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신학ㅣ사회윤리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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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과업은 분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느님의 육화사건이 그분의 인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면 수난의 예수 그 모습(이사 53,2-9; 시편 22,6-17 등등)은 그 크신 사랑의 대가였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모습은 그 육화사건의 완결이요 완성이었다. 그분은 말만의 사랑이 아닌 철저한 자기희생의 대가를 치른 참 사랑을 드러내셨다. 마치 더러운 곳을 치우려면 자기 몸에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쯤이야 감수해야 하듯, 또는 불 속에 갇힌 자를 구하려면 불 속으로 들어가 불길의 뜨거움을 감수해야 하듯, 또는 물에 빠진 자를 구하려면 물 속으로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듯이 말이다. 그렇다. ’감수(甘受)’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와 하나 되며 그를 고통에서 구해 내려면 그의 고통을 함께 받는 걸 감수해야 한다. 고통받는 인간을 구원키 위해 그분이 몸소 고통의 인간이 되시어 그 고통을 감수하시고 더 나아가 인간고통의 끝인 죽음을 맛보셨듯이 사랑하려면 그에 따르는 자기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도 채워야 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아직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의 과업이 남아 있다는 뜻이 된다. 즉 감수해야 할 고통의 양은 바로 모자라는 사랑의 양을 나타내 주고 있다. 진정 고통은 사랑에 대한 갈구이다. 달리 말해 그만큼 사랑이 미흡하고 요구되기에 아니 고통을 감수하는 삶이 그만큼 찾아볼 수 없기에 이 세상은 고해(苦海)인 것이다. 그렇게 상처받은 치유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인 교회와 그분의 제자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솔선하여 세상의 고통을 사랑으로 감수하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 갈 때 하느님 나라는 그만큼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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