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8일 (토)
(녹)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가톨릭 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119: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희망이란 무엇일까 (6) 희망을 키우는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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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18 ㅣ No.2772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19.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희망이란 무엇일까 (6) 희망을 키우는 존중(「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진정한 평화 위한 두 수레바퀴, 연대와 존중

 

 

“대담한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행동이 만들어 낼 결과에 대해 늘 생각해요. 해가 되거나 불편함을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은 절대로 하지 않아요. 항상 유쾌해요.(중략)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공손하게 부탁할 줄 알아요. 상냥한 표현으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 주어요. 이야깃거리가 바닥나는 법이 없어서 함께 대화를 나누면 재밌어요. 자기 자신을 존중하며 다른 사람도 똑같이 존중해요.” (소피아 힐 「나는 너를 존중해」 중)

 

 

희망과 존중

 

누구나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 품었던 장래 희망부터, 주말에 취미생활을 즐기는 소소한 즐거움과 각고의 노력으로 꿈을 이루려는 사람의 열정에 이르기까지 희망은 다양합니다. 못 이룬 꿈을 이루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밖에도 그냥 하루하루 건강하고 기쁘게 살길 바라는 평범한 소망과 학교나 직장에 간 가족이 무탈하길 바라는 마음들도 일상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희망들입니다.

 

문제는 그런 희망들이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바람과 이해관계들이 엉키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명문 의대에 가길 바라는 부모님도 계시지만 그 자녀는 예술이나 운동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구나 각고의 노력으로 입시와 입사에 사활을 걸지만 고배를 마시는 이들이 훨씬 많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인권이 보장되기보다 더 많은 이윤추구가 주된 목적이 되곤 합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는 일을 해도 가난에서 헤어나올 수 없고 인간다운 삶과 가정조차 위협당하는 현실을 묘사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희망은 서로 다른 옷을 입고 부딪히며 갈등이 발생합니다. 정확하게 희망이 충돌한다기보다 존중이 사라진 현상이 원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존중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도 존중이라는 단어가 매우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가장 먼저 하느님 말씀은 찬미와 흠숭을 통해 존중돼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십니다. 인격, 생명, 인간 존엄, 이웃, 환경과 자연은 모두 존중받아야 할 대상들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식탁에서 죄인들과 함께 앉으셨고(마태 9,10),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으며(요한 13,14)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인들과 연대를 이루시고(로마 8,32) 용서와 사랑을 보여 주신 것은 존중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모든 이를 존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197항 참조) 이처럼 사회 안에서 사랑이란 타인과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며, 존중이란 주님께서 하셨듯이 내 몸처럼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간추린 사회교리」의 바탕은 바로 존중입니다. 서언을 통해 “교회의 존재는 연대, 존중, 사랑을 위한 표징”이라고 하며(18항 참조) 평화를 위한 두 수레바퀴는 연대와 존중이라고 합니다.(157항) 감사의 삶은 충만을 살게 하고, 불만은 결핍의 삶을 살게 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감사와 존중은 인간의 행동 양식이 돼야 함을 강조합니다.(487항) 생명과 인권이 존중될 때 개인과 사회의 평화와 발전이 가능하나 반대로 그렇지 못할 때 평화는 위협받음을 분명히 언급합니다.(494항) 「간추린 사회교리」는 바로 그 존중을 이야기합니다.

 

 

존중합시다!

 

‘존중받는 느낌’ 듣기만 해도 설레고 따뜻한 말입니다. 반면 가진 것을 빼앗길까봐 늘 불안하고 세상을 투쟁의 장으로만 여겨 왔던 분들은 지난날이 너무나 괴로웠다고 합니다. 존중이 결핍된 탓입니다. 존중이 없는 곳에 만족할 줄 모르는 완고함이 가득하고 희망은 빗나간 사랑과 비뚤어진 욕심이 되곤 합니다. 삶은 상처와 허무만이 남습니다.

 

그러나 다른 층으로 올라가듯 서로 존중함을 통해 우리의 삶은 더 넓은 지평으로 나아갑니다. 여유, 쉼, 성찰과 나눔이 생기고 기쁨과 웃음이 번지며 못 보던 것을 살피고 성숙한 존재가 돼 갑니다. 그리고 희망의 진정한 의미인 하느님을 만납니다. 누구나 사회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존중은 메마른 논밭에 뿌려지는 물과 같습니다. 존중은 희망이라는 씨앗을 올바로 싹 틔우게 합니다. 그러기에 희망은 공감·이해·존중을 바탕으로 형성돼야 합니다.

 

“평화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것을 받지 못할 때,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지 못하고 시민 생활이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을 때 위협을 받는다. 인권 수호와 증진은 평화로운 사회 건설과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완전한 발전에 본질적인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가톨릭신문, 2021년 5월 16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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