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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과학과 가톨릭 교회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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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77

생명 과학과 가톨릭 교회의 윤리

 

 

1. 서론

 

생명 과학은 비교적 최근에 발달한 학문으로, 그 학문의 특성상 한계를 모르는 급진적인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매우 복잡한 문제까지도 드러내고 있다. 생명 과학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 펼쳐지는 생명이나 건강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기초 과학이지만 단순히 생명 과학의 전문가들만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아니다. 적어도 인간의 삶과 죽음, 생명과 건강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생명 과학의 발전에 결코 방관자일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 분야가 가지는 특성상 이 학문과 관련된 윤리적 문제들은 생명 과학의 불균형적인 발전에 제동을 거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 분야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된다. 현대 사회가 겪는 중대한 위기 가운데 하나가 인간 생명에 대한 위협이라고 진단하는 가톨릭 교회는 현대 사회의 윤리적 토양이 이미 죽음의 문화로 정의되는 도덕적 불확실성의 문화 위에 뿌리내리면서 현대인들이 진리이신 하느님을 잃어 가고 있음1)을 심각하게 여긴다. 현대인의 하느님 상실은 곧 하느님 의식의 실종, 인간 의식의 실종이며, 이로써 현대 사회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적하는 것처럼 실천적 유물론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무신론의 지배 아래 놓이고 말았다.2) 이처럼 가톨릭 교회의 현실 인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개인주의, 실용주의, 쾌락주의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구조는 인간의 생명까지도 단순히 쾌락, 유용적인 차원에서만 의미 있는 것으로 여김으로써, 결국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실제적인 죄의 구조들을 만들어 내고 강화한다.

 

가톨릭 교회는 생명 과학 분야에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몇몇 내용에서도 실제적인 죄의 구조가 작용하고 있음을 보면서 염려한다. 오늘날 과학 기술은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제공하였지만 동시에 도덕적 불확실성 속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여러 음모들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생명 과학 분야에서 인간은 놀라운 진보를 이룩하면서 인간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 가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인간은 이제 자신을 신화(神化)하여 생명까지도 계획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면서 그 자신이 세계의 절대 규범인 양 착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한계를 지닌 존재로서의 인간의 비참함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이 글에서 필자는 생명 과학의 분야에서 야기되는 인간 생명에 관한 윤리적 쟁점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교도권의 가르침으로써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지 개괄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이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에서는 생명 과학 분야에서 인간 생명과 관련하여 진행되고 있는 각각의 주제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소개하고 그 다음에는 그러한 개별적인 가르침의 기초와 원칙이 무엇인가를 또한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의 가르침을 통해 조명할 것이다. 

 

 

2. 인간 출산에 대한 인위적 개입

 

인간 출산에 대한 의학 분야에서의 개입에 관한 윤리성 문제는 신앙교리성에서 1987년에 반포한 훈령 [생명의 선물](Donum vitae)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위 훈령에서는 부모와 임신된 아이, 모두의 인격적 존엄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인간의 출생은 반드시 혼인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인간 출생 과정에서의 인위적 개입, 곧 예사롭게 실시되고 있는 체외 수정이나 배아의 자궁 내 이전에 관한 비윤리성을 언급한다. "이는 태아를 파괴하는 일에 관여됨으로써 인공 유산의 부당성에서와 같이 교리에 위배된다는 것은 이미 거론된 일이다. 물론 인간 배아가 파괴되어 죽게 되는 일이 없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경우라 해도 이 부부간 체외 수정이나 배아의 자궁 내 이전은 임신을 위한 부부 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부부간 체외 수정이나 배아의 자궁 내 이전은 이 기술을 사용하는 제3자의 기술적 확신과 실제적인 기술 능력만을 믿고 부부의 몸 밖에서 시행이 되는 일이다. 이런 기술은 의사나 생물학자에게 배아의 생명과 주체성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술이 인격적 인간의 기원과 운명을 지배하게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이런 기술의 지배야말로 부모나 자녀에게 있어서 공통적이어야 할 존엄성과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는 일인 것이다."3) 이 훈령은 비배우자간의 체외 수정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윤리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혼인한 부인이 남편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자를 받아 임신했거나 남편의 정자를 가지고 부인 아닌 다른 여자의 난자와 수정시켜 임신을 하는 것은 모두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 더구나 혼인을 하지 않았거나 과부인 여자의 난자를 받아 수정을 시켰다면 그것은 결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오랫동안 불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를 해결하려고 애써 왔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던 부부의 사랑과 또 그들이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희망은 이런 인공적 수정이라도 해 보려는 충분한 동기를 유발할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아무리 주관적인 선한 의지라 하더라도 비배우자간 인공 수정으로 하여금 객관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혼인의 본질은 아이와 부부가 갖는 권리를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4)

