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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교와 번역: 한불자전과 19세기 조선의 종교 용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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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4-08 ㅣ No.829

선교와 번역 : 한불자전과 19세기 조선의 종교 용어들

 

 

그[종교] 현상들을 아우르는 우리 나름의 특정한 개념어는 어떤 것일까, 아니면 그러한 개념어가 도대체 우리의 문화 속에 있는가, 있다면 전승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개념어가 전승되고 있다면 그것이 그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해석하는 적합한 준거를 함축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언어의 역사적 변천을 추적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지금 여기에서 그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직면하는 그러한 현상을 지칭하기 위해 여전히 유효한가?1)

 

 

1. 타자 이론의 불편함

 

돌이켜 보니 가톨릭 선교사들에 관해서 지금껏 적지 않은 글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2) 주로 그들이 이러저러한 사람들이며, 이러저러한 일들을 하였고, 또 조선과 조선인, 나아가서 조선의 종교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는 사실들을 다루었다. 그러면서도 늘 무언가 불편하면서도 미진하다는 느낌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선교사라는 존재, 그리고 선교사와 조선의 관계를 자기-타자라는 틀 속에서 사고하는 일에 익숙해진 데서 오는 관성과 같은 것을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즉 조선의 입장에서 보자면 남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금단의 땅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벌이면서 조선을 자기 자신이면서 동시에 남인 존재로 묘사하는 사람들이 바로 선교사이므로, 그들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설명하려면 결국에 가서는 타자 이론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굳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개념만으로는 선교사의 사고방식을 설명하는 데 적절한 이론적 틀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담론 이론, 독일 일상사 이론, 로제 샤르티에(Roger Chartier)의 문화사 이론 등을 도입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어떻게 하더라도 타자 이론이 갖는 존재론적인 무게를 덜어 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유럽인의 입장에서 조선을 타자로 설정하고 묘사한 내용을 분석하건, 유럽인의 자의식을 유보하고 조선 내부의 타자로 들어가서 조선에 대한 토착적 관점을 획득하는 과정을 추적하건, 선교사와 조선을 자기와 타자의 관계로 바라보면 이미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자기와 타자로 고정되어 버려서 더 이상 생산적인 논의가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즉 사용하는 자료는 달라도 언제나 동일한 결론을 마치 판화를 찍어 내듯이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선교 주체와 선교 대상 사이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나아가서 서로 자리바꿈까지 지향할 수 있는, 무언가 공통의 토대를 발견하려는 작업은 타자 이론이 지닌 불편함을 극복하자는 취지와도 맞물리는 한편, 한국종교사 속에서 가톨릭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답변을 마련해 보고 싶다는 지적 포부와도 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말하자면 19세기까지 지속된 조선의 종교적 풍토와 새로 전래된 가톨릭교회가 만나고, 충돌하고, 그러면서도 혼효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압골이 형성되어 종래에는 볼 수 없었던 종교적 에토스가 싹트기 시작하였음을 입증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사와 조선의 만남에 대한 학문적 성찰은 타자 이론의 편향성을 넘어서야만 한다.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었던 왜곡된 인식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는 유용할지 몰라도, 그들의 인식과 활동이 지닌 문화적 함의를 종교사라는 거시적인 틀 속에서 위치 짓는 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선교사에 관한 연구에는 새로운 기획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초를 어디에서 발견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러다가 종교학자 조나단 스미스(Jonathan Z. Smith)의 글을 읽으면서 일종의 돌파구가 될 만한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는 이것에 나름대로 ‘타자에서 차이와 번역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일단 그의 언명을 청취해 보자.

 

타자(other)라는 말은 인류학적 구별보다는 존재론적 간극을 제시함으로써 언제나 오해만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차이(difference)라는 말이 훨씬 더 낫다. 타자가 절대적인 것인 반면에, 차이는 관계적이며(relational) 상대적인(relative) 개념이다. 타자성(otherness)은 언어화와 개념화를 가로막는다. 하지만 차이는 협상(negotiation)과 지적 작용(intellection)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차이는 활동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차이의 동사 형태(differre)는 바라보는 지점을 달리 하면 ‘같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을 떼어놓는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타자’는 동사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아마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멀리하다, 따돌리다, 불화케하다’(alienate)라는 동사가 있는데, 대개 활기가 없는 수동적인 어조로 들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차이가 더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할 만큼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다.3)

 

종교적 타자에 대한 논의는 현재 종교학 연구에서 자주 다루는 분야이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망라하여 그리스도교가 비서구 지역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종교 현상들을 연구하는가 하면, 중세 유럽에서 벌어진 종교재판을 종교적 타자 만들기라는 틀로 설명하기도 한다. 아예 시계 바늘을 한참 되돌려서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발생한 종교변동 속에서 타자성의 원초적인 모습을 확인하려는 연구 경향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인용한 글의 저자 조나단 스미스는 타자라는 개념 범주를 존재론적인 방향으로 사용하게 되면 ‘우리’와 ‘그들’의 거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고정시켜서 생산적인 논의를 차단할 우려가 있다고 보는 듯하다. 사실 타자 이론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전혀 무관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의 만남이 아니다. 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비슷해서 혼동할 우려가 있는 이질성과의 만남이다. 말하자면 선교사의 눈을 사로잡고 무언가 설명할 말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은 자기와 뒤섞일 위험을 안고 있는 타자라고 하겠다. 이런 인식에 기초하여 조나단 스미스는 존재론적인 타자 개념보다는 인식론적인 차이 개념을 더 중시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차이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차이란 완전히 극복될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하면서 이 차이가 낳는 간극을 좁히기 위한 문화적 실천을 번역이라는 말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조나단 스미스에게 번역이란 어떤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이행하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종교현상을 설명하는 해석의 패러다임이기도 하고, 종교학이라는 학문의 실천적 지향이라 말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그의 주장을 되새겨 보자.

 

인간의 차별이라는 이슈는 신체 수준에서 더 많이 관찰한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라, 지성적인 종류의 이론에 의해서 해결될 것이라고 대답해야 한다. 차이를 배제하는 분류에 의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차이의 비교 구조에 의해서 해결된다. 문화의 수준에서 보자면 중재 역할을 하는 담론의 사려 깊은 계획, 즉 번역이라는 기획에 의해서 해결된다. 문화들 사이에서건 문화 내부에서건, 번역은 결코 충분히 충족될 수 없으며 늘 불일치가 있기 마련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번역(traduttori)은 반역(traditori)이다. 그러므로 번역과 관련한 모든 계획에서 핵심적인 것은 적합성(appropriateness) 내지는 ‘알맞음’(fit)에 관한 문제들이다. 이것은 비교와 비평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이중적 방법론의 요청으로 표현될 수 있다. …여기에 내가 추가하고 싶은 말은 언어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화에서도 의미를 생성시키는 것은 차이라는 것이다. 아메리카의 발견과 관련된 새로운 경험은 서구인들에게 최초로 강력한 차이의 언어를 가져다주었고, 그럼으로써 본질이 우연을 통해서 관철된다는 식의 낡은 종합 이론을 부수어 버렸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이 새로운 언어에 적합한 강제력 있는 문화 이론과 비교 이론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발진시켜야 한다. 오늘날 이것은 인간 과학에서 아직 완수되지 않은 도전이다.4)

 

조나단 스미스의 주장을 전체적으로 간추려서 풀어 쓰면 이렇다. 차이에 대한 인식은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하여 새로운 언어를 낳게 되고, 그리고 이 새로운 언어 속에서 번역은 의미를 생성하는 중요한 실천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서구 종교사 및 지성사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주제인 ‘서구에 의한 비서구의 타자화’라는 현상을 직시하되, 좀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기 위해서는 자기와 타자라는 서로 절연된 고정 불변의 범주를 재구성하여 차이에 대한 인식과 이러한 인식이 낳게 되는 번역 행위의 문제로 사고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확장한다면 서구 종교가 비서구 종교의 이질성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다름을 언어화한 역사는 서구종교학이 비서구 종교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다양한 개념적 도구들의 역사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미 한물간 것으로 치부되기는 하지만 애니미즘, 토테미즘, 마나이즘 혹은 페티시즘 등과 같이 고전 종교학의 이론적 도구로 간주되었던 개념 장치들 역시 인식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조나단 스미스가 말하는 번역의 기획이란 종교적 타자와의 만남에서 비롯한 차이에 대한 인식의 역사를 기록함과 동시에 종교학이 신학이나 민족지학, 인류학 등을 통해서 무분별하게 흡수하여 사용하였던 학문적 개념어들의 생성과 변형, 수용과 배제의 역사를 성찰하는 일까지 망라한다.

 

다시 조선 가톨릭교회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사실 가톨릭 선교사가 사명으로 삼는 것 역시 자신들의 언어로 된 종교적 가치를 해당 지방의 언어로 옮겨서 전파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선교사는 라틴어 혹은 불어로 되어 있던 교회의 가르침을 한문 또는 한글로 옮겨서 복음의 본래 의미를 전달하고자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러자면 자연히 해당 서구어에 대응하는, 또는 서구어의 의미를 담은 번역어를 선택하거나 새로 만들어 내는 지적 작업을 펼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선교사들은 선교 지역의 문화와 종교를 관찰하면서 자기 종교와의 다름을 발견하고 이것을 차이의 언어로 드러내었을 것이다. 차이의 언어가 조선을 타자화하는 효과를 수반하였겠지만, 이와 더불어 조선이라는 타자를 언어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묘사하고 설명하는 번역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가톨릭 선교사의 활동에서 자신의 언어를 상대편 언어로 옮기는 작업, 그리고 상대편 문화나 종교를 자신의 언어로 다시 전유하는 해석의 작업에 주목하는 것은 조선과 가톨릭교회의 만남을 문화사 내지 종교사 속에서 재서술하려는 시도로 평가해도 좋지 않을까 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현재 한국종교학은 가톨릭 선교사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진출한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이 남겨 놓은 지적 유산을 이어받고 있다. 즉 한국종교와 종교 일반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많은 개념어들의 연원을 찾아 올라간다면 기필코 가톨릭 선교사들이 수행한 번역작업과 만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지금까지 부족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종교학이 자신의 학문적 개념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학문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요인이 된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현재 한국종교학이 사용하고 있는 개념들은 19세기 중엽까지 지속된 조선의 토착적 종교 상황을 반영한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이것은 ‘종교’(宗敎)라는 용어 자체가 일본을 통해서 도입된 번역어라는 사실이 잘 말해 주고 있다. 나아가서 종교의 하위 범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성, 신앙, 숭배, 교리, 경전, 의례, 신화, 교회, 교파, 금기, 주술과 같은 용어들 역시 나름대로 생성과 변화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처음부터 자명한 학문적 개념어로 출발한 용어들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이 용어들의 변천사를 추적하다 보면 현재 한국종교학이 무비판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종교적 사유의 패러다임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한국종교학이 기대고 있는 패러다임이 조선과 가톨릭이 만나던 시기에 발생했던 차이에 대한 인식과 그 언어화 과정에서 빚어졌던 번역이라는 문화적 실천의 역사를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면서 성립한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흔히 근대성이라 일컫는 사유의 수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논의들이 확인해 준 것처럼, 개항 이후 밀어닥친 서구 근대성의 수용은 유일무이한 대안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들 가운데 하나가 우월한 지위를 형성하면서 굳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처음부터 단일한 방향을 전제하고 기획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우연 속에서 관철된 벡터적인 방향성만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유사하게 한국종교학이 무반성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종교에 대한 사유방식 역시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특정한 갈래가 정착되면서 다른 갈래들을 배제하는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서론이 장황하다는 것은 문제의식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반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좌우간 가톨릭 선교사 연구에서 타자 이론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새로운 연구 과제 또는 이론화의 방향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별히 차이를 언어화함으로써 자기-타자의 거리감을 줄이려는 문화적 실천으로서 선교사들의 번역 행위에 주목하고, 그러한 활동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반의 언어적인 현상들(기존 언어의 오용과 오해, 수용과 의미 전환, 신조어의 생성 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탐구하는 작업을 제안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선교사들이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교라는 언어적 세계와 피선교지 문화가 담겨 있던 토착 언어의 세계가 만나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닮아가는 모습을 그려내기에 적절한 방법론적 지침이 담겨있다고 본다.

 

이하의 본론에서 진행될 논의는 가톨릭 선교사의 번역 행위에 대한 연구의 시발점을 그들이 편찬한 사전에서 찾고자 한다. 리델 주교가 작업을 진두지휘하여 1880년에 발간한 한불자전을 일차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5)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페롱 신부를 주저자로 한 수고본 불한사전도 참고하였다. 사실 사전이라는 저작물은 표제어와 간단한 정의부(定義部)의 기술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선교사들의 관념 세계 전체를 들여다보기에는 불충분한 점이 많다. 하지만 당시 통용되던 조선어 낱말들을 27,000여 개에 이를 정도의 방대한 양으로 수집하였다는 점, 그리고 여기에 일일이 선교사 자신의 설명을 불어로 첨부한 이중어 사전을 만들었다는 점 등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닌다고 하겠다.

 

앞으로 연구가 더 진전된다면 가톨릭 선교사들이 펴낸 각종 교리서, 기도서 및 기타 교회 서적들을 통해서 그들의 관념과 언어의 세계에서 출현하였던 차이에 대한 인식과 번역을 통한 가교 놓기 등을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도 그들이 발간한 이중어 사전에 대한 연구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선교사들이 교리서나 기도서를 번역 또는 편술하여 간행할 때에 사용한 조선어 낱말들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초보적인 작업조차도 그들이 발간한 사전을 참고하는 데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한불자전 자체에 대해서는 여러 편의 연구 성과들이 제출된 바 있다.6) 하지만 대부분 편찬 경위나 사전 자체의 거시구조에 대한 연구에 치중하는 편이다.7) 게다가 수록된 표제어와 정의항의 설명 내용에 대한 분석적 작업은 아직 미진한 편이다.8)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한불자전을 대상으로 삼는 연구들이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이 글은 특별히 한불자전의 표제어 가운데 종교 관련 항목들에 주목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의 자의식과 조선 문화의 이질성에 대한 차이 인식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바로 종교 관련 항목들이기 때문이다.

 

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한불자전 전체를 통독하면서 추출한 종교 관련 표제어는 1,000여 개에 이른다.9) 일단 이 항목들을 모두 나열한 다음에 유사성과 연관성을 토대로 하여 범주화를 시도하였는데 차이와 번역의 논리에 입각하여 세 가지의 범주를 설정하였다. 첫째 범주는 자기 진술의 언어이다. 즉 가톨릭 용어를 표제어로 삼고 이에 대한 설명 또는 상응하는 불어 명칭을 병기한 낱말들을 이 범주에 할당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자기진술의 언어는 동어반복의 언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원천이 조선어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서구어로 이루어진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 본래 서구어로 확정되어 있었던 가톨릭 용어를 중국교회에서 한자어로 번역하였거나, 혹은 조선교회에서 독자적으로 번역한 것을 다시 표제어로 내세운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범주에 해당하는 용어들은 서구어 → 한자어 → 조선어 → 서구어의 순환회로를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동어반복의 언어라고 지칭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범주는 타자 기술의 언어이다. 즉 조선의 여러 종교들과 관련된 용어들이나, 가톨릭에서 신학적 타자로 설정하는 대상을 지칭하는 용어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표제어들에 부기된 정의부의 내용들은 단순한 용어 정의에 그친 경우도 있지만, 간혹 해당 종교 현상에 대한 묘사를 담을 때도 있다. 그래서 타자 진술의 언어는 해석적 언어이기도 하다. 물론 일방적인 비하나 매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건 조선의 종교를 대하면서 형성한 차이의 감각을 언어적인 형태로 표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문제는 이 범주에 속한 언어들 가운데 독특한 해석이나 기술을 담는 경우가 있다면, 이러한 현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셋째 범주와 연결된다.

 

셋째 범주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표제어들을 선발한 것이 아니다. 둘째 범주인 타자 기술의 언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즉 첫째 범주가 자기의 영역이라면, 둘째 범주는 타자의 영역이라할 수 있다. 그런데 한불자전의 종교 관련 용어들을 추출하면서 두 범주 모두에 포괄적으로 걸쳐 있거나, 혹은 어느 범주에도 포함시키기 어려운 용어군을 접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용어들에서 자기와 타자가 혼효를 일으키면서 상위의 언어, 유적 범주의 언어를 배태하는 징후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의 언어인지 타자의 언어인지 불분명한 영역의 용어들을 셋째 범주로 묶어서 자타혼효의 언어로 다루고자 하였다.

 

이제 이들 세 범주의 언어들을 차례대로 소개하면서 가톨릭 선교사의 의식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음 직한 언어와 사유의 대위법적 상승작용을 그려 보도록 하겠다. 본격적인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서 가톨릭 선교사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수집하였던 조선어 낱말들이 활자의 몸을 얻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을 생각하면서 약간 치기어린 감회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긴 서론의 끝을 옛사람의 본을 따서 간단한 격언 한 토막으로 장식할까 한다. “잘생긴 용모는 운명의 덕택이지만 읽고 쓰는 능력은 자연이 갖춰 주는 것이다.”10)

 

 

2. 자기 진술 또는 동어반복의 언어들

 

한불자전에 수록된 종교 용어들 가운데 명백하게 교회 용어로 명기되어 있거나, 정의부에 서술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조선 가톨릭교회에서 고유한 용어법으로 사용하였다고 간주할 수 있는 용어들을 가톨릭 어휘로 추출하면 대략 438개 정도의 표제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한불자전의 종교 관련어들이 대부분 가톨릭 용어들일 것이라고 추측하겠지만 실제로는 절반 정도에 머무는 셈이다. 이 용어들을 조금 더 세분하면 교회조직이나 제도에 관련한 것, 미사 및 기타 가톨릭 전례에서 사용되는 것, 그리고 그 밖에 포괄적인 의미에서 교리적인 내용을 담은 것들로 나눌 수 있겠다. 가톨릭 어휘를 다시 세분한 이유는 당시 가톨릭교회 안팎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 각각에 대해서 살펴보자.

 

1) 교계용어

 

감목(監牧)(125) ; 고교(古敎)(185) ; 고수(苦修)(195) ; 고수원 회장(苦修院 會長)(195) ; 고수원(苦修院)(195) ; 공소(公所)(190) ; 공회(公會)(188) ; 교우(敎友)(198) ; 교종(敎宗)(199) ; 교중(敎中)(199) ; 교화황(敎化皇)(198) ; 구교(舊敎)(204) ; 구마품(驅魔品)(205) ; 당가(當家)(457) ; 대녀(代女)(464) ; 대모(代母)(464) ; 대부(代父)(465) ; 대자(代子)(466) ; 도회장(都會長)(485) ; 득승지회(得勝之會)(477) ; 복사(服事)(332) ; 복사(服事)하다(332) ; 부제(副祭)(350) ; 부주교(副主敎)(350) ; 사교(司敎)(389) ; 사탁(司鐸)(391) ; 성교(聖敎)(402) ; 성교회(聖敎會)(403) ; 성당직이[聖堂直](404) ; 성품(聖品)(403) ; 성회(聖會)(402) ; 수고지회(受苦之會)(440) ; 수녀(修女)(441) ; 수련지회(受煉之會)(444) ; 수사(修士)(445) ; 수원(修院)(439) ; 신교(新敎)(418) ; 신문교(新問敎)(419) ; 신부(神父)(419) ; 신사(神師)(420) ; 신자(神子)(420) ; 신전지회(神戰之會)(420) ; 신친(神親)(421) ; 신품(神品)(419) ; 실교우(實敎友)(422) ; 여교우(女敎友)(276) ; 여복사(女服事)(280) ; 열입성품(列入聖品)하다(280) ; 영승지회(永勝之會)(29) ; 조당(阻?)(574) ; 종도(宗徒)(572) ; 주교(主敎)(582) ; 차부제(次副祭)(593) ; 탁덕(鐸德)(506) ; 허원(許願)하다(88) ; 회(會)(106) ; 회우(會友)(106) ; 회장(會長)(108)

 

위에서 나열한 용어들을 일별하면 교황을 교종 또는 교화황이라 불렀다는 점, 대목구장인 감목 아래에 부주교가 있고, 사제를 가리키는 용어로는 사탁, 신부, 탁덕 등이 주로 쓰였다는 점, 그리고 도회장과 회장을 구분하여 사용하였다는 점 등이 눈에 띈다. 그리고 교회 구성원들에 대한 여러 가지 지칭어들이 혼용되고 있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오늘날의 교회 용어법과는 다른 용어 사용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오늘날 일반 사회의 용어법에서 구교(舊敎)와 신교(新敎)라고 하면 대체로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를 지칭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불자전에 기재된 구교는 가톨릭교회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용어 설명을 보면 “옛 교우, 오래 전부터 교우였던 자”로 되어 있어서 이른바 ‘구교(舊敎) 집안’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교는 가톨릭교회를 말하며, 이와 대비되는 말로서 고교가 있는데 이는 모세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교를 일컫는 말이었다.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아직 조선에 수도회가 진출하기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수도원, 수도원장, 수도자 등에 해당하는 용어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조선 내에서는 박해 상황으로 말미암아 신학교 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구마품, 차부제, 부제 등 신품에 관련한 일부 용어들이 나타난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보자면 당시 중국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그대로 가져온 경우가 상당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게다가 당시 조선의 가톨릭교회가 대목구 체제였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교계제도에 관한 용어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교황청, 관구, 교구, 대교구, 대목구, 지목구, 본당, 추기경, 대주교, 보좌주교, 주임신부, 보좌신부 등 가톨릭 교계용어들이 많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러한 용어들은 1917년에 공포된 비오-베네딕도 교회법전의 용어들이 조선 가톨릭교회에 도입된 뒤에 서서히 정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29년에 가면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칭호들을 요약 정리하여 신자들에게 보급하는 일이 생긴다.11) 하지만 한불자전이 나오던 당시까지는 대목구 체제 하에서 요긴한 교계용어들만을 번역하여 사용하였던 것 같다.

 

2) 전례용어

 

개두보(蓋頭?)(121) ; 개두포(蓋頭袍)(121) ; 개재(開齋)하다(121) ; 거양하다 성체거양(141) ; 건립성체(建立聖體)(145) ; 견진(堅振)(154) ; 경덕경(敬德經)(157) ; 경문(經文)(155) ; 경본(經本)(156) ; 경판(經板)(156) ; 경패(經牌)(156) ; 고대(苦帶)(195) ; 고명(告明)(186) ; 고명(告明)하다(186) ; 고상(苦像)(194) ; 고죄(告罪)하다(197) ; 고죄경(告罪經)(197) ; 고해(告解)(184) ; 공과(功課)(189) ; 공심재(空心齋)(190) ; 권도(權道)(200) ; 기관례(起棺禮)(161) ; 기도(祈禱)하다(162) ; 대세(代洗)하다(465) ; 대송(代誦)하다(465) ; 대재(大齋)(452) ; 덕서도문(德敍禱文)(469) ; 도문(禱文)(487) ; 동계소재(冬季小齋)(489) ; 만과(晩課)(219) ; 매괴(??)(228) ; 매괴경(??經)(228) ; 면병(?餠)(234) ; 면주(?酒)(234) ; 모고해(冒告解)하다(242) ; 모령(冒領)하다(246) ; 묵주(默珠)(237) ; 미사[彌撒](240) ; 방사(放赦)하다(303) ; 범재(犯齋)하다(314) ; 변체(變體)하다(320) ; 보례(補禮)하다(336) ; 보속(補贖)(337) ; 보속(補贖)하다(337) ; 봉성체(奉聖體)하다(335) ; 봉재(封齋)(335) ; 부첨례(副瞻禮)(350) ; 사계재(四季齋)(389) ; 사백주일(?白主日)(375) ; 사죄경(赦罪經)(385) ; 삼종(三鐘)(371) ; 상본(像本)(382) ; 성납(聖蠟)(403) ; 성낭(聖囊)(403) ; 성대(聖帶)(404) ; 성대(聖臺)(404) ; 성로선공(聖路善功)(403) ; 성명(聖名)(403) ; 성모경(聖母經)(403) ; 성물(聖物)(403) ; 성반(聖盤)(403) ; 성보(聖褓)(403) ; 성상(聖像)(404) ; 성석(聖石)(404) ; 성세(聖洗)(404) ; 성수(聖水)(404) ; 성수채[聖水鞭](404) ; 성유(聖油)(401) ; 성작(聖爵)(404) ; 성작보(聖爵褓)(404) ; 성지주일(聖枝主日)(405) ; 성체(聖體)(404) ; 성촉(聖燭)(405) ; 성판(聖板)(403) ; 성패(聖牌)(403) ; 성포(聖布)(403) ; 성혈(聖血)(402) ; 세(洗)(393) ; 소백의(小白衣)(434) ; 소백장의(小白長衣)(434) ; 소재(小齋)(436) ; 소회죄경(小悔罪經)(431) ; 송경(誦經)하다(434) ; 수세(受洗)하다(445) ; 수재(守齋)하다(447) ; 수할손례(受割損禮)(439) ; 신공(神功)(418) ; 십사처(十四處)(422) ; 십이단(十二端)(421) ; 연미사(煉彌撒)(278) ; 염경(念經)하다(277) ; 영경(鈴經)(279) ; 영경자(鈴經者)(279) ; 영광경(榮光經)(29) ; 영복경(榮福經)(29) ; 영성체(領聖體)하다(280) ; 영세(領洗)하다(279) ; 영정첨례(永定瞻禮)(29) ; 장궤(長?)하다(533) ; 장림(將臨)(534) ; 장림수주일(將臨首主日)(534) ; 장백의(長白衣)(533) ; 재계(齋戒)(537) ; 재극(齋克)(537) ; 재소(齋素)(538) ; 재일(齋日)(536) ; 전사(全赦)(547) ; 제대(祭臺)(544) ; 제병(祭餠)(543) ; 제성첨례(諸聖瞻禮)(554) ; 조과(早課)(570) ; 조만과(早晩課)(570) ; 종도신경(宗徒信經)(572) ; 종부(終傅)(576) ; 주모경(主母經)(583) ; 주수병(酒水甁)(588) ; 주일(主日)(582) ; 찰고(察考)하다(593) ; 참례(參禮)하다(591) ; 창미사(唱彌撒)(594) ; 천주경(天主經)(514) ; 첨례(瞻禮)(596) ; 총고해(?告解)(606) ; 축문(祝文)(611) ; 축성(祝聖)하다(611) ; 춘계소재(春季小齋)(611) ; 취결례(取潔禮)(610) ; 칠성사(七聖事)(604) ; 통경(通經)하다(518) ; 판공(判功)하다(352) ; 판공주다[許判功](352) ; 판신공(判神功)(352) ; 할손례(割損禮)(80) ; 해죄경(解罪經)(86) ; 헌당첨례(獻堂瞻禮)(90) ; 헌작(獻酌)(90) ; 혼배보례(婚配補禮)(110) ; 활동첨례(活動瞻禮)(104) ; 회죄경(悔罪經)(108)

 

이상의 낱말들은 가톨릭 전례에 관련한 용어들로 골라서 뽑은 것들이다. 이 가운데에는 개두포, 성체거양, 견진, 공심재, 묵주, 미사, 보속, 삼종, 영성체, 판공 등 현재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을 상당수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의미는 그대로 두고 낱말만 바꾼 경우(고명, 도문, 매괴, 봉재, 활동첨례)도 있고, 또 전례 자체의 개혁에 따라서 사라진 용어들도 많이 있다. 특히 트리덴틴 전례에 따른 성물, 제구, 제대 차림, 제의의 명칭들에는 전례 개혁에 따라서 현재 사용되지 않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용어들이 언제까지 사용되었는지, 중간에 변경된 용어는 없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리라고 본다.

