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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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평등한 태아와 평등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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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67

평등한 태아와 평등한 사랑

 

 

태아도 우리처럼 보고 듣는다

 

어느 분자생물학자에 의하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순간에 입력된 생명력의 정보량은 대영 백과사전 브리태니커의 17세트 분량이나 된다고 한다. 브리태니커가 32권이니 544권의 분량이다. 그래서 이미 두 달만에 뇌파가 활동하고 시각과 청각은 6개월만에, 냉자극은 4개월, 온자극은 5개월, 통자극은 7개월, 미자극은 5개월, 후자극은 7개월만에 반응을 일으킨다. 생명의 경이로움과 창조주 하는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깨닫게 하기에는 부족한 서술이지만 단순히 “태아는 인간이 아니므로 낙태는 죄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깊이 음미하도록 권하고 싶다. 호박씨가 호박이 아니고 달걀이 닭이 아니듯이, 태아도 인간이 아니라고 완강히 주장하더라도 태아는 이간 이외의 그 어느 것도 될 수 없다는 것, 곧 태아와 인간의 본질적 연관성, 적어도 태아가 인간에 버금갈 만큼 존귀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몸에 난 혹이나 이물질을 제거하듯이 태아를 없앨 수 없음을 뜻한다. 물론 가톨릭 교회는 “수태된 순간부터”고귀한 생명권을 지니며, 하느님 외에는 그것을 박탈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낙태 반대 서명 운동의 의미

 

지난 7월 13일 한국 촌주교회 주교단의 성명서 발표로 시작된 낙태 반대 서명 운동(형법개정안 제135조 폐지 서명 운동)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 동안 우리 나라에서는 ‘생략된 질문’으로 여겨져왔던 낙태 논쟁이 미흡하게나마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선진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낙태가 ‘살인’ 이라는 주장과 ‘이혼과 마찬가지로 선택적인 행위’ 일뿐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맹렬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특히 1973년 미국 대법원의 ‘로우 대 웨이드’ 낙태지지 판결, 이로부터 16년이 지난 1989년 대법원이 주 정부에 임산부의 낙태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낙태 반대자들의 부분적 승리, 또다시 그면 월에는 수술 전 남편에게 아려야 한다는 제한을 위헌으로 판결함으로 낙태지지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며, 앞으로 미국 대선 에도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둘째, 논란이 되는 형법 개정안의 존폐 여부에 관계없이 일반인들의 마음속에 낙태가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그 사회의 도덕성을 저울질하는 하나의 척도인 낙태률이 세계 1위이고, 연간 150만 명 이상이라는 태아가 단지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야 하는 우리 나라의 비극적 현실을 국민들의 마음에 효과적으로 새겨 주었으며, 적어도 낙태를 그리 쉽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불어넣었다고 본다. 셋째, 다른 종교에 낙태 문제에 좀더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요청하여 작은 성과라도 올렸다는 점이다(예를 들면 천도교). 물론 낙태에 관한 한 아직도 대부분의 종교들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천주교의 낙태 반대 운동을 보는 눈

 

가톨릭 교회의 낙태 반대는 엄격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피임조차 오직 자연 주기법만을 인정한다고 하여 도무지 실정을 모르는 처사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1991년도 조사에 따르면 우리 나라 기혼 여성 중에서 54%가 1회 이상 낙태를 하였으며, 미혼 여성의 인공 유산도 전체 유산의 32.9%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다른 조사에서는 낙태를 해 본 여성이 80% 이상이며, 천주교 신자의 경우도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평화신문 1991.12. 15일자 참조). 비자연적 피임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며, 산부인과 의사 중에서 인공 임신 중절 시술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매우적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낙태를 살인죄로 규정하면서 대역 죄인으로 몰아 세우는 교회가 밉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서명 운동과 연관된 주교단 성명서와 다른 자료들을 우편으로 받은 어떤 산부인과 의사는 자기들에게 그런 편지 보내지 말고 신자들에게나 낙태하러 병원에 오지 않도록 하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신자 산부인과 의사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자신들이 나태 수술을 중단하지 않는 한 교회 공동체로부터 죄인으로 단죄되어 ‘영적 사형 선고’를 받는 좌절과 상처를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 당하면 기분이 좋지 않을 법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교회의 낙태 반대 운동은 이미 반대 세력을 안고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나태를 허용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다.(서명 운동을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나고도 어떤 라디오 인터뷰에서 시민들은 하나같이 이와 같은 답변을 하였다.) 또 나태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한 사회자는 지고한 종교의 가르침을 일반 사람이 따라가기는 힘든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기형아나 정박아도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보면 의미가 있으므로 낳아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보통 사람들은 ‘오르지 못할 나무’로 여기고 이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교회의 주장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실현될 수도 없는 이상에 불과 하더라도 교회는 ‘바른 길’, ‘생명의 길’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가르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형법 개정안 제135조 폐지 서명 운동에 대하여 법무부는 이번 개정안의 낙태 부분 허용 조항은 기존의 모자본법보다 낙태를 허용하는 범위를 대폭 줄였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 교리를 앞세운 천주교 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특히 각종 여론 조사 에서도 낙태의 완전 허용이나 부분 허용을 찬성하는 비율이 70-90%로 나타나고 있다며 천주교 측의 종교적 교리를 법률 문제에까지 적용하려는 것은 지나치게 교조적인 처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모자보건법 제14조 ①에 의하면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을 할 수 있는데, 형법 개정안 제135조 ①은 “임신 중인 여자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할 수 있다고 하여 임부가 원하기만 하면 배우자의 동의 없이 어렵지 않게 낙태할 수 있도록 허용 요건이 완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낙태를 처벌해야 하는 이유