 

1) 인간 배아의 존엄성 

 

(1) 인간 생명의 시작

 

인간은 존재의 첫 순간부터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5)는 것이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양보할 수 없는 가르침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성심껏 보호해야 한다."6)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반포한 [가정 권리 헌장]에서도 "인간의 생명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며 수정되는 순간부터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7)라고 선언하고 있다. 1974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반포한 [인공 유산 선언문]은 이 문제를 더욱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것도 어머니의 것도 아닌, 한 새로운 사람의 생명이 시작된다. 그것은 그 자신의 성장을 가지는 한 새로운 사람의 생명인 것이다. 만일 그것이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면 결코 그것이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 현대 유전학은 이 자명한 불변의 원리를 확인해 준다. 이 생명체가 자라나서 충분히 결정된 독자적인 특성을 지닌 한 사람이 될 프로그램이, 임신되는 첫 순간부터 수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유전학은 증명해 주었다. 잉태되는 첫 순간부터 인간 생명의 모험이 시작되는데, 모든 잠재력이 각기 제자리를 발견하고, 행동할 태세를 취하려면 꽤 긴 시간이 요구된다. ...... 또한 언제부터 인간이냐, 또는 인공 유산의 합법성 여부 등에 대한 결정적 판단은 생물학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윤리적 문제이다. 설령 태아가 인간이냐 아니냐에 관해서 아직 의문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감히 살인을 무릅쓴다는 것은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확실히 객관적으로 중죄이다. 인간이 될 자는 이미 인간이다."8)

 

가톨릭 교회의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이러한 가르침들은 인간 배아도 당연히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엄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2) 인간 배아에 대한 치료적 기술 조작

 

인간 배아에 대한 치료 행위의 정당성 문제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기본 입장은 다음과 같다. "환자들에 대한 모든 의학적 조치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 배아의 생명과 그 온전함에 대한 존엄성을 유지하며 그들에게 부당한 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그 개체의 건강 증진과 생존 및 치료를 위해 실시하는 의학적 조치에 대해서는 이를 합당한 것으로 지지해야 한다."9) 이러한 의학적 치료를 위해서는 물론 부모의 명시적인 동의가 있어야 하며, 특별히 이러한 윤리적 원칙을 배아나 태아 시기의 생명에 적용할 때에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1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이러한 기술 조작의 합법성에 대해 이미 1983년 10월 29일 세계 의학 협회 제35차 총회에서 그 참석자들에게 "어떤 직접적인 치료 행위가 인간 생명의 조건이나 완전성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태아의 여러 가지 질병의 치유나 염색체의 결함으로 인한 이상을 바로잡기 위해 행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원칙상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학적 노력은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전통에 부합된다."11)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3) 인간 배아에 대한 연구나 실험

 

우선 '연구'와 '실험'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정확한 의미를 밝혀둘 필요가 있다. '연구'라는 말은 인간적인 영역의 기존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관찰의 추구나 이전의 관찰들에서 제기된 가설에 대한 입증을 목적으로 하는 어떠한 연역적 귀납적 과정을 의미하고, '실험'이라는 용어는 현재 모르고 있거나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일정한 치료의 효과를 증명하려는 의도에서 인간(배아, 태아, 어린이, 성인 등 그 실존의 여러 단계에서)을 대상으로 삼는 연구를 의미한다.12) 이러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배아에 대한 의학적 연구는 오직 그 배아의 생명이나 형태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윤리적 확실성 아래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인간 배아에 대한 의료 조작이나 사용이 상업적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히 인간의 존엄성을 명백히 거스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실험이라든지, 그 실험의 목적이 치료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구분을 하는 데는 또 한 가지 그 실험이 살아 있는 배아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죽은 것에 대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도 중요하다. 만일 배아가 살아 있는 경우라면 그것의 생존 능력 여하를 불문하고 다른 인격체와 마찬가지로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자면 치료적이 아닌 배아에 대한 실험은 부당한 일이다."13)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도 이와 관련하여 인간 배아의 존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배아나 태아를 실험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것은 그들이 인간으로서 지닌 존엄성을 침해하는 범죄가 된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출생한 아기들을 존중해야 하는 것과 똑같이,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합니다"(63항).

