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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뇌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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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22

뇌사(腦死)에 관하여

 

 

1. “생명 연장과 사망 판정에 관한 보고서”

 

1) 사망의 정의

 

사망은 인간이 신체의 육체적 정신적 기능을 통합하고 조정할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고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을 때를 말한다.

 

인간은, (1) 자연적인 심장과 호흡 기능이 분명히 멈추었을 때, (2) 뇌의 모든 기능이 정지되어 다시 돌이킬 수 없음이 입증되었을 때 사망한 것으로 간주된다.

 

논의 결과, 심폐 기능의 명확한 정지는 곧바로 뇌사로 이어지기 때문에 뇌사는 분명한 사망 기준이 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또한 뇌 기능이 확실히 정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임상적 기계적 방법들을 분석하는데 뇌 기능이 멈추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기 위하여, 곧 뇌전도에 뇌파가 더 이상 표시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6시간 간격으로 적어도 두 번 이상 검사하여야 한다.

 

2) 의료 지침

 

원칙적으로 매우 복잡하기는 하지만, 각각의 경우에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적절한 의료적 개입들을 ‘치료’라고 이해하기로 한다.

 

예측할 수 있는 한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되는 영구적인 혼수 상태에 빠진 환자의 경우에, 치료는 불필요하지만, 영양 공급을 포함한 모든 간호를 하여야 한다.

 

회복할 수 있다고 임상적으로 판단되면, 치료하여야 한다.

 

치료가 환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면 그만둘 수 있지만, 간호는 계속한다.

 

어려움에 처한 모든 사람에게 가지는 연민이나 애정, 정신적 후원 등 환자를 위한 일상적인 도움을 ‘간호’로 이해하기로 한다.

 

3) 식물 인간 상태에서 인위적 생명 연장

 

뇌사에 빠진 경우, 인공 호흡은 제한된 시간 동안 심장 기능을 연장할 수 있다. 이식을 위하여 장기를 떼어 내야 할 경우 이렇게 장기의 생명을 연장시켜야 한다.

 

젊은 사람이 특히 매우 심각한 중상으로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뇌에 손상을 입은 경우에만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외과적 수술 기술이나 이식에서 내성을 증가시키는 기술이 매우 발전한 것을 감안할 때, 의료직 종사자들이나 법규범, 일반 대중이 이식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이 있다. 모든 경우에, 장기 기증 문제는 기증자의 유언이나 가족이 있을 경우에는 가족들의 동의를 존중하여야 한다.

 

[출처:교황청 과학원, “생명 연장과 사망 판정에 관한 보고서”(1985.10.30.), Health Progress, 1985년, 31면.]

 

 

2. “생명 연장”

 

사망 사실

 

사망 사실의 문제, 그리고 사망 사실 그 자체나(사실상) 그 법적 확실성을(법률상) 확인하는 문제는 그 중대성 때문에 윤리와 종교 영역에서도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성사를 유효하게 받는 데에 전제가 되는 필수 요소들에 관한 내용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 문제의 중요성은 상속, 혼인과 혼인 절차, 성직록(성직록의 결여)의 문제, 그리고 개인 생활과 사회 생활에 관련된 다른 많은 문제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의식 불명 상태에서 죽은 환자의 ‘사망’과 ‘사망 시간’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의사, 그 가운데에도 특히 마취과 의사가 할 일이다. 사망이 영혼과 육체의 완전한 최종 분리라는 일반적인 개념도 틀리지는 않지만, 실제로 적용할 때에는 ‘육체’와 ‘분리’라는 용어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고려하여야 한다. 인공 호흡기를 떼면 혈액 순환이 멈추어 몇 분 안에 죽게 되므로, 사람이 살아 있는 채 묻힐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의심을 지울 수 없을 경우에는, 법적 사실적 추정들을 사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 문제는 창조주께 받은 근본적인 권리의 문제인 만큼 생명이 아직 유지되고 있다고 추정하여야 하며, 사망의 증명은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언제를 ‘사망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중추 마비로 무의식 상태에 있는 환자의 혈액 순환과 생명이 인공 호흡기로써만 유지되고 며칠이 지나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을 때, 가톨릭 교회는 언제 그 환자를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며, 자연법에 따르면 그 환자는 언제 사망한 것으로 선고되어야 하는가?”(‘사실상’ 문제와 ‘법률상’ 문제)

