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 (금)
(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소공동체ㅣ구역반

이주사목의 시각을 통해 재발견하는 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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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7-10 ㅣ No.164

[소공동체 재발견] 이주사목의 시각을 통해 재발견하는 소공동체

 

 

교황이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때 교황의 지시를 받아 즉각 수행하는 성직자들이 있다. 바로 ‘알모너’이다. ‘알모너’란 원래 중세 말 영국 수도원 등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성직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자 13세기 이래 원로급 고위 성직자들의 명예직이었던 이 ‘알모너’는 거리로 나가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어려움을 신속하게 지원하는 일종의 ‘자선 구급대’로 재탄생되었다. 교황은 이러한 중책을 크라예프스키 대주교에게 맡기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책상을 팔고 거리로 나가라.” 사무실에 앉아서 사람들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거리로 나가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라는 뜻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이주민의 수는 대략 200만 명, 이 중 적지 않은 이주민들의 수가 수원교구 내에 집중되어 있다. 수원, 안산, 시흥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주민들이 이처럼 밀집해 있는 까닭에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에서는 지역별 이주민 사목을 위한 7개의 시설(엠마우스)을 두고 사랑의 연대와 환대를 통해 인간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교황의 말씀처럼 책상을 팔고 거리로 나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이주민들이기에 이주민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 중심으로 엠마우스가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주사목이 현장사목인 이유다. 이곳을 통해 이주민들을 위한 신앙적 돌봄과 인권적 돌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써, 적지 않은 교구 내의 이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각 엠마우스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광주 엠마우스 공동체, 평택 엠마우스 공동체, 발안 엠마우스 공동체, 수원 엠마우스 공동체, 안양 엠마우스 공동체, 안산 엠마우스 공동체 그리고 시흥 엠마우스가 바로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지역별 공동체가 형성된 데에는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그중 가장 핵심적 요인이라 함은, 엠마우스가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 속으로 찾아갔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엠마우스를 통해 이들 신앙공동체들은 미사는 물론이고 민족별 모임과 신앙적, 인권적 돌봄을 받고 있다.

 

엠마우스 중심으로 각개의 공동체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또 다른 중요 요인이 있었다. 바로, 이주민들의 노동현장 곧 그들의 삶의 현장 안으로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평택 엠마우스의 경우, 그곳 담당 세바스찬 신부는 시간 나는 대로 주변 공장을 찾아가 이주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고, 고해성사를 주며 상담을 해주고 있다. 이러한 노력 때문일까? 엠마우스 근처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서부터, 몇 시간 동안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오는 먼 곳의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엠마우스는 이들 이주민들에게 고단한 삶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삶의 사랑방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사람들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거리로 나가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다시금 가슴에 새겨봐야 하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공동체는 어떨까? 지금은 거의 사라져버렸지만, 우리에게는 ‘공소’라는 개념의 지역 공동체가 있었다. 성당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신앙적인 돌봄을 받을 수 없는 지역의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모여 신앙생활을 유지했던, 곧 삶의 자리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지역의 신앙공동체이다. 생생한 삶의 현장 안에서 형성된 만큼 이들 공소 사람들의 신앙은 결코 삶과 무관하거나 동떨어진 어떤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추구하는 소공동체 역시 삶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말씀(복음)을 듣고 선포하는 소공동체이기에, 지금의 소공동체가 공소의 이러한 장점을 잘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더욱 튼실한 소공동체의 성장을 위해 우선, 정적인 소공동체에서 동적인 소공동체로의 전환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말씀을 앉아서 나누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말씀을 심기 위해 이웃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 찾아나서는, 즉 움직이는 소공동체로의 변화가 절실해 보인다.

 

이에 삶의 현장에서 이주사목을 함께 할 수 있는 소공동체의 모습을 제언해 보고자 한다. 교회의 어떠한 모임도 복음 선교와 무관할 수 없다. 선교가 사랑과 연대성을 통해 하느님의 이상적인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소공동체 역시도 복음선교의 차원에서 마땅히 우리 사회 안의 이주민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당과 주일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부를 떠돌고 있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 가정의 자녀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는 만큼 소공동체가 지역 이주민들을 초대하는 날을 제정하거나, 또는 소공동체 모음을 활용한 멘토링 등으로 이주민을 본당의 일원으로 수용하는 문제도 고려해볼 만하다. 쉬는 교우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나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차가운 사회적 편견에 맞서 주변의 새로운 이웃, 다문화 가정을 포함한 지역의 이주민들을 찾아나서는 것에 소공동체가 앞장서 주기를 희망한다.

 

“책상을 팔고 거리로 나가라.”

 

[나눔의 소공동체, 2017년 7월호, 김창해 요한 세례자 신부(교구 이주사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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