 

(4) 잉여 배아

 

오늘날 인공 출산 기술들은 생명의 실존과 관련하여, 그리고 어머니의 자궁 밖에 남겨진 배아들의 운명과 관련하여 수많은 윤리적 문제들을 일으킨다. 이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적 출산에 관한 윤리적 진리에 따르면 배아에 대한 치료적 목적에서만 합법적이지, 그렇지 않다면 수용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 모성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또는 실험이나 연구를 위해 배아를 양산하는 일, 잉여 배아를 장기 이식 수술이나 의약품 생산을 위한 생물학적 재료로 이용하는 일 등의 관심들은 사실상 인간 배아가 지니고 있는 생명의 가치를 무효화시키고 일탈시키는 일이다.

 

회칙 [생명의 복음]은 이러한 잉여 배아의 생산과 사용에 대해서 "이 수정란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죽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됩니다. 게다가 생산된 수정란의 수는 대개 여성의 자궁 속에 이식하기 위해 필요한 수보다 많으며, 이른바 '예비 수정란'이라고 부르는 이 수정란들은 폐기되거나 또는 실험에 사용됩니다. 이 실험이란 과학 또는 의학의 발전이라는 미명을 지니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해 버릴 수 있는 단순한 '생물학적 재료'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14항)라고 했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 배아를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음을 단언함은 물론 인간 배아를 한 번 쓰고 버리는 생물학적 재료로 사용하기 위하여 생산해 내는 것까지도 명백히 비윤리적이라고 가르친다. 체외에서 얻은 인간 배아들도 어디까지나 생명권과 존엄성을 갖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14) 따라서 체외에서 얻은 인간 배아를 의도적으로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결코 도덕률과 일치하지 못하며, 비록 그들이 불법적으로 실험실에서 얻어진 것들이라고 해도 당연히 생존을 위한 안전 수단이 제공되어야 한다.15)

 

(5) 동물 실험과 이종 장기 이식

 

가톨릭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은 동물 실험이 인간에게 유용하고 필요한 경우라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곧 새로운 의약품이나 기술들에 대한 실험이 인간들에게 행해지기에 앞서서 동물들에게 실시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청 과학 학술원 참가자들에게 행한 훈화에서 "동물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기에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물 또한 하느님의 피조물 중의 하나로서, 인간의 선을 위해서 협동하는 존재로 다루어져야 하며, 결코 남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16)라고 말하였다. 곧 동물 실험이라 하더라도 동물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동물에게 잔인한 고통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동물 실험의 범위가 동물을 벗어나 인간과 연관하여 실험이 이루어지면서 윤리적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실제로 [생명의 선물]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인간의 출산 기술의 조작 형태로 드러나고 있음을 매우 우려하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실험실적인 인공 수정 기술의 발달은 인간 배아에 대한 다른 형태의 생물학적 그리고 유전 조작적 기술들, 예컨대 사람과 동물 생식 세포 사이의 수정이라든지 인간 배아를 동물 자궁에 착상시키는 일에 대한 시도나 계획, 그리고 인간 배아를 위해서 인공 자궁을 만들어 내는 일도 가능하게 한 셈이다."17)라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조작들에 대해 가톨릭 교회는 물론 단호히 반대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조작들이 장차 인류 사회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만으로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 온전성, 그리고 정체성에 전적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물 실험과 관련하여 이종(異種) 장기 이식의 문제를 언급하려고 한다. 곧 이종 장기 이식이란 수혜자와는 다른 종의 장기를 이식하는 경우를 말한다. 예컨대 돼지의 심장을 인간에게 이식 수술하는 것은 이종 장기 이식의 한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의 장기 이식과 관련하여 일찍이 교황 비오 12세는 "서로 다른 두 개별 종간의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모든 장기 이식이 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가능한 모든 이종간의 장기 이식을 금지하지 않거나, 반대를 유발시키지 않는다는 것 또한 진실과 거리가 멀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어느 조직이나 장기가 이식 대상인가에 따라서 구별하여야 한다. 동물 생식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것은 부도덕한 것으로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비인간 조직체의 각막을 인간 조직에 이식하는 것은 만일 그러한 것이 생물학적으로 가능하고 권고할 만한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18)라고 말하였다.