 

이에 관해서는 《경향잡지》 671호(1929년 10월 15일)부터 674호(1929년 11월 30일)까지 ‘명사’라는 항목으로 연재된 용어 정리를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성물 이름으로 성작, 성반, 성체합, 월형성합, 봉성체합, 성광, 성유합, 성척잔, 주수병 등 미사 제구 명칭 15개, 성당과 성소 명칭 19개, 영대, 예절영대, 수대, 장백의 등 제의 관련 명칭 35개, 경본과 경판, 초, 촛대 등 기타 전례 명칭 11개가 소개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한불자전에 나오는 전례 관련 용어들이 후대에 가서 더 상세하게 분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불자전에 실린 가톨릭 전례 관련 낱말들 가운데 ‘권도’라는 용어가 독특하다. 이 말은 “(견진을 베푸는 사제에게 주어진) 위임, 위탁, 특별 허가”를 뜻한다. 말하자면 주교만이 행할 수 있는 성사인 견진성사를 선교지의 특수 상황에서 일반 선교사가 대신 행할 수 있도록 위임된 권한을 가리킨다. 즉 오늘날의 용어법으로 말하자면 ‘특별권한’이다. 원래 권도란 유학자들이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에서 적절하게 대처하는 재량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저울 한쪽에 추를 올려놓고 균형을 잡듯이 상황에 맞게 대응하는 것을 나타내며, 원론적으로는 유교의 이상적인 행위 규범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특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말한다. 그런데 한불자전에서는 권도의 원래 말뜻을 새겨서 이것을 교회용어로 옮겨서 사용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처럼 선교사들의 관념과 언어 세계는 동아시아 토착 언어의 영역과 완전히 절연되어 있지 않았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교차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징표들이 불현 듯 튀어나오기도 한다. 기도서를 경문이라 번역하고, 미사 통상문을 경본, 식사 전후 기도를 축문이라고 번역한 것 역시 그러한 사고의 연장선 위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3) 기타 교리용어

 

각혼(覺魂)(122) ; 간구(懇求)하다(127, 140) ; 강론(講論)하다(130) ; 강림(降臨)하시다(130) ; 강복(降福)하다(130) ; 강생(降生)하다(130) ; 강잉(降孕)하시다(129) ; 경교비(景敎碑)(155) ; 경언(經言)(154) ; 계(誡) 십계(150) ; 계명(誡命)(151) ; 고경(古經)(185) ; 고공(苦功)(185) ; 고성(古聖)(195) ; 고성소(古聖所)(195) ; 공경(恭敬)하다(189) ; 공심판(公審判)(190) ; 교강(敎綱)(198) ; 구령(救?)하다(210) ; 구마(驅魔)하다(205) ; 구사(驅邪)하다(211) ; 구세(救世)하시다(211) ; 구세자(救世者)(211) ; 구세주(救世主)(211) ; 구속(救贖)하다(212) ; 그리스당[基利斯當](171) ; 그리스도[基利斯督](171) ; 냉담(冷淡)하다(272) ; 농리편(農理篇)(289) ; 당옥(堂獄)(457) ; 대부(大父)(450) ; 대사(大赦)(451) ; 대월(對越)하다(464) ; 대천신(大天神)(452) ; 두겁조상(頭匣祖上)(501) ; 등천(登天)하다(479) ; 림보[臨簿](284) ; 막비주명(莫非主命)(217) ; 만나[瑪納](219) ; 만복(萬福)(219) ; 만선(萬善)(220) ; 망덕(望德)(222) ; 모병(毛病)(246) ; 몰약(沒藥)(246) ; 몽소승천(蒙召昇天)(246) ; 무염원죄(無染原罪)(249) ; 묵도(默導)(237) ; 묵도(默禱)하다(237) ; 묵상(默想)하다(237) ; 묵상신공(默想神功)(237) ; 묵상지장(默想指掌)(237) ; 묵시(默示)하다(237) ; 묵조(默照)(237) ; 묵존(默存)하다(237) ; 문교(聞敎)하다(253) ; 반교(叛敎)하다(299) ; 배교(背敎)하다(309) ; 백부장(百夫長)(310) ; 보수(補修)하다(337) ; 복음(福音)(331) ; 복지(福地)(332) ; 본명(本名)(333) ; 본죄(本罪)(334) ; 봉교(奉敎)(334) ; 부활(復活)(339) ; 부활(復活)하다(339) ; 분심(分心)하다(342) ; 분심잡념(分心雜念)(342) ; 사교(邪敎)(380) ; 사규(四規)(389) ; 사말(四末)(389) ; 사성사(四聖史)(391) ; 사심판(私審判)(391) ; 사죄(赦罪)하다(385) ; 사죄지은(赦罪之恩)(385) ; 사추덕(四樞德)(392) ; 사학(邪學)(380) ; 삼구(三仇)(370) ; 삼덕(三德)(371) ; 삼덕송(三德誦)(371) ; 삼왕내조(三王來朝)(369) ; 삼위일체(三位一體)(369) ; 상등통회(上等痛悔)(383) ; 상주(上主)(384) ; 생혼(生魂)(386) ; 서교(書敎)(397) ; 서악(西惡)(393) ; 서학(西學)(396) ; 선종(善終)하다(401) ; 선지(先知)(401) ; 선지(先知)하다(401) ; 선지자(先知者)(401) ; 성가(聖歌)(402) ; 성가(聖架)(402) ; 성경(聖經)(402) ; 성공(聖功)(402) ; 성광(聖光)(402) ; 성교(性敎)(403) ; 성구(聖軀)(403) ; 성규(聖規)(403) ; 성녀(聖女)(403) ; 성당(聖堂)(404) ; 성두(聖?)(404) ; 성모(聖母)(403) ; 성부(聖父)(403) ; 성사(聖史)(404) ; 성사(聖事)(404) ; 성사적(聖事蹟)(404) ; 성삼(聖三)(404) ; 성서(聖書)(404) ; 성신(聖神)(404) ; 성신강림(聖神降臨)(404) ; 성심(聖心)(404) ; 성영(聖?)(401) ; 성영(聖詠)(401) ; 성우(聖佑)(401) ; 성의(聖衣)(401) ; 성인(聖人)(401) ; 성자(聖子)(404) ; 성적(聖蹟)(404) ; 성전(聖傳)(404) ; 성전(聖典)(404) ; 성전(聖殿)(404) ; 성지(聖地)(404) ; 성지(聖枝)(405) ; 성총(聖寵)(405) ; 성탄(聖誕)(404) ; 성해(聖骸)(402) ; 성호(聖號)(402) ; 성회(聖灰)(402) ; 세자(洗者)(395) ; 수진(袖珍)(447) ; 승천(升天)(411) ; 승천(升天)하다(411) ; 신경(信經)(418) ; 신교(新敎)(418) ; 신량(神糧)(419) ; 신력(神力)(419) ; 신령(神領)하다(419) ; 신망애삼덕송(信望愛三德誦)(419) ; 신명초행(神命初行)(419) ; 신은(神恩)(417) ; 심판(審判)(416) ; 십계(十戒)(421) ; 십일조(十一條)(421) ; 십자가(十字架)(422) ; 안지그리스도(7) ; 애긍(哀矜)(16) ; 양학(洋學)(13) ; 연령(煉靈)(278) ; 연옥(煉獄)(277) ; 연죄(煉罪)(279) ; 열세(熱洗)(30, 281) ; 영벌(永罰)(29) ; 영복(永福)(29) ; 영성(靈性)(280) ; 영신(靈神)(280) ; 영적(靈迹)(280) ; 예수[耶蘇](26) ; 요리문답(要理問答)(61) ; 원조(原祖)(63) ; 원죄(原罪)(63) ; 유다스[茹答斯](74) ; 은수(隱修)(35) ; 은총(恩寵)(35) ; 인호(印號)(39) ; 입교(入敎)하다(41) ; 자헌(自獻)하다(539) ; 잠벌(暫罰)(525) ; 재제(才齊)하다(538) ; 전교(傳敎)하다(547) ; 전구(轉求)(547) ; 전구(轉求)하다(474, 547) ; 전지(全知)하다(548) ; 제성영해치명(諸聖?孩致命)(554) ; 제성통공(諸聖通功)(554) ; 조물(造物)하다(570) ; 조물주(造物主)(571) ; 조배(朝拜)하다(498) ; 조찰하다[潔淨](574) ; 조화(造化)하다(498) ; 죄종(罪宗)(570) ; 주당(主堂)(588) ; 주명(主命)(583) ; 주모(主母)(583) ; 주보(主保)(586) ; 주성(主性)(587) ; 주은(主恩)(582) ; 주훈(主訓)(582) ; 지옥(地獄)(482) ; 지의용절(知義勇節(558) ; 진교(眞敎)(562) ; 진교(進敎)하다(562) ; 진복(眞福)(563) ; 진복팔단(眞福八端)(563) ; 찬류(竄流)(591) ; 찬미(讚美)하다(591) ; 찬송(讚誦)하다(591) ; 찬양(讚揚)하다(591) ; 척사문(擲邪文)(596) ; 척죄정규(滌罪正規)(512) ; 천국(天國)(513) ; 천당(天堂)(513) ; 천로(天路)(513) ; 천명(天命)(513) ; 천신(天神)(513) ; 천신구품(天神九品)(513) ; 천주(天主)(513) ; 천주성(天主性)(514) ; 천주악(天主惡)(513) ; 천주학(天主學)(514) ; 천주학문(天主學文)(514) ; 초성(超性)하다(609) ; 총령천신(?領天神)(606) ; 추덕(樞德)(615) ; 추사이망(追思已亡)(614) ; 치명(致命)하다(601) ; 친구(親口)하다(602) ; 칠극(七克)(603) ; 칠죄종(七罪宗)(604) ; 통고(痛苦)하다(518) ; 통공(通功)하다(518) ; 통화색(通貨色)하다(518) ; 통회(痛悔)(518) ; 통회(痛悔)하다(518) ; 특은(特恩)(515) ; 파공(罷工)하다(351) ; 패수(?羞)하다(351) ; 편태(鞭笞)(359) ; 피정(避靜)하다(362) ; 하등통회(下等痛悔)(81) ; 해죄(解罪)하다(86) ; 향주(向主)하다(82) ; 헌병(獻餠)(90) ; 현성용(顯聖容)(93) ; 혈세(血洗)(95) ; 호수천신(護守天神)(114) ; 회개(悔改)하다(106) ; 회과자책(悔過自責)하다(106) ; 회두(回頭)하다(108) ; 흠숭(欽崇)하다(97)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이 담긴 교리용어들과 기타 가톨릭 용어들을 한데 묶어서 이상과 같이 분류하였다. 여기에는 교계용어라 분류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전례용어라고 볼 수도 없는 다양한 낱말들이 포괄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낱말 묶음에서 특별한 경향성을 발견하거나 두드러진 특성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리스도, 예수, 유다스와 같이 서구어의 음을 그대로 적은 사례들이 발견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특징적인 일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프랑스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조선 가톨릭교회에서는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된 교회 용어들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세례명이든 기타 교회 인물의 이름이든 대부분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선교사들에 의해서 그리스도나 예수, 유다스와 같은 이름들이 중국어 음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조선어의 음가로 표기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용어들은 중국에서 번역어로 성립된 교리용어들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생혼, 각혼, 영혼의 삼분법이나, 공심판과 사심판, 몽소승천, 무염원죄, 신망애 삼덕, 영벌과 잠벌, 칠죄종, 흠숭 등의 용어들은 대부분 중국의 한역 서학서에서 이미 출현하여 통용되고 있던 말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제라는 낱말은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명기하고, 대신에 천주라는 용어를 표기한 것에서도 이미 중국 가톨릭교회에서 확정된 용어법을 받아들이고 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귀양살이를 뜻하는 찬류라는 낱말이나, 척사문과 같은 용어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조선 가톨릭교회에서 새로 만들어 낸 말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두겁조상이라는 낱말이다. 한불자전에는 이 말이 “가족의 시조, 혈통상의 첫 인물”로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아담’이라는 말을 첨가하였다. 즉 인류의 시조로서 아담을 두겁조상이라는 말로 설명한 것이다. 원래 이 말은 ‘조상 가운데 이름을 떨친 인물’ 또는 ‘중시조’(中始祖)를 가리키는 낱말이었다. 그리고 두겁이라는 수식어 역시 한자어가 아니라 기원을 알 수 없는 고유어에 해당한다.12) 이것을 한자어로 표기하고 아담이라고 부기한 것을 보면 한불자전을 편찬한 선교사들이 가톨릭 용어에 대응하는 전통적인 용어법을 발견하기 위하여 상당히 고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찰하다’라는 표현 역시 18세기 조선의 고어에서 ‘깨끗하다’는 뜻을 담은 고유어였다.13) 한불자전에서는 이 말을 차용하여 ‘천주에게 바치는 깨끗한 제물’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던 것이다.14)

 

4) 번역을 통한 자기 인식

 

한불자전에 실린 가톨릭 용어들은 조선어로 되어 있는 낱말들을 표제어로 제시하고, 해당하는 한자를 적시한 다음에, 여기에 대응하는 불어 용어 설명을 대응시키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가톨릭 용어라는 점에서 자기 진술의 언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불어나 라틴어 등 서구어에서 유래한 용어들을 한자로 번역하는 절차가 이미 진행된 상태에서, 다시 이것을 조선어-불어로 낱말 대응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동어반복의 언어인 셈이다. 하지만 자기 진술이자 동어반복이라고 해도 여기에는 선교사들의 지적 활동이 들어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첫째, 짐작건대 많은 경우에 중국 가톨릭교회에서 성립된 번역 용어를 그대로 수용하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령 천주와 상제의 용어를 정리한 것이나, 각종 전례용어, 교계용어, 교리용어들을 살펴보면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므로 한불자전을 편찬하기 이전 단계, 또는 중국에서 한역 교리서가 나오던 단계에 성립된 가톨릭 용어의 한자어 번역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들을 검토하여 한불자전의 표제어로 선정하는 과정에는 진지한 자기 성찰이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혹은 이미 박해시기 선교사들의 활동 과정에서 번역어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선행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블뤼 주교,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등의 서한에서 조선어 낱말을 수집하여 조선어-불어 사전, 조선어-라틴어 사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기록들이 들어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상당한 신빙성을 갖춘 진술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한불자전의 표제어가 중국 가톨릭교회의 용어 정리를 그대로 옮겨 실은 것이 아니라 나름의 지적 가공물이라고 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조선식 한자어 발음을 확정하려는 선교사들의 노력 때문이다. 가령 병인박해 이전에 다블뤼 주교는 한자어의 조선식 발음이 별도로 있고, 조선의 선교사들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을 수차례 거론한 바 있었다. 그래서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 등은 조선의 지명이나 인명 등을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페레올 주교 이후에는 조선식 발음을 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조선식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문제 역시 간단히 해결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은 한불자전을 편찬하면서 큰 성과를 이루게 되었고, 급기야 조선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행해야 할 법규들을 정리하여 1887년에 규칙서를 간행할 때에 그 부록으로 조선어 자모의 유럽식 표기법을 실었던 것이다.15) 이 표기법 규칙을 확정짓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역시 한불자전을 편찬하였던 리델 주교였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중국과 조선에서 한 번 정해진 가톨릭 번역어가 계속 지속되었으리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말하자면 여러 가지 사정으로 말미암아 변경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는 조선어와 한문에 대한 이해력의 증대나 유능한 조선인 신자들의 협력 등을 주요한 변수로 고려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과연 한불자전의 교회 용어가 중국교회의 것 그대로인지, 또는 박해시기 선교사들이 정착시킨 용어를 계속 준수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리델 주교 당대의 선교사들이 노력을 기울여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어 낸 경우는 없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런 작업을 진행하려면 조선의 선교사들이 번역하거나 저술한 교리서, 기도문 등을 모아서 용례와 뜻풀이를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16) 아울러 당시 중국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던 교리서나 사전들도 검토해야 한다.17) 그래야만 한불자전의 가톨릭 용어들이 중국교회에서 성립된 번역어인지, 아니면 조선의 선교사들이 독자적인 노력을 통하여 정착시킨 토착 번역어는 없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행한 가톨릭 용어 정리는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가톨릭교회의 번역어 변천사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에 작은 실마리가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에 불과하다. 여기서 한불자전과 불한사전의 가톨릭 용어 비교, 한불자전과 중국어사전들과의 비교 등을 모두 진행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까지 정리한 가톨릭 용어들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19세기와 20세기에 조선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던 말들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작업을 위해서 최소한의 용어 목록을 이 글에서 제시하였다고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첨언할 것은 한불자전 소재 가톨릭 용어들의 사회적 파급효과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정착되어 통용되는 수많은 종교적 개념어들, 가령 영혼, 원죄, 주일, 구세주, 묵상, 배교, 심판, 부활과 같은 용어들은 어느 때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가톨릭교회의 범위를 넘어서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1895년에 이준영, 정현, 이기영, 이명선, 강진희에 의해서 편찬된 최초의 국어사전인 ‘국한회어’(國漢會語)에도 한불자전의 영향이 보인다.18) 뿐만 아니라 가톨릭 선교사의 뒤를 이어서 조선으로 진출한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이 조선어를 습득하여 선교 활동에 나설 때 한불자전의 언어들은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계량적인 연구를 통해서 한불자전이 국한회어와 언더우드의 한영자전에 미친 영향이 실증되기도 하였다.19)

 

그러나 1890년에 나온 언더우드의 한영자전이나 1897년에 나온 이후로 여러 차례 수정 증보한 게일의 한영자전 등은 한불자전과 분명한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즉 가톨릭 용어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세 개의 사전들을 나열하여 비교하면, 가톨릭교회 용어로 분류될 수 있는 낱말들이 대부분 빠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언더우드의 한영자전을 보면 영혼, 영세, 성신, 심판과 같이 가톨릭 용어를 그대로 수용하여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신부, 견진, 미사 등 가톨릭 고유 용어들은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언더우드 사전의 제2부인 영한사전에서 사제를 뜻하는 단어(priest)를 ‘중, 선사’라고 한 것을 보면 프로테스탄트의 관점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몇몇 가톨릭 용어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였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사정은 게일의 한영자전에서도 대동소이하다. 1897년 초판에서 35,000단어를, 1911년판에서는 50,000단어, 1931년 한영대자전의 단계에서는 82,000단어를 수집하였던 게일의 한영자전도 한불자전을 참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용어라고 명시하여 표제어로 수록한 경우도 있지만, 언더우드의 한영자전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용어들을 누락시킨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한불자전의 가톨릭 용어들이 프로테스탄트의 성경 번역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만주에서 신약성경의 한글 번역본을 준비하던 존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 1837~1905), 일본 동경에서 신약성경을 번역한 이수정(李樹廷, 1842?~1887) 등이 한불자전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언더우드는 자신의 조선어 교사가 송덕조라는 사람인데, 과거에 가톨릭신자였으며 한불자전의 편찬에도 관여한 바가 있었다는 기록을 남겼다.20) 이처럼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의 성경번역을 세밀하게 연구하면, 한때나마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이 기존에 가톨릭 선교사에 의해서 성립된 번역어를 사용하였던 흔적들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프로테스탄트의 한글성경 번역에 관한 기록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어와 같이 빈약한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무척 힘든 것이다. 특히 한국어에는 믿음, 소망, 사랑, 거룩, 은혜, 진리, 영생 등과 같은 단어들이 없었다.”21) 이것은 1903년에 작성된 영국성서공회(The 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의 연례보고서 부록에 실려 있으며, 영어로 된 문장이다. 이미 한불자전에는 이러한 용어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어에 결여되어 있다고 말한 까닭이 무엇일까?

 

프로테스탄트 계열의 한글성경 번역에 참여한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이 말은 가톨릭의 용어법과 프로테스탄트의 용어법 사이에 존재하는 신학적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령 프로테스탄트의 신학적 견해에 따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신적인 은총을 통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에 비해서 가톨릭교회는 믿음, 희망, 사랑을 신덕, 망덕, 애덕으로 표현하고, 이것이 은총으로 주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주체적인 노력을 통해서 단련하여 완성해야 하는 덕목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차이가 번역어를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고, 급기야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에 적합한 번역어를 찾기 어렵다고 술회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유사한 낱말이라고 간주하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교리적 용어들 역시 그 의미론적 맥락에 따라서 차이와 이질성을 띠기도 할 것이다. 어떤 번역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상이한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게 된다는 말이다.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자기 진술의 언어들 역시 일종의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이에 바탕을 두고 가톨릭으로서의 자기 인식을 주조해 내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3. 타자 기술 또는 해석의 언어들

 

한불자전의 종교 관련 용어들 가운데 가톨릭의 정체성과 관련된 낱말들을 제외하고, 불교나 유교, 도교, 민간신앙 등과 관련한 어휘들을 별도로 추출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특정 종교에 귀속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종교적 타자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낱말까지 합쳐서 368개의 표제어를 타자에 대한 기술을 담은 어휘로 뽑았다. 즉 이 범주의 언어는 가톨릭교회가 가톨릭 이외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 표상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목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종교별로는 불교, 유교 및 도교, 민간신앙 및 기타 종교의 용어들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특별히 인간의 죽음이라는 예외적인 상황과 관련한 용어들을 별도로 상제례라는 범주로 묶었다. 아울러 신학적 타자 지칭어라 부를 만한 영역도 설정하여 모두 타자 기술의 언어로 다루었다. 그 각각에 해당하는 낱말들을 간단히 살펴본 다음에, 이 타자 기술의 언어들에 들어 있는 사고방식을 나름대로 그려보고자 한다.

 

1) 불교

 

가사(袈裟)(135) ; 거사(居士)(148) ; 고사(古寺)(194) ; 고해(苦海)(184) ; 관음보살(觀音菩薩)(178) ; 극락세계(極樂世界)(164) ; 남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264) ; 노승(老僧)(291) ; 대사(大師)(451) ; 대찰(大刹)(452) ; 도선(道銑)이(496) ; 도승(道僧)(496) ; 명불(名佛)(236) ; 목탁(木鐸)(244) ; 바랑(鉢囊)(312) ; 반승반속(半僧半俗)(300) ; 발낭(鉢囊)(305) ; 백팔염주(百八念珠)(310) ; 벅고[法鼓](313) ; 범승(凡僧)(314) ; 법당(法堂)(316) ; 보살(菩薩)(336) ; 부처[佛](350) ; 불(佛)(343) ; 불가(佛家)(344) ; 불경(佛經)(345) ; 불공(佛供)하다(345) ; 불당(佛堂)(347) ; 불도(佛道)(347) ; 불사(佛寺)(346) ; 불씨(佛氏)(346) ; 불양답(佛養沓)(343) ; 불종지말(佛種之末)(347) ; 산승(山僧)(373) ; 살생(殺生)하다(378) ; 석가모니(釋迦牟尼)(397) ; 석가여래(釋迦如來)(397) ; 석교(釋敎)(397) ; 선사(禪師)(400) ; 소승(小僧)(435) ; 승군(僧軍)(410) ; 승년[女僧](410) ; 승답(僧畓)(411) ; 승당(僧堂)(411) ; 승도(僧道)(411) ; 승도(僧刀)(411) ; 승명(僧名)(410) ; 승방(僧房)(410) ; 승석(僧夕)(410) ; 승속(僧俗)(411) ; 승속가이(僧俗可異)(411) ; 승장(僧長)(411) ; 승통(僧統)(411) ; 시주(施主)(425) ; 아귀(3) ; 염라대왕(閻羅大王)(277) ; 염불(念佛)(28) ; 염불(念佛)하다(277) ; 염주(念珠)(277) ; 윤회(輪回(295) ; 재가승(在家僧)(537) ; 재공(537) ; 절[寺](551) ; 중[僧](581) ; 중년[女僧](581) ; 중놈[男僧](581) ; 중속한이[退俗漢](581) ; 총섭(?攝)(606) ; 통도사(通道寺)(519) ; 퇴속(退俗)(517) ; 파사(破寺)(355) ; 판도방(判道房)(353) ; 환생(還生)하다(101)

 

불교 관련 용어에서 두드러진 것은 도선, 석가모니, 석가여래, 통도사 등 구체적인 인명이나 사찰명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석가모니의 경우에는 “샤카 집안의 은둔자, 부처의 이름 샤카무니, 첫 이름은 싯다르타였으며, 주전 622년까지 80세를 살았음”과 같이 인물의 구체적인 생애와 내력을 적고 있다. 하지만 도선에 대해서는 “이교도 예언자의 이름, 저명한 지관(地官) 승려의 이름”과 같이 간략한 설명을 달았지만, 도선(道詵)의 한자 이름이 잘못 기재되어 있다. 게다가 통도사는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있는 큰 사찰로서, 많은 불경들이 보관되어 있음”이라 되어 있어, 사실 관계가 전혀 맞지 않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있는 큰 사찰이라면 송광사일 것이고, 많은 불경이 보관되어 있는 사찰이라면 해인사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무아미타불은 “승려들의 기도문, 노자 교단의 신봉자들이 행하는 희구의 형식으로 된 외침, (남무는 감탄사로서 ‘아!’의 의미이고, 아와 미는 중국의 황제가 파견한 두 명의 이름이며, 타불은 부처, 즉 채색된 부처 그림을 인도인들에게 가져갔다는 뜻임)”이라고 설명하여 완전히 엉뚱한 해석을 제시하였다.

