을 내어준다는 것은 그들 서로를 완전하고도 친밀하게 결합시키면서 자녀들에게 자신들을 내어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내적부부관계와 외적부부관계의 일치에서 참된 부부생활이 형성될 것이며, 여기서 부부 서로의 인격적 가치를 찾아 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부부가 서로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인격적 가치가 어떤 윤리적 요구까지도 끌어 낼 수 있음은 당연할 것이다. 예를 들자면 주기법을 이용한 산아조절에서 요구되는 것처럼 부부에게서 일시적인 육체적 분리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부부애의 고유한 역동성과 함께 시험관 아기가 객관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역동성을 서로 대조시켜 보면서 살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실 시험관 아기의 수태를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행위들이 요구된다. 정자와 난자라는 생식세포의 추출, 그 세포들의 결합과 시험과 내부에의 착상, 세포들의 융합, 시험관 내에서의 배양, 그리고 수태된 배아의 자궁에로의 이전 등의 복잡한 과정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부부애의 고유한 역동성처럼 이와같은 행위들이 개별적이든 전체적이든간에 부부 상호간의 자기증여, 내적 친밀감을 주는 인격적 관계를 드러내고 완성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행위들의 몇몇 과정은 부부의 뜻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경우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출산의 목적을 위한 결정적 행위가 생식세포의 융합을 위하여 그것들을 시험관 안에 집어넣는 의료진들의 행위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시험관 아기의 출산 과정과 결과를 볼 때 시험관 안에서의 잉태가 부부에게 인격적 품위를 제공해 줄 수 없다는 점과, 또 일정한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의심할 여지없이 물건 생산을 위한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험관 아기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위에서 살펴본대로 부부애, 부부행위의 고유한 역동성, 다시말해서 부부상호간의 자기 증여라는 조명하에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하나의 물건을 생산하는 것과 같이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는 시험관에 의한 출산은 분명히 주체에서 주체에 이르기까지 부부가 서로를 서로에게 내어주면서 지향하는 인간적 출산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4. 윤리와 민법 

 

훈령의 셋째 부분은 사회-정치적 면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윤리의식의 기본을 언급하고 있다. 즉 인간 생명의 존엄성의 회복을 위해 민법이 반드시 존중하여야 할 윤리적 가치와 그 의무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이 훈령을 통하여 신앙교리성은 윤리성 회복의 차원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으며, 또한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의 역할과 그와 관련하여 국가의 기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상세하게 언급한다. 

문제의 핵심은 한 국가가 사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중대한 윤리적 오류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인간의 출생과정에 개입하는 새로운 기술들 때문에 야기되고 있는, 인간의 수태 순간부터 주어져야만 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성능력 및 인간 생명의 전달이라는 고귀한 인간의 품위에 대한 엄청난 도전에 대해 국가가 어떻게 대처하는가의 문제는 국가 존립(存立)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간과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상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결코 침해되어서는 안되고 국가의 공권력 역시 인간의 권리를 반드시 존중하여야 할 임무가 있다는 것은 국제 인권 선언문이나 신앙교리성의 동 훈령을 살펴 볼 때 전혀 하자가 없음을 알고 있다. 문제는 어떤 선언문이나 지침이 아니고 국가의 제도나 공공조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회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종교심 내지는 영성의 문제일 것이다. 시민들의 살아있는 내적 생명력이 실질적으로 인간생명을 위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또 이를 위한 법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 훈령에서 말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인간생명과 관련된 제 문제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입장을 간단히 요약해본다. 

 

가. 보호되어야 할 권리와 가치기준에 대해서: 모든 개인의 생명은 천부적인 것으로서 신성하기 때문에 결코 침해될 수 없는 권리를 갖는다. 개인의 생명 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혼인 역시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인간의 생명은 결코 질적으로 구분되어 폭력의 희생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 추구해야할 기본원리: 공권력은 민법과 도덕률간의 상호 관계를 잘 조정할 수 있는 합리적 원칙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민법의 기능은 기본권의 인식과 보호, 그리고 평화와 공중도덕의 증진을 통해서 사람들의 공동선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 7항 참조). 인간의 기본권이라 함은 첫째로 수태시부터 죽는날까지 모든 인간이 갖는 생명권과 육체적 완전성이며, 둘째는 가정과 혼인 공동체의 권리, 그리고 부모에 의해서 임신되고 세상에 태어나 성장할 수 있는 자녀의 권리이다. 