 

교황 비오 12세의 이 말에서 이종 장기 이식의 윤리적 기준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차원에서 인공 장기의 이식이라든가 오늘날 매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동물의 몇몇 주요 장기들의 인간 이식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19) 이와 관련하여 교황청 생명 학술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이 분야에서의 연구에 큰 발전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동식물 세계에서는 복제를 포함하여 연구할 여지가 많이 있다. 동물 자체를 보호하는 규정과 종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존중할 의무를 지키기만 한다면, 그러한 연구는 인간이나 다른 생물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 되거나 커다란 유익이 된다."20)

 

 

3. 인간 복제(人間複製, Human Cloning)에 관하여

 

복제(cloning)라는 말은 최근 몇 년 동안 언론에서 집중적인 주목을 받는 소재가 되었다. 1997년 2월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인류 최초로 체세포 복제에 의한 복제 양 '돌리'가 만들어졌다는 Nature의 발표 이후 이 기술은 여러 포유 동물에게 적용되어 많은 성공 사례가 발표되기도 하였고, 급기야 일부 과학자들은 실제로 인간 복제를 위한 실험을 하고 있으며, 1-2년 내로 복제 인간이 탄생할 것이라는 그들의 예고는 세상을 긴장시키고 있기도 하다. 먼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주제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가지는 기본적인 시각은 인간 출산의 인위적 개입과 관련한 윤리적 시각과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부정적이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 윤리적인 쟁점으로 나타나는 인간 복제 문제, 인간 배아 간세포의 생산과 관련한 문제, 그리고 유전자 조작에 관한 윤리적 문제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기본적 입장을 살펴볼 것이다. 

 

1) 인간 복제에 관한 윤리적 성찰

 

교황청 생명학술원은 1997년 6월 25일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를 통해 "인간 복제에 관한 성찰"(Reflections on Human Cloning)을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발표하였다. 이 문헌은 인간 복제의 역사적인 배경에서부터 생물학적인 측면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이에 따르는 여러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가톨릭적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21)

 

여기서는 교황청 생명학술원이 지적하는 몇몇 윤리적인 문제에 국한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첫째, 인간 복제는 생물학적인 측면이나 엄밀히 인격적인 측면에서 인간 생식의 기원에 있는 구조적인 상관성과 상호 보완성을 근본적으로 조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생식의 고유한 의미는 변질된다. 따라서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복제 과정은 결국 인간까지도 산업 생산의 논리 속으로 끌어들이며, 더구나 여성들은 철저히 이용되어 순전히 생물학적인 몇 가지 기능(난자와 자궁을 제공하는 것)만 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게 된다. 뿐만 아니라 복제 과정에서는 친자 관계, 친족 관계, 혈족 관계, 어버이 관계 등 인간의 기본적인 관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며, 나아가 파괴될 것이다.22)

 

둘째, "인간 복제는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고 그들의 생물학적 본질을 마음대로 또는 순전히 실리적인 기준에 따라 선별하여 계획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조장한다."23) 이러한 사고는 결국 생물학적 특질이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더 큰 의미를 부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조장하게 될 것이다.