 

말하자면 불교 관련 표제어의 경우에는 가톨릭 선교사들이 어디에서 획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잘못되었거나 부정확한 지식에 근거한 서술들이 간혹 눈에 띈다. 하지만 대사, 선사, 승군, 승통, 총섭 등 불교 교단에서 사용하던 전문적인 용어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경우도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불양답을 “승려가 불공을 드리기 위하여 소작료를 받는 전답”으로 정의한 것은 상당히 정확한 지식이다. 그렇지만 중년과 중놈을 표제어로 등재하였다는 것은 경멸하는 의미를 담은 비속어와 정식 표준어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장녀와 장남을 가리키는 표제어를 맏년(長女)(226), 맏놈(長男)(226)으로 선택한 것을 보면 특별히 불교 승려만을 비하하기 위한 의도를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 유교 및 도교

 

가례(嘉禮)(133) ; 강상(綱常)(130) ; 강상죄(綱常罪)(130) ; 격물궁리(格物窮理)하다(152) ; 격물치지하다(格物致知)하다(151) ; 경서(經書)(156) ; 공부자(孔夫子)(190) ; 공자(孔子)(191) ; 관례(冠禮)(180) ; 군자(君子)(207) ; 길례(吉禮)(175) ; 논어(論語)(288) ; 대성전(大聖殿)(451) ; 대제(大祭)(452) ; 대학(大學)(448) ; 도유사(都有司)(484) ; 망궐례(望闕禮)(221) ; 맹자(孟子)(229) ; 명륜당(明倫堂)(236) ; 무극(無極)(251) ; 반고씨(盤古氏)(299) ; 복희씨(伏羲氏)(331) ; 부자(夫子)(350) ; 사서삼경(四書三經)(391) ; 사직(社稷)(379, 384) ; 산림(山林)(373) ; 삼강(三綱)(369) ; 상교(庠校)(381) ; 상제(上帝)(383) ; 서원(書院)(396) ; 서전(書傳)(408) ; 성리(性理)(404) ; 시전(詩傳)(424, 425) ; 신농씨(神農氏)(420) ; 알성(謁聖)하다(9) ; 오륜(五倫)(57) ; 오상(五常)(57) ; 유교(儒敎)(71) ; 유도(儒道)(74) ; 유림(儒林)(73) ; 음양(陰陽)(33) ; 이기(理氣)(284) ; 장의(掌議)(532) ; 재임(齋任)(536) ; 종묘(宗廟)(576) ; 주역(周易)(582) ; 태극(太極)(505) ; 팔괘(八卦)(353) ; 하도낙서(河圖洛書)(81) ; 학당(學堂)(76) ; 향교(鄕校)(82) ; 홍몽(鴻?)(111)

 

유교 용어와 관련해서는 유교 경전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으며, 도유사, 명륜당, 산림, 서원, 유림, 장의, 재임, 향교 등 유학자들의 실제 생활과 연관된 낱말들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공자와 맹자 이외에는 유교 성현들의 인명이 나타나지 않으며, 대신에 반고씨, 복희씨, 신농씨 등 중국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들이 들어가 있다. 아마 이 부분은 중국 역사에 관한 유럽 저술을 참고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밖에도 상제를 설명하면서 “(이교도들에 따르면) 하늘의 왕, 창공의 주인, 하늘에 있는 지고의 황제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에 대한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용어)”라고 설명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미 중국 의례 논쟁 이후에 신 명칭의 번역어 문제는 일단락되었기 때문에 상제 대신에 천주라는 용어만이 가능하다고 명시한 것 같다.

 

노군(老君)(288) ; 노도(老道)(291) ; 노자(老子)(291) ; 도관(道觀)(485) ; 도교(道敎)(485) ; 도사(道士)(496) ; 도사(道師)(496) ; 무릉도원(武陵桃源)(255) ; 벽곡(?穀)하다(319) ; 선경(仙境)(399) ; 선녀(仙女)(399) ; 선도(仙道)(400) ; 선복(仙服)(399) ; 신선(神仙)(420) ; 옥황상제(玉皇上帝)(53) ; 요지(瑤池)(61) ; 월궁선녀(月宮仙女)(63) ; 월궁항하(月宮恒娥)(63)

 

도교 관련 용어는 상당히 빈약한 편이다. 이것은 조선에서 도교가 종교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운영되는 종교 교단으로 성립하기보다는 수련 도교의 형태로 존재하였음을 보여 준다. 즉 도교 사원을 가리키는 도관이라든가 도교 수련자를 가리키는 도사와 같은 표제어들도 있지만, 선녀, 신선, 옥황상제, 월궁선녀 등 문학과 설화에서 등장하는 도교적인 요소들이 주로 반영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내단 도교의 수련법인 벽곡이라는 낱말이 표제어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접하기 어려운 용어인데도 한불자전에 포함된 것을 보면 수련 도교의 일종으로서 조선사회에 어느 정도 퍼져 있었던 개념이었거나, 아니면 중국 문헌에서 찾아낸 낱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 상제례 관련 용어

 

감실(龕室)(125) ; 감장(監葬)하다(126) ; 거상(居喪)(148) ; 거상하다(148) ; 곡반(哭飯)(185) ; 국기(國忌)(204) ; 국상(國喪)(205) ; 국장(國葬)(205) ; 굴건(屈巾)(210) ; 굴총(掘塚)하다(211) ; 금장(禁葬)하다(167) ; 금정(金?)(167) ; 기고(忌故)(161) ; 기일(忌日)(160) ; 기장(忌葬)하다(163) ; 기제(忌祭)하다(163) ; 납평(臘平)(267) ; 노제(路祭)(291) ; 담사(禪祀)(455) ; 당고(當故)하다(458) ; 당상(當喪)하다(458) ; 대상(大祥)(451) ; 도장(倒葬)하다(497) ; 독(?)(485) ; 두건(頭巾)(501) ; 망곡(望哭)(221) ; 망두석(望頭石)(222) ; 매장(埋葬)하다(229) ; 매헌(埋獻)하다(216) ; 명당(明堂)(236) ; 명정(銘旌)(236) ; 목패(木牌)(244) ; 묘호(廟號)(248) ; 문상(問喪)하다(254) ; 반구(返柩)하다(299) ; 반혼(返魂)하다(299) ; 발상(發喪)하다(306) ; 발인(發車引)하다(304) ; 봉사(奉祀)하다(334) ; 봉안(奉安)하다(334) ; 불천지위(不遷之位)(347) ; 빈례(殯禮)(326) ; 빈소(殯所)(326) ; 사당(祠堂)(378) ; 사우(祠宇)(367) ; 삼우(三虞)(369) ; 삽전(揷?)(376) ; 상례(喪禮)(375) ; 상례비(喪禮備)(375) ; 상식(上食)하다(375) ; 소상(小祥)(435) ; 수의(壽衣)(438) ; 승제(承祭)하다(411) ; 시묘(侍墓)하다(416) ; 시사(時祀)(424) ; 시제(時祭)(425) ; 신주(神主)(420) ; 양례(襄禮)(14) ; 운감하다(67) ; 위판(位板)(65) ; 위패(位牌)(65) ; 음복(飮福)하다(34) ; 졸곡(卒哭)(573) ; 지방(紙方)(564) ; 지석(誌石)(483) ; 천장(遷葬)하다(598) ; 치제(致祭)하다(604) ; 친기(親忌)(602) ; 칠성판(七星板)(604) ; 탈상(脫喪)하다(509) ; 투장(偸葬)하다(522) ; 파묘(破墓)하다(352) ; 현고학생(顯考學生)(92) ; 호상(護喪)(114) ; 혼교(魂轎)(110) ; 화장(火葬)(105) ; 흠향(歆享)하다(97)

 

상례와 제례에 관련된 용어들을 따로 묶은 이유는 당시 조선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죽음을 처리하는 의례들과 죽은 조상을 추념하는 의례들이 상당히 자세하게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매장하기 위하여 관을 내리는 구덩이를 뜻하는 금정이나, 초상을 치를 때 행하는 의례적인 동작인 반혼과 반구, 그리고 상례의 시간 주기를 나타내는 삼우, 소상, 대상, 졸곡 등의 용어를 망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의 상장례 관련 용어들을 세심하게 수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불천지위는 탁월한 조상의 신주로서 절대로 옮기거나 파괴하면 안 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다블뤼 주교가 조선인에게도 영혼불멸의 관념과 유사한 것이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발인(發靷)과 같이 한자가 잘못 기재된 경우도 가끔 보인다. 그 밖에도 유교 관련 용어에는 오늘날에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 희귀한 낱말들도 들어 있다. 가령 흠향과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운감(殞感)은 한불자전을 편찬하던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용어였던 것 같다.

 

4) 민간신앙 및 기타 종교

 

가신(家神)(136) ; 강시(?尸)(131) ; 개벽(開闢)하다(120) ; 걸귀(乞鬼)(147) ; 걸귀(乞鬼)들리다(147) ; 걸신(乞神)(148) ; 고사(告辭)(194) ; 고사(告辭)하다(194) ; 고수례[祭飯語](195) ; 관상(觀相)(180) ; 굿(212) ; 굿기다(212) ; 궤배(?拜)하다(200) ; 금시발복(今時發福)(167) ; 급살(急殺)맞다(170) ; 기문벽서(奇文僻書)(161) ; 길(吉)하다(174) ; 길복(吉服)(175) ; 길복(吉福)(175) ; 길일(吉日)(174) ; 길흉(吉凶)(174) ; 넋[魂](274) ; 능견난사(能見難思)(281) ; 단수점(單數占)(456) ; 덕담(德談)(469) ; 도섭하다(496) ; 도술(道術)(496) ; 도통(道通)하다(497) ; 독각수(獨角獸)(486) ; 독갑이[??](486, 497) ; 독경(讀經)하다(486) ; 동틔[動?]나다(492) ; 동학(東學)(488) ; 마마[痘疫](218) ; 명기(明氣)(235) ; 명복(名卜)(235) ; 명일(名日)(235) ; 목신(木神)(244) ; 무녀(巫女)(252) ; 무당[巫](259) ; 문복(問卜)하다(253) ; 미력[石人](240) ; 박수[覡](297) ; 벽사(闢邪)하다(319) ; 복자(卜者)(332) ; 봉황(鳳凰)(334) ; 부작(符作)(349) ; 비기(秘記)(325) ; 사주(四柱)(392) ; 산제(山祭)(374) ; 삼신항(三神缸)(371) ; 상보다[觀狀](382) ; 상뵈다[觀相](382) ; 선앙당[魔堂](398) ; 성주받이[成造異端](405) ; 성황당(城隍堂)(402) ; 신당(神堂)(420) ; 신묘(神廟)(419) ; 신장(神將)(420) ; 신접(神接)하다(420) ; 앙천축수(仰天祝手)하다(8) ; 업구렁이[業?](21) ; 영물(靈物)(279) ; 용날[辰日](292) ; 원귀(寃鬼)(62) ; 원혼(寃魂)(62) ; 인제(人祭)(40) ; 잡술(雜術)(528) ; 잡신(雜神)(528) ; 장승[?](534) ; 저주(咀呪)다(555) ; 저주하다[呪罵](476) ; 점(占)(474) ; 점돈[占錢](474) ; 점장이[占客](474) ; 점치다[占](474) ; 점치이다(474) ; 정감록(鄭鑑錄)(549) ; 제석항하리[異端缸](544) ; 지관(地官)(482) ; 지당(地堂)(483) ; 지리(地理)(483) ; 지사(地師)(483) ; 지술(地術)(483) ; 지술하다(483) ; 진언(嗔諺)(562) ; 축지법(縮地法)(611) ; 태주년[巫女](510) ; 택일(擇日)하다(510) ; 터주[基主](512) ; 터주항(垈主缸)(512) ; 파일(罷日)(351) ; 팔자(八字)(354) ; 풍수(風水)(365) ; 혈식(血食)하다(95) ; 혼(魂)(110) ; 혼백(魂魄)(110) ; 혼호(魂號)(110) ; 화랑이[覡](104) ; 회회(回回)(106) ; 희생(犧牲)(96)

 

조선의 전통적인 민간신앙에 관한 낱말들도 상당히 자세하게 수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사를 “악마에게 바치는 제사의 일종”으로 규정하면서도, 고사를 지내는 것을 “귀신에게 빌기 위하여 쌀이 담긴 사발을 바치는 것”으로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도깨비나 업구렁이, 영물 등의 용어나, 삼신, 성황당, 성주, 터주와 같이 전통적인 민간신앙의 숭배 대상들도 빠짐없이 수록하였다. 관상이나 점복에 관한 용어들도 눈에 띈다. 특이한 것은 이슬람을 가리키는 회회나, 정감록, 동학 등 전통 종교와 관련된 용어들도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회회란 “돌아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마호멧 교도를 가리키는데,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첫째, 그들이 윤회를 믿기 때문이며, 둘째 그들의 조상이 위구르 족이기 때문임”이라고 설명한다. 이슬람이 윤회를 믿는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마 중국 문헌들을 인용한 것 같다. 왜냐하면 과거 중국에서는 이슬람을 투르크 계열의 유목부족 위구르[回紇] 족이 믿는 가르침이라는 의미에서 회회교라 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녀, 무당, 박수, 화랑이 등 무속의 종교 전문가를 가리키는 용어나, 독경과 같이 잡귀를 물리치기 위하여 행하는 굿의 유형과 관련한 용어도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독경이라고 하면 불교 용어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무속 의례 가운데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병자가 있을 때 축귀의 의미를 담아서 행하는 병굿의 경우에 맹인 무당, 즉 맹격(盲覡)을 불러서 ‘옥추경’(玉樞經) 따위의 경문을 외는 것을 독경이라고 부른다. 과연 한불자전에는 독경을 “맹인들의 기도, 기도의 형식을 취하지만 아무런 의미를 지니고 않은 소리들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부정적인 용어들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에는 해당 개념을 상당히 정교하게 서술하는 면도 있다. 가령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가리키는 인제에 대해서는 “사람 제사, 옛날에 조선에서, 특히 장산에서 자주 있었음, 사람의 목을 자른 다음에 바다에 던졌음”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목을 잘랐다는 구절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배가 난파되는 경우가 많았던 장산곶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는 구전 설화 등으로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5) 신학적 타자 지칭어

 

귀(鬼)(201) ; 귀매(鬼魅)(202) ; 귀신(鬼神)(202) ; 대마(大魔)(450) ; 마(魔)(215) ; 마감(魔感)(216) ; 마계(魔計)(216) ; 마귀(魔鬼)(216) ; 마귀들리다(481) ; 마노(魔奴)(218) ; 마당(魔堂)(226) ; 마력(魔力)(223) ; 마몽(魔夢)(218) ; 마상(魔像)(225) ; 마술(魔術)(225) ; 마유(魔誘)(216) ; 마접(魔接)하다(227) ; 사감(邪感)(380) ; 사감입다[被邪感](380) ; 사당(邪堂)(384) ; 사도(邪道)(384) ; 사마(邪魔)(380) ; 사망(邪妄)(380) ; 사묘(邪廟)(380) ; 사상(邪像)(384) ; 사술(邪術)(384) ; 사신(邪神)(384) ; 사질(邪疾)(385) ; 악귀(惡鬼)(3) ; 열교(裂敎)(280) ; 외교(外敎)(50) ; 외교인(外敎人)(50) ; 외술(外術)(51) ; 요술(妖術)(61) ; 이교(異敎)(38) ; 이단(異端)(46) ; 이단으로 면박하다(234) ; 접마(接魔)하다(551) ; 접사(接邪)하다(551) ; 축귀(逐鬼)하다(611) ; 축마(逐魔)하다(611) ; 축사(逐邪)하다(611) ; 통마지죄(通魔之罪)(518) ; 통신(通神)하다(519) ; 허배(虛拜)(90) ; 환술(幻術)(101)

 

타자 기술의 언어 가운데 신학적 타자 지칭어로 분류한 낱말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한 용어들이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의 신학적 입장에서 유래한 것도 있지만, 조선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들도 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한자로 이루어진 표제어들 가운데는 조선에서 사용되던 타자 지칭어와 가톨릭교회가 신조어로 만들어 낸 타자 지칭어가 섞여 있으며, 오른쪽의 정의항에는 유럽에서 사용하던 신학적 가치 판단에 내재된 서술이 배당되어 있다. 위에서 보듯이 주로 귀(鬼), 마(魔), 사(邪), 악(惡)과 같은 글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현재 사용되는 번역어와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중국과 조선,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신조어로 만들어 낸 신학적 타자 지칭어들 가운데 조선사회에 정착하여 지금까지도 사용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이것이 당시에는 현재의 용어법과는 달리 쓰였음을 한불자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열교는 “이단(heritique), 이교(離敎, schismatique)”로 나와 있다. 그 후 열교라는 용어는 가톨릭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용어법으로 볼 때 해당 종교 내에서 교리적 가르침과 관련하여 정통적인 입장과 상반되는 주장을 가리키는 이단이라는 말은 한불자전에 열교로 나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당시에 사용되던 이단이라는 낱말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었을까? 한불자전을 보면 이단은 “미신(supersitition)”이라고 나와 있다. 즉 오늘날 우리가 미신이라고 흔히 지칭하는 용어법이 한불자전에는 이단으로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그 밖에 외교와 이교는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었는데, 가톨릭교회가 자신과 다른 이질적인 종교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하던 말이었다.

 

6) 일방적인 매도(denouncement)와 객관적인 기술(description)의 모호한 경계선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종교적 타자라 부를 수 있는 존재들, 그러니까 당시 조선의 종교들인 불교, 유교, 도교, 민간신앙에 해당하는 낱말들은 타자에 대한 기술이 담긴 언어들이라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눈에 띄는 현상은 당시 조선의 종교와 신앙, 풍속, 관습에 대해서 미신(당시의 용어법으로는 이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분명히 존재하였다는 점이다. 즉 타자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장한 언어 사용이 있었다. 가톨릭교회의 관점에서 종교적 타자들을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언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그들을 특정한 범주로 포획하려는 시도였다고 하겠다.

 

하지만 타자 기술의 언어들 가운데에는 현상 자체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언어도 찾을 수 있다. 이미 가치 평가를 내린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별도로 이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첨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좌우간 특정 용어들은 있는 사실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가령 불교의 극락세계를 “조선인들의 낙원, 부처를 잘 공경한 덕이 높은 사람들의 영혼이 가는 낙원의 장소, 승려들의 천국, 이것은 곧 부처의 니르바나임”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태극에 대해서는 “세계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던 첫 번째 물질”로 되어 있다. 나아가서 가장 취약한 종교적 타자인 민간신앙과 무속에서 행하는 굿에 대해서도 “집안에서 드리는 제사의 일종, 주술사들이 행하는 성대한 예식, 광적인 춤, 떠들썩한 소동, 성대한 축제, 예식”으로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성황당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면, “산꼭대기를 향하는 길가에 세워진 돌무더기 또는 작은 사원, 길의 귀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산기슭에 작은 돌을 놓아두기도 하는데, 귀신에게 경의를 표하려는 목적임” 등으로 기술되어 있다.

 

종교적 타자를 기술하는 낱말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가치 평가를 최소한으로 자제하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의 문헌자료, 사전이나 역사서, 또는 중국 종교에 대한 가톨릭 계통의 소개서를 그대로 참고하여 해당 묘사를 차용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또는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호교론이라는 형태로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하는 교리서나 지침서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연한 서술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전이라는 특수한 형식 자체가 선교사의 가치 판단을 절제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비록 가톨릭 선교사라는 신분이기는 하지만 사전의 특성상 조선인들의 언어생활을 전체적으로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가치 평가의 언어를 자제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목하고 싶은 것은 자기와 타자의 영역이 그렇게 분명하게 구획되지 않는 지대가 분명히 존재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사실 가톨릭교회가 무엇을 이단(현대의 용어법으로 미신)으로 규정하고, 어느 것을 이단이 아니라고 허용할지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당시 조선인들의 다양한 문화적 관습들을 어디까지 용인하고, 어디서부터 단죄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그렇게 분명하게 나뉠 수 있었겠는가? 이 때문에 식민지시대 가톨릭교회의 기관지에서는 이단과 이단 아닌 것을 식별하는 기사들이 종종 등장한다.22) 이런 사태 때문에 가치 판단이 확실하게 진행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혼재된 상황을 낳았고, 그러다보니 객관적 기술에 치중하는 용어 설명도 나타났던 것이 아닐까 한다.

 

어느 쪽이든 타자 기술의 언어에는 해석의 노력이 개입되어 있다. 말하자면 타자를 부정적인 의미 규정으로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자기에게 익숙한 언어로 종교적 타자를 설명하는 것 자체가 해석 행위의 일종이다. 그리고 좀 더 객관적인 기술에 치중할 경우에 불교나 유교, 민간신앙 등 타자의 언어도 아니요, 그렇다고 가톨릭의 언어가 아닌, 제3의 언어 또는 일상어를 통하여 조선의 종교를 설명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게 된다. 이 역시도 해석의 언어라고 하겠다. 여기서는 타자화의 논리가 아니라, 다름에 대한 인식이 싹트게 된다. 즉 차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언어의 필요성이 증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적인 작용이 활발하게 펼쳐진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 기술의 언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몇 사례는 한국의 종교에 대한 객관적 기술의 맹아적 형태를 담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한다. 말하자면 한국종교학의 기원이라고 할까. 분명히 한불자전을 만든 프랑스 가톨릭 선교사들이 최초의 ‘한국인’ 종교학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초의 한국종교학자들이었을 가능성은 없는가?23) 일부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종교문화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 내지 묘사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실 한국종교학이 생겨난 경위에 대한 연구는 여태껏 시도된 적이 없었다. 극히 일부에서 서양인 선교사들과 조선 총독부의 관방 학자들이 한국의 종교에 관해서 서술한 내용들을 정리한 적은 있었다.24) 그러나 과연 한국종교학은 어떤 학문적 관심에서 출현하였고, 무엇을 자신의 학문적 정신으로 삼았는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 내지는 자기 성찰이 전무하기 때문에 제대로 한국종교학의 기원과 역사를 서술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단지 한국종교에 관한 언급들이 들어 있는 초기 자료들을 묶어 놓았을 뿐이었다.

 

그 밖에는 구한말의 대표적인 지식인 이능화(李能和, 1868~1943)가 서세동점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서구적 근대성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한국종교에 대한 지적 탐구를 시작한 것을 한국종교학의 출발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25) 문제는 한국종교학의 학문적 정신을 무엇이라 규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능화의 경우처럼 서구 근대성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여 비서구의 정체성과 결부된 한국의 종교와 종교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데에서 찾을 것인가. 아니면 가톨릭 선교사가 펼쳐보였던 바와 같이 종교적 타자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진술하는 차이의 언어가 출현한 데서 찾을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한국종교학의 기원은 달리 설명될 것이다. 어쩌면 근대와 타자를 아우르는 새로운 문제 설정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어떤 경우라도 한불자전에서 등장하는 종교적 개념들과 이에 대한 기술 내용은 한국종교학의 생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물론 한불자전과 한국종교학의 기원을 잇는 문제는 19세기 이전에 나온 조선의 문헌들, 특히 각종 유서(類書)들이나 한자 어휘의 목록에서 종교 관련 용어 및 종교적 서술들이라 부를 수 있는 말들을 추적하는 작업을 진행해야만 더 선명해질 것이다.26) 아마 가톨릭 선교사 이전에는 종교적 용어들에 대한 체계적인 수집이나 정리, 기술의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진 바가 없었음을 입증해야 성립할 수 있는 주장이리라. 하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은 열어 둘 것이며, 관련 연구도 차후의 과제로 남기고자 한다.

 

 

4. 자타혼효 또는 유적 범주의 언어들

 

지금까지 한불자전에 들어 있는 종교 관련 용어들 가운데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던 낱말들, 다른 말로 표현하여 자기 진술의 언어들, 그리고 가톨릭교회에서 볼 때 타자에 해당하는 조선의 전통적인 종교 용어들, 즉 타자 기술의 언어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자기 진술의 언어 규범에 비추어보았을 때 이단인지 아닌지, 가치 판단이 모호한 타자의 존재 가능성을 지적하였다. 차이에 대한 인식과 이를 언어화하려는 노력은 타자를 기술하는 해석의 자리에서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그런데 한불자전에는 조금 독특한 낱말들이 검출된다. 이것은 자기와 타자를 가르는 경계선 자체가 모호해지는 현상과 관련된다. 즉 자기와 타자 사이의 혼효 현상이 발생하면서 양자를 아우르는 상위 범주가 출현할 가능성마저 내포한 낱말들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른바 ‘종교’라는 범주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분명히 한불자전에는 종교라는 낱말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교’(敎)를 “교리, 가르침, 종교, 교단”으로 설명하는 경우만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종교 개념의 중심 범주와 관련된 언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있다. 가령 거룩함, 성(聖), 신(神), 이것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속(俗), 그리고 이런 글자들이 포함된 낱말들이 그러하다.

 

거룩하다[聖](147) ; 성(聖)(401) ; 성애(聖愛)(401) ; 성언(聖言)(401) ; 성업(聖業)(401) ; 성의(聖意)(401) ; 성인(聖人)(401) ; 대성(大聖)(451) ; 성학(聖學)(402) ; 성현(聖賢)(402) ; 성훈(聖訓)(402) ; 성계(聖誡)(402) ; 성녀(聖女)(403) ; 성리(聖理)(404) ; 성속(聖俗)(404) ; 성제(聖祭)(404) ; 성조(聖祖)(405) ; 성조(聖朝)(405)

 

속(俗)(431) ; 속인(俗人)(431) ; 속한이[俗漢](431) ; 속교(俗敎)(432) ; 속법(俗法)(432) ; 속례(俗禮)(432) ; 속사(俗事)(432) ; 속세(俗世)(432) ; 속촌(俗村)(433) ; 속취(俗娶)하다(433) ; 경탈세속(輕脫世俗)하다(157) ; 탈속(脫俗)하다(509) ; 진속(塵俗)(563)

 

신(神)(417), 신은(神恩)(417) ; 신이(神異)하다(417) ; 신익(神益)(418) ; 신인(神人)(418) ; 신형(神形)(418) ; 신기(神奇)하다(418) ; 신권(神權)(418) ; 신명(神命)(419) ; 신병(神兵)(419) ; 신령(神靈)하다(419) ; 신성(神聖)(420) ; 신체(神體)(420) ; 신직(神職)(420) ; 신축(神祝)하다(421)

 

전통적인 조선의 용어법에서 성(聖)은 군왕이나 공자, 맹자와 같은 인물의 덕을 칭송하거나 유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높여서 일컫는 수사적 표현이었다. 그리고 속(俗)은 불교적 개념으로서 불법을 닦는 수행의 세계와 대비되는 현실 세계를 가리킨다. 또한 신(神)은 민간신앙적인 의미에서 죽은 사람의 혼령 또는 자연물에 담겨 있는 정밀한 기운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한불자전에는 성(聖)을 ‘거룩함, 신성함, 성별됨’ 등으로 설명하면서 가톨릭교회의 관념 세계로 흡수하고 있다. 그래서 한불자전 속에는 대성, 성학, 성현, 성조 등 전통적인 용어법과 성인, 성녀, 성제 등 가톨릭의 용어법이 혼재되어 있다. 또한 속(俗)이라는 낱말 역시 기존의 의미망 속에서 속세, 진속, 탈속 등과 같은 용어법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톨릭교회와 대극적인 위치에 놓인 존재 내지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가령 속인, 속교, 속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신(神)은 주로 귀신을 가리키지만, 가톨릭 용어법으로 수용되면 “영, 영적인 속성, 영적인 존재” 등의 의미를 담아서 신부, 신공, 신은 등의 낱말을 생성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한불자전 속에 종교라는 낱말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근대적인 종교 범주의 핵심적인 속성을 담은 개념으로서 속됨과 대비되는 거룩함, 성스러움, 신성함과 같은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말들은 가톨릭교회의 자기 진술을 담은 언어와 종교적 타자들의 언어, 어느 한쪽으로 귀속되지 않는 새로운 영역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혼효 현상은 새로운 언어를 빚어내는 토양이 된다. 즉 자기 진술을 상대화하고 타자 기술을 객관화한 다음에 양자의 뒤섞임 속에서 싹틔운 언어가 바로 유적 범주의 언어인 것이다. 한불자전 속에는 이와 같이 새로운 유적 범주의 출현을 준비하는 언어적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종교가 되었든 다른 어떤 낱말이 되었든 그 외적 형태를 아직 갖추지 않았을 뿐이고, 그러한 그릇에 담길 내용물들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약간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해 있지만,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또 다른 부류의 낱말 더미가 존재한다. 그것은 앞으로 형성될 예정인 유적 범주의 용어에 담길 가능성이 농후한 하위 진술들이며, 동시에 조선 시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 삶의 구성 원리를 드러내 보여 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즉 종교적 인식과 종교적 실천을 빚어내는 그루터기와 같은 관념을 담고 있는 언어들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닦다’ · ‘빌다’ · ‘바치다’의 세 가지 동사로 압축하여 제시할 수 있다.27) 거룩함이나 성스러움과 마찬가지로, 또는 오히려 더 실질적으로 혼효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 부류의 낱말 더미가 아닐까 한다.