 

한해 150만 명 이상의 태아가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사회는 제아무리 경제적 번영을 이룩하더라도, 이러한 생명 경시 풍조가 널리 퍼져 있는 한 인신 매매, 강절도, 폭행 등 온갖 범죄는 계속 기승을 부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 근원은 바로 낙태”(주교단 성명서)이기 때문이다. 운 좋게 ‘태어난 생명’의 2~3배에 해당하는 ‘못 태어난 생명’의 울부짖음이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다. 교회가 낙태를 실정법상의  죄로 넣어 관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태아도 인간이므로 존귀한 생명권이 있기 때문만이 나니라 모든 사회악의 원인이 되는 낙태 상황아 너무도 끔찍하고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해 150만여 건의 인공 유산 중에서 실정법에 저촉되지 않는 경우는 겨우 8%에 불과하고, 그 나머지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행해진 것들이다. 1973년에 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모자보건법만이라도 철저히 지켰다면(비록 당시 가톨릭 교회가 극구 반대했던 악법이지만), 낙태는 현재의 1/10 이하로 줄었을 것이다. 정부와 사법부가 법을 집행하고 수호하는 의지가 부족했던 결과로 만연된 낙태를 줄이고 태아를 보호하려먼, 형법을 개정하는 것보다는 이는 법을 지키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개인의 딱한 사정으로 고민 끝에 나태한 사람에게 죄를 물어 처벌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분명한 유죄를 사회가 무죄라고 합의함으로써 우리 나라를 낙태의 천국으로 만드는 것만은 반드시 막아져야 한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생명 존중 사상이 발달했으며, 최근까지도 피임을 천도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겼고, 심지어 “모든 사람은 제 먹을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여 인공 유산을 거부하는 심성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가 낙태 천국이라니!

 

 

낙태를 줄이는 길, 사랑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당연하고 시급한 문제이다. 그 뿐 아니라 부부들에게 피임과 임신에 관한 기본 지식을 심어주는 것도 매우 급한 일이다. 우리 나라 가임 부부의 77.1%가 어떤 방법으로든지 피임을 실천하고 있고, 더구나 48.2%가 영구 불임 상태인데도 인공 유산이 그토록 많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피임에 실패하여 낙태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 낙태를 하기로 정한 사람들이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태아를 인간으로 인정하더라도 임부의 희생을 요구하면서까지 태어날 권리는 없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흔히들 예로 드는 미혼모, 강간 또는 근친상간, 자녀가 많은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 비정상아가 출생할 경우의 여러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를 낳아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것이다. 권리와 의무의 차원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태중의 아이에 대한(또는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임부에게 아무리 종교적 윤리적 의무를 강조해도 힘없는 태아를 살리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를 낳아야 할 의무는 면제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편리함과 행복을 위해서 태아를 죽일 권리는 인정되지 않음 또한 명백하다는 점을 밝히면서 사랑으로 아이를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정박아로 태어난 아이에게 온 가족이 힘을 모아 사랑과 정성을 쏟을 때 아기와 엄마, 아기와 다른 식구간에 뜨거운 정이 솟아올라, 정상아를 낳은 가정에 비해 결코 모자람이 없이 오히려 온 가족이 고귀한 인간애와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고, 따뜻한 인간미를 갈구하는 우리 사회에도 감동의 빛을 선사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실례를 알고 있다. 

 

 

교회는 가르치고 먼저 모범을 보일 책임이 있다

 

아무리 교회가 수태된 순간부터 태아는 이 세상에 가장 존귀한 존재로서 그 존엄한 생명권을 아무에게도 빼앗길 수 없으며, 모체의 일부분도 아니고 임부의 상황에 따라 처분 대상이 될 수도 없는 인간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중세 때와 같은 강제력이나 처벌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오늘날 교회는 가르칠 뿐이다.(물론 이조차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스승보다 증거를, 주장보다 경험을, 이론보다 실천을” 더 믿고 받아들인다.(요한 바오로 2세, 교회의 선교 사명 42항). 결국 교회는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믿는 바를 가르쳐야 하고, 교회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증거 해야 한다. 백만인 서명 운동이 일회성 행사로 머물지 않고 궁극 목표인 태아의 생명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이미 우리 교회가 관심을 기울여 온 미혼모의 집, 정신박약아. 장애아 시설 등을 더욱 확충하고, 일반인들의 협조와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한다. 인간성의 위기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공감을 얻으려면 신자, 비신자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 곧 인간다운 삶, 평등한 자유, 사랑과 정의에 호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낙태 반대 운동이 단순히 종교 교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태아의 기본 인권을 수호해야 한다는 ‘정의’ 차원의 운동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어떤 이들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 데도 유난히 낙태 문제만을 시급하게 다룬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낙태되는 태아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는 이유 말고도 다른 반생명 현상들은 교회 밖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데 비해 인공 유산은 오히려 법적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한 한 교회만이 유일하게 남은 양심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여러 종교와 사회 단체에서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환경 보호 운동에 ‘태아의 생명권 수호’도 하나의 중요한 사회 환경 문제로 다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노희성(사목 편집부원) / 인천교구 시노드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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