 

셋째, 인간의 존엄성 문제이다. 복제 인간은 다른 존재에게서 복사되어 세상에 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위는 복제된 인간에게 근본적인 고통을 줄 수밖에 없다. 곧 '복제 인간'은 복제할 '가치가 있는' 누군가와 닮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그는 기대와 주목을 받는 대상이 될 것이고, 그러한 기대와 주목은 그의 인격적 주체성에 큰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24)

 

교황청 생명학술원은 배아 복제와 관련된 실험은 어떠한 경우에나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육체를 단순한 연구 도구로서 전락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복제 실험에 쓸 난자를 얻고자 여성을 이용하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시험관 수정에 대해 가지는 시각과 마찬가지로 비록 배아 단계라 하더라도 그는 당연히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험관 아기를 단죄하는 모든 도덕적 이유가 인간 복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25)

 

복제 인간에 대한 윤리적 성찰에서 생명학술원이 가지는 기본적 판단 기준은 인간 생명에 대한 시각이다. 곧 생명을 사랑의 선물로 보는가와 인간을 산업적 생산품으로 보는가의 관점의 차이가 윤리성 평가의 중요한 판단 기준인 것이다.26)

 

2) 인간 배아 간세포(幹細胞, Stem Cells)의 생산과 활용

 

간세포의 생산 문제가 윤리적 논쟁의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그것의 활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간세포를 활용하여 유전자 치료를 비롯한 여러 불치병들의 치료약을 개    발해 낼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 장기를 만들어 낼 수 있기에 간세포의 생산과 관련된 연구는 의학계의 매우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간세포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특성을 가진 세포로 설명된다. 우선 무한한 자기 보존의 특성이 있고, 이는 분화되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번식하는 능력을 가지는 세포이며, 다음은 이 세포가 비영구적인 원세포 생산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이 세포를 이용하여 다양한 계통의 고도로 분화된 세포들, 예를 들어 신경 세포, 근육 세포, 혈액 세포 등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최근 30여 년 동안 의학계에서는 간세포의 생산을 위한 수많은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최근에는 인간 배아 간세포 생산이라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됨으로써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특히 과학계와 생명 공학계, 의학과 약학계는 물론 정치, 경제 분야에까지 매우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다.27)

 

사실 이 분야는 의학계, 약학계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의 생명과 건강 증진에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다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지만 이에 따르는 윤리 문제 또한 심각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인간 배아 간세포 생산과 활용에 관한 윤리적 논쟁의 중심에는 인간 배아 복제에 관한 윤리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교황청 생명학술원은 2000년 8월 24일 [인간 배아 간세포의 생산과 과학적 및 치료적 활용에 관한 선언]을 발표하면서 이 분야가 지니고 있는 윤리적 논쟁의 핵심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밝히고 있다.28)

 

첫째 문제는 배아 간세포를 마련하기 위하여 살아 있는 인간 배아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의 문제인데, 이에 대한 생명학술원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그 이유는 가톨릭 교회가 일관되게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인간 배아는 그 자체로 확실하게 결정된 신원을 가진 인간 주체이며, 바로 이때부터 통합적이고 지속적이며 점진적인 발전을 시작하기 때문에 단순한 세포 덩어리로 간주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아에게 그 주체는 인간 개체로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배아를 위한 것이 아닌 모든 개입은 그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또한 치료 과정에서 사용될 다른 분화 세포를 마련하기 위해 간세포를 활용하는 것도 결국 배아에게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일으키기에 이는 중대한 비윤리적 행위이며, 중대한 불법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좋은 목적이라도 그 자체로 나쁜 행위를 옳은 행위로 만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문제는 인간 배아를 생산하여 거기서 간세포를 얻기 위해 그것을 파괴하는, 이른바 치료 목적의 배아 복제는 윤리적으로 정당한가의 문제로서, 이에 대한 생명학술원의 대답 또한 '아니오'이다. 곧 모든 종류의 치료 목적의 복제는 결국 간세포를 얻기 위해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를 수반하기 때문에 불법일 수밖에 없다.

 

셋째 문제는 인간 배아 간세포와 거기서 얻은 분화 세포들을 활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한가의 문제로서 이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오'이다. 이 경우는 인간 배아를 생산하거나 공급하는 사람들이 인간 배아의 생산과 조작에 질료적으로 협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교황청 생명학술원은 이렇게 인간 배아의 생산과 활용에 대해 윤리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 입장을 명백히 표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배아 간세포가 추구하는 것과 같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비윤리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서의 성체(成體) 간세포의 이용을 제시한다. 곧 성체 간세포의 연구와 활용은 배아 간세포의 생산과 활용이 안고 있는 윤리적 문제들을 벗어나면서 더욱더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수많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29)