 

닦다[修](453) ; 수녀(修女)(441) ; 수사(修士)(445) ; 수도(修道)하다(446) ; 덕닦다[修德](469) ; 수원(修院)(439) ; 선수(善修)하다(400) ; 고수(苦修)(195) ; 고수원(苦修院)(195) ; 고수원 회장(苦修院 會長)(195)

 

닦는다는 것은 일상적인 용어법으로는 주변의 세계를 정리하고 깨끗이 한다는 의미, 정화한다는 의미, 나아가서 종교적 이상을 달성하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훈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도나 덕을 닦거나, 괴로움을 참고 심신을 단련한다는 의미에서 다양한 종교적 용어들이 생겨났다. 수도나 수덕과 같이 닦음의 낱말들은 전통적인 용어법이면서도 동시에 가톨릭교회에서도 그대로 수용하여 사용하였던 것이다. 앞서 보았던 자기 진술의 언어에서도 권도나 경문, 경본, 축문처럼 전통적인 용어들을 받아들인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의미 변형을 거쳐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닦음의 낱말들은 의미 변형보다는 자기-타자의 공통부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수용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도(道)(483) ; 정도(正道)(550) ; 진도(眞道)(563), 도인(道人)(484) ; 도덕(道德)(497) ; 도리(道理)(494) ; 진리(眞理)(563) ; 도학(道學)(484) ; 동도(同道)(491) ; 영도(永道)(29) ; 리(理)(283) ; 정리(正理)(549)

 

닦음과 결부하여 닦음의 대상이 되는 범주들도 존재한다. 바로 도(道) 또는 리(理)와 같은 범주이다. 도라고 해서 굳이 도교를 연상할 필요는 없으며, 리 역시 성리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오히려 가톨릭교회와 불교, 유교, 도교 등 제반 종교들의 가르침을 총괄하는 어법으로 정착되어 가는 느낌이 강하다. 가령 리에 대해서는 “이성, 상식, 정의, 옳음, 교리, 신비” 등으로 설명하며, 도는 “길, 교리, 교의, 지방”으로 해석되고 있다. 페롱 신부를 주저자로 하는 불한사전에서는 ‘렐리지온’(religion)에 대응하는 조선말로 ‘도, 교’를 꼽았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종교적 가르침으로서 도 혹은 리, 그리고 도나 리를 닦아서 수행하는 실천 등은 생성 과정 중에 있는 유적 범주의 첫 번째 구성 원리였다고 판단된다.

 

빌다[祈](328) ; 간구(懇求)하다(127, 140) ; 경배(敬拜)하다(156) ; 기구(祈求)하다(161) ; 기도(祈禱)하다(162) ; 축(祝)(610) ; 축원(祝願)하다(611) ; 축문(祝文)(611) ; 축수(祝手)하다(611)

 

닦음의 종교적 실천이 한편을 구성한다면, 종교적 권능의 담지자에게 자신의 현실적 소원을 간청하는 행위가 다른 한편을 이룬다. 그것은 ‘빌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위의 낱말들은 빔의 종교적 행위와 연관된 것들로서, 유교나 불교, 민간신앙에서 기원한 용어들이지만 가톨릭교회에도 그대로 수용되어 일반화되었다. 물론 비는 대상의 속성과 권능에 대해서 다양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행위 자체가 종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것이 기복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신학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일반적인 조선인의 종교적 심성에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역시 조선의 종교적 용어들을 선별하여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때에도 ‘빌다’에 해당하는 용어들에 대해서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수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는 대상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어갈 때에 이단, 이교, 나중에 가서는 미신과 같은 용어법이 등장한다. 하지만 유적 범주로의 상승을 구성하는 종교적 삶의 주요 원리 가운데 하나로서 비는 행위 자체는 그대로 유지된다.

 

봉헌(奉獻)하다(334) ; 제(祭)(542) ; 제의(祭衣)(543) ; 제향(祭享)(543) ; 제향(祭香)(543) ; 제(祭)하다(543) ; 제헌(祭獻)하다(543) ; 제기(祭器)(543) ; 제관(祭官)(543) ; 제미(祭米)(543) ; 제문(祭文)(543) ; 제물(祭物)(543) ; 제반(祭飯)(543) ; 제병(祭餠)(543) ; 제복(祭服)(543) ; 제편(祭?)(543) ; 제품(祭品)(544) ; 제례(祭禮)(544) ; 제상(祭床)(544) ; 제사(祭祀)(544) ; 제석(祭席)(544) ; 제대(祭臺)(544) ; 제청(祭廳)(544) ; 제지내다[奉祭](544) ; 주제(主祭)(588) ; 참사(參祀)하다(591)

 

마지막으로 ‘바치다[祭, 獻]’와 관련된 낱말들도 조선 시대 사람들의 종교적 삶에서 중심적인 원리를 구성하였다. 현실적인 소원을 간청하는 행위인 ‘빌다’와는 달리, ‘바치다’는 인간이 종교적 숭배의 대상과 맺는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완전한 헌신이나 희생, 자기 자신 또는 규정된 사물의 봉헌 등이 바치는 행위를 구성한다. 전례의 종교라 불릴 만큼 봉헌과 전례 거행에 역점을 두었던 당시 가톨릭교회는 비록 조상 제사는 거부하였지만, 바침의 종교적 원리와 관련된 조선의 용어법 자체는 대부분 수용하였다. 그래서 미사성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고, 제의, 제물, 제사, 제대 등 전례 관련 용어들도 전통적인 용어법과 큰 차이가 없다. 바치는 행위의 대상과 구체적인 행위 규범 몇 가지만 변경한다면 가톨릭교회에서도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결국 자기와 타자 사이의 언어적 혼효가 발생하는 중요 지점이 ‘닦다’ · ‘빌다’ · ‘바치다’의 종교적 실천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것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자면 한불자전에서 추출한 종교 관련 낱말들 가운데는 자타혼효의 발생 가능성을 추측하게 하는 말들이 존재한다. 즉 개별 종교나 종교적 현상들에 대한 지칭어를 넘어서 유적 범주로의 상승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가능성들이 모여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가시화될 때 비로소 현실에 존재하는 유교, 불교,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등을 아우르는 일반적인 범주로서 ‘종교’ 개념이 생성된다고 하겠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가 사용하는 종교 개념을 구성하는 하위 범주들 가운데 핵심적인 것으로 거론되는 것이 ‘신앙’(信仰) 또는 ‘믿음’이다. 유적 범주로 이행할 가능성을 담은 낱말들 가운데 왜 신앙이나 믿음과 관련된 용어들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한불자전을 보더라도 ‘신앙’이라는 낱말 자체가 실려 있지 않다. 게다가 종교적 믿음에 관한 용어들이 구체적으로 정착되어 있지 않음을 발견한다. ‘믿다’라는 행위와 관련된 낱말들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믿다[信](242) ; 신(信)(417) ; 신인(信人)(418) ; 신사(信士)(420) ; 신실(信實)하다(420) ; 신덕(信德)(420)

 

여기서 보듯이 믿음이나 신(信)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낱말들은 특별히 종교적인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 또는 선비를 가리키는 용법에 국한되어 있다. 게다가 미신(迷信), 맹신(盲信), 광신(狂信), 속신(俗信) 등 현대에 와서 종교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신앙의 불충분한 형식들을 지칭하는 낱말들도 나오지 않는다. 또한 신앙이라는 한자어의 뒷부분을 구성하는 낱말도 우러러보다[仰視], 우러러듯다[仰廳], 우럴다[仰](68)와 같이 일반적인 용어로 쓰일 뿐이다. 그러므로 신(信)과 앙(仰)을 합쳐서 서구어의 ‘피데스’(fides, faith, croyance)에 해당하는 고유한 용어로서 신앙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나아가서 신앙심과 같은 낱말이 정착하는 것은 한불자전이 편찬된 뒤로도 한참 지나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1890년에 나온 언더우드의 한영자전에도 아직 이 말이 실리지 않았으며, 1911년에 발간된 게일의 한영자전 수정판에 가서야 ‘신앙심’이라는 낱말이 나온다.

 

이런 현상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어쩌면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진행된 한국종교사의 거대한 변동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인 시점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19세기에는 가톨릭교회가 만났던 조선의 종교, 그래서 양자가 공유하고 있었던 종교적 삶의 지대가 분명히 존재하였다. 그것은 닦음(수도와 수덕), 빔(기도), 바침(제사)을 주된 에토스로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속적인 반복을 통하여 몸에 익히는 종교적 훈련이 가톨릭교회와 전통종교의 양 진영에 고루 퍼져 있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런 개념들은 혼효 과정을 거치면서 유적 범주로 상승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종교적 원리가 구체적인 유적 범주로 상승하여 일반적인 종교 범주를 구성해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였다. 그것은 바로 19세기 말부터 믿음 또는 내적 결단을 중요한 종교적 형식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는 구한말과 일제 식민통치라는 격변기에 유입된 서구 근대성, 외면적 물질세계와 내면적 의식세계를 이원적으로 파악하는 계몽주의 세계관, 그리고 루터와 칼뱅의 구호대로 오로지 믿음만이 종교적 구원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적 의식이 서로 맞물려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들이 혼합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종교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 중심의 종교 개념은 ‘프로테스탄트 패러다임’의 토대 위에서 정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 패러다임이 정착하려면 인간의 내면을 별도의 영역으로 설정하고, 종교적 확신을 내면적 자각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물론 한불자전에도 내면에 관한 지칭어들이 실려 있다. 가령 양능(良能)(270), 양심(良心)(271), 양지(良志)(271)와 같은 낱말들이 그러하다. 이 용어들 자체는 과거 양명학에서 사용하던 개념이었다. 그렇지만 특별히 양심이라는 개념은 양명학적 색채를 탈각하고 서구에서 수용된 근대적인 개념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리하여 양심(conscience)은 근대 계몽주의의 핵심적인 원리로 통용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불자전이 발간되던 당시의 조선사회에서 양심이라는 용어는 그렇게까지 완결된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박해시대에 페레올(Ferreol, 1808~1853) 주교가 조선에서 종교 자유를 획득하는 문제를 ‘양심의 자유’로 표현한 적이 있기도 했지만, 조선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념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톨릭 선교사들 역시 양심이라는 개념을 신앙과 결부시키는 사고에 익숙하지 않았다.

 

따라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의 조선사회에서 내적 확신을 뜻하는 신앙이 인간 내면의 고유한 영역인 양심과 만나서 종교개념의 핵심적인 원리로 자리 잡은 것을 과연 유적 범주의 형성에서 필연적인 진전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오히려 한불자전의 종교 관련 용어들에서 보이는 유적 범주의 가능성이 차단되고, 프로테스탄트 패러다임 위에서 다양한 낱말들이 신앙을 중심으로 재편성되는 과정을 거쳐서 확립된 것은 아닌지 되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가정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닌다면 20세기가 잃어버린 19세기의 언어, 초기의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끝내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언어의 흔적을 더듬는 행위는 현재 자명하게 사용되는 개념과 범주들을 상대화함으로써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로서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종교학은 자신의 연구 대상을 제대로 개념화하고 있지 못하다. 종교, 신앙, 의례, 교리 등의 낱말을 종교학 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용어들이 어떤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인지, 그러한 용어들이 사용됨으로써 사유가 흘러가는 도랑을 타고 어떠한 인식 태도가 빚어졌는지를 성찰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연구의 대상이 되는 언어적 구성물인지, 아니면 대상을 분석하는 도구가 되는 학문적 언어인지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용어 자체의 역사도 알지 못한 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한국종교학자들은 자신의 언어가 어떤 틀 위에서 주조된 것인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28)

 

이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구절에서 보듯이 종교 개념의 역사성에 주목하면서, ‘종교’ 이전의 종교와 ‘종교’ 이후의 종교는 동일한 ‘종교’ 개념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경우도 간혹 존재한다. 심지어 개항 당시에 통용되던 종교 개념을 서구 근대성과 더불어 도입된 일종의 담론 구성물로 보고 그 생성 원리를 유형화하여 분석하는 연구도 제출된 바 있었다.29) 그러나 이념형에 가까운 유형화 작업을 시도하다 보니 종교 개념을 견고한 단일체로 보려는 경향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는 점, 종교 개념의 형성을 가능하게 한 서구 근대성을 지나치게 완결적인 것으로 보는 바람에 오히려 근대성을 물신화하여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해체적 독법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거론된다.30)

 

뿐만 아니라 종교라는 낱말에 속박되면 종교 담론에 속하는 하위 개념들에 대한 천착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결국 종교 개념에 대한 연구가 앞으로 개척해야 할 연구 방향을 놓치고 말 우려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여전히 종교 담론의 하위 언술들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부족한 형편이다. 어쩌면 한국종교학은 가톨릭교회와 전통종교가 만나던 19세기적 가능성의 역사를 잊어버린 채, 20세기 이후에 형성된 프로테스탄트 패러다임의 자장 속에서 종교라는 자신의 연구 대상, 연구 방법, 인식태도를 주조하여 답습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에서 시도한 바와 같이 한불자전을 비롯하여 19세기와 20세기 문헌에 등장하는 종교 관련 용어들을 분석하는 연구는 한국종교학의 자기 성찰을 촉구하고, 그 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계몽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5. 타자를 넘어 차이와 번역의 지평으로

 

다시 타자 이야기로 돌아오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나 중세 시절에 종교적 타자를 표상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신체적 기형이다. 알 수 없는 이국의 땅에 사는 존재는 대개 외눈박이, 난장이, 여러 동물의 요소를 뒤섞은 괴물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중세 유럽에서 널리 유행하였던 세계지(世界誌, cosmographia)나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타자 표상의 방식이다. 둘째는 기이하고 비상식적인 관습이다. 즉 식인 풍습이나 인신공희(人身供犧)의 관습은 타자를 부정적으로 그릴 때 곧잘 등장하던 스테레오타입이다. 셋째는 언어적 소통불능이다. 흔히 야만인이라고 번역하는 그리스어 ‘바르바로스’(barbaros)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발음을 지껄이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언어를 사용하여 서로 소통하지 못한다는 것이 상대방을 이질적인 타자로 그리는 데 중요하게 작용함을 보여 준다.

 

신체적 기형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대상에 대한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금방 해소되기도 하는 반면에, 이질적인 관습에 대한 오해와 언어적 소통불능은 자기와 타자를 분리시키는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물론 신체적 기형은 인종적 이질성으로 변형된 채로 지속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식의 차원에서 타자성을 강화하는 것은 아무래도 언어적인 장벽이 아닐까 한다. 마치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접혀지는 주름이 있어서 어떠한 다림질로도 펼칠 수 없고, 주름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양쪽은 끝내 만날 수 없다는 생각처럼 말이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이 사는 고장에 가서 지내면서 그들의 말을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제 그들은 이해 가능한 대상으로 변화되고, 인식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인식의 객체로 남아 있다. 인식하는 주체는 나이고, 그들은 내 인식의 대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으로 내가 나 자신을 관찰하는 것 역시 가능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인식의 주체와 객체는 역전되며, 이 역전의 경험을 통해서 내 인식의 지평은 새롭게 열린다. 인간 이해를 향한 치열한 열정은 새로운 도약을 이루게 되고, 서로 상대방을 인식의 주체로서 인정함으로써 상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이런 의미에서 통약가능성(commensurability)은 인간들 사이의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토대이다. 이마저 부정한다면 말 그대로 인간은 외부로 난 유리창 하나 없이 완전히 밀폐된 단자(單子)와 같은 존재로 간주되며, 조나단 스미스의 말처럼 인간을 이해하려는 어떠한 인간과학도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자기와 타자의 만남에서 출발하여 타자의 타자다움, 즉 이질성을 비언어적 상태, 즉 역겨워하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기, 어떠한 물음도 제기하지 않고 괄호 친 상태로 남겨 두기에 맡겨 놓지 않을 때 우리는 중요한 해석적 실천을 감행하게 된다. 즉 차이의 언어를 생성시키는 것이다. 이 순간에 마주치게 되는 고통스러운 경험이 바로 번역이다. 폴리쾨르(Paul Ricoeur, 1913~2005)가 생각한 번역과 해석의 문제를 알기 쉽게 잘 소개하고 있는 다음의 말을 경청해 보자.

 

“번역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을 넘어서서, 이렇게 함으로써 사태와 상황을 이해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해석이다. 이미 번역은 이런 점에서 하나의 세계를 다른 세계와 연결시켜 주고 매개해 주는 탁월한 하나의 해석이다. 이때 언어들 간의 번역은 낯선 두 세계 사이를 다리로 연결짓는 일이자 세계들 간의 만남이다. 따라서 낯설고 어색하며 불명료하고 시공간적으로 떨어진 것을 친숙하고 명료한 것으로, 우리의 시공간과 가까운 것으로 이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번역이라면, 곧 그것은 해석이다.”31)

 

번역이 두 세계의 만남이고 낯선 대상을 친숙한 존재로 전환시키는 실천인 한에서 해석의 어려움과 고통스러움을 수반한다. 즉 두 세계의 완전한 합일이란 불가능하며, 낯설음의 완전한 소멸도 역시 불가능하다. 이런 불가능성은 번역의 필연적인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데올로기적 기제가 숨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타자의 언어를 자기의 언어로 완전히 번역할 수 있다는 말 속에는 자기의 무한한 확장으로 타자의 영역을 정복하겠다는 권력 의지가 들어 있으며, 타자성의 완전한 소멸을 꿈꾼다는 말은 절대적 자기 긍정의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폭력적인 언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번역은 자기와 타자의 완전한 일치를 희망하지 않으며, 타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차이를 통한 비교라는 형식으로 타자에게 다가가는 온건한 방법이라 하겠다. 이 때문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도 원문의 말들은 내용과 언어가 마치 과일의 껍질과 알맹이처럼 일종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면, 번역의 언어는 그 내용을 겹겹이 주름 잡혀 있는 왕의 옷처럼 하나하나 펼쳐낸다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32)

 

폴 리쾨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타자로(soi-meme comme un autre)33)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자기 안에 들어 있는 타자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조선어를 수집하고, 여기에 라틴어나 불어 해설을 달아서 수고본을 만들었던 다블뤼 주교,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그리고 이러한 선배 선교사들의 노력을 한불자전이라는 형태로 집대성한 리델 주교를 위시한 가톨릭 선교사들은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경지까지 나아갔을까? 즉 자기 자신을 여럿 중의 하나로 간주하는 자기 해석학을 달성하였을까? 이것은 유적 범주의 언어들이 일반적 개념으로 정착하여 종교라는 낱말을 실현할 때 가능하게 되는 것일까?

 

이 글은 낱말들에 대한 사색과 추적이다. 말하자면 프랑스 가톨릭 선교사들이 생각한 의미상의 등가물로 이루어진 목록, 즉 어휘집을 검토한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낱말들이 어떤 의미를 담아서 어떤 방식으로 쓰였는지를 따져 보아야 좀 더 확장된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결국 낱말들이 모여서 문장을 이루고, 문장들이 모여서 텍스트를 이루고, 텍스트들이 모여서 맥락(context)을 이루는 과정 속에서 그 낱말들의 말뜻과 쓰임새는 더 자세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들이 행했던 지적 활동을 거꾸로 되짚어 들어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은 조선어의 말뜻이 담긴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리서와 같은 텍스트들을 저술하였으며, 그 속에 담긴 낱말들의 순수 결정체를 모아서 사전을 편찬하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낱말들의 확장된 쓰임새를 추적하는 작업은 앞으로의 연구 과제가 될 것이다. 이 과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먼저 유사한 등가물의 목록들을 모아서 한불자전과 병치하여 비교 검토하는 작업이 있다. 한불자전을 필두로 하여 19세기 말과 20세기에는 한영자전, 조선어 사전 등 다양한 사전들이 출현하였다. 1880년부터 1945년까지 대략 65년 정도에 걸친 조선사회의 격변기에 조선 사람들의 언어를 수집한 이 사전류의 저술들을 비교하면 한불자전의 특성이 더욱 잘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이 낱말들이 여기에는 나오는데 왜 저기에는 나오지 않는 것일까, 이 낱말이 왜 사전에 따라 그 뜻을 달리하고 있는가, 온갖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분출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가톨릭 선교사들의 서한과 기록, 간행물에서 낱말의 쓰임새, 문장의 의미론적 구조, 맥락의 화용론적 구성 방식 등을 추적하는 연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톨릭교회의 언어규범 내부에 존재하는 개념 체계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용어의 변경에 따른 사고방식의 변화는 없었는지 등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이다. 조선의 가톨릭교회와 선교사들 역시 종교 범주가 정착되면서 형성된 새로운 종교적 사유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싫든 좋든 혹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가톨릭교회의 종교적 에토스로 볼 때 이질적인 요소들이 은연중에 스며들어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측된다. 이러한 지점들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일은 근현대 한국종교사를 개념과 사유의 역사로 다시 서술하는데 도움을 주리라고 기대한다.

 

글을 마무리하려는 마당에 두 가지 단상이 떠오른다. 하나는 유럽에서 번역가의 수호성인이라 불리는 예로니모(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19) 성인에 관한 것이다. 예로니모 성인은 괴팍하면서도 복합적인 기질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번역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음을 꿰뚫어 본 다마소 1세 교황은 라틴어를 사용하는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성경을 번역하라는 사명을 주었고, 예로니모 성인은 불가타 성경을 번역해냄으로써 성원에 훌륭히 보답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그의 꿈에 나타나 “너는 키케로의 추종자이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꾸중할 만큼 라틴어에 열중하였던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70인역(Septuaginta)의 그리스어 본문이 미덥지 못하다고 판단했던지 유대교 회당의 랍비들과 치열한 토론을 벌이면서 히브리 성경에서 구약을 새로 번역하였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가 경합을 벌이던 예로니모 성인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발효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다른 하나는 인도 출신의 승려로서 한역 불경을 새로이 편찬하여 중국의 불교가 격의(格義)의 수준을 벗어나는 데 크게 기여한 구마라집(鳩摩羅什, 343~413)과 관련된 일화이다. 구마라집은 번역의 고통스러움을 표현하면서 어미 새가 뱃속에서 모이를 토해내어 새끼에게 먹이는 것에 비유하였다. 말하자면 양쪽 언어를 잇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번역자는 원래 언어의 단단한 외피를 깨뜨려서 속뜻을 잘 헤아린 다음에, 대상 언어의 풍부한 맥락을 고려하여 이해 가능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고된 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계적인 반복 행위가 아니다. 자식을 양육하는 어미의 심정으로 두 언어 모두를 사랑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예로니모 성인의 머릿속과 구마라집의 손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이 향기는 번역에 몰두하다가 해가 지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더욱 진하게 다가오리라.

 

 

<부록> 한불자전에 수록된 종교 관련 용어

 

 

가례(嘉禮)(133) 왕의 결혼식.

가사(袈裟)(135) 승려들의 예식용 복장.

가신(家神)(136) 집에 사는 귀신들, 수호신들, 가정의 수호신들.

각혼(覺魂)(122) 감각을 지닌 영혼, 동물들의 영혼, 영혼의 감각들.

간구(懇求)하다(127, 140) 열심히 기도함, 간청함.

간절하다[懇功], 간절한 마음(141) 열렬한, 뜨거운, 경건한, 급박한, 절박한 (기도).

간청(懇請)하다(141) 열렬히 기도함, 간청함, 간곡히 요청함, 요구함, 청원함.

감목(監牧)(125) 주교, 목자. (일차적으로는 ‘양치는 이’, 그리고 은유로서 ‘주교’를 의미함)

감실(龕室)(125) 신주를 모신 방, 작은 기도실이나 신주를 모셔 둔 사당.

감장(監葬)하다(126) 매장을 함, 장례식을 치름.

강론(講論)하다(130) 설교함, 이야기함, 입장을 개진함, 연설함, 교리를 설명함.

강림(降臨)하시다(130) 내려오심. (높임말)

강복(降福)하다(130) 행복이 ~ 위에 내리도록 함, 축복함.

강상(綱常)(130) 세 가지 중요한 관계, 1. 왕에 대한 신하의 관계, 2. 남편에 대한 아내의 관계, 3. 주인에 대한 종의 관계.34)

강상죄(綱常罪)(130) 존속 살해범, 국왕 시해범, 반역자. 국왕 시해의 범죄, 즉 반란, 또는 왕이나 자기 부모, 자기 남편, 자기 주인에 대해서 존경심이 결여되어 있음.

강생(降生)하다(130) 육신을 입고 태어남. (교회 용어)

강시(?尸)(131) 길 위에서 굶어 죽은 채 발견된 익명의 시신, 길 위에 쓰러져 있는 시신

강잉(降孕)하시다(129) 육신을 입고 태어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킴)

개두보(蓋頭?)(121) 개두포.

개두포(蓋頭袍)(121) 개두포.

개벽(開闢)하다(120) (하늘과 땅, 우주의) 창조. 창조함. 이교도들이 말할 때에는 현재의 세상을 끝내고 다른 세상을 창조하는 대재앙을 의미함.

개재(開齋)하다(121) 대재와 소재를 끝냄, 즉 단식을 끝마침.

거룩하다[聖](147) 거룩함, 성스러움, 의로움.

거사(居士)(148) 도교의 승려. 승려들의 하인. ‘사당’이라 불리는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다니는 남편,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고 아무에게나 몸을 팔게 함.

