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3월 11일(목)-사순 2 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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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2 주간 목요일
예레미야 17,5-10 루가 16,19-31 2004. 3. 11. 주제 : 내가 기대하고 사는 것은?
세상살이에서 효과적으로 살려면 믿을 것이 많습니다. 무엇이든지 믿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삶의 전제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믿으며 살아야하는지 손가락으로 계산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자고 하면, 여러분의 손가락으로는 무엇을 손꼽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먹는 물도 건강에 해가 되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서기 때문에 먹는 것이고,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어도 그 마음에 대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일반적인 일에 신앙에서 사용하는 '믿음'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것도 믿음의 하나인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다만 그 격이나 품위가 다르다는 것뿐이겠지요.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면서 내 삶이 다하고 나면 하느님에게서 적절하고도 합당한 삶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믿으며 지냅니다. 그 일에 대해 신학적인 용어로 설명하는 것이 교리의 내용이고, 우리 삶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신앙의 내용일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고 규정하는 것이야 잘못은 아니겠지만, 올바른 자세로 올바르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독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선언입니다.
어떤 모양으로 살든지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내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다하고 우리가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삶에 대해서 신앙이 가르쳐주는 대로 하느님의 축복에 참여하고 싶다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내 삶을 돌이켜야 합니다. 독서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뜻이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 것이냐, 아니면 인간의 뜻을 더 우선시하며 살 것’이냐의 차이입니다. 우리 삶을 판단하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면 그 분의 뜻을 올바로 찾아야 합니다.
자기가 벌어들인 재산을 자기 맘대로 쓴다고 우리 삶을 제재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재산역시도 그 사용방법이 다른 사람의 삶을 무시하는 것이라면 그 역시 올바른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뒤늦은 시간에 후회해서 일을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있고, 우리가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고해도 그 일이 번복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일도 분명 있습니다. 일의 모든 선택의 결과는 우리 삶의 모습에 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407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