 

3) 유전자 개입과 조작의 문제

 

사실상 대부분의 유전학적인 진단은 병이 없다는 것을 알려 주며, 그럼으로써 환자들의 근심을 없애는 데 한몫을 한다고 여겨진다. 더구나 이 유전자 진단을 건전한 의료 실천의 연장으로서 적용한다면 이를 배척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분야의 의료 행위의 모든 진보가 윤리법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3년 세계 의학 협회 참석자들에게 한 훈화에서 "유전자 개입의 명백한 목적이 염색체 결함에서 비롯한 다양한 질병들을 치유하는 데 있다면 그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개입이 진정으로 개인의 번영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의도된다면 ...... 그러한 개입은 참으로 그리스도교 윤리 전통과 부합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30)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유전자 진단 방법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에게 매우 중대한 위협을 주기도 한다. 이 방법이 만일 효과적 치료를 위한 방법으로서의 진단이기보다는 유전적 이상을 찾기 위한 검사로 변질되면서 오히려 무고한 태아를 죽이는 방법으로 악용된다면 이는 철저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회칙 [생명의 복음]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 대해 "태아 진단 기술들의 윤리성에 대한 평가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기술들은 태어나지 않은 아기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기형을 초기에 진단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러한 기술들이 지니고 있는 복합성을 고려할 때, 정확하고 체계적인 윤리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이 기술들이 아기와 어머니에게 부적절한 위험을 가하지 않을 때, 그리고 그것이 초기 치료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것일 때, 그리고 나아가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 대한 사실을 알고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일 때, 이러한 기술들은 윤리적으로 정당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태아 치료의 가능성은 아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기형을 지닌 아기들이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선택적인 낙태를 받아들이는 우생학적인 의도로 이 기술들이 악용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부끄러운 일이며, 철저히 비난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 생명의 가치를 오직 '정상'(正常)과 신체적 안녕의 범위 안에서만 측정하겠다는 것이며, 따라서 유아 살해와 안락사까지도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63항)라며 매우 강하게 비난한다.

 

교황 비오 12세는 이미 유전자 개입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 방법이 때로는 우생학적 불임과 인종 편견주의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이 분야에서의 인권과 인간 생명의 존중은 그 어떤 윤리법보다도 더 우위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31)

 

이렇게 유전자 개입 또는 조작의 문제는 긍정적인 측면과 윤리적 한계 모두를 함께 포함하고 있는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을 통해 정리하면, 우선 긍적적인 측면에서는 "질병의 치유를 목표로 하는 치료를 한정으로 하는 엄격한 개입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고려될 것이며, 그렇게 될 때 이는 그의 삶의 조건들을 결코 악화시키거나 손상시키지 않고 개인의 인간 복지의 실제적인 증진에 이바지 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방법에서 윤리적 한계는 엄격히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몇 가지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모든 인류의 생물학적 본성을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또한 "이런 종류의 개입으로 인간 생명의 기원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 곧 인류의 근본적 존엄성과 자유에 기초하여 놓여 있는 생물학적 본성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 유전자 조작은 생명을 객체로 축소시킬 때, 이는 인간 주체와 지성, 자유의 가능성, 존엄성을 망각하는 것이다."32)

 

 

4. 결론:가톨릭 생명 윤리의 기초

 

지금까지 다루어 온 생명 과학 분야에서의 몇몇 주제들과 관련하여 가톨릭 교회가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기초에는 결론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측면이 있다. 곧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선물로서의 인간 생명은 그 첫 순간부터 철저히 존중되어야 하며, 과학 기술은 인간 생명을 존중하는 한계성을 인식하면서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

 

가톨릭 교회의 인간 생명에 대한 가르침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분의 모습이고, 각인이며, 그분 생명의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시며, 따라서 인간은 이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33)라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또한 선한 것이다. 회칙 [생명의 복음]은 인간 생명의 선성(善性)에 대한 근거로서 인간은 "이 세상에 하느님을 증거하는 존재이고, 그분께서 존재하신다는 표징이며, 그분 영광의 흔적"(34항; 창세 1,26-27; 시편 8,6 참조)이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들의 생명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의 영광 그 자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인간은 현세적인 존재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충만한 생명으로 부름을 받은 존재이며, 따라서 위대함과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가 곧 인간 존재이다.