 

(깊은 무의식 상태에 빠지고 중심 호흡 기능의 마비를 가져올 정도로 뇌에 심각한 외상이 있었지만 인공 호흡기로 사망을 지연시키고 있다면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오늘날 의사들의 견해처럼 인공 호흡으로 연장했음에도 순환이 완전히 멈추었을 때를 사망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특별한 경우의 사망 판정 문제는 어떤 종교적 또는 윤리적 원칙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런 측면에서 교회 권한 밖의 일이다.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이 문제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인 자연의 순리를 생각해 볼 때, 스스로 또는 인위적인 도움을 받아서라도 생명의 중요한 기능(장기의 단순한 생존과 구별되는)을 분명히 다하고 있는 한 인간의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많은 문제들은 아직 확실히 해결되지 못했으며, 앞에서 말한 법률적 추정과 사실적 추정에 따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의료직을 수행하면서 미묘한 문제들에 부딪힐 때에 이러한 설명이 여러분을 이끌어 주고 깨우쳐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과 여러분에게 소중한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의 표시로, 사도로서 진심 어린 축복을 보낸다.

 

[출처:교황 비오 12세, “생명 연장”(1957.11.24.), The Pope Speaks 4: 4호, 1958년, 396-398면.]

 

 

3. “뇌사 판정을 위한 지침” 

 

머리말

 

미국 주교회의 보건위원회는 뇌사 판정에 관한 본 지침을 펴냄으로써 가톨릭 의료 기관들에게 환자가 뇌사에 빠졌을 때 의사의 판단을 돕기 위한 현대의 기술 정보를 제공한다. 이 지침은 생명은 거룩하며 죽음은 더욱 완전한 생명으로 들어서는 길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다. 

 

보건위원회는 사망을 판정하는 데에 쓰여 온 전통적인 의학적 기준(심장 박동과 호흡의 완전한 정지)이 여전히 표준적인 기준이 되며, 사망이 선고되는 대다수의 경우에 이로써 충분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확인하는 바이다. 그러나 본 위원회는 특히 심폐 기능이 유지될 때나, 이종 이식을 위하여 기증자의 장기 입수를 고려할 때에, 이러한 기준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임상적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러한 상황들에서는, 뇌사의 윤리적 확실성을 규정하는 부가적인 기준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기준들 역시 동일한 사망을 판정하는 부가적인 방법들이며, 사망의 다른 유형 또는 단계를 암시하려는 뜻이 아님을 강조하여야 하겠다.

 

‘윤리적 종교적 지침에 관한 자문 위원회’는 충분히 연구하고 논의한 다음에 “뇌사 판정을 위한 지침”을 제시하였다. 보건위원회는 이 기준들이 의학적으로 건전하며, 윤리적으로도 건전하여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지침

 

생리적 기능을 유지하는 최근의 기술 수단의 발전으로 언제를 사망 시점으로 판정할 것인지 결정하기에 어려운 경우들이 꽤 있다. 임상적 사망의 판정은 중추 신경계의 질병들과 관련된 경우들에 특히 더 문제가 된다. 여기서 제시하는 기준들은 사망 진단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 임상적 사망 판정을 위한 일반적인 방법을 적용해 본 다음에만 지침으로 활용할 것이 권장된다.

 

1. 외부적으로 적용된 자극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매우 강렬한 고통을 주는 자극에도 목소리나 신음 소리, 팔다리의 움츠림, 자발적인 호흡 등의 다른 반응이 없다. 

 

2.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지켜 본 의사들의 소견상, 자발적인 근육의 움직임이나 자발적 호흡, 또는 고통이나 접촉, 소리나 빛 등의 자극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기준을 충족시킨다. 환자에게 호흡기로 인공 호흡을 한 뒤, 3분 동안 호흡기를 떼어 내고 환자가 자발적으로 숨쉬려는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지켜 봄으로써 자발적인 호흡 능력이 전혀 없는지 확인할 수 있다(호흡기를 3분 동안 떼어 내는 것은, 이런 시도에 들어갈 때에 환자의 이산화탄소 장력이 일반 수준이고, 그 이전에 환자가 10분 이상 방 안 공기로 산소를 공급 받았을 경우에 한한다.).