거상(居喪)(148) 아버지나 어머니의 죽음으로 상을 당함.

거상하다(148) 상을 당함, 상중에 있음.

거양하다, 성체거양(141) 보여 주고 나타내기 위하여 들어 올림, 미사에서 성체를 들어 올림.

건립성체(建立聖體)(145) 성체성사의 제정.

걸귀(乞鬼)(147) 굶주린 귀신.

걸귀(乞鬼)들리다(147) 굶주린 귀신에게 사로잡힘, 곧 만족할 줄 모름, 대단히 게걸스러움, 허기짐.

걸신(乞神)(148) 굶주린 귀신, 허기증, 굶주림.

격물궁리(格物窮理)하다(152) 자연 과학, 철학, 자연의 사물들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연구함, 깊이 관찰하고 숙고함.

격물치지하다(格物致知)하다(152) 철학, 사물들을 지배하는 법칙들에 대한 지식, 사물의 본성을 이해함.

견진(堅振)(154) 견진(성사).

경교비(景敎碑)(155) (당나라 때에) 중국의 황제가 그리스도교 역사의 주요 시대들을 새기게 했던 돌.

경덕경(敬德經)(157) 흠숭의 마음을 표현하는 기도문.

경문(經文)(155) 기도, 기도문, 기도서.

경배(敬拜)하다(156)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함.

경본(經本)(156) 기도서, 성무일도서, 미사경본 등.

경서(經書)(156) 거룩한 책. (말하자면 공자와 맹자의 책들)

경언(經言)(154) 복음서의 말씀들. (교회 용어)

경일(慶日)(155) 축제와 향연의 날.

경전(經典)(157) 성인들의 생애,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거룩한 책. 왕국의 형법 법전, 민법 법전, 법령집.

경탈세속(輕脫世俗)하다(157) 모든 일에 무관심함, 현세를 멸시하고 도외시함, 세상에서 물러남.

경판(經板)(156) 성작개. 미사경본 받침대.

경패(經牌)(156) 독송액자.

계(誡) 십계(150) (하느님의) 열 가지 계명.

계명(誡命)(151) 계율, 명령.

고경(古經)(185) 구약성경.

고공(苦功)(185) 십자가와 공덕. 고행.

고교(古敎)(185) 옛날 율법, 유대의 율법, 모세 율법.

고대(苦帶)(195) 산양의 털로 짠 허리띠, 허리띠 모양으로 된 거친 피륙.

고명(告明)(186) 고백하여 밝힘, 솔직한 고백, 고백성사의 다섯 부분 가운데 하나.

고명(告明)하다(186) 고백함, 고해함.

고사(古寺)(194) 오래된 절.

고사(告辭)(194) 악마에게 바치는 제사의 일종.

고사(告辭)하다(194) (뱃사람들이) 귀신에게 빌기 위하여 쌀이 담긴 사발을 바침.

고상(苦像)(194) 십자고상.

고성(古聖)(195) 고대의 성인, 옛 율법 시대의 성인들.

고성소(古聖所)(195) 옛날 성인들이 있는 곳. 조선의 낙원. 림보. (교회용어)

고수(苦修)(195) 수도자, 은수자, 은둔자. 고행에 몰두함. (교회 용어)

고수례[祭飯語](195) 이교도들이 식사를 하기 전에 밥 한 숟갈을 던지면서 발음하는 미신적인 말이나 외침.

고수원(苦修院)(195) 수도원, 대수도원.

고수원 회장(苦修院 會長)(195) 수도원장, 작은 수도원의 원장.

고죄(告罪)하다(197) 잘못을 인정함, 죄를 고백함.

고죄경(告罪經)(197) 고백성사 때의 기도문.

고해(告解) (184) 고백(성사), 고해, 자백.

고해(苦海)(184) 고뇌의 바다, 말하자면 현세. 인간들의 고통.

곡반(哭飯)(185) 고통의 밥. 상 위에 올려놓은 밥 세 그릇, 그 앞에서 사람들이 왕의 죽음을 애도함. 죽은 사람의 신주 앞에 애도를 표하면서 바치는 음식. (미신)

공경(恭敬)하다(189) 존경함, 공경함, 흠숭함, 숭배함.

공과(功課)(189) 매일의 기도, 매일의 종교적 실천. 주일과 축일 및 여러 가지 상황에서 행하는 기도문들의 모음집, 기도서, 성무일도 기도서.

공부자(孔夫子)(190) 중국의 철학자인 공자.

공소(公所)(190) 경당, 교우들의 회합 장소. 공소에 소속된 교우들.

공심재(空心齋)(190) (성찬 단식과 같은) 완전 단식, 대재.

공심판(公審判)(190) 공심판, 마지막 심판.

공자(孔子)(191) 공자.

공회(公會)(188) 공회, 총회. 그리스도교, 가톨릭교회.

관례(冠禮)(180) 갓을 착용하는 예식(젊은 남자의 결혼식). 결혼하기 전에 젊은 사람에게 갓을 씌우는 예식.

관상(觀相)(180) 관상, 점. 얼굴을 관찰하면서 그 사람의 운수를 말해 주는 기술.

관음보살(觀音菩薩)(178) 중국의 여신. 승려들의 탄원 또는 기도. (죽을 때 이 말을 암송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음) (미신)

교(敎)(198) 교리, 가르침, 종교, 교단.

교강(敎綱)(198) 그리스도교의 규칙, 율법.

교우(敎友)(198) 그리스도인.

교종(敎宗)(199) 교황.

교중(敎中)(199) 종교, 그리스도교에 관련된 사람.

교화황(敎化皇)(198) 교황, =교종.

구(救)하다(203) 구원함, 구출함, 해방시킴, 죄를 사함.

구교(舊敎)(204) 옛날 교우, 오래전부터 교우였던 사람

구령(救?)하다(210) 구함, 구원함. (교회 용어)

구마(驅魔)하다(205) 마귀를 쫓아냄.

구마품(驅魔品)(205) 마귀를 쫓는 사람, 구마의 품계.

구사(驅邪)하다(211) 마귀를 쫓아냄, 구마를 행함.

구세(救世)하시다(211) 세상을 구원함. (우리 주님만을 가리킴)

구세자(救世者)(211) 세상의 구원자, 메시아.

구세주(救世主)(211) 구원자, 세상의 구원자 하느님.

구속(救贖)하다(212) 구원하여 죄를 없애 줌, 해방함, 풀어 줌. (교회 용어)

구원(救援)하다(203) (환자 또는 적들에 의해 억압당하는 동맹자를) 도움, 구함.

국기(國忌)(204) 선왕들의 기일을 맞아 왕이나 국가가 제사를 드리는 때.

국상(國喪)(205) 왕실 인물의 죽음. 왕이 죽어서 나라 전체가 상을 당함.

국장(國葬)(205) 왕의 장례식. 왕실 인물의 장례식. 장례식이 거행되는 시기(죽은 뒤 약 3개월).

군자(君子)(207) 학식 있는 사람, 박식한 사람. 선한 사람, 덕이 있는 사람.

굴건(屈巾)(210) 상을 당한 사람이 장사를 치르고 제사를 드릴 때 갓 위에 씌우는 대마로 짠 작은 천 조각.

굴총(掘塚)하다(211) 사사로운 권한으로 관을 파냄. 다른 집안의 시신이나 관을 파냄.

굿(212) 집안에서 드리는 제사의 일종. 주술사들이 행하는 성대한 예식, 광적인 춤, 떠들썩한 소동, 성대한 축제, 성대한 예식.

굿기다(212) 운이 없음, 불운함, 불행을 당함.

굿기다(212) 죽음. (높임말)

권교(勸敎)하다(200) 종교를 가르침, 종교를 실천하도록 권면함.

권도(權道)(200) (견진을 베푸는 사제에게 주어진) 위임, 위탁, 특별한 허가.35)

궤배(?拜)하다(200) 귀신들과 우상들 앞에 엎드림, 굴종함.

귀(鬼)(201) 악마.

귀매(鬼魅)(202) 마귀, 악마, 귀신. (이교 용어)

귀신(鬼神)(202) 귀신, 신들, 마귀들, 악마, 나쁜 귀신들

그리스당[基利斯當](171) 그리스도인. (교회 용어)

그리스도[基利斯督](171) 그리스도. (교회 용어)

극락세계(極樂世界)(164) 조선인들의 낙원. 부처를 잘 공경한 덕이 높은 사람들의 영혼이 가는 낙원의 장소. 승려들의 천국. 이것은 곧 부처의 니르바나임.

금시발복(今時發福)(167) 갑작스러운 행복. (미신)

금장(禁葬)하다(167) 자신의 땅에 매장하는 것을 가로막음.

금정(金?)(167) 관을 안치하는 구덩이. (관을 내리기 위하여) 구덩이의 크기를 재는 데 쓰는 나무로 만든 틀.

급살(急殺)맞다(170) (벼락을 맞거나 페스트에 걸려서) 갑자기 죽음. 마귀의 화살에 맞아서 갑자기 죽음. (미신)

기고(忌故)(161) 아버지나 어머니, 조상들의 기일.

기관례(起棺禮)(161) 장례예식. 발인예식. (교회 용어)

기구(祈求)하다(161) 기도. ~에게 기도함, 탄원함.

기도(祈禱)하다(162) 탄원함, 기도함, 전구함.

기문벽서(奇文僻書)(161) 마술. 주술과 미신을 담은 비밀스러운 책.

기운(氣運)(160) 공기, 기체. 건강, 힘, 기질, (사물의) 힘. 행운, 번영, 운수, 생명, 말하자면 정신, 감정, 영혼, 영의 존재.

기일(忌日)(160) 부모나 조상들이 돌아가신 날

기장(忌葬)하다(163) 관을 무덤 속에 내려놓는 일에 참석하는 것을 거절하거나 무서워함. (미신)

기제(忌祭)하다(163) 돌아가신 날에 제사를 드림. (조상들에게는 쓰는 말이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서는 쓰지 않음)

길(吉)하다(174) 행운이 따름, 유리하게 작용함. (일이) 적절하게 닥침, 길조임.

길례(吉禮)(175) 행복한 예식들, 말하자면 결혼예식. 상(喪)을 끝내기로 정한 날짜.

길복(吉服)(175) 행복의 복장, 말하자면 결혼식 복장, 축제 복장, 상을 끝낼 때 상중인 사람에게 입히는 복장.

길복(吉福)(175) 행복, 행운, 행복한 성공. 모든 것에 성공해서 행복한 사람.

길일(吉日)(174) 좋은 날, 행복한 날, 행운의 날. 음력으로 매달 첫째 날.

길흉(吉凶)(174) 좋은 것과 나쁜 것. 행복과 불행의 징조.

 

 

남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264) 승려들의 기도문, 노자 교단의 신봉자들이 행하는 희구의 형식으로 된 외침. (남무는 감탄사로서 ‘아!’의 의미이고, 아와 미는 중국의 황제가 파견한 두 명의 이름이며, 타불은 부처, 즉 채색된 부처 그림을 인도인들에게 가져갔다는 뜻임)

납평(臘平)(267) 음력 12월에 하늘에 제사지내는 날. 추위가 끝나는 날(2월 2일 또는 3일 무렵). =납일

냉담(冷淡)하다(272) 미지근함, 열의가 없음, 다시 차가워짐, 약해짐. (교회 용어, 정신이나 열성에 대해서만 사용함)

넋[魂](274) 영, 생명, 이교도들이 말하는 일종의 영혼. 승려들이 사람들에게 있다고 가정하는 영혼들 가운데 하나이며, 땅으로 내려옴.

노군(老君)(288) 철학자 노군, 이교의 위대한 인물, 공자와 동시대 인물이며, 도사들로 이루어진 교단의 창시자.

노도(老道)(291) 노군이라고도 불리는 노자의 교리.

노승(老僧)(291) 늙은 승려.

노자(老子)(291) 이교도들의 위대한 인물, 노군과 동의어.

노제(路祭)(291) 시신을 장지로 모셔갈 때 길 위에서 지내는 제사.

논어(論語)(288) 공자가 지은 책 이름.

농리편(農理篇)(289) 교우들이 가지고 있다고 이교도들이 믿는 책 이름, 자기네보다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고 믿음.

능견난사(能見難思)(281) 같은 크기의 그릇 열두 개를 가지고 어떤 규칙에 따라서 하나를 다른 하나 속에 집어넣은 것을 이렇게 부름. 볼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 이해 불가능한 것, 볼 수는 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것. (조선에는 그런 것이 세 가지 있는데, 예를 들면 떠있는 돌, 부석이 그것임)

 

 

닦다[修](453) 청소함, 정화함, 닦음, 윤을 냄, 완전하게 함, 열중함, 아름답게 함, 개선함, 바로잡음, 육체에 고통을 줌, 억누름.

단수점(單數占)(456) 점, 행운. (미신)

담사(禪祀)(455) 상의 후반기를 끝내는 시기, 즉 대상을 끝낸 지 두세 달 뒤에 드리는 제사, 담복을 입고 드림.36)

당가(當家)(457) 회계, 경리, 재무 담당관, 집의 관리인, 집의 우두머리.37)

당고(當故)하다(458) 상을 당함, 부모를 잃음, 부모를 잃는 일을 당하여 견딤.

당상(當喪)하다(458) 부모를 잃음, 부모를 잃는 일을 견딤.

당옥(堂獄)(457) 천당과 지옥.

대녀(代女)(464) 딸을 대신하는 사람, 대녀.

대마(大魔)(450) 큰 마귀.

대모(代母)(464) 어머니를 대신하는 사람, 대모. (교회 용어)

대부(代父)(465) 아버지를 대신하는 사람, 대부. (교회 용어)

대부(大父)(450) 공경하올 아버지(하느님을 가리킴), =대부모(같은 뜻).

대사(大師)(451) 교양 있는 승려, 큰 승려. (존칭어)

대사(大赦)(451) 크게 죄를 사함, 대사면, 총사면.

대상(大祥)(451) 부모님의 두 번째 기일(2년 후), 큰 기일.

대성(大聖)(451) 위대한 성인.

대성전(大聖殿)(451) 공자의 사당.

대세(代洗)하다(465) 예절 없이 사적으로 주는 세례, 약식 세례, 약식 세례를 줌.

대송(代誦)하다(465) 의무적이지만 행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하기 위한 기도문들. (교회 용어) 어떤 기도문을 다른 기도문 대신에 암송하거나, 병자와 같이 기도를 할 수 없는 사람을 대신해서 기도문을 암송함.

대월(對越)하다(464) 하느님의 현존, (하느님을) 묵상함, 하느님의 현존과 마주함. (교회 용어)

대자(代子)(466) 아들을 대신하는 사람, 대자. (교회 용어)

대재(大齋)(452) 금식, 큰 재계.

대제(大祭)(452) 조정에서 거행하는 큰 제사.

대찰(大刹)(452) 큰 파고다, 큰 사찰.

대천신(大天神)(452) 대천사.

대학(大學)(448) 큰 학문, 증자가 지은 한문 책 이름.

덕닦다[修德](469) 덕을 획득함.

덕담(德談)(469) 광대들의 노래, 악마에게 바치는 기도. (미신)

덕서도문(德敍禱文)(469) (성모님께 바치는) 호칭 기도.

도(道)(483) 길, 가르침, 교의, 지방.

도관(道觀)(485) 마귀의 사당과 같은 것, 파고다.

도교(道敎)(485) 공자와 거의 동시대(주전 450년) 인물인 중국의 철학자 노자가 설립한 도(raison) 교단의 신봉자들이 따르는 교리.

도덕(道德)(497) 교리와 덕성.

도리(道理)(494) 교리, 가르침, 학문.

도문(禱文)(487) 호칭 기도.

도사(道士)(496) 노자의 신봉자.

도사(道師)(496) 철학자 노자가 설립한 도교 교단. 신선이 되기 위하여 평생 고행을 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계속 단식 등을 행하는 남자.

도선(道銑)이(496) 이교도 예언자의 이름, 저명한 지관 승려의 이름.38)

도섭하다(496) 변신(잘못된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여 눈을 속임. ‘환술’을 볼 것.

도술(道術)(496) 신비술에서 행하는 술법,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미래를 알아맞히거나, 묘를 쓰기에 좋은 땅을 발견하는 기술.

도승(道僧)(496) 유식하고, 조예가 깊으며, 독실한 승려.

도유사(都有司)(484) 어떤 일을 맡은 사람, 우두머리 (특히 공자에게 드리는 제사를 감독하는 일을 담당하는 양반을 일컬음), (각 향교에서) 공자를 숭배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

도인(道人)(484) 교리에 정통한 사람

도장(倒葬)하다(497) 이치에 맞지 않게 매장함(아들을 아버지보다 높은 곳에 묻음). 반대로 함, 거꾸로 행함(머리를 낮은 곳에 둠).

도통(道通)하다(497) 모든 교리를 아주 잘 알고 있음, 교리를 깊이 연구하여 정통함.

도학(道學)(484) 교리, 교의.

도회장(都會長)(485) 가장 중심적인 회장, 우두머리 회장. (교회 용어)

독(?)(485) 미신적인 신주들을 넣어두는 상자.

독각수(獨角獸)(486) 유니콘. 머리 가운데에 뿔이 하나만 있는 동물.

독갑이[??](486) 장난꾸러기 꼬마 악마, 장난꾸러기 요정, 악마.

독경(讀經)하다(486) 맹인들의 기도, 기도의 형식을 취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리. 이런 기도문들을 암송함.

돗갑이[??](497) 장난꾸러기 요정, 장난꾸러기 꼬마 악마.

동계소재(冬季小齋)(489) 겨울의 사계(대림 제3 주일) 때에 행하는 소재.

동교(同敎)(489) 같은 교리를 따르는, 같은 스승의 제자들. 마찬가지로 교우인 사람.

동도(同道)(491) 비슷한 교리. 같은 교리를 따르는 사람.

동틔[動?]나다(492) 불운을 가져옴. 귀신을 화나게 하여, 분노와 복수를 초래함. (미신)

동학(東學)(488) 동양의 교리.

두건(頭巾)(501) 상을 당한 남자들이 쓰는 삼베로 짠 모자.

두겁조상(頭匣祖上)(501) 가족의 시조, 혈통상의 첫 인물. (아담)

득승지회(得勝之會)(477) 승리한 교회, 천국.

등천(登天)하다(479) 하늘로 올라감, 승천함.

 

 

리(理)(283) 이성, 상식, 정의, 옳음. 교리. 신비.

림보(臨簿)(284) 림보.

 

 

마(魔)(215) 악마.

마감(魔感)(216) 마귀의 유혹.

마계(魔計)(216) 사탄의 계략, 마귀의 책략.

마귀(魔鬼)(216) 마귀, 악마.

마귀들리다(481) 악마에게 사로잡힘.

마노(魔奴)(218) 악마의 노예.

마당(魔堂)(226) 마귀의 사당.

마력(魔力)(223) 마귀의 힘, 악마의 권세.

마마[痘疫](218) 이교도들이 천연두를 부르는 이름, 그것에 경의를 표하여 화나지 않게 하려는 것임.

마몽(魔夢)(218) 마귀의 꿈, 마귀가 꾸게 만드는 꿈, 마귀가 나오는 환영.

마상(魔像)(225) 마귀의 형상이나 그림. 우상.

마술(魔術)(225) 마귀의 책략, 마술, 마귀의 술책, 주술, 요술.

마유(魔誘)(216) 마귀의 유혹.

마접(魔接)하다(227) 마귀 들림, 사로잡힘, 악마에게 사로잡힘.

막비주명(莫非主命)(217)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임. 하느님의 뜻이 없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음.

만과(晩課)(219) 저녁 기도.

만나[瑪納](219) 만나. (교회 용어)

만복(萬福)(219) 만 가지 복, 완전한 행운, 지고한 복.

만선(萬善)(220) 완벽한 선, 만 가지 선, 지고한 선.

만수무강(萬壽無疆)(220) 변함없이 1만 년을 사는 것, 오래 사는 것, 즉 영원, 불멸.

만수받이하다(220) 만수를 받음(주술사들이 만수, 즉 만 년 동안 산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 결혼식을 함. 양보하지 않음, 호의나 비난에 응답함. 대거리함.

망곡(望哭)(221) 왕이 죽었을 때 백성들이 눈물 흘리며 애도하는 것, 왕이 죽었을 때 모든 마을에서 행하는 예식.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한양을 향해서 몸을 돌려 절을 하고 눈물을 흘림)

망궐례(望闕禮)(221) 관리들이 왕에게 바치는 환호와 찬사들. 모든 관리들이 매달 두 번 (음력 초하루와 보름) 거행하는 예식, 높은 곳에 있는 방으로 가서 대궐을 향해서 몸을 돌린 다음에, 왕에게 존경을 표하는 의미에서 절을 함.

망덕(望德)(222) 희망(덕).

망두석(望頭石)(222) 무덤 앞과 정면에 각각 놓아두는 두 개의 돌. (새로 변한 망자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매괴(??)(228) 장미나무. 묵주기도.

매괴경(??經)(228) 묵주기도 기도문.

매장(埋葬)하다(229) 관을 땅에 묻음.

매헌(埋獻)하다(216) 조상들의 오래된 신주를 묻음.

맹자(孟子)(229) 맹자. (중국의 철학자 이름)

면병(?餠)(234) 누룩을 넣지 않은 떡, 밀떡, 성체. (교회 용어)

면주(?酒)(234) 미사용 면병과 포도주. (교회 용어)

명기(明氣)(235) 맑은 날씨, 건강에 좋은 기후. (이교도 사이에서) 좋은 기운.

명당(明堂)(236) 뛰어나고 훌륭한 장소. 묘를 쓰기 좋은 장소, 좋은 무덤.

명륜당(明倫堂)(236) 조상들을 모신 불당. 공자의 사당에 부속된 강의실. (이곳은 불가침의 보호권을 누림)

명복(名卜)(235) 주술사, 점쟁이.

명불(名佛)(236) 기교가 뛰어난 불상.

명일(名日)(235) 성대한 날, 기쁜 날, 즐거운 날, 축제 날, 이교도들의 축일. (1년에 네 번 있음, 음력 1월 1일, 2월 또는 3월 중의 한 날, 5월 5일, 8월 15일)

명정(銘旌)(236) 장례식에 드리우는 붉은 천, 그 위에 흰색으로 고인의 이름과 신분이 적혀 있음.

모고해(冒告解)하다(243) 신성모독적인 고해, 신성모독적인 고해를 함.

모령(冒領)하다(246) (성사를) 모독함, 부당하게 받음, 신성모독을 범함. (교회 용어)

모병(毛病)(246) 오류, 악습, 나쁜 습관. (교회 용어)

목신(木神)(244) 나무에 사는 귀신. (미신)

목탁(木鐸)(244) 죽은 사람의 머리 같은 것인데, 나무로 만들고 속이 비어있음, 승려들이 구걸하면서 두드림.

목패(木牌)(244) 나무로 된 조상들의 신주.

몰약(沒藥)(246) 미르라, 몰약. (교회 용어)

몽소승천(蒙召昇天)(246) 성모승천, (그러한 부르심).

묘호(廟號)(248) 신주에 새긴 선왕의 이름, 사당 안에 봉안함.

무극(無極)(251) 근원적인 힘, ‘홍몽’을 볼 것.

무녀(巫女)(252) 여자 약장수, 여자 주술사, 떠돌이 여자 음악가.

무당[巫](259) 마을을 돌아다니며 좋은 운을 빌어주고, 점도 치고, 병자들을 고쳐주는 일을 하는 여자 주술사 따위. (최하층 사람임)

무릉도원(武陵桃源)(255) 중국 사람들의 티볼리(경치 좋은 관광지), 중국에 있는 유명한 장소의 이름, 아름다운 계곡을 가리킴.

무염원죄(無染原罪)(249) 원죄의 흠을 갖고 있지 않음, (성모님의) 무염시태.

묵도(默導)(237) 내적인 영감(靈感). (교회 용어)

묵도(默禱)하다(237) 명상함, 침묵 중에 기도함.

묵상(默想)하다(237) 명상함, 성찰함. (교회 용어)

묵상신공(默想神功)(237) 명상, (경건한 마음을 실천함)

묵상지장(默想指掌)(237) (책 이름), 명상하는 방법 또는 입문서, 명상하는 방식.

묵시(默示)하다(237) 직관으로 봄. 영감을 받음, 내면을 밝게 비춤. (교회 용어)

묵조(默照)(237) 영감, 내면의 빛. ~하다 : 정신, 영혼을 밝게 함, 영감을 받음. (교회 용어)

묵존(默存)하다(237) 침묵 속에 있음, 성찰함, 주시함. 명상함, 침묵하는 가운데 정신이나 마음에 각인시킴. (교회 용어)

묵주(默珠)(237) 묵주.

문교(聞敎)하다(253)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임, 종교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들음, 가톨릭교회에 들어감.

문복(問卜)하다(253) 여자 주술사에게 물어봄, 점쟁이에게 문의함, 맹인에게 운수를 들음.

문상(問喪)하다(254) 위로의 형식으로 물어봄, 아버지나 형제 등의 상을 당한 사람에게 행하는 일. 장례나 매장에 관한 일을 물어봄.

미력[石人](240) 돌로 만든 석상, 돌로 만든 거대한 우상.39)

미사[彌撒](240) 미사.

믿다[信](242) 믿음, ~를 신뢰함, 신임함, 신용함.

 

 

바랑[鉢囊](312) 승려들의 여행용 보따리 같은 것, 승려들의 자루, 배낭.

박수[覡](297) 남자 주술사, =화랑이.

반고씨(盤古氏)(299) 이교도들이 땅, 하늘, 공기, 물 등의 제작자(창조자)에게 붙인 이름. (중국인들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최초의 인간.

반교(叛敎)하다(299) 배교함, 종교를 버림.

반구(返柩)하다(299) 자기 집 바깥의 길에서 죽은 사람을 집으로 다시 모셔옴, 관을 운반함.

반승반속(半僧半俗)(300) 반은 짐승(승려), 반은 사람. 어느 쪽도 아님. 절반은 승려이고, 절반은 세속 사람임. 좋지 않은 것을 가리킴.

반혼(返魂)하다(299) 장례식 때의 돌아옴. (매장이 끝난 후에 영혼이 집으로 돌아오거나, 다시 불러들임)

발낭(鉢囊)(305) 승려의 자루나 보따리. (바랑을 가리킴)

발상(發喪)하다(306) 부모의 죽음을 당하여 머리를 풀어헤치고 산발을 함. 매장하기 전에 죽음을 애도함.

발인(發車引)40)하다(304) 고인의 집에서 장례 행렬이 출발함,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서 집에서 시신을 빼냄.

방사(放赦)하다(303) 물건에 대하여 관용을 베풀어 줌, 죄를 사해줌.