 

인간 생명에 대한 이러한 기초에서 인간 생명의 특성으로서의 신성함과 불가침성이 드러난다. 인간 생명의 신성함, 선함 그리고 불가침성이라는 특성은 결국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를 제공하게 된다. 

 

2) 인간 생명의 시작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문제는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생명 윤리의 중심에 서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문에서 다루었던 인간 출산의 문제나 배아 복제의 문제 모두가 인간 생명의 시작과 관련된 문제를 비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살펴본 것처럼 가톨릭 교회는 인간 생명이 탄생하는 최초의 결정적인 순간은 난자의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고 가르친다. 이 순간에 유일하고도 반복될 수 없는 유전 인자로서 아버지의 생명, 어머니의 생명과 구별되는 새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며, 따라서 난자와 수정이 이루어지는 수정란의 시기는 이미 인간 생명이 시작된 시기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34)

 

이렇게 수정란에서부터 이미 인간 생명은 시작되기 때문에 인간은 그 존재의 첫 순간에서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가톨릭 교회에서 수정란이나 복제된 배아 모두 하나의 인격적 개체로서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만일 인간 배아에 관한 연구나 실험, 배아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의료 조작이 배아가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온전성을 거스르게 된다면 이는 당연히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다. 

 

3) 인간에 봉사하는 과학 기술

 

오늘날의 과학 기술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시고, 이에 따라 인류의 질적인 삶은 매우 향상되었다. 특히 생명 과학 분야에서의 눈부신 발전은 인류의 미래에 큰 희망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이처럼 인류의 삶과 직결되어 있으며, 더 직접적으로는 인류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목표로 발전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교리성은 "과학과 기술은 그것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며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발전을 도모할 때 참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의 존재 의미나 인간 발전의 의미를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35)라고 말한다. 곧 과학 기술의 발전이 참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발전이 그 기준이 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과학 기술은 올바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의 선물]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적 연구나 그 응용이 그 자체 도덕적으로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또 이들 과학적 연구나 응용의 도덕적 기준은 그 과학 기술의 효용성이라든지 당대의 사회 관념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과학 기술은 본질적으로 도덕률의 근본 기준을 무조건 준수하도록 되어 있다. 곧 그들은 무엇보다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며, 또한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에 의한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참되고 온전한 선에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36)

 

그러므로 '인류의 행복에 기여'를 목적으로 내세우는 생명 과학이라면 여기에는 반드시 한계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라는 대전제가 있어야 할 것이고, 이에 대한 윤리성 확립 또는 사회적 통제 기능은 반드시 필요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의 재능과 창의력이 이룩해 놓은 업적이 때로는 인간 자신을 지배하고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를 회복 불가능한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37)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핵에너지가 핵무기가 되어 인류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교만과 통제되지 않는 욕구가 인간 스스로를 철저하게 위협하고 나아가 종말을 자초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시민 의식의 성숙이다. 인간 생명은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철저히 보호되어야 하며,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어떠한 연구나 실험도 마땅히 거부되어야 한다는 의식의 철저한 무장이 요구되는 때이다. 생명과학의 모든 기술이 본래의 목적인 '인간'을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눈이 필요하며, 만일 그것이 인간을 위협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변할 위험이 있다면 그 위험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예방 차원의 입법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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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생명의 복음], 11.12.21.22.24.64항 참조.

2) [생명의 복음], 23항 참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언급하는 실천적 유물론은 결국 개인주의, 실용주의, 쾌락주의를 끌어들이게 되는데, 그 원인은 바오로 사도가 진단하는 것처럼 "인간이 하느님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올바른 판단력을 잃고,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게 내버려 두셨다."(로마 1,28)라는 데 있다. 곧 실천적 유물론에서는 소유 가치가 존재 가치의 자리를 차지해 버렸고, 인간 삶의 중요한 목표는 자기 자신의 물질적 안락뿐이다. 이른바 '삶의 질'이라는 것은 우선적으로 그리고 배타적으로 경제적 효율성, 무절제한 소비주의, 육체적 아름다움과 쾌락으로 해석되며, 인간 상호간의 영적,종교적 차원과 같은 실존의 더 심오한 차원은 무시된다.