 

3. 자극에 대한 반사 작용이 없으면, 중추 신경계 활동이 멈추고 돌이킬 수 없는 혼수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부분적으로 볼 수 있다. 동공이 고정되고 확대되며 직접적인 밝은 빛이나 목을 죄는 자극에도 반응이 없을 것이다. (머리 회전이나 얼음물로 하는 귀 세척에 대한) 눈의 움직임과 깜박거림을 볼 수 없다. 체위상 움직임의 증거가 없으며, 씹거나 하품을 하거나 발성을 하지 않고, 각막과 인두의 반응이 없다.

 

대체로, 신장 반사나 건반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두근이나 삼두근, 내전근, 비복근의 힘줄을 반사 망치로 건드려도 각 근육의 수축이 일어나지 않는다. 발바닥의 자극이나 유해한 자극에도 반응이 없다.

위의 모든 실험은 24시간 간격으로 반복한다.

 

4. 뇌파가 편평하게 표시되는 것(flat or isoelectric EEG)은 확인 가치가 매우 높다. 이러한 평탄 뇌파(뇌파 소실)는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의사가 원한다면 판정에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전극을 바르게 꽂았으며, 기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담당자가 능력을 갖추었다고 가정하여야 한다. 한 채널의 기구는 심전도(ECG:electrocardiogram)를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채널은 ECG를 관찰하다가 높은 저항 때문에 뇌파 유도(leads)에 표시되면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것은 또한 뇌전도가 표시되지 않을 때 심장이 뛰는지 확인한다. 다른 채널은 머리 쪽이 아닌 곳에 둔 유도에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이것은 공간 또는 진동 매개의 인공물(허상)을 감지하고 확인할 것이다. 머리 이외의 부위에 대한 그러한 감시 전극 가운데 가장 간단한 형태는 손등 위에 두 개의 유도를 두는 것으로, 심전도는 최소이거나 표시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요구하는 한 가지 조건은 근육의 움직임이 전혀 없어야 한다는 것이므로, 손등의 두 전극은 근육 인공물의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기구는 표준 게인(gains) 10uv/mm, 50uv/5mm로 작동되어야 한다. 또한 표준 게인의 두 배인 5uv/5mm, 25uv/5mm일 때 평탄하게 표시되어야 한다. 적어도 10분 동안은 계속해서 기록하여야 하며, 20분 동안 기록하면 더욱 좋다.

 

어떤 시점에서 게인을 짧은 시간(5초 내지 100초) 동안 완전히 증폭시켜 상태를 지켜볼 것이 권장된다. 보통 집중적인 치료 단위에서 화면에 허상이 나타날 것이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소음이나 꼬집는 데에 대해서 뇌파 반응이 없을 것이다.

 

그러한 데이터가 돌이킬 수 없는 뇌 손상의 지표로서 유효성을 가지려면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배제되어야 한다. 곧 저체온증(체온이 90℉[32.2℃] 이하)이 아니어야 하며, 바르비투르산염과 같은 중추 신경계에 대한 억제 약물 중독 상태가 아니어야 한다. 

 

[출처:미국 주교회의 ‘가톨릭 의료 시설들을 위한 윤리적 종교적 지침에 관한 자문 위원회’, “뇌사 판정을 위한 지침”, Hospital Progress, 1975년 12월, 26면.]

 

 

정리

 

‘죽음’과 ‘죽음의 순간’에 관련된 가톨릭 교회의 최초 언급은 1957년 11월 24일 멘델 연구소가 개최한 학술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모인 의사들에게 교황 비오 12세가 행한 담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죽어 가는 환자의 죽음과 죽음의 순간에 대한 분명하고도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확인하는 일은 의사들의 영역에 속하며 …… 그것은 교회의 권한 밖에 있는 문제”라고 언급함으로써 죽음의 순간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의사들에게 유보시켰다.

