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3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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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119: 세례성사 7(1262~1284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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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18 ㅣ No.2771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19. 세례성사 ⑦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62~1284항)


세례로 모든 죄가 사해진다는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세례를 받으면 원죄와 본죄가 다 사해집니다. 맞는 말일까요? 교리서는 분명히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그리고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받는다”(1263)라고 천명합니다. 죄는 “하느님과의 관계 단절”을 초래하는 원인입니다. 그러니 거룩하신 하느님의 자녀가 되려면 죄가 없어야 당연합니다.

 

그러나 정말 세례를 받는 순간 모든 죄가 사해지고 거룩해질까요?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라고 하십니다. 음탕한 욕망 자체가 죄입니다. 세례를 받고도 이런 욕망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례를 받아도 죄의 성향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세례를 받아도 “‘사욕’(邪慾)이라 부르고, 은유적으로는 ‘죄의 불씨’라고 부르는, 죄로 기우는 경향은 그대로 남아”(1264) 끊임없이 유혹받고 죄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세례를 받고 죄가 사해진다는 것은 알겠는데, 완전히 수긍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를 이해하기 위해 세례를 통해 얻게 되는 ‘하느님 자녀의 지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된다면 이전에 행했던 모든 것들은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는 광해군이 음식에 독을 타서 자신을 시해하려는 세력 때문에 자신과 닮은 가짜 왕을 세운다는 설정에서 시작합니다. 광해는 허균을 시켜 자신과 똑같이 닮은 광대 하선을 궁에 데려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당분간 왕의 행세를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던 중 광해는 독약에 중독되어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광대로 살던 하선은 처음엔 왕 노릇하는 것을 매우 어색해합니다. 전혀 왕 같은 행동이 나오지 않습니다. 대변을 보다가 수많은 궁녀가 지켜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세숫물을 다 마셔버리기도 하며, 음식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쓸어 먹습니다. 그러나 광해는 혼수상태에서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하선은 광해보다 더 광해답게 변해갑니다. 신하들이 백성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챙기려 하는 모습에 분개합니다. 한 어린 하녀의 고통을 이해해주고, 궁궐 내에서는 낮은 모습으로 신하들에게 다가갑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고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인정해준다면 자신도 그 자리에 합당하다 믿게 됩니다. 그리고 믿으면 변합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 어쩔 줄 모르다가 부모를 만나면 안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의 믿음을 받아들여 부모의 자녀로서 부모처럼 자라납니다. 마찬가지로 하선이 자신도 왕일 수 있음을 믿기만 하면 그 자리에 맞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만약 광해가 죽고 하선이 어쩔 수 없이 왕이 되어야만 한다면 하선의 이전 삶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오히려 잊는 것이 좋고 누구도 이전에 광대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저 왕으로서 어떠한 모습이어야만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부모를 만난 아기가 언젠가 부모처럼 될 것이기에 지금 부족한 점들은 온전한 한 인간으로 존중받기에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례도 역시 우리가 아직은 부족한 본성을 지녔지만,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1265)가 됨을 의미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된 것”(795)입니다.

 

늑대에게 키워지던 아기가 몇 년 만에 진짜 부모를 만났다고 가정해봅시다. 부모는 자녀를 만난 기쁨에 아직 늑대의 본성이 남아 있더라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습성이 다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죄는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움츠러들 필요가 없음을 믿지 못한 데 있습니다.

 

세례는 하느님 자녀로서의 이 믿음을 줍니다. 그러니 죄가 있더라도 하느님 자녀의 지위로 죄와 상관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는 하느님께서 아버지임을 고백하게 하여 자신이 이전까지 해 온 모든 죄의 습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합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5월 16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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