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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광복 70년 분단 70년13: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와 그 열매 한마음 한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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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06 ㅣ No.731

[사진 속 역사의 현장 광복 70년 분단 70년] (13)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와 그 열매 ‘한마음 한몸 운동’


한마음 한몸 되어 성체대회 정신 나누다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는 한국 교회에 ‘한마음 한몸 운동’이라는 열매를 안겼다. 사진은 제대에서 분향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평화신문 자료사진


“세계성체대회에 온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진리에, 정의에, 평화에, 생명 자체에 목말라하는 모든 이와 함께 ‘생명의 빵’을 나누겠다는 그 결의를 새삼 다짐하고 있습니다.”

1989년 10월 8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65만여 명이 모여든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장엄 미사를 주례, 온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발표한다. 이로써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한 제44차 세계성체대회는 절정에 이르렀다.

‘한마음 한몸’ 운동 참여자들의 증언을 시작으로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성가 소리가 울려 퍼지는 십자가를 앞세운 사제단과 주교단이 입장하자 장내는 “비바 파파”를 외치는 환호로 가득 찼다.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며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축복을 빌며 제대에 오른 교황은 전 세계 108개국에서 온 주교단 200여 명과 사제 2000여 명과 함께 우리말로 미사를 집전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도 환영사를 통해 “분단과 차별, 지역감정 등 모든 분열을 넘어 우리 민족이 화해와 일치로 하나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축복해줄 것”을 교황께 청했다.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이 항아리에 헌미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제공


서울 세계성체대회 준비위원회는 이날 장엄 미사에 앞서 4일부터 7일까지를 평화ㆍ감사ㆍ회심ㆍ일치의 날로 정해 평화 대강연과 평화 기원 축제, 일치 기도회, 엠마우스 성시간, 젊은이 성찬제 등을 통해 ‘주님의 말씀따라’ ‘자기를 버리고’ ‘모두가 벗이 되어’ ‘온 누리에 참 평화를’ 선언했다.

이처럼 평화의 제전으로 열린 서울 세계성체대회의 열매는 뭘까? 바로 오늘에까지 28년째 신앙의 유산으로 남은 ‘한마음 한몸’ 운동이다. 그리스도께서 가르친 평화의 삶은 썩은 밀알의 삶이자 자기를 내어주는 삶이며, 모든 이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삶이고, 나눔의 삶이며, 이웃의 밥이 되어주는 삶이라는 신앙의 핵심이 실천으로 이어진 셈이다.

서울 세계성체대회 1년 전인 1988년 설립된 이 운동의 발의자는 세계성체대회 준비위원회에서 함께했던 강우일 주교와 장익 신부(후일 춘천교구장 주교)였다. 대회를 준비하며 신앙 실천의 필요성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안동교구장이던 두봉 주교는 1989년 2월 마산교구 강연에서 이 운동을 아주 쉽고 명료하게 설명했다. “성체를 모신 다음 주님과 함께 주님을 모시고 사는 신심이 바로 ‘한마음 한몸’ 신심이 아니겠습니까? 첫 단계는 예수님이 나와 ‘한마음 한몸’이 되고 둘째 단계는 모두가 ‘한마음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셨듯이 우리도 우리 살과 피를 이웃과 나눔으로써 그리스도를 본받자는 뜻으로 기획된 한마음한몸운동은 기도와 헌혈, 입양ㆍ결연, 헌미, 봉사 등 다섯 가지 실천방안을 제시했다. 성체대회가 끝난 뒤에도 한마음한몸운동은 계속됐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제44차 세계성체대회까지만 유지되는 한시적 조직이었지만, 성체대회를 3개월 앞두고 성체대회 이후 후속 조직과 활동, 헌미 기금 사용처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 전국본부는 해체되고 교구별 조직을 두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이에 서울대교구는 성체대회 직후 1989년 11월 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재출범했으며, 한마음한몸운동에 대한 성찰을 통해 환경보전부를 신설하고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 나아가 해외원조를 본격화했다. 1994년 6월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를 설립했으며, 1995년에는 생명운동부를 신설해 생명수호활동을 벌였다. 1995년에는 분단 50주년의 해를 맞아 민족화해위원회를 교회 내 공식기구로 발족시키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와 교육, 대북지원운동을 펼쳤다. 2003년에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자 장기기증운동 활성화에 나섰고, 헌미헌금운동을 새롭게 변화시켜 하루 100원 모으기 운동을 펼쳤다. 국제의료봉사단과 국제청년봉사단 ‘띠앗누리’의 활동, 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등도 특기할 만하다.

올해로 설립 27주년을 보내는 한마음 한몸 운동은 이제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의된 초기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에 적응하며 분야별 부서 신설을 통해 또다시 새로운 신앙실천의 문을 열어가고 있다. [평화신문, 2015년 12월 6일, 오세택 기자]

 

 

“국민운동으로 끌어올리지 못해 아쉬워”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초대 본부장 오태순 신부

 

 

“한마음 한몸 운동을 ‘국민운동’으로 끌어올리지 못한 게 무척 아쉽습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초대 본부장이었던 오태순(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27년이 지난 오늘, 가만히 돌아보면,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함께한 10년은 운동 이념과 정체성뿐 아니라 운동 체제와 실천방안을 자리매김한 시간이었다”며 “놀라운 업적을 이뤘지만, 여러 가지 아쉬움도 드러낸 10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저는 집 짓는 이들이 버린 쓸모없는 돌이었는데, 하느님께서는 저를 집 짓는 모퉁잇돌로 쓰려고 하셔서 이에 순명해 한마음한몸운동의 ‘모퉁잇돌’로 제 책임과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오 신부는 한마음한몸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마음한몸운동은 전통적으로 우리 교회에서 실천해온 단순한 이웃 사랑의 나눔 운동이 아니라 성체성사에서 연유된 운동입니다. 그러기에 세계성체대회와 성체성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그 성체 신심을 어떻게 생활화할지를 늘 생각하면서 시대적 징표와 요청에 따라 긍정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마음한몸운동을 환경 보전과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 대북 지원과 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설립, 생명 운동, 전 세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원조로 활동 분야를 넓혀온 것입니다.”

그는 한마음한몸운동이 성체성사의 생활화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운동 주체인 신자들과 운동의 장인 본당이 침체되고 운동 본부가 주체가 되고 있다는 점,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능동적이던 운동 형태가 사업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는 데 대해선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오 신부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건 전국 본부의 해체다. 1989년 세계성체대회 개최를 눈앞에 두고 질풍노도처럼 활동했던 전국 본부가 1년 만에 해체되면서 교구별 추진으로 결정이 났지만, 지금은 서울대교구를 제외하면 수원교구 한마음운동본부 등 일부 교구에만 남아 있어서다.

오 신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성체성사에 기반을 둔 한마음한몸운동의 영성을 모색하고 발견하고 정립하는 문제”라며 “이념과 조직, 운동 추진 방안에 혼을 불어넣는 영성은 이 운동이 단순한 사회사업이나 신심 운동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는 운동’이라는 신원을 확실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래야만 “성체 신심을 생활화하는 생활실천운동으로서 한마음한몸운동을 사회 복지와 차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평화신문, 2015년 12월 6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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