 

이렇게 볼 때 엄밀한 의미에서 의학적 죽음이라든가 장기 기증자의 죽음에 대한 확인 등을 위한 기준들을 정의하는 일은 윤리 신학자들의 임무는 아니다. 이러한 임무는 의학과 그 연구 기술 분야에 속한다. 이 점에 관해서 1985년 10월 21일부터 3일간 열린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가 주최한 생명의 인위적인 연장과 죽음의 정확한 순간 결정을 다룬 세미나에서 내린 죽음의 순간에 관한 정의는 죽음의 순간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견해를 조금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 세미나에서는 뇌사, 곧 뇌 기능의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정지를 증명할 수 있는 다양한 의학적 방법과 장치에 대해서 상세히 다루면서, “인간 신체의 정신적 및 육체적 기능을 조절하고 통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의 불가역적인 상실, 뇌의 전 기능의 불가역적인 정지가 죽음의 순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세미나에 참석했던 세그레시아(E. Sgreccia) 주교도 “수시간 동안 대뇌 피질의 활동뿐만 아니라 호흡이라든가 심폐 기능, 신경 반사 작용 등과 같은 신체 기능과 연결된 뇌의 중심적 활동이 불가역적으로 정지될 때 의학적으로 죽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사실 인간 개인에게는 비록 정신적 삶이 실제의 삶으로부터 방해받는다 하더라도 존재론적 행위만 있으면 살아 있다고 본다. 그러한 행위는 모든 생명적 기능, 생장 기능, 감각적 정신적 기능까지도 활발하게 만들어 주며, 지탱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적 생명이 존재하는 한 그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체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생명적 기능들이 그 기능을 멈추게 될 때, 육체적 인간 생명은 끝났다고 볼 수 있으며, 또한 영혼과 육신이 서로 분리된다고 볼 수 있다.” 곧 뇌의 생명력이 다함으로써 인간의 생명력이 다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세미나는 뇌사를 의학적 죽음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이 세미나에 참석한 의사들에게 행한 담화에서 “의사는 생명의 주인도 아니고, 또 죽음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죽음은 인간 생애의 불가피하고 필연적인 것이므로, 이를 피하는 방법으로만 치료를 이끌고 가서는 안 된다. 그 인간 조건에 따라 신중히 생각되고 처리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함으로써 뇌사를 죽음의 순간으로 인정하는 데에 이미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1995년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가 출판한 “의료인 헌장”(Charter for Health Care Workers)에서는 공식적으로 ‘뇌사를 의학적 죽음으로 인정’하면서, 거기에 따르는 장기 이식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의료인 헌장”은 뇌사와 관련된 장기 기증과 장기 이식이 “생명에 대한 봉사”일 때 그 도덕적 가치가 드러나며 또한 그러한 의료 관행이 정당화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나라 대한의학협회에서는 이미 1983년에 뇌사에 의한 사망 기준을 선포하였으며, 2000년 2월 9일부터는 공식적으로 뇌사의 입법화에 따른 장기 이식에 관한 법률이 공포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법률 시행에 따른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보다도 뇌사 판정에 있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서, 단지 장기 이식과 관련지어서 뇌사를 인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뇌사 판정을 할 때 한치의 오판도 있어서는 안 되는 고도의 정확성이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뇌사 판정에 대한 연구가 장기 이식을 쉽게 하기 위한 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 생명과 신체에 관한 성숙된 도덕적 의식이다. 뇌사가 장기 이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현실이라면 이러한 의식의 성숙을 위한 노력이 더 요구된다 하겠다.

 

어쨌든 뇌사를 죽음으로 판정하는 것은 장기 이식과 관련하여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한 생명으로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적인 희생과 사랑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뇌사에 따른 장기 이식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은 사랑의 장기 기증일 때만 가능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뇌사가 인정되어 장기 이식 수술로 타인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된다면 오히려 더 큰 위험과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어 장기 매매로 이어질 위험성이 너무나 크다고 하겠다.

 

실질적으로 죽음을 앞둔 많은 사람들이 장기 이식으로 생명을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의료 행위들이 인간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삶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고 그래서 인간 삶의 순리와 본질적인 가치를 잃어버리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끊임없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인간 삶의 참다운 가치와 본질을 가르치고, 생명 연장의 가치보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 더욱더 완전하고 큰 가치임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사목, 2002년 9월호, 이창영 엮음(본지 주간, 주교회의 사무차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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