3) [사목] 112호(1987.7.), 135면; [생명의 선물]은 [사목] 112호, 119-144면에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이라는 제목으로 전문이 번역되어 있다.

4) 위의 책, 132면.

5) 위의 책, 124면.

6) 사목헌장, 51항.

7) 요한 바오로 2세, [가정 권리 헌장] 4조, 1983년 11월 25일.

8) 교황청 신앙교리성, "인공 유산 반대 선언문", [사목] 42호(1975.11.), 127면.

9) [사목] 112호(1987.7.), 126면.

10) 위의 책, 126-127면.

11) Giovanni Paolo II, Il Discorso all'Assciazione medica mondiale, ott. 29. 1983, in Insegnamenti di Giovanni Paolo II, VI, 2, Libreria Editrce Vaticana, 1983년, 921면.

12) [사목] 112호(1987.7.), 143면.

13) 위의 책, 127면.

14) 위의 책, 128면 참조.

15) 위와 같음.

16) Giovanni Paolo II, La sperimentazione in biologia deve contribuire al bene integrale dell'uomo, Discorso ai partecipanti a un convegno della Pontificia Accademia delle Scienze, Ott. 23. 1982, in Insegnamenti di Giovanni Paolo II, V, 3, 1982년, 892면.

17) [사목] 112호(1987.7.), 129면.

18) 비오 12세, 이탈리아 각막 기증자 협회와 이탈리아 맹인 연합회 대표들에게 한 훈화, 1956년 5월 14일, AAS 48(1956), 462-464면.

19)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 [의료인 헌장], 89항 참조.

20) 교황청 생명학술원, "인간 복제에 관한 성찰",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9호(1999), 283면

21) 위의 책, 166-178면.

22) 위의 책, 279면.

23) 위와 같음.

24) 위의 책, 280면.

25) 위의 책, 281-282면.

26) 위의 책, 281면.

27) Pontificia Academia Pro Vita, Declaration on the Production and Scientific and Therapeutic Use of Human Embryonic Stem Cells, Aug. 24. 2000, Libreria Editrice Vaticana, 4-7면 참조.

28) 위의 글, 14-17면 참조.

29) 위의 글, 9-13.17면 참조. 2001년 1월 1일 로마의 성심대학은 태반 은행을 출범시켰다. 교황청 생명학술원의 인간 배아 간세포 활용에 대한 윤리적 비난 이후 성체 간세포 연구를 위한 합당하고도 구체적인 가톨릭 교회의 반응이라고 할 만하다. 태반과 탯줄을 이용한 연구를 통해 치료 목적의 간세포를 확보하기 위한 의도라고 하겠다. 실상 인간 배아 복제를 통한 간세포 확보라는 문제는 인간 존엄성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때에 가톨릭 교회는 인간 배아 복제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윤리적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성체 간세포 생산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태반이나 탯줄은 인간 배아처럼 생명은 아니다. 물론 그것들은 출산 후의 추출물로서 당연히 인간 신체를 다루는 것처럼 정중하게 다루어져야 하겠지만 인간 생명의 증진에 이용될 수 있다면 이 역시 인간 존엄성 존중의 한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0) Giovanni Paolo II, Il Discorso all'Assciazione medica mondiale, Ott. 29. 1983, in Insegnamenti di Giovanni Paolo II, VI, 2, Libreria Editrce Vaticana, 1983년, 920면.

31) Pius XII, 'Moral Aspects of Genetics', Sept. 7. 1953, in Kevin D. O'Rourke & Philip Boyle (Ed.), Medical Ethics : Sources of Catholic Teachings, Washington, D.C. 1999년(3ed.), 170-171면 참조.

32) 위의 책, 922면.

33) [생명의 복음], 39항.

34) 교황청 신앙교리성, "인공 유산 반대 선언문", [사목] 42호(1975.11.), 127면.

35) [사목] 112호(1987.7.), 121면.

36) 위와 같음; 사목헌장, 35항 참조.

37)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인간의 구원자], 19항.

 

[사목, 2001년 5월호, 이동익(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 윤리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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