배교(背敎)하다(309) 배교함, 종교를 부정함, 그리스도교 신앙을 부정함.

백부장(百夫長)(310) 백인대장, 군인 백 명의 우두머리.

백팔염주(百八念珠)(310) 승려들이 사용하는 108개의 알로 된 큰 묵주와 같은 것.

벅고[法鼓](313) 큰 북, 승려들이 사용하는 손잡이 달린 타악기.

범승(凡僧)(314) 하급의, 서열이 낮은 승려. 평범한 지위의 승려.

범재(犯齋)하다(314) 대재와 소재를 범함, 대재와 소재의 규칙을 어김.

법당(法堂)(316) 파고다, 부처의 사당.

벽곡(?穀)하다(319) 매일 조금씩 덜 먹다가 결국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먹는 경지에까지 이를 것을 가르치는 교리. 쌀 또는 다른 곡물을 먹지 않고 사는 것에 익숙해짐.

벽사(闢邪)하다(319) 나쁜 교리를 멀리함, 사악한 교리를 금지하여 물리침.

변체(變體)하다(320) 본체의 변화함, 실체 변화함. (교회 용어)

보례(補禮)하다(336) 예식의 보충, (세례, 혼배 등) 성사 예식을 보충함. (교회 용어)

보살(菩薩)(336) 머리를 깎지 않은 재속 여승의 일종. 이교도 사당에 있는 우상. 승려들이 숭배하는 여신.

보속(補贖)(337) 벌, 성사로 행하는 속죄. (교회 용어)

보속(補贖)하다(337) 속죄함, 대가를 치름.

보수(補修)하다(337) 고침, ~을 준비함, 마련함. 세례받기로 약속함, 예비신자로 받아들여짐,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세례 지원자 신분을 받음.

복(福)(331) 행복, 행운, 유복함, 지복, 천복, 운, 운수.

복사(服事)(332) 심부름꾼, 선교사의 하인.

복사(服事)하다(332) 선교사의 하인이 됨. (교회 용어)

복음(福音)(331) 행복한 말씀, 복된 말씀. 좋은 소식.

복자(卜者)(332) 주술사 그리고 점쟁이와 같은 것.

복지(福地)(332) 매혹적인 장소, 아름다운 곳, 지상의 낙원. 행복한 고장, 복된 장소. (교회 용어)

복희씨(伏羲氏)(331) 음절문자 또는 자모를 발명하였다는 조선의 왕 이름.41)

본명(本名)(333) 본래의 이름(세례명을 이렇게 부름). 그리스도인의 성이나 이름.

본죄(本罪)(334) 개별적인 죄, 자기 자신의 죄.

봉교(奉敎)(334) 교우가 됨, 그리스도교를 실천함.

봉사(奉祀)하다(334) 제사를 바침. (미신)

봉성체(奉聖體)하다(335) 성체성사를 받음.

봉안(奉安)하다(334) (신주를 공경하기 위하여) 고유한 장소에 모심, 경건하게 안치함.

봉재(封齋)(335) 사순시기, 대재를 지키는 시기. (교회 용어)

봉헌(奉獻)하다(334) 바침, (경건하게) 제사를 바침.

봉황(鳳凰)(334) 전설상의 새, 불사조, 아마 독수리인 듯.

부자(夫子)(350) 공자와 맹자에게 붙이는 칭호.

부작(符作)(349) 마귀를 쫓거나 병고를 피하기 위하여 미신으로 쓴 글씨.

부제(副祭)(350) 성직자, 부제. (교회 용어)

부주교(副主敎)(350) 부주교.42)

부처[佛](350) 불 또는 붓다, 인도 왕 쿠도다나와 마야의 아들. 주전 622년부터 543년까지 80세를 살았음. 그의 아들은 라훌라, 아내는 고파, 야쇼다라, 웃팔라바르나. ‘석가모니’를 볼 것.

부첨례(副瞻禮)(350) 부활 대축일 다음의 월요일과 화요일, 그리고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의 월요일과 화요일.

부활(復活)(339) 부활 대축일, 다시 살아나심. (교회 용어)

부활(復活)하다(339) 다시 살아나심. (교회 용어)

분심(分心)하다(342) 부주의함, 방심함, 걱정함.

분심잡념(分心雜念)(342) 기도하는 도중에 부주의함, 걱정함.

불(佛)(343) 부처, (인도인들과 중국인들의 신)

불가(佛家)(344) 파고다, 절. 불교의 교리.

불경(佛經)(345) 불교의 책, 8만 권.

불공(佛供)하다(345) 부처에 경의를 표하는 큰 제사, 기도, 축하연. 부처를 숭배함, 경배함, 기도함.

불당(佛堂)(347) 작은 절, 부처의 사당.

불도(佛道)(347) 불교, 부처 또는 붓다가 가르친 교리. 석가모니에 의해서 창시되고 그의 제자들이 발전시킨 불교. 브라만교와 대립하거나 경쟁함.

불사(佛寺)(346) 절, 부처의 파고다, 부처 숭배.

불씨(佛氏)(346) 붓다의 교리, 붓다.

불양답(佛養沓)(343) 불공을 위해서 승려들이 소작료를 받는 토지, 불공과 파고다의 유지 및 유지에 할당된 논.43)

불종지말(佛種之末)(347) 부처를 위해서 고용된 자들 가운데 최하위 사람. ‘거사’를 볼 것.

불천지위(不遷之位)(347)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옮길 수 없는 신주. 위대한 인물의 신주. 가문의 영광이며 절대로 파괴하면 안 됨.

비기(秘記)(325) 예언, 미리 알려진 전조. 조선인들의 예언서.

빈례(殯禮)(326) 수의를 입히는 예식.

빈소(殯所)(326) 매장하기 전에 관을 놓아두는 곳.

빙소[殯所](326) 집 외부에 특별히 만들어 놓은 작은 집 안에, 아니면 나무로 된 조각들 위에 관을 놓아두고, 매장할 날이 될 때까지 기다림.

빌다[祈](328) 기도함, 간청함, 탄원함. 용서를 청함.

 

 

사감(邪感)(380) 악마의 유혹.

사감입다[被邪感](380) 몸에 마귀가 붙음.

사계재(四季齋)(389) 사계의 소재.

사교(邪敎)(380) 사악한 교리, 이교도들이 가톨릭교에 붙인 이름.

사교(司敎)(389) 교회 당국자, 교리와 종교의 책임자. (통상적으로 주교, 때때로 사제)

사규(四規)(389) 네 가지 규칙, 교회의 네 가지 규율44)

사당(祠堂)(378) 조상들의 신주를 넣어두는 방.

사당(邪堂)(384) 사악한 집. 마술, 요술을 행하는 사람, 주술사.

사도(邪道)(384) 미신, 추잡한 교리, 악으로 이끌리는 나쁜 교리.

사마(邪魔)(380) 마귀, 악마.

사말(四末)(389) 네 가지 종말. (사후, 심판, 천당, 지옥) (교회 용어)

사망(邪妄)(380) 미신, 헛되고 사악한 숭배.

사묘(邪廟)(380) 파고다, 절, 악마의 사원.

사백주일(?白主日)(375) 부활 대축일 후 첫째 주일.

사상(邪像)(384) 우상. 마귀의 모상이나 상본.

사서삼경(四書三經)(391) 이교도들의 책 이름, 공자의 저서로 간주됨.

사성사(四聖史)(391) 네 명의 복음서 저자들.

사술(邪術)(384) 주문, 요술, 기교. 주술적인 또는 마귀에 의한 작용. 신비술.

사신(邪神)(384) 마귀, 악마, 귀신. 이교도들의 신. 사악한 영.

사심판(私審判)(391) 개별적인 심판.

사우(祠宇)(367) 조상들의 신주를 모신 작은 집. 미신적인 신주를 놓아두는 방.

사죄(赦罪)하다(385) 죄를 용서함, 죄를 없애 줌.

사죄경(赦罪經)(385) 죄를 사하는 기도문 양식. 성사를 통한 죄 사함.

사죄지은(赦罪之恩)(385) 죄 사함을 받은 은혜.

사주(四柱)(392) 네 개의 기둥. 출생의 네 시기(연월일시). 점을 치기 위해서 점집에 알려주는 것들.

사직(社稷)(379) 하늘에 제사를 바치는 사원이나 집.

사직(社稷)(384) 땅과 수확물, 왕국을 보호하는 귀신, 사원 안에 그 신주를 모심. (각 지방마다 이런 사원이 있음)

사질(邪疾)(385) 마법에 의해서 치유되는 질병 같은 것의 이름. (미신) 열병, 폐병

사추덕(四樞德)(392) 네 가지 주요 덕(지, 의, 용, 절).

사탁(司鐸)(391) 사제, 신부.

사학(邪學)(380) 사악한 교리. 이교도들이 가톨릭교에 붙인 이름.

산림(山林)(373) 산과 숲. 벼슬을 구하지 않고 은거하여 사는 유학자, 현인, 철학자. 항상 큰 옷을 입고 있는 은둔자, 현인과 비슷한 사람임. 자기 방에서 책으로 둘러싸여 있고, 절대 웃지 않으며, 모든 일을 근엄하게 행하고, 문장을 지어서 대답하며, 모든 것을 아는 체함.

산승(山僧)(373) 산에 사는 승려.

산제(山祭)(374) 산의 귀신에게 바치는 제사, 산에서 거행하는 제사.

살생(殺生)하다(378) 살아 있는 것을 죽임, 생명을 빼앗음. (승려들의 대죄)

삼강(三綱)(369) 유학자들에 따르면 모든 사물들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 세 가지(하늘, 땅, 사람) 세 가지 관계, 세 가지 우월한 것, 즉 대신들에 대해서 왕, 자식들에 대해서 아버지, 아내에 대해서 남편.

삼구(三仇)(370) 세 가지 원수(세상, 육체, 악마)

삼덕(三德)(371) 신학상의 세 가지 덕(믿음, 희망, 사랑)

삼덕송(三德誦)(371) 신망애의 세 가지 기도문.

삼신항(三神缸)(371) 토기에 담아서 집안의 잘 꾸민 곳에 갖다 둔 쌀. (귀신임. 만약 잘 공경하면 아이를 얻고, 그렇지 못하면 아이가 생기지 않음. [미신])

삼왕내조(三王來朝)(369) 동방 박사 3인. 주님 공현 축일. (교회 용어)

삼우(三虞)(369) 근심의 셋째 날, 부모를 매장한 지 셋째 날, 이날 부모를 위해서 성대한 제사를 드림. (미신)

삼위일체(三位一體)(369) 삼위가 한 본체임, 성삼위.

삼종(三鐘)(371) 세 가지 소리로 이루어진 기도. 안젤루스(기도)

삽전(揷?)(376) 장례식에서 마귀를 겁주려고 두 개의 뿔 또는 뾰족한 것에 걸어두는 깃발. (미신)

상교(庠校)(381) 공자의 사당, 공자의 신주를 봉안한 큰 파고다. =향교.

상등통회(上等痛悔)(383) 전적인 회개.

상례(喪禮)(375) 죽은 사람들에게 공경을 표하는 의례, 예식.

상례비(喪禮備)(375) 개인의 죽음과 관련하여 지켜야 하는 미신 의례들의 목록, 상례에 관한 예식서.

상보다[觀狀](382) 좋은 운수를 점침, 태어난 연월일시에 따라서, 그리고 개인의 생김새를 관찰한 것에 따라서 그 사람이 뭐가 될지, 무엇을 할지, 아이는 몇이나 둘 것인지 등을 예견함.

상본(像本)(382) 그림, 이미지.

상뵈다[觀相](382) 좋은 운수를 점침, 운명을 문의함.

상식(上食)하다(375) 돌아가신 부모의 신주 앞에서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일상적인 제사. (미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상에 밥을 올림.

상제(上帝)(383) (이교도들에 따르면) 하늘의 왕, 창공의 주인, 하늘에 있는 지고의 황제. (가톨릭 신자들이 하느님에 대한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금지된 용어)

상주(上主)(384) 하느님, 높으신 주인, 지고한 주님.

생혼(生魂)(386) 식물적인 혼(식물의 혼, 그리고 아마 동물에게도 있는 것임)

서교(書敎)(397) 글로 된 율법, 모세의 율법. (교회 용어)

서악(西惡)(393) 서양의 나쁜 것, 그리스도교를 가리키는 경멸적인 말.

서원(書院)(396) 위대한 인물들, 각자의 학설들로 유명한 인물들을 위해서 세운 집. (그곳에 그 인물들의 신주가 들어 있음) 각 마을마다 있는 위대한 인물들의 사당.

서전(書傳)(408) 공자가 지은 책의 이름.

서학(西學)(396) 서양의 교리, 말하자면 가톨릭교.

석가모니(釋迦牟尼)(397) ‘샤카 집안의 은둔자’라는 뜻. 부처의 이름 샤카무니. (첫 이름은 싯다르타였으며, 주전 622년까지 80세를 살았음)

석가여래(釋迦如來)(397) 부처 또는 붓다.

석교(釋敎)(397) 불교의 교리, 불교 교단.

선경(仙境)(399) 멋진 산책길, 경치가 아름다운 곳. 유령들이 사는 곳, 다른 세상에서 돌아온 영들이 출몰하는 곳.

선녀(仙女)(399) 요정, 도사들이 신으로 떠받드는 여자.

선도(仙道)(400) 노자, 노군 혹은 노공의 교리.

선복(仙服)(399) 도사들에 따르면 요정이나 귀신들이 입는 옷.

선사(禪師)(400) 승려.

선수(善修)하다(400) 덕을 닦음, 선행에 몰두함.

선앙당[魔堂](398) 산속의 길 꼭대기에 있는 작은 사당.

선종(善終)하다(401) 아름다운 죽음, 거룩한 죽음.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함, 거룩하게 죽음, 잘 돌아가심.

선지(先知)(401) 예언자.

선지(先知)하다(401) 예언함, 미리 알게 됨.

선지자(先知者)(401) 예언자, 점쟁이, 미리 아는 자.

성(聖)(401) 거룩함, 신성함, 성별됨.

성가(聖歌)(402) 시편, 경건한 성가.

성가(聖架)(402) 성십자가, 십자가.

성경(聖經)(402) 거룩한 바이블, 거룩한 책들, 거룩한 복음서, 성서.

성계(聖誡)(402) 경건한 훈계, 거룩한 가르침.

성공(聖功)(402) 착한 일들, 거룩한 행위. 행운.

성광(聖光)(402) 은총의 빛.

성교(聖敎)(402) 거룩한 종교, 가톨릭교.

성교(性敎)(403) 자연법, 자연의 법칙. (교회 용어)

성교회(聖敎會)(403) 거룩한 교회, 가톨릭교회.

성구(聖軀)(403) 거룩한 몸, 성골함.

성규(聖規)(403) 거룩한 규칙, 완전한 법률.

성낭(聖囊)(403) 성체포를 넣는 주머니. (교회의 제의용 물품)

성녀(聖女)(403) 성녀, 거룩한 여인.

성당(聖堂)(404) 교회, 경당.

성당직이[聖堂直](404) 교회나 경당 관리자.

성대(聖帶)(404) 영대.

성대(聖臺)(404) 제대.

성두(聖?)45)(404) 성해, 성유골

성랍(聖蠟)(403) 거룩한 밀랍, 축성된 밀랍, 하느님의 어린양.

성로선공(聖路善功)(403) 십자가의 길을 행함.

성리(聖理)(404) 거룩한 교리.

성리(性理)(404) 사물들의 본성, 속성.

성명(聖名)(403) 세례명.

성모(聖母)(403) 거룩한 어머니, 즉 동정 마리아.

성모경(聖母經)(403)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천사의 인사, 아베 마리아.

성물(聖物)(403) 거룩한 물건, 축성된 물건, 신심 행위를 위한 물건, 가령 십자가, 메달, 상본.

성반(聖盤)(403) (성작의) 성반.

성보(聖褓)(403) (성작의) 보자기.

성부(聖父)(403) 아버지, 성삼위의 첫째 위격.

성사(聖史)(404) 거룩한 복음서 저자들.

성사(聖士)(404) 거룩한 학자들, 교회박사들.

성사(聖事)(404) 성사, 거룩한 일들.

성사적(聖事蹟)(404) 거룩한 일들의 표지, 즉 성사의 표지.

성삼(聖三)(404) 거룩한 삼위일체.

성상(聖像)(404) 상본, 거룩한 이미지, 거룩한 형상.

성서(聖書)(404) 거룩한 글, 거룩한 책, 경건한 책.

성석(聖石)(404) 거룩한 돌, 제대의 돌. (교회 용어)

성세(聖洗)(404) 거룩한 세례.

성속(聖俗)(404) 종교와 세속, 종교와 현세, 교회와 세상.

성수(聖水)(404) 축성된 물.

성수채[聖水鞭](404) 성수 살포기, 성수채.

성신(聖神)(404) 성령, 성삼위의 세 번째 위격.

성신강림(聖神降臨)(404) 성령께서 내려오심, 오순절.

성심(聖心)(404) (예수나 마리아의) 거룩한 마음.

성애(聖愛)(401) 거룩한 사랑.

성언(聖言)(401) 거룩한 말씀, 좋은 말.

성업(聖業)(401) 거룩한 일, 거룩한 활동.

성영(聖?)(401) 거룩한 아이, 아기 예수.

성영(聖詠)(401) 시편, 성가.

성우(聖佑)(401) 거룩한 은총, 거룩한 도우심, 초자연적인 도움. (교회 용어)

성유(聖油)(401) 성유, 축성된 기름. (교회 용어)

성의(聖衣)(401) 거룩한 옷, 즉 스카풀라. (교회 용어)

성의(聖意)(401) 거룩한 의지, 거룩한 생각.

성인(聖人)(401) 성인, 거룩한 사람, 복된 사람.

성자(聖子)(404) 아들, 성삼위의 두 번째 위격.

성작(聖爵)(404) 성작.

성작보(聖爵褓)(404) 성작보.

성적(聖蹟)(404) 기적, 계시, 전조.

성전(聖傳)(404) (성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전기, 거룩한 역사책.

성전(聖典)(404) 거룩한 규칙, 루브리카, 예식서, 교회법전.

성전(聖殿)(404) 경당, 교회.

성제(聖祭)(404) 거룩한 제사.

성조(聖祖)(405) 거룩한 가장, 족장.

성조(聖朝)(405) 거룩한 궁궐, 천상의 궁전.

성주받이[成造異端](405) 술을 적셔서 새집의 벽에 붙인 종이. (그러면 종이가 이 집의 귀신이 됨, 사람들은 귀신에게 제사를 바침) 문 위에 엽전과 쌀을 종이로 싸서 올려놓는 것으로 구성되는 미신.

성지(聖地)(404) 축복받은 땅, 거룩한 땅, 묘지.

성지(聖枝)(405) 축성된 종려나무 가지.

성지주일(聖枝主日)(405) 종려 주일.

성찰(省察)하다(405) 양심을 검토함, 양심을 관찰함.

성체(聖體)(404) 거룩한 본체, 성체.

성촉(聖燭)(405) 축성된 초.

성총(聖寵)(405) 은총, 거룩한 사랑.

성탄(聖誕)(404) 거룩한 탄생, 예수 성탄.

성판(聖板)(403) 성작개. (교회 용어)

성패(聖牌)(403) (경건한) 메달.

성포(聖布)(403) 거룩한 천, 성체포.

성품(聖品)(403) 거룩한 품계, 거룩한 지위, 성인들의 지위 또는 명단.

성학(聖學)(402) 거룩한 가르침.

성해(聖骸)(402) 성인의 유골. (교회 용어)

성현(聖賢)(402) 거룩한 사람, 거룩한 현인.

성혈(聖血)(402) 고귀한 피. (교회 용어)

성호(聖號)(402) 거룩한 표시 또는 거룩한 이름, 십자가 표시. (교회 용어)

성황당(城隍堂)(402) 산꼭대기에 있는 길가의 돌무더기 또는 작은 사당, 길의 귀신에 경의를 표하는 것. (사람들은 산기슭으로 작은 돌을 가져가서 귀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돌을 그 장소에 놓아두기도 함)

성회(聖會)(402) 거룩한 모임, 거룩한 단체, 교회. (교회 용어)

성회(聖灰)(402) 거룩한 재, 축성된 재.

성훈(聖訓)(402) 거룩한 가르침, 경건한 교육.

세(洗)(393) 세례. (교회 용어)

세속(世俗)(395) 시대, 세상, 인류, 현세적임.

세자(洗者)(395) 세례자, (세례자 요한)

소백의(小白衣)(434) 소백의.

소백장의(小白長衣)(434) 소백의.

소상(小祥)(435) 고인의 첫 기일, (이것은 작은 것이고, 둘째 기일이 큰 것임)

소승(小僧)(435) 작은 승려, 승려들이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자기를 일컫는 칭호.

소재(小齋)(436) 금육재. (교회 용어)

소회죄경(小悔罪經)(431) 간략한 통회의 기도문.

속(俗)(431) 세상, 현세, (가톨릭교와 대비해서) 이교(異敎, paganisme).

속교(俗敎)(432) 현세적인 교리. 교우가 아닌 세속 사람들이 따르는 교단.

속례(俗禮)(432) 세속의 관습, 의례, 관례. 시민적인 의례. (교우들은 시민적인 결혼예식을 이렇게 부름)

속법(俗法)(432) 세상의 법률, 이교 법, 세상의 관습.

속사(俗事)(432) 현세, 세상, 이교도들의 사무.

속세(俗世)(432) 세상.

속인(俗人)(431) 세상 또는 세속의 사람, 이교도.

속촌(俗村)(433) 이교도들이 사는 마을.

속취(俗娶)하다(433) 이교도 결혼식, (홀아비가) 다시 장가듦.

속한이[俗漢](431) 승려를 제외한 모든 사람, 평신도, 세속의 사람(승려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부름). 승려가 되었다가 속세로 되돌아가려고 이 직업을 떠난 사람에게 붙이는 명칭.

송경(誦經)하다(434) 기도문을 암송함.

수계(守誡)하다(439) 종교의 실천, 종교를 실천함, 계명을 지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함.

수고지회(受苦之會)(440) 고통받는 교회, 연옥.

수녀(修女)(441) 수녀, 동정녀.

수도(修道)하다(446) 세상에서 물러남, 수도자가 됨, 규칙을 준수함, 덕을 닦는 일에 전념함.

수련지회(受煉之會)(444) 고통받는 교회.46)

수사(修士)(445) 수도자, 수도사, 덕을 닦는 일에 전념하는 남자.

수세(受洗)하다(445) 세례를 받음.

수원(修院)(439) 수도원의 일종, 몇 명이 모여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집. (교회 용어)

수의(壽衣)(438) 죽은 이에게 입히는 옷, 부모의 장례를 위하여 미리 준비한 옷.

수재(守齋)하다(447) 금육재와 금식재를 지킴.

수진(袖珍)(447) 한문으로 된 책, 4권으로 된 그리스도교 서적, 매일과 주일, 연중 축일 등의 기도문들이 들어 있음, 공과. (조선말로 번역되기 이전에 있었던 한문책의 제목임)

수할손례(受割損禮)(439) 할례를 받음.

술(術)(444) 기술, 실행, 솜씨(대개 나쁜 방향으로 사용함), 가르침, 철학.

술법(術法)(445) 기술의 규칙. 주문, 요술, 주술, 마법. 주술적인, 마귀에 의한 작용.

술사(術士)(445) 요술사, 주술사.

술수(術手)(445) 요술사, 주술사.

술업(術業)(444) 기법, 주문, 요술. 주술적인, 마귀에 의한 작용.

술자(術者)(445) 요술사, 주술사.

숭상(崇尙)하다(443) 열성적으로 존경하고 경배를 바침, (하느님과 같은 존재에게) 크게 충성함, (부처에게) 마음을 쏟음, 존경하여 말하고 크게 공경함.

습선(習善)하다(411) 선을 훈련함, 좋은 습관을 행함, 선에 익숙해짐.

습속(習俗)(411) 세속의 관습, 뿌리 깊은 습관.

습악(習惡)(411) 악, 악한 습관, 나쁜 습관, 뿌리 내린 사악함.

승군(僧軍)(410) 승려 군인.

승년[女僧](410) 여승.

승답(僧畓)(411) 승려들에게 속한 논.

승당(僧堂)(411) 여승들의 사찰.

승도(僧道)(411) 승려들의 교리.

승도(僧刀)(411) 승려의 칼.

승명(僧名)(410) 승려의 이름. (처음으로 머리를 깎을 때 이 이름을 받음.)

승방(僧房)(410) 여승들의 사찰

승석(僧夕)(410) 승려들의 저녁 식사. 그들이 저녁 식사하는 시간, 즉 해지기 전.

승속(僧俗)(411) 승려와 민가의 남자.

승속가이(僧俗可異)(411) 승려와 세속의 남자는 다름.

승장(僧長)(411) 승려 군인들의 장군. 사찰의 지도자.

승제(承祭)하다(411)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를 바침.

승천(升天)(411) 하늘에 오름, 예수 승천.47)

승천(升天)하다(411) 하늘에 오름.

승통(僧統)(411) 승려들의 우두머리, 승려들의 대지도자, 여러 문중을 아우르는 지도급 승려.

시묘(侍墓)하다(416) 부모의 무덤을 3년 동안 지킴. 3년, 즉 상례의 전 기간 동안 움막에서 고기를 먹지 않고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지냄.

시사(時祀)(424) 음력 10월에 4대 이상의 조상 가운데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바치는 제사.

시전(詩傳)(424, 425) 이교도의 책 이름, 옛날 노래로 이루어진 책 이름.

시제(時祭)(425) 4대 이상으로 올라가는 조상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음력 10월에 산소에서 드리는 큰 제사.

시주(施主)(425) 절에서 부처에게 또는 그곳에 사는 승려에게 선물을 바침, 승려에게 은혜를 베품.

신(信)(417) 믿음, 신뢰.

신(神)(417) 영, 영적 속성, 영적인 실재. 영적임, 영적인 속성을 지님. 경이로움.

신경(信經)(418) 신앙고백, 사도신경.

신공(神功)(418) 경건함의 실천, 영적인 실천, 경건한 행위.

신교(新敎)(418) 새로운 율법, 신약, 그리스도교. (교회 용어)

신권(神權)(418) 영혼의 권위, 위엄, 영혼의 권능, 영적인 권위.

신기(神奇)하다, 신기롭다(418) 경이로움, 놀라움, 찬탄할 만함, 기묘함.

신농씨(神農氏)(420) 고대 왕의 이름. 의술을 창시한 중국의 황제.

신당(神堂)(420) 파고다, 마귀의 사당.

신덕(信德)(420) 믿음의 덕, 믿음.

신량(神糧)(419) 영혼의 양식, 영적인 양식.

신력(神力)(419) 영혼의 힘, 영적인 힘.

신령(神領)하다(419)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받음.

