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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31: 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1) 지난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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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14 ㅣ No.107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1) 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지난날의 기억


‘새로운 복음화’의 주역은 평신도

 

 

-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복음화학교’를 설립한 정치우 교장이 2004년 신자들에게 복음화학교 1단계 교육을 하고 있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1990년 4월 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세계 각국의 평신도들과 함께 생활하며 공부하던 추억, 언어 때문에 내내 힘들었던 기억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처음 미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 순간….

 

계약 공동체로서 미국 인디애나 주 사우스벤드에 있는 노트르담 대학교(The University of Notre Dame)를 중심으로 형성된 ‘찬미의 백성(People of Praise)’ 공동체에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초청받아 3년간 그들과 함께 살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생활은 저의 삶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상 안에서 평신도의 삶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평신도가 지고 있는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안 것도 그때였습니다. 그동안 막연하게 여겨지던 평신도 사도직의 길이 하느님의 조명 아래서 명확해졌습니다. 저는 한국 교회 안에서도 평신도 계약 공동체의 삶을 접목해 봐야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그렇게 1990년 4월 말 귀국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평신도의 소명을 실현해 나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기적 같은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귀국 이틀 후였습니다. 당시 서울대교구 중곡동본당에서 사목하고 계셨던 박용일 신부님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온 것입니다. 신부님은 저에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전 세계 신자들에게 요청하신 새로운 복음화 사업을 한국에서 같이 시작해 보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신부님의 기도방에서 결정을 어떻게 내려야 할지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생각과는 다른 답을 주셨습니다 “해라 내 일이다.” 

 

결국 저는 미국에서 귀국한 후 짐을 제대로 풀지도 않은 채 다시 로마로 향했고, 1990년 5월부터 수개월 동안 로마의 ‘복음화 2000 세계 본부’에서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교육을 받은 후 귀국했습니다. 로마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로마에서 새로운 세계 교회의 변화와 흐름을 보게 되었고, 복음화가 이 시대의 모든 이들에게 원하는 새로운 의미의 하느님 구원 사업임을 깨달았습니다.

 

귀국 후 신부님께서 복음화 사업의 일환으로 학교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커리큘럼을 만들어 가면서 1991년 봄 드디어 한국 땅에 ‘복음화 학교’를 시작하는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평신도의, 평신도에 의한, 평신도를 위한’ 복음화 열정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1년이 지난 1992년 7월, 처음 복음화 학교를 수료한 몇몇 봉사자들과 함께 계약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제가 활동하고 있는 새천년복음화사도직협회가 태어난 배경입니다.

 

돌이켜 보면 복음화라는 말이 평신도들에게 생소했던 1990년, ‘새로운 복음화’라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받고,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복음화에 대해 올바로 인식시키고 복음화 사업을 펼칠 수 있을까?’ 막막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주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빛을 구하면서 지내온 지 벌써 30년이 가까워져 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화에 대해 성심껏 설명하고 동참하기를 권하며 보낸 30여 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평신도들에게 전혀 알려진 바 없는 ‘복음화학교’를 일일이 설명하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학교 운영 자금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고정된 사무실이나 연락처도 없이 떠돌이 시절을 몇 년 보내야 했고, 사무실과 학교 강의실을 얻기 위해 또다시 수년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과정 하나하나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직접 경험했고, 기적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마태 6,31)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실천한 결과였습니다.

 

새천년복음화사도직협회는 지난 30년간 끊임없는 노력과 희생 그리고 열정적인 기도로 복음적 삶의 실천을 위해 모든 봉사자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복음화를 위해 봉사하기를 희망하는 평신도들이 늘어나고 있고 복음화학교에 수강생들이 늘어나고 최근에는 수강신청자들이 너무 많아 접수를 다 받을 수 없는 상황이 이를 증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늘 ‘겸손’이라는 단어를 묵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형적 성장보다 복음적 삶의 실천입니다. 하느님과의 약속을 굳건히 지키며 실천하여 이 땅의 진정한 모델이 되는 평신도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동체의 삶은 관계 형성에서 시작됩니다. 먼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통해 내가 변화되고, 그 변화된 모습으로 타인과 관계 맺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관계를 통해 그분을 증거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제가 매일 거르지 않고 바치는 기도가 있습니다.

 

“주님! 저희 평신도의 힘으로는 힘듭니다. 늘 저희를 겸손하게 하시고, 또 당신의 사랑으로 뜨겁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 세상 안에서 퍼져 나갈 수 있도록 늘 저희 평신도들을 돌보소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 모습을 보고 ‘참으로 하느님의 백성답군!’ ‘과연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야!’ 하고 말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소서. 아멘!”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7월 14일,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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