 

다. 법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국가가 개개 시민의 권리, 특히 더 힘이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더 이상 보호해 주지 않을 경우 법에 근거를 둔 국가의 존재는 불확실해진다. 출생 전의 아이라 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태아의 생명권을 의도적으로 박탈한다면 법 앞에서의 인간 평등은 전혀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만다. 

 

라. 가정의 보호: 국가가 국민의 공동선을 위해 존재한다면, 국민 개개인이 속해 있는 가정 역시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즉 가정의 보호라는 차원에서 국가는 혼인에 의해서 합법적으로 일치되는 부부사이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생식세포 제공을 법으로 가능하게 해서는 안된다. 

 

마. 새로운 차원에서의 법적-윤리적 지침의 요구: 오늘날 많은 국가에서 인공유산을 합법화하고 미혼자들의 동거를 법적으로도 묵인해 줌으로써 인간생명의 존엄성 앙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특별히 생명의학 분야 전문직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과 민권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부당한 민법을 고치고 부당한 기술 사용을 못하게 하는 일에 앞장 설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법들에 대항하는 '양심적인 반대'가 지지되고 인정되어야 한다. 

 

 

5. 맺음말 

 

이상과 같이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발표한 인간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을 생명윤리의 입장에서 개괄적으로 살펴 보면서, 인간생명의 존엄성이나 가치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그리고 인간적 출생을 위한 윤리적 타당성을 연구하는데 있어서는 분명히 함께 고려해야만 하는 가치의 어떤 등급이나 완전한 체계가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인정해야 함을 강조 하였다. 

 

생명윤리에 관한 소고를 마치면서 생명윤리에의 접근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몇가지 가치를 제시하고자 한다. 

 

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은 육체와 정신이 통합된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하여야만 한다. 인간의 전체성 안에서 나타나는 가치가 평가되어야지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품위에 손상을 가하면서 단순히 생물학적인 필요성을 절대화 시켜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나. 모든 인간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선사하시는 참된 자유로부터 창조되었다. 우리 인간을 생명에로 부르는 자유는 하느님의 사랑의 자유에 기꺼이 함여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자유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 가지는 자유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참된 자유를 통하여 자유롭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자유로 말미암아 구원된 존재이다.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자유는 곧 영적 자유이며, 이 자유는 인간 상호간에 서로 충실하게 사랑할 의무를 부여하는 책임감을 지닌 자유이다. 이러한 책임감을 지닌 자유는 인간생명에 대한 인공조작의 윤리적 성찰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가 이 세상에서 수행해야만 하는 중대한 사명 중의 하나는 무엇보다도 이 사회에 인간생명의 보호를 위한 참된 비젼을 제시하는 일, 그것을 위해 참된 양심을 촉구하는 일, 그리고 책임감을 지니는 참된 자유에 대해 교육하는 일일 것이며, 국가 역시 인간생명의 보호를 위해 국민 모두가 책임감을 지니는 국민이 될 수 있도록 온갖 정성과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다. 의학분야에서 인간에게 봉사하는 의사는 진리에 입각한 의학윤리에 충실하여야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하느님은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모든 인간생명은 존엄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의사는 인간생명의 보호자로서의 임무가 자신에게 부여되어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라.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고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선물로 받은 인간이기에 모든 인간은 오늘날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는 인간생명을 위협하는 온갖 종류의 의료 조작으로부터 결코 위협받은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양심 안에, 그리고 인간 생활의 모든 상황 내에서 인간이 하느님과 갖는 본질적인 관련성은 늘 생생하게 기억되어야만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생명을 맡기셨고, 그러기에 인간과 인간사회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하느님의 선물로서의 생명이 갖는 "무한한 가치에 대해서 감사하고 그에 대한 책임감"이 의무로 주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목, 1993년 3월호, 이동익(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윤리신학) / 이동익 신부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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