신령(神靈)하다(419) 영적임, 영과 관련된 모든 것. 경이로움, 찬탄할만함.

신망애삼덕송(信望愛三德誦)(419) 믿음, 희망, 사랑의 세 가지 덕에 대한 기도문.

신명(神命)(419) 영적인 생명.

신명초행(神命初行)(419) 두 권으로 된 그리스도교 책 이름, 조선말로 ‘잘 생각하시오.’

신묘(神廟)(419) 귀신들의 집.

신문교(新問敎)(419) 예비신자, 신입교우, 새 교우. (교회 용어)

신병(神兵)(419) 영의 병사들, 천사 또는 악마의 병사들.

신부(神父)(419) 영적인 아버지, 신부.

신사(信士)(420) 신뢰할 만한 사람.

신사(神師)(420) 신부, 영적인 지도자.

신선(神仙)(420) 되살아나서 상급의 지역에 사는 사람, 유령, 다른 세상에서 돌아온 영. 불멸성을 획득한 노자 교단의 승려들.

신성(神聖)(420) 천사와 성인.

신실(信實)하다(420) 올바름, 정당함, 충실함. 자기 말을 지키는 사람. 신뢰할 가치가 있음. 정직함. 충성스러움, 성실함.

신은(神恩)(417) 영적인 은혜.

신이(神異)하다(417) 경이로움, 놀라움, 기묘함, 찬탄할 만함.

신익(神益)(418) 영혼의 유익함, 공덕, 영적인 유익.

신인(信人)(418) 신뢰할 만한 사람, 믿을 만한 사람.

신인(神人)(418) 천사와 인간, 영적인 존재와 인간.

신자(神子)(420) 영적인 아이.

신장(神將)(420) 장군이 된 마귀, 우두머리 마귀. 이교도들이 믿는 마귀나 귀신과 같은 것, 나쁜 사람을 벌주는 일을 함.

신전지회(神戰之會)(420) 싸우는 교회.48)

신접(神接)하다(420) 악마에게 사로잡힘.

신주(神主)(420) 조상들의 신주. 홈이 있는 작은 널빤지, 그 안쪽에 아버지, 할아버지의 이름을 써놓음, 그곳에 그들의 영혼이 거주함. (미신)

신직(神職)(420) 영적인 직분, 거룩한 직분.

신체(神體)(420) 영적인 본체.

신축(神祝)하다(421) 구원, 숭배. 존경과 숭상의 표시. 구원함.

신친(神親)(421) 대부와 대자 사이, 대부와 대자의 부모 사이의 영적인 혈연관계.

신품(神品)(419) 신품(칠성사의 하나), 거룩한 품계, 서품.

신형(神形)(418) 영혼과 육체.

실교우(實敎友)(422) 참된 교우.

심판(審判)(416) 심판(사말의 하나)

십계(十戒)(421) 십계, 하느님의 열 가지 계명.

십사처(十四處)(422) 십자가의 길에서 열네 군데 멈추는 곳.

십이단(十二端)(421) 열두 가지 기도문(주님의 기도, 성모송 등).

십일조(十一條)(421) 10분의 1세, 십일조.

십자가(十字架)(422) 십자가.

씻다[洗](424) 씻다, 깨끗이 하다, 청소하다, 정화하다, 닦다, 세례 주다.

 

 

아귀(3) 미신에서 숭배하는 마귀의 이름.49)

악(惡)(2) 악함, 악독함, 사악함.

악(惡)하다(3) 악함, 사악함, 타락함, 악독함.

악귀(惡鬼)(3) 나쁜 귀신, 악독한 귀신.

악덕(惡德)(3) 잘못된 덕.

악어(惡語)(2) 나쁜 말.

악언(惡言)(2) 저주하는 말, 비방하는 말.

악욕(惡慾)(3) 나쁜 욕망, 나쁜 욕구, 나쁜 열정.

악을 하다[爲惡](2) 악독한 짓이나 나쁜 행위를 함. 악독함, 나쁨, 사악함.

악행(惡行)하다(3) 나쁜 행실을 행함.

안지그리스도(7) 반(反)그리스도.

알성(謁聖)하다(9) 위대한 인물의 사당을 방문함. 과거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공자에게 바치는 제사.

앙천축수(仰天祝手)하다(8) 하늘을 올려다보고 떨면서 간청함. 하늘을 올려다보고 머리를 숙이면서 두 손을 비비는 것. (조선의 이교도들이 기도하는 방식)

애긍(哀矜)(16) 동냥, 자선 사업.

양능(良能)(270) 이성, 지성, 정신, 용기, 힘, 재간, 능력.

양례(襄禮)(14) 장례예절.

양심(良心)(271) 이성, 지성, 정신, 마음, 양심.

양지(良志)(271) 이성, 지성, 정신, 선한 의지, 선한 마음, 선한 의도.

양학(洋學)(13) 서양의 교리, 그리스도교.

업구렁이[業?](21) 뱀. 집을 지키는 귀신.

여교우(女敎友)(276) 여자 그리스도인.

여복사(女服事)(280) 여자 복사, 하녀.

연령(煉靈)(278) 연옥의 영혼.

연미사(煉彌撒)(278) 연옥 영혼을 위한 미사.

연옥(煉獄)(277) 연옥.

연죄(煉罪)(279) 자신의 죄를 정화함, 과오를 속죄함, 잘못을 고침.

열교(裂敎)(280) 이단(異端), 이교(離敎).

열세(熱洗)(30, 281) 열망의 세례. (교회 용어)

열입성품(列入聖品)하다(280) 성인 명단, 순교록. 시성됨, 성인의 반열에 들어감.

염경(念經)하다(277) 소리를 내서 하는 기도들, 그 기도문을 암송함. 기도함, 기도문을 암송함, 성무일도를 바침.

염라대왕(閻羅大王)(277) 지옥과 죽은 자들의 대왕, 시종을 보내어 죽은 자의 영혼을 데려오도록 함. (승려들의 교리)

염불(念佛)(28) 승려들의 가창, 승려들의 기도.

염불(念佛)하다(277) 기도함. (승려들에 대해서만 쓰는 말)

염주(念珠)(277) 묵주.

영(靈 또는 ?)(279) 영혼.

영감(靈感)스럽다(279) 주술사, 점쟁이가 됨. 경이로움, 초자연적임.

영경(鈴經)(279) 기도를 시작함, 기도의 영창.

영경자(鈴經者)(279) 독서자. 기도를 주재하는 사람, 노래를 시작하고 이끌어 나감.

영광경(榮光經)(29) ‘영광이 성부와 ~’. 영광송.

영도(永道)(29) 영원과 교리. 영원의 교리.

영물(?物)(279) 불멸의 직관(거의 영적인 것). 지능을 갖춘 존재(통찰력을 보여 주는 동물들을 가리킴)

영벌(永罰)(29) 영원한 벌.

영별(靈別)하다(279) 영을 가짐, 지능을 가짐, 명민함, 기지가 뛰어남, 영적임.

영복(永福)(29) 영광과 행복. (하늘에서 성인들의) 영광스러운 찬미. 영원한 행복.

영복경(榮福經)(29)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 미사의 대영광송.

영성(靈性)(280) 영혼과 영, 영혼과 자연.

영성체(領聖體)하다(280) 성체를 영함, 성체성사를 받음.

영세(領洗)하다(279) 세례를 받음.

영승지회(永勝之會)(29) 승리하는 교회.50)

영신(靈神)(280) 영혼, 영.

영이지지(靈而知之)(279) 직관, 계시된 앎. 선견지명이 있음, 혜안이 있음, 현명함.

영정첨례(永定瞻禮)(29) 이동하지 않는 고정 축일.

영적(靈迹)(280) 기적.

영험(靈驗)(279) 더 나은 점, 이득. 좋은 효력, 계시, 영적인 효험, 기적.

영혼(靈魂)(279) (인간의) 영혼.

예(禮)(276) 예절 바름, 정중함, 예법, 예의, 의례, 예식.

예규(禮規)(276) 루브리카(전례법규), 의례, 예식.

예도(禮道)(276) 루브리카(전례법규), 의례, 예식.

예수[耶蘇](26) 예수.

예언(預言)(26) 예언, 사전에 미리 말해진 것.

예의(禮義)(276) 정당하고 이치에 맞는 의례.

예절(禮節)(276) 예식, 의례.

예절책(禮節冊)(276) 의례서, 예식서.

오륜(五倫)(57) 다섯 가지 법규 같은 것. 모든 사회의 필수적인 기초가 되는 다섯 가지 자연스러운 관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자애(부자유친), 왕과 신하 사이의 정의(군신유의), 부부 사이의 구별, 즉 아내의 복종(부부유변),51) 노인과 젊은이 사이의 순서와 존경(장유유서), 친구 사이의 신뢰(붕우유신).

오상(五常)(57) 사회의 토대가 되는 다섯 가지 중심적인 덕목. (잘 쓰지 않는 말) =오륜.

옥황상제(玉皇上帝)(53) 이교도 신의 이름. 공자의 라이벌이자 송나라 사람이었던 노공을 가리킴, 그는 의종에 의해서 신의 반열에 들었음.

외교(外敎)(50) 이교도들. 이교(異敎).

외교인(外敎人)(50) 이교도.

외술(外術)(51) 이상한 교리. 사기, 요술, 주술 등. 공자의 교리와 상반되거나, 공자의 교리 바깥에 있는 모든 것.

요리문답(要理問答)(61)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된 교리의 핵심, 말하자면 교리문답서.

요술(妖術)(61) 사기꾼, 주술사, 마법사. 요술, 사기.

요지(瑤池)(61) 진주 호수. 열락의 장소. 신선이 사는 조선인들의 낙원.

용날[辰日](292) 특정한 날의 이름. 용의 날. (미신. 공식적인 달력에 인자가 표기된 날은 모두 용의 날임)

운감하다[欽饗](67) 조상들을 공경하여 차린 음식들의 향기를 맡음, 음미함. (귀신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임) (죽은 자의 영혼이) 제사의 향기를 음미함.52)

운명(殞命)하다(67) 숨을 거둠, 돌아가심.

원귀(寃鬼)(62) 적대적인 악마, 악의를 품은 마귀.

원조(原祖)(63) 첫 인간(인류의 아버지). 최초의 조상.

원죄(原罪)(63) 원죄.

원혼(寃魂)(62) 고통당하는 영혼. 죽을 때에 큰 고통으로 호흡 곤란을 느낌.

월궁선녀(月宮仙女)(63) 옛날에 아름답기로 유명했던 여인의 이름, 달에서 왔다고들 말함.

월궁항하(月宮恒娥)(63) 달에 사는 여인의 이름, 잘못을 저질러 하늘에서 유배된 것임.

위판(位板)(65) 부모의 관으로 쓰일 널빤지.

위패(位牌)(65) 조상들의 미신적인 신주. 각 지방마다 보관된 왕의 신주인데, 관리들이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여기에 경배함.

유교(儒敎)(71) 공자의 교리. 유학자들의 교리. 공자의 철학.

유다스[茹答斯](74) 유다스의 조선식 이름. 배신자, 다른 교우들을 배반하여 넘겨준 교우를 가리킴.

유도(儒道)(74) 공자의 교리, 공자와 유학자들의 교리.

유림(儒林)(73) 공자의 신봉자들. 유학자들.

윤회(輪回)(295) 윤회, 또는 차라리 (승려들에 따르면) 어떤 존재가 연속적으로 겪게 되는 이행의 순환.

은수(隱修)(35) 은둔자, 은수자.

은총(恩寵)(35) 은총, 큰 축복.

음복(飮福)하다(34) 제사에서 상 위에 바친 술. 죽은 사람의 후손들만이 그것을 마실 권리가 있음. 제사에서 바친 것이어서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지는 술을 마심.

음양(陰陽)(33) 짝수와 홀수. 달과 태양. 그늘과 빛. 여성과 남성. 마니교와 아주 흡사한 체계를 따르는 모든 사물의 원리. ‘홍몽’을 볼 것.

이교(異敎)(38) 이교. 그 나라에 중요하게 여기는 교리가 아닌 다른 모든 교리. (가령 이교 나라에서는 가톨릭교가 이교가 됨) 이상한 교리, 이단.

이기(理氣)(284) 이치와 기운. (창조의 원리이며, 모든 사물의 원리)

이단(異端)(46) 미신, 미신 행위.

이단으로 면박하다(234) 미신으로 비난함.

인제(人祭)(40) 사람을 바치는 제사. (옛날에 조선에서는, 특히 장산에서 자주 행했음, 사람의 목을 자른 다음에 바다에 던졌음)

인호(印號)(39) 성사의 표시.

입교(入敎)하다(41) 종교에 들어감. 교우가 됨. 종교를 실천하기 시작함.

 

 

자헌(自獻)하다(539) ~에 자신을 바침, 스스로 봉헌물이 됨.

잠벌(暫罰)(525) 일시적인 처벌, 잠깐 동안 지속되는 벌.

잡술(雜術)(528) 사악한 술법, 신비술, 요술, 주술.

잡신(雜神)(528) 꼬마 악마, 나쁜 귀신.

장궤(長?)하다(533) 무릎을 꿇음, 무릎으로 몸을 곧게 세움, 무릎을 대고 똑바로 섬.

장림(將臨)(534) 대림, 대림시기.

장림수주일(將臨首主日)(534) 대림 첫 주일.

장백의(長白衣)(533) 장백의(교회 복식).

장승[?](534) 길가에 세워둔 나무로 만든 사람, 거리를 나타내는 기둥, 나무로 만든 군사적인 경계표로서 거칠게 사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

장의(掌議)(532) 직위의 이름, 공자 사당의 관리인. =재임.

재가승(在家僧)(537) 결혼해서 가족과 함께 사는 승려. 불교에 몹시 헌신적인 남자.

재계(齋戒)(537) 고기를 절제하거나 먹지 않음. 금육재를 지킴. 금식재를 지킴.

재공(537) 부처에게 바치는 제사.53)

재극(齋克)(537) 소재를 지키는 데 익숙해짐. 금식하며 고행함.

재소(齋素)(538) 고기를 절제함. 금육과 금식.

재수(財數)(538) 행운, 부자가 되는 행운.

재수(在數)하다(538) 운명(임), ‘이것은 운명이다’(미신), ‘이것은 섭리다’(그리스도교).

재일(齋日)(536) 금육재와 금식재를 하는 날.

재임(齋任)(536) 공자 신봉자들의 우두머리, 공자에게 바치는 제사를 주재하는 양반.

재제(才齊)하다(538) 다스림, 창조하고 다스림. (교회 용어)

저승[地獄](554)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는 곳, 승려들이 말하는 지옥.

저주(咀呪)다(555) 투덜거림, 중얼거림.

저주하다[呪罵](476) 저주, 누군가에 대해서 불행을 기원함.

전교(傳敎)하다(547) (선교사가) 복음을 전함, 선교함, 교우들에게 성사를 거행함, 종교를 전파함.

전구(轉求)(547) 중재, ~를 위한 기도, 호평.

전구(轉求)하다(474, 547) ~를 위하여 전구함, 기도함, 변론함, 대신 간청하여 기도함.

전사(全赦)(547) 전대사.

전지(全知)하다(548) 전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아심.

절[寺](551) 파고다, 부처의 사원, 사찰.

점(占)(474) 운수, 예언, 운세. (미신)

점돈[占錢](474) 미신을 위한 돈, 미신에 쓰이는 엽전.

점장이[占客](474) 점쟁이, 운수를 예언해 주는 사람, 주술사, 요술사.

점치다[占](474) 운수를 점침, 미래를 알아맞힘, 예언함, 숨겨진 사물을 알아맞힘, 요술사가 됨.

점치이다(474) 운수를 점치게 함.

접마(接魔)하다(551) 악마에게 붙들림, 악마에게 사로잡힘.

접사(接邪)하다(551) 주술사. 주술을 행함. 마귀와 연결된 요술사. 마귀와 어울림.

정감록(鄭鑑錄)(549) 500년 전 조선에서 살았던 정감의 예언서. (이 책들이 다시 명성을 얻고 있음)

정도(正道)(550) 이성에 따른 참되고 바른 교리.

정리(正理)(549) 참된 교리, 바른 이성에 따른 참되고 정당한 교리.

제(祭)(542) 제사, 번제.

제(祭)하다(543) 제사를 드림, 제사를 바침, 제사함.

제관(祭官(543) 제사장. 왕의 이름으로 제사를 바치는 관리. 특별한 존재들의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 제사의 고관.

제기(祭器)(543) 봉헌물이나 봉헌한 희생물의 고기를 올려놓을 때 쓰는 제사용 그릇.

제대(祭臺)(544) 제단.

제례(祭禮)(544) 제사의 예절, 제사.

제문(祭文)(543)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고인에게 바치는 추도사, 인사말.

제물(祭物)(543) 제사의 재료, 제사에서 바치는 물건, 제사에서 사용하는 물건.

제미(祭米)(543) 제사용 쌀, 껍질을 벗긴 아주 좋은 쌀.

제반(祭飯)(543) 제사에서 바치는 밥.

제병(祭餠)(543) 제사에서 바치는 제사용 과자. 면병, 제대 빵.

제복(祭服)(543) 제사용 의복. (이교도 용어)

제사(祭祀)(544) 제사, 제사 드림, 제사를 거행함. (이교도 용어이자 교회 용어)

제상(祭床)(544) 제사용 탁자. (이교도 용어)

제석(祭席)(544) 제사용 돗자리.

제석항하리[異端缸](544) 약간의 쌀을 담아서 마귀에게 바치는 항아리, 집을 부유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

제성영해치명(諸聖?孩致命)(554) 죄 없는 성인들(의 축일).

제성첨례(諸聖瞻禮)(554) 모든 성인들의 축일.

제성통공(諸聖通功)(554) 성인들의 통공.

제의(祭衣)(543) 제사용 옷, 예복, 도구. 미사용 상제의(上祭衣).

제지내다[奉祭](544) 제사 드림, 제사를 거행함, 제사를 바침, 제사를 올림.

제청(祭廳)(544) 돌아가신 부모의 신주를 돌아가신 날부터 3년 동안 모셔두는 집이나 방. (미신) 무덤 앞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한 움막.

제편(祭?)(543) 제사에서 바치는 제사용 떡.

제품(祭品)(544) 제사의 물건.

제향(祭享)(543) 왕이 드리는 제사, 왕의 이름으로 공자에게 바치는 제사.

제향(祭香)(543) 귀신이 먹이로 삼는 제사의 향기.

제헌(祭獻)하다(543) 제사를 바침, 제사에서 봉헌을 함, 바침.

조과(早課)(570) 아침 기도.

조당(阻?)(574) 장애, 지장, 반대.

조만과(早晩課)(570)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조물(造物)하다(570) (하느님께서) 창조하심.

조물주(造物主)(571) 창조주, 창조주 하느님.

조배(朝拜)하다(498) (하느님 또는 왕에게) 인사함, 몸을 숙임, 엎드림.

조찰하다[潔淨](574) 고유한, 깨끗한, 순수한, 정결한.54)

조화(造化)하다(498) 창조함.

졸곡(卒哭)(573) 장례식 5~6일 후에 울음과 곡소리와 탄식을 그침. (미신)

종도(宗徒)(572) 사도.

종도신경(宗徒信經)(572) 사도신경.

종묘(宗廟)(576) 돌아가신 왕의 사당.

종부(終傅)(576) 마지막 기름부음. (교회 용어)

죄악(罪惡)(569) 죄, 수치스럽고 나쁜 행동, 죄의 악의.

죄인(罪人)(569) 죄인, 범인. 조선의 교우들이 선교사 앞에서 쓰는 호칭, ‘불쌍한 죄인’.

죄종(罪宗)(570) 중대한 죄.

주교(主敎)(582) 주교, 고위 성직자, 대목구장. (교회 용어)

주당(主堂)(588) 하느님의 집, 교회, 성당. (교회 용어)

주명(主命)(583) 하느님의 명령, 하느님의 뜻, 거룩한 명령.

주모(主母)(583) 하느님의 어머니,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

주모경(主母經)(583)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주보(主保)(586) 주보, 수호자, 보호자. (교회 용어)

주성(主性)(587) 신의 본성.55) (교회 용어)

주수병(酒水甁)(588) 술과 물을 담는 작은 병, 미사용 포도주병과 물병. (교회 용어)

주역(周易)(582) 공자의 저술로 간주되는 중국어 책 이름.

주은(主恩)(582) 하느님의 은혜.

주일(主日)(582) 주님의 날, 일요일.

주제(主祭)(588) 제사장, 사제.

주훈(主訓)(582) 하느님의 계시, 하느님의 가르침.

중[僧](581) 승려.

중년[女僧](581) 불교 교단의 여자 승려.

중놈[男僧](581) 불교 교단의 남자 승려.

중속한이[退俗漢](581) 절을 떠나서 세속으로 돌아온 승려, 일반인으로 돌아온 승려.

지관(地官)(482) 땅을 관찰하는 사람(Geoscope). 묘를 쓰기에 좋은 장소를 지적해 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나침반을 사용함)

지당(地堂)(483) 지상의 낙원.

지리(地理)(483) 땅의 성질과 외관. 어떤 장소의 운수. 운수가 좋은 장소(무덤). (미신)

지방(紙方)(564) 가난한 사람들이 신주 또는 목패를 대신하여 사용하는 종이.56)

지사(地師)(483) 땅을 관찰하는 사람.

지석(誌石)(483) 죽은 사람의 성과 이름, 죽을 때 나이, 죽은 해 등을 적은 돌, 무덤 속에 시신과 함께 안치함.

지술(地術)(483) 땅을 관찰하는 일.

지술하다(483) 묘를 쓰기에 좋은 장소를 지적해 주는 직업을 행함.

지옥(地獄)(482) 땅속의 감옥. 지옥(사말의 하나).

지의용절(知義勇節)(558) 지혜, 정의, 용기, 절도. 사추덕. (교회 용어)

진교(眞敎)(562) 참된 교리(가톨릭교).

진교(進敎)하다(562)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임, 교우가 됨.

진도(眞道)(563) 참된 교리, 진실한 교리.

진리(眞理)(563) 참된 교리, 참된 이치.

진복(眞福)(563) 참된 행복, 하늘의 복.

진복팔단(眞福八端)(563) 여덟 가지 참된 행복.

진속(塵俗)(563) 이 세상, 세속, 덧없는 현세.

진언(嗔諺)(562) 주술사들의 주문, 주술사들이 주술을 쓸 때 암송하는 말, 주술사들이 망령 따위를 불러내는 일.57)

 

 

차부제(次副祭)(593) (내림 순으로) 세 번째 등급의 제사. 차부제. 세 번째 등급의 제사장.

찬류(竄流)(591) 유배를 떠남. 유배지. 유배되어 있음.

찬미(讚美)하다(591) 찬양함, 찬탄함, 현양함, 찬미함.

찬송(讚誦)하다(591) 찬양함, 찬탄함, 현양함, 설교함.

찬양(讚揚)하다(591) 찬양함, 찬송을 드림, 찬탄함. 지극히 거룩한 성사의 축복.

찰고(察考)하다(593) (교리문답의) 시험을 치름.

참례(參禮)하다(591) (미사에) 참여함, 참가함, 출석함, 나아감. 협력함, 참석함.

참사(參祀)하다(591) 제사에 참석함, 참여함.

창미사(唱彌撒)(594) 대미사, 노래로 바치는 미사.

척사문(擲邪文)(596) 미신과 싸우기 위한 글. 백성들이 나쁜 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공문. 조선에서 가톨릭교에 반대하는 소책자의 이름.58)

척죄정규(滌罪正規)(512)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받기 위한 지침(그리스도교 책 이름). 죄를 소멸시키는 올바른 방법(종교 책 이름).

천(天)(513) 하늘.

천국(天國)(513) 하늘의 왕국.

천노(天怒)(513) 하늘의 노함.

천당(天堂)(513) 낙원, 하늘(사말의 하나).

천로(天路)(513) 하늘로 가는 여정, 하늘로 가는 길. (교회 용어)

천명(天命)(513) 하늘의 명령.

천복(天福)(513) 하늘의 복락.

천상(天上)(513) 하늘 위, 하늘.

천상(天賞)(513) 하늘이 내리는 상급.

천신(天神)(513) 천상의 영, 천사.

천신구품(天神九品)(513) 천사들의 아홉 등급.

천은(天恩)(513) 하늘의 은혜.

천의(天意)(513) 하늘의 뜻, 하늘의 계획, 하늘의 의지.

천장(遷葬)하다(598)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하여 관을 파냄, 두 번째 매장을 함.

천주(天主)(513) 하늘의 주인, 하느님.

천주경(天主經)(514) 하늘의 주인에게 드리는 기도. 주님의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천주성(天主性)(514) 하느님의 본질, 하느님의 본성.

천주악(天主惡)(513) 이교도들이 교우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모욕적인 명칭.

천주학(天主學)(514) 신학, 하느님에 대한 학문, 그리스도교.

천주학문(天主學文)(514) 신학. 가톨릭교를 다루는 글 또는 책.

첨례(瞻禮)(596) 축일, 기도, 종교 축제, 휴일.

초성(超性)하다(609) 초자연적임. (교회 용어)

총고해(?告解)(606) 총고해. (교회 용어)

총교(寵敎)(608) 은총의 율법, 사랑의 율법, 가톨릭교. (교회 용어)

총령천신(?領天神)(606) 대천사, 천사들의 대장, 즉 미카엘 천사. (교회 용어)

총섭(?攝)(606) 승려들의 지도자.

추덕(樞德)(615) 사추덕. 중심이 되는 덕.

추사이망(追思已亡)(614) 죽은 이들을 위한 축일.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여 추도함.

축(祝)(610) 기도문.

축귀(逐鬼)하다(611) 귀신, 마귀를 쫓아냄.

축마(逐魔)하다(611) 마귀를 쫓아냄.

축문(祝文)(611) 기도문. 식전 및 식후기도. 식사기도와 (식후의) 감사기도.

축사(逐邪)하다(611) 나쁜 영을 쫓아냄.

축성(祝聖)하다(611) 축복함, 죄를 사함, 축성함, 봉헌함.

축수(祝手)하다(611) 손을 비비며 기도함, 하늘에 기도함.

축수(祝數)하다(611) 행운이나 성공을 간청함. (이교 용어)

축원(祝願)하다(611) 바라는 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청함, 원하는 것을 얻도록 기도함.

축지법(縮地法)(611) 땅을 주름잡는 기교, 말하자면 마음대로 공간을 줄이거나 늘이는 기법(주술). 걸어가는 수고를 면하기 위하여 손으로 땅을 붙잡아서, 가려고 하는 장소가 지나갈 때까지 돌리는 주술사의 기법.

춘계소재(春季小齋)(611) 봄의 사계(사순 제1 주일) 때에 행하는 소재.

취결례(取潔禮)(610) 동정 성모의 정결 (축일), 출산 후 산부의 축성 예식. 주님 봉헌 축일.

