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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현대 영성: 성모님은 맑고 깨끗한 창문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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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23 ㅣ No.1814

[현대 영성] 성모님은 맑고 깨끗한 창문과 같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에 대해 다양한 종류의 호칭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원죄 없으신 탄생’ ‘평생 동정’ ‘미혼모’ ‘과부’ ‘성모 승천’ ‘그리스도의 어머니’ ‘여왕’ ‘성모 발현과 기적’ ‘전구자’ ‘바다의 별’ ‘평화의 모후’ ‘천상의 모후’ 등등. 토마스 머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모님에 대한 이미지는 ‘주님의 종’이었다. 왜 그가 ‘주님의 종’으로 성모님을 강조한 것일까? 스스로를 ‘주님의 종’으로 묘사한 성모님을 통해 머튼은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초기 머튼에게 성모님은 모든 은총의 중재자였다. 그래서 성모님께 전구의 기도를 바쳐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후기 머튼에게 성모님은 ‘주님의 종’으로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신 분, 자신을 온전히 비우시어 주님의 뜻에 순종하신 분, 드러나지 않는 감추어진 삶을 사신 분, 아들 예수님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신 분이셨다. 성모님은 머튼에게 있어 관상의 모델이 되었다. 성모님의 단순한 관상적 삶에 대해 머튼은 『논쟁점』(Disputed Questions)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모님은 인간과 모든 그 일상 안에서, 어떤 드라마틱하거나 굉장한 행복감 없이 그녀의 삶의 방식 안에서 단순하고 겸손하게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 가까이에 계신다.”

 

관상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머튼은 성모님의 생애와 예수님을 향한 태도 안에서 하느님의 도구로서의 역할보다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받아들인 성모님의 완벽한 겸손과 순종에 매료되었으며, 드러나지 않게 자신을 감추고 온전히 예수님과 일치의 삶을 사신 성모님과 같이 자신도 자신을 온전히 비우는 관상의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럼 머튼이 말하는 관상의 모델로서의 성모님의 순종과 자기 비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성모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에 ‘왜’라고 하지 않고 ‘예’라고 응답하셨다. 이 성모님의 ‘예’라는 순종의 응답을 통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성모님은 ‘말씀’이신 아드님과 태중에서부터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긴 기다림 속에서 함께하셨다. 관상은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예’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관상은 성모님께서 아드님의 탄생을 위해 기다리셨고, 아드님의 공생활의 시작을 기다리셨고, 아드님의 부활을 기다리셨듯이, ‘말씀’이신 그분께서 우리 안에 재탄생하시기 위한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성경 말씀을 읽고 맛들이며, 고요한 미풍 가운데 들려오는 침묵의 말씀을 들으며 기다릴 때, 어느 순간 우리가 그분의 말씀과 하나 되어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성모님께서 그 누구보다도 철저히 아드님과 일치의 삶을 사셨기에 머튼은 성모님을 유리창에 비유하며 그분의 자기-비움과 깨끗함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그의 수도생활 초기에 벌써 일어났다. 그는 수도원 입회 후 6년째 되던 해 일기에서 “하느님의 어머니, 1947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에 첫 저녁 기도를 바친 다음부터 (당신에 대한 창문의 비유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머튼은 『새 명상의 씨』에서 “이기심이 전혀 없고 아무런 죄도 없는 성모님은 햇빛을 들여보내는 기능 이외에 다른 기능은 전혀 하지 않는 맑은 유리창과 같이 깨끗하십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성모님은 너무도 맑고 투명한 창문이시기에 성모님을 바라보지만 성모님은 사라지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머튼은 성모님을 창문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노래했다.

 

저의 뜻은 창문과 같기에, / 그리고 태초의 탄생이 교만이 아님을 알기에,

저의 삶은 빛에 의해 창문과도 같이 사라짐입니다.

저는 신랑의 태양의 강렬한 빛 안에서 온전히 사라졌습니다.

저의 사랑은 창문과 같기에, / 그리고 태초의 먼지와 같은 탄생이 수치가 아님을 알기에,

저는 저의 죽음의 새벽까지 온 밤을 기다렸습니다.

제가 저의 성령과 혼인하던 날, 그리고 거룩한 변모에 의해 빛 안으로 온전히 사라졌습니다.

 

머튼은 1962년 강론에서 “순수함과 겸손의 완전함에 의해 성모 마리아보다 하느님의 빛을 더 완벽하게 소유한 이는 없었다. 그녀는 빛이 비춰지면 온전히 사라지는 듯 보이는 깨끗한 유리창처럼 진리와 충만이 하나 되었다”라고 성모님과 하느님의 일치를 유리창에 비유하여 묘사하고 있다.

 

깨끗하고 맑은 유리창이신 성모님에 관한 머튼의 가르침을 묵상하며 지금 내 마음은 얼마나 깨끗한가 반성하게 된다. 지금 사람들이 나를 통해 예수님을 볼 수 있는가? 아니면 나는 나만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2022년 5월 22일 부활 제6주일 가톨릭마산 2면, 박재찬 안셀모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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