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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토닥토닥: 우리가 남인가? 우린 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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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1-10 ㅣ No.1060

[박예진의 토닥토닥] (2) 우리가 남인가? 우린 남인데!

 

 

오늘도 누구에게나 친절한 은정씨는 이제 힘이 들어 ‘친절한’이란 타이틀을 떼어버리고 싶다. 회사에서 착하고 친절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덕에 급한 일, 피치 못할 일, 도움이 필요한 일은 모두 은정씨에게로 몰린다. 집에 오더라도 편히 쉴 수가 없다.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남의 부탁을 거절 못 하고, 집에서는 가족에게도 부탁할 수가 없다. 덕분에 은정씨의 몸과 마음만 죽을 맛이다. 대체 은정씨의 삶이 왜 이렇게 된 걸까?

 

은정씨의 부모님은 농사일로 늘 바쁘셨다. 맏이였던 은정씨는 동생들을 돌보면서 부모님을 도왔다. 갖은 심부름은 물론이고 집안일도 은정씨 차지였다. 일을 끝내고 돌아온 부모님이 짧게나마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말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자신을 신뢰하는 부모님과 의지하는 동생들을 보며 은정씨는 보람을 느꼈다. 자신이 맏이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도 만족했다.

 

전형적인 농촌 사회에서 자란 은정씨에게 있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노동력이 중요했던 그 시대에는 가족의 응집력이 중요했다. 그렇다 보니 가족에게 필요한 역할이 우선시 되었다. 이는 가족을 넘어 가족이 속한 공동체로 확산이 되어 ‘우리가 남이가!’ 하며 바쁜 농사철에는 서로 돕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똘똘 뭉쳐 헤쳐나가는 힘이 되기도 하였다. 그렇다 보니 개개인의 개성, 자율성, 독립성은 보장되지 않았다. 공동체가 원하는 역할을 해내야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은정씨의 문제는 여기서 비롯되었다. 은정씨가 힘든 건 도움을 넘어 ‘우리가 남이가!’ 하는 마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감싸 안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지 못한 탓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상대방의 영역과 나의 영역을 분리하는 것을 ‘과제의 분리’라고 하였다. 서로의 역할과 책임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선을 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도움을 주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과 아닌 일을 잘 구분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면 된다.

 

인간관계의 대부분 문제가 여기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도와주는 것’을 ‘내가 하는 것’과 동일하게 여길 때가 있다. 그래서 도움을 거절하면 마치 나쁜 사람이 된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말 그대로 도움은 내가 힘을 ‘보태는’ 것일 뿐이지 내가 ‘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적인 결정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대신해준다면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닌 나의 일이 된다. 은정씨가 피곤하고 괴로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다 보면 사람과의 관계에도 지치고, 결국 나와도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제를 분리해야 한다. 그러려면 늘 하던 방식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거절하면 미움받을 수 있다는 용기’를 내고 상대방에게 부드럽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 존재가 거절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렵겠지만, 일단 시도해보면 놀라운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내 맘이 편해야 타인도 기꺼이 도울 수 있고, 그래야 그 관계가 오래가고 서로 좋다. 그런 만큼 새해에는 ‘과제의 분리’를 시도해보자.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월 9일, 박예진(율리아, 한국아들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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