치명(致命)하다(601) 순교자, 순교자가 됨, ~을 위하여 죽음, 순교의 고통을 당함, 목숨을 바침.

치제(致祭)하다(604)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였던 고인의 가족들이 제사를 드리는 데 쓰도록 왕이 보내는 선물. 왕의 명령에 따라서 왕의 이름으로 바치는 장엄한 제사.

친구(親口)하다(602) 입맞춤, 입술을 갖다 댐, 껴안음.

친기(親忌)(602) 아버지나 어머니, 부모가 돌아가신 기일.

칠극(七克)(603) 칠죄종에 대응하는 일곱 가지 덕목. 일곱 가지 고행. 이것을 다룬 책 이름.

칠성사(七聖事)(604) 일곱 가지 성사들.

칠성판(七星板)(604) 시신을 나르는 데 사용하는 가벼운 널빤지.

칠죄종(七罪宗)(604) 일곱 가지 중대한 죄.

 

 

탁덕(鐸德)(506) 종(鍾)의 덕. 덕을 권하는 사람. 신부.

탈상(脫喪)하다(509) 아버지나 어머니의 상을 벗음.

탈속(脫俗)하다(509) 세속에서 물러남. 속세를 떠남.

태극(太極)(505) 세계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던 첫 번째 물질. 카오스. (중국의 우주생성론에서 보자면 세계의 세 번째 시기임, 원초적인 힘인 무극에서 생겨난 충일을 가리킴) ‘홍몽’을 볼 것.

태주년[巫女](510) 여자 주술사. 각 가정을 찾아가서 미신을 행하는 여자.59)

택일(擇日)하다(510) 날을 선택함. (미신)

터주[基主](512) 집이 세워진 장소의 귀신. (미신)

터주항(垈主缸)(512) 장소의 귀신에게 바치는 쌀을 담은 토기.

통경(通經)하다(518) 공동으로 함께 기도문을 암송함, 함께 기도를 바침.

통고(痛苦)하다(518) 고통, 비탄, 아픔을 함께 함. 괴로워함, 고통스러워함.

통공(通功)하다(518) 공로를 서로 나눔, 공로를 공유함.

통도사(通道寺)(519)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있는 큰 사찰, 불교 서적이 많이 있음.

통마지죄(通魔之罪)(518) 저주. 어떤 형상이나 그림을 찔러서 그것이 나타내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려는 주술적인 작용.

통신(通神)하다(519) 마귀와 접촉함. 주술사가 됨.

통화색(通貨色)하다(518) 재물과 여자를 공유함. (무례한 이교도들이 교우들에게 가한 모욕적인 말)

통회(痛悔)(518) 고통과 뉘우침, 회개, 가책.

통회(痛悔)하다(518) 후회함, 뉘우침.

퇴속(退俗)(517) 세속으로 돌아와서 일반인처럼 부부생활을 하며 사는 승려. 속세로 돌아옴.

투장(偸葬)하다(522) 무덤을 훔침, 다른 사람의 무덤이 있는 산에 몰래 매장함.

특은(特恩)(515) 특별한 은혜.

 

 

파공(罷工)하다(351) 의무 축일에 노동을 하지 않음. (교회 용어)

파묘(破墓)하다(352) 시신을 파냄. 무덤을 발굴함. 무덤 장소를 변경함. 관을 다른 장소에 묻으러 감.

파사(破寺)(355) 파괴되어 버려진 절.

파일(罷日)(351) 불길한 날, 음력 5일, 15일, 25일. (미신)

판공(判功)하다(352) 성사를 받음, 고해를 함. (교회 용어)

판공주다[許判功](352) 성사를 줌, 고해를 들음.

판도방(判道房)(353) 승려들이 수행하는 큰 방. (외부 방문객을 위한 침실, 식당, 응접실로도 사용됨)

판신공(判神功)(352) 성사를 받음, 성사를 집전함.

팔괘(八卦)(353) 이어진 또는 완전한 선, 그리고 끊어진 또는 불완전한 선, 두 가지로 이루어진 도식. 끊어지거나 이어진 세 개의 선으로 구성된 여덟 가지 도식을 팔각형으로 배열한 것. 각기 다른 조합으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나타냄. 이것은 중국의 첫 번째 황제인 복희의 발명품으로 여겨짐. 복희는 철학적 사색의 도구로 쓰기 위하여 팔괘를 구상하였음. 점쟁이들이 운세를 뽑을 때 이외에는 더 이상 거의 사용되지 않음.

팔자(八字)(354) (연월일시, 각 두 자씩) 여덟 자. 현세에서의 행운을 보장하는 여덟 가지 요소(태어난 연월일시 그리고 생사복덕). (태어날 때 이 모든 것을 가지고 나온다고 함. 점성술에서 따져보는 것 역시 팔자임)

패수(?羞)하다(351) 수치심 때문에 몸을 숨김. (교회 용어)

편태(鞭笞)(359) 채찍질하는 채찍, 막대. 채찍질함. (교회 용어)

풍수(風水)(365) 바람과 물. 행복의 바람. 영향을 미치는 좋거나 나쁜 기운. (집을 짓거나 묘를 쓰는 데 적합한 장소를 고르는 미신)

피정(避靜)하다(362) 물러남. 피정함. (교회 용어)

 

 

하도낙서(河圖洛書)(81) 어떤 거북이가 신농씨라는 중국의 왕에게 갖다 준 신성한 책의 이름. 그 책에는 팔괘와 수리학(數理學)이 실려 있었음.

하등통회(下等痛悔)(81) 불완전한 회개. 낮은 등급의 회개.

학(學)(75) 교리. 가르침. 종파. 교육.

학당(學堂)(76) 학교. 소신학교. 대신학교. 고등학교. 교육하는 집. 공자의 파고다.

학행(學行)하다(75) 공자의 교리. 예의바름, 점잖음, 아름다운 행실, 품행. 예를 들면 현자(賢者)의 행실로서, 언제나 멋지고 큰 옷을 입고, 모든 행동을 무겁게 천천히 절도 있게 행하며, 문장을 지어서 말하는 등, 매사에 공자와 맹자를 본받고자 노력함. ‘산림’을 볼 것.

할손례(割損禮)(80) 할례.

항덕(恒德)(87) 항구한 덕. 확고부동한 덕.

해상(解喪)하다(86) 상(喪)을 끝냄.

해죄(解罪)하다(86) 죄를 용서함.

해죄경(解罪經)(86) 죄를 용서함. 죄를 용서하는 기도문.

행공(行工)하다(84) 종교를 실천하기 시작함.

행상(行喪)(85) 관을 나르는 데 사용하는 들것. 장례식의 행렬.

향교(鄕校)(82) 각 고을마다 있는 공자의 사당.

향주(向主)하다(82) 하느님을 향하여 바라봄. 하느님에게로 서둘러 감. 하느님을 향하여 몸을 돌림. 생각을 하느님에게로 들어 올림.

허배(虛拜)하다(90) 헛된 계율이나 미신에 굴종함. 헛되고 무망한 인사. 말하자면 부모의 시신이나 신주 앞에서 엎드리는 것.

허원(許願)하다(88) 서약함, 맹세함, 헌신함, 어떤 것을 약속함.

헌당첨례(獻堂瞻禮)(90) 우리 주님의 봉헌 축일.

헌병(獻餠)(90) 미사에서 제병을 봉헌함. (빵과 포도주의 봉헌)

헌작(獻酌)(90) 미사에서 성작을 봉헌함.

현고학생(顯考學生)(92) 무덤으로 가지고 가는 붉은 색의 깃발에 쓴 글씨. 돌아가신 부모에게 부여된 칭호로서, 신주 위에도 새김.

현성용(顯聖容)(93) 우리 주님의 거룩한 변모.

혈세(血洗)(95) 피의 세례, 즉 순교.

혈식(血食)하다(95) (가령 위대한 인물의 초상 앞에) 제사를 바침. 희생물의 피를 바침.

호상(護喪)(114) 관을 지키는 사람, 보호자. 장례식에서 예식들을 이끄는 사람.

호수천신(護守天神)(114) 수호천사.

혼(魂)(110) 영혼.

혼교(魂轎)(110) 영혼을 나르는 데 사용하는 의자. 고인의 신주를 장지로 옮겼다가 나중에 도로 가져올 목적으로 신주를 놓아두는 의자.

혼배보례(婚配補禮)(110) 혼배 예절의 보충.

혼백(魂魄)(110) 일반적으로 영혼. 신주 또는 하얀색 종이 같은 것으로, 그 위에 글씨가 적혀 있는데, 고인의 영혼이 거주한다고 여겨짐. (이교 용어)

혼호(魂號)(110) 한자로 된 (영혼의) 이름.

홍몽(鴻?)(111) 중국의 우주생성론에서 홍몽은 카오스이며, 근원적인 힘을 의미하는 무극을 낳음. 무극은 충일함을 뜻하는 태극을 생성시킴. 태극은 그늘과 빛, 남성 원리와 여성 원리를 가리키는 음양을 낳음. 음양은 네 가지 중심 요소를 뜻하는 사생60)을 낳고, 사생에서 천지가 나옴.

화랑이[覡](104) 광대. 주술사 따위. 무당의 남편.

화장(火葬)(105) 시신을 불태워서, 고인의 몸이 재로 돌아가게 함.

환생(還生)하다(101) 변신. 윤회. 윤회에 의해서 다시 살아남.

환술(幻術)(101) 사기꾼. 주술사. 마법사. 요술. 사기.

활동첨례(活動瞻禮)(104) 날짜를 옮길 수 있는 이동축일들.

회(會)(106) 의회. 연합, 평신도회. 회합. 협회. 시노드. 공의회. 단체.

회개(悔改)하다(106) 개종함, 뉘우쳐서 고침. 정신을 차리고 행실을 바로 잡음.

회과자책悔過自責)하다(106) 잘못을 바로잡고 고행을 함. 자기 자신을 개선함.

회두(回頭)하다(108) 개종, 변경. 개종함.

회우(會友)(106) 동료. 회원. 수도회원. 벗, 단체의 동지. 단체의 구성원.

회장(會長)(108) 종교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교리교사, 교우촌의 우두머리.

회장(會葬)하다(108) 장례식을 치르기 위하여 모임.

회죄경(悔罪經)(108) 죄를 뉘우치는 기도문.

회회(回回)(106) 돌아온 사람들, 즉 마호멧 교도를 가리킴. 그렇게 불리는 첫째 이유는 그들이 윤회를 믿기 때문이며, 둘째 이유는 그들의 조상이 위구르[回紇] 족이기 때문임.

흠숭(欽崇)하다(97) 존경함, 공경함, 숭배함, 경배함. (하느님에 대해서만 사용함)

흠향(歆享)하다(97) 음식의 향기를 맡음. (제사에서 귀신들에 대해서 쓰는 말)

희생(犧牲)(96) 희생물. 제병. 제사에 바친 동물(소, 양,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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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진홍, 《경험과 기억》, 당대, 2003, 167쪽.

 

2) <19세기 프랑스 선교사들의 문명관>, 《교회사연구》 15, 2000 ; <19세기 중엽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의 조선 인식>, 《종교연구》 27, 2002 ; <19세기 중엽 프랑스 선교사들의 조선 인식과 문명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2 ; <19세기 중엽 프랑스 선교사들의 극동 정세 인식과 출병 문제>, 《한국사상사학》 19, 2002 ; <철종대 프랑스 선교사들의 조선활동과 일상생활>, 《교회사연구》 19, 2002 ; <선교사와 오리엔탈리즘 : 일제시대 어느 천주교 선교사의 조선 스케치>, 《정신문화연구》 26-3(통권 92호), 2003 ; <박해기 프랑스 선교사들의 성향 분석>, 정두희 외, 《한국근현대사와 종교문화》, 천주교 호남교회사연구소, 2003 ; <모방 신부의 조선 전교>, 《교회사연구》 22, 2004 ; <19세기 종교문화를 바라보는 천주교 선교사의 시선>, 《역사민속학》 18, 2004 ; <19세기 프랑스 선교사의 조선 이미지에 관한 사례 연구>, 《프랑스학 연구》 30, 2004 ; <선교사와 오리엔탈리즘>, 《종교문화비평》 7, 2005 ; <프랑스 선교사들과 한국 천주교회의 성모신심>, 《교회사학》 3, 2006 ; <파리외방전교회와 조선대목구의 분할>, 《교회사연구》 29, 2007 ; 《조선의 선교사, 선교사의 조선》, 한국교회사연구소, 2008 ; <중국 체류 시기 페레올 주교의 행적과 활동>, 《교회사학》 5, 2008 ; <분도회 선교사들의 한국문화연구>, 《교회사연구》 33, 2009 ; <안중근 의사와 빌렘 신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편, 《안중근 연구의 성과와 과제》, 채륜, 2010 ; <브뤼기에르 주교 연구를 위한 서설>, 조현범 외, 《한국 천주교회사의 빛과 그림자》, 디자인 흐름, 2010 ; <브뤼기에르 주교의 여행 기록에 나타난 샴과 중국>, 《동국사학》 49, 2010.

 

3) Jonathan Smith, Relating Relig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4, pp.241~242.

4) Ibid., p. 316.

 

5) 이하에서는 리델 주교가 편찬한 한불자전을 고유명사로 지칭할 것이다. 본문에서 거론하는 한불자전은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혼동의 우려도 없다. 그래서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번잡한 책자 표시기호를 달지 않을 생각이다. 페롱 신부의 수고본 불한사전, 가끔 참고 자료로 인용할 언더우드의 한영자전(1890)과 게일의 한영자전(1897)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원칙을 적용할 것이다. 또한 이 글은 국어학적 연구가 아닌 만큼, 한불자전의 표제어들을 현대어의 규범에 맞게 고쳐서 표기하였다. 해당 낱말의 원래 표기는 부기된 한불자전의 해당 면수를 찾아가서 확인하면 된다.

 

6) 한불자전에 관한 연구사 정리는 따로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2005년 이후에 제출된 몇 편의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기존 연구들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새삼스럽게 또다시 연구목록들을 재구성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하에 제시할 연구들이 소개하고 있는 참고문헌을 확인하면 한불자전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대부분 망라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이연, <최초의 한국어 연구, 한-불, 불-한 사전들과 한국어 문법서>, 《프랑스학연구》 31, 2005 ; 심지연, <개화기 프랑스 사람들의 한국어 연구에 대하여>, 《민족문화연구》 48, 2008 ; 채완, <한불?뎐의 뜻풀이에 대한 고찰>, 《한국어 의미학》 26, 2008 ; 윤애선, <지식베이스 구축을 위한 《한불?뎐》 <어휘부> 미시구조 분석>, 《불어불문학연구》 78, 2009 ; 이지영, <사전 편찬사의 관점에서 본 《韓佛字典》의 특징>, 《한국문화》 48, 2009 ; 채완, <《한불?뎐》에 실린 부정적 의미의 인물명사>, 《어문연구》 37-3, 2009 ; 이은령, <19세기 이중어 사전 《한불자전(1880)》과 《한영자전(1911)》 비교 연구>, 《한국프랑스학논집》 72, 2010 ; 황호덕, <번역가의 왼손, 이중어사전의 통국가적 생산과 유통>, 《상허학보》 28, 2010.

 

7) 한불자전과 불한사전, 1890년에 간행된 라한사전 사이의 계보학적 관계 해명, 그리고 이들 사전류 저술들을 편찬하기 위하여 사용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중국어 사전류와의 비교 검토 등 아직 밝혀야 할 것들이 산적해 있다.

 

8) 한불자전에 등장하는 표제어들 가운데는 전통적인 조선의 문물과 언어생활에 관한 것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던 근대적인 신문물과 관련한 용어들도 상당수 들어 있다. 이에 대해서도 연구가 많이 필요한 형편이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들에서도 오류가 많이 발견되며, 개념사의 관점에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차후에 별도의 지면을 통해서 연구 성과를 제출할 생각이다.

 

9) 이 글 이전에 한불자전의 표제어들을 내용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은 오미나, 이지야에 의해서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종교 관련 항목 전체를 추출하지는 않았으며, 정의 항목에 담긴 내용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잘못 분류된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오미나, <한불?뎐에 대한 사전학적 고찰>, 《숙명어문논집》 5, 2003, 121~125쪽 ; 이지야, <한불?뎐의 사전학적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86~99쪽.

 

10) 셰익스피어, 《헛소동》, 제3막 제3장.

 

11) <6. 성교회 성직자의 칭호>, 《경향잡지》 675, 1929년 12월 15일, 542~546쪽 ; <7. 교황의 외교관, 8. 수도회의 장상 칭호>, 《경향잡지》 676, 1929년 12월 31일, 566~567쪽 참조. 첫째 기사에는 교황과 추기경을 비롯하여 20개의 성직자 칭호가 소개되어 있고, 둘째 기사에는 교황청 외교관 명칭과 수도회 장상들의 명칭들이 정리되어 있다.

 

12) 박영섭, 《개화기 국어 어휘자료집(신소설편)》, 솔터, 1992, 19쪽.

13) 박재연, 《고어사전》, 이회문화사, 2001, 837쪽.

 

14) ‘조찰하다’는 말은 ‘잘 헤아려 살핀다’는 뜻의 한자어 조찰(照察)과는 다른 낱말이다. 현행 가톨릭성가 117번과 156번에 나오는 ‘조찰하다’는 표현은 ‘깨끗하다’는 뜻이다.

 

15) Coutumier de la Mission de Coree, Seoul: Typographie de la mission catholique, 1887, p. 73.

 

16) 여기에는 페롱 신부를 주저자로 한 수고본 불한사전도 포함될 수 있다. 한불자전과 불한사전을 교차 검토하면 많은 가톨릭 용어들이 서로 일치한다. 가령 이런 등식이 성립한다. ‘부주교=coadjuteur’(한불자전) → ‘coadjuteur=부주교’(불한사전). 하지만 정확하게 대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불자전에는 ‘공소=chapelle’로 되어 있지만, 불한사전을 보면 ‘chapelle=성당, (공소방 chambre de reunion des chretiens), 예배당, 회당, 성전’으로 되어 있다.

 

17) 귀주 대목구 소속의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폴 페르니(Paul Perny, 1818~1907) 신부가 1869년 파리에서 불어-라틴어-중국어 대역사전을 발간한 바 있다. 현재 한국교회사연구소에는 폴 페르니 신부의 사전이 한 권 소장되어 있다. 이 사전의 첫째 쪽 상단에 조선 대목구의 알렉상드르 마르티노(Alexandre Martineau, 1841~1875) 신부가 직접 적어 넣은 자필 서명이 들어 있어, 마르티노 신부가 소장하고 있던 사전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마르티노 신부, 리샤르 신부 등과 요동 반도 차쿠에서 함께 체류하던 리델 주교는 한불자전을 편찬할 때에 페르니 신부의 불어-라틴어-중국어 사전도 이용하였을 것이다. 이 사전에 실린 가톨릭 용어들을 전면적으로 검토하지 못했지만, 한불자전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낱말도 있고,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도 보인다. 앞으로 한불자전의 계보학을 밝히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사전임에는 분명하다.

 

18) 《한국어학자료총서 제1집 국한회어》, 태학사, 1986.

19) 이지영, 앞의 글, 참조.

 

20) 대한성서공회, 《대한성서공회사 I》, 대한성서공회, 1993, 52~53, 124~125, 128, 182~185, 193~197, 201쪽 참조 ; 류대영, 옥성득, 이만열, 《대한성서공회사 II》, 대한성서공회, 1994, 46~47쪽 참조.

 

21) 위의 책, 67쪽에서 재인용.

 

22) <거짓교와 이단>, 《경향잡지》 265(1912년 6월 30일), 265쪽 ; <관상과 손금 보는 것은 이단이뇨>, 《경향잡지》 367(1917년 2월 15일), 67쪽 ; <輓詞, 輓章, 輓詩, 輓歌>, <향나무 달인 물로 시체를 씻음>, <산서와 궁합>, <사람이 죽어 환생한다 함은 윤회라 하는 이단>, 《경향잡지》 558(1925년 1월 31일), 41~44쪽 ; <기우제, 천제는 다 이단이니>, 《경향잡지》 675(1929년 12월 15일), 548쪽.

 

23) 방원일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에서 활동한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이 한국에 보편적 개념으로서 ‘종교’를 최초로 적용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 종교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물론 이 언명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의 종교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나 서술이라는 측면을 떠나서, 종교라는 용어가 통용되기 이전의 시기에 오늘날의 종교 개념으로 볼 때 그 하위 범주들에 해당하는 다양한 개념들을 수집하여 정의 내리는 작업을 하였다는 점에서 가톨릭 선교사의 사전 편찬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방원일의 작업은 앞으로 연대기적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한국의 종교에 대한 체계적인 서술보다는 종교적 개념과 용어들이 담긴 다양한 저수지들을 탐색하는 일에 치중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방원일, <초기 개신교 선교사의 한국 종교 이해>,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참조.

 

24) 김종서, <한말 일제하 한국종교 연구의 전개>, 《한국사상사대계 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3, 243~314쪽 ; - - -, 《서양인의 한국 종교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

 

25) 조현범, <서구 종교학의 역사에 대한 지성사적 재조명>, 《대순사상논총》 17, 2004, 131~133쪽.

26) 정양완, 홍윤표, 심경호, 김건곤, 《朝鮮後期 漢字語彙 檢索辭典 : 物名考, 廣才物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1~34쪽 참조.

 

27) 정진홍은 제의의 유형을 나누면서 기원의 몸짓, 봉헌의 몸짓, 수행의 몸짓으로 설명한 바 있다. ‘닦다’ · ‘빌다’ · ‘바치다’는 여기에서 차용한 것이다. 정진홍, 《종교문화의 이해》, 청년사, 1995, 133쪽 참조.

 

28) “개화기 종교 인식의 변화는 전근대적 종교 개념들이 내포하였던 이른바 비본질적인 종교의 껍데기들이 떨어져 나간 것”이고 “결국 원초적인 것들만 남게 된 일종의 종교 자체의 순수화 과정”이라고 말한다거나, 신분제도의 변화에 따라서 “종교가 사대부 양반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본 권리로 인식된 것, 소위 ‘종교의 대중화’는 한국적 상황에서 마침내 종교 개념의 보편성을 담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면서, 이것을 “종교 공동체의 상징체계가 신분제도라는 부차적 요소로부터 해방되어 신앙 중심으로 재편성되는 일종의 내면적 정화 과정”이었다고 평가하는 태도를 보면 한국종교학이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언어와 학문 연구의 도구가 되는 언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개념적 혼란에 빠져 있음을 여실하게 알 수 있다. 게다가 프로테스탄트 패러다임 위에서 성립한 종교 개념을 아무런 반성적 검토 없이 자명한 실체로 사용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김종서, <근대화와 한국 종교의 개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편, 《종교와 역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 185쪽 참조.

 

29) 장석만, <개항기 한국사회의 ‘종교’ 개념 형성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2.

 

30) 개항기 종교 담론에 대한 분석이 어떤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할 것. 조현범, <‘종교와 근대성’ 연구의 성과와 과제>, 강돈구 외, 《근대 한국 종교문화의 재구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문화연구소, 2006, 38~49쪽 참조.

 

31) 윤성우, <역자 해제>, 폴 리쾨르, 《번역론 : 번역에 관한 철학적 성찰》, 윤성우, 이향 옮김, 철학과 현실사, 2006, 34쪽.

32) 발터 벤야민, <번역가의 과제>, 반성완 편역,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1983, 326쪽.

33) 이것은 폴 리쾨르가 1990년에 쇠이으(Seuil) 출판사에서 간행한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34) 원래 삼강령은 부위자강(父爲子綱),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35) 가톨릭 교회법의 용어로는 ‘특별권한’(facultates)을 말한다.

36) 담(?)의 한자 표기가 잘못 되어 있다.

37) 전통적인 용어법으로 ‘집안일을 주관하여 맡음’이란 뜻인데, 이를 차용하여 가톨릭교회에서는 재정 담당 신부의 직함으로 사용하였다.

38) 도선(道詵)을 잘못 표기하였다.

39) 미력이라는 표제어는 미륵(彌勒)을 연상시킨다. 내용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다.

40) 발인(發靷)의 한자가 잘못되어 있다.

41)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혼동하고 있다.

42) 교구장 또는 대목구장의 계승권을 지닌 주교를 말한다. 오늘날에는 부교구장 주교라 부른다.

43) 문헌상으로는 불량답(佛糧沓)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더 자주 나타난다.

 

44) ① 주일과 축일을 지키고 미사에 참례할 것, ② 교회가 정한 날에 단식재와 금육재를 지킬 것, ③ 최소 1년에 1회 고해성사를 받을 것, ④ 최소 1년에 1회 부활시기에 영성체를 할 것 등이다.

 

45) 성독(聖?)이 정확한 발음일 것이며, 그 내용도 성해를 넣어두는 유골함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46) 연옥을 말한다.

47) 승천(昇天)의 한자에 오류가 있다.

48) 유혹과 싸우는 지상 교회를 말한다.

49) 아귀(餓鬼)의 한자가 빠져 있다.

50) 천국을 말한다.

51) 부부유별의 한글이 잘못 적혀 있다.

52) 운감(殞感)의 한자가 빠져 있다. 그리고 흠향(歆饗)의 한자도 잘못되어 있다.

53) 재공양(齋供養)을 가리키는 것 같다.

 

54) 발음은 같으나, 한자어가 다른 용어들이 있다. 위의 표제어는 조선시대에 사용되던 고유어로서, “사정이나 형편 따위를 비추어 보아 잘잘못을 살핌”을 뜻하는 조찰(照察)이나 “죄를 씻고 닦음”을 의미하는 조찰(?擦)과는 다른 뜻을 지닌 낱말이다.

 

55) 천주성(天主性)과 동의어이다.

56) 지방(紙榜)의 한자가 잘못되어 있다.

57) 불교에서 사용하는 진언(眞言)의 한자와는 다르다. 위에 표기된 진언(嗔諺 : 성을 내는 속된 말)이 어디에서 연유한 한자인지 알 수 없다.

58) 조선에서 사용하던 용어는 척사문(斥邪文)이었다. 정확한 한자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뜻으로만 풀었던 것으로 보인다.

 

59)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태주’ 항목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마마를 앓다가 죽은 어린 계집아이의 귀신. 다른 여자에게 신이 내려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말하고, 온갖 것을 잘 알아맞힌다고 함, ≒명도(明圖), 명도귀, 명두(明斗), 태자귀”.

 

60) 사상(四象 : 음양에서 나온 태양, 태음, 소양, 소음)을 잘못 적은 것으로 보인다.

 

[교회사 연구 제36집, 2011년 6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조현범(한국교회사연구소)]

 

※ 본문 중에 ? 표시가 된 곳은 현 편집기에서 지원하지 않는 한자나 한글 고어가 있는 자리입니다. 정확한 내용은 첨부 파일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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