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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건축칼럼: 성당 공간의 본질은 통하여, 함께,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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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7-11 ㅣ No.865

[건축칼럼] 성당 공간의 본질은 ‘통하여’, ‘함께’, ‘안에서’

 

 

사제는 성반과 성작을 받들어 올리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라며 ‘마침 영광송’을 바칩니다. 이때 세 전치사, ‘통하여(per, through)’, ‘함께(cum, with)’, ‘안에서(in, in)’는 모두 공간적인 단어입니다. ‘통하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지나가는 것이고, ‘함께’란 한자리에 있는 것이며, ‘안에서’는 무언가에 에워싸여 보호받는다는 뜻입니다.

 

성당 건축의 공간적 본질은 이 세 전치사로 요약됩니다. 먼저 성당의 문을 열면 그리스도께서 제대로 나아가시는 긴 통로가 가운데에 놓여 있습니다. 제대에서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그러하셨듯이 그 통로는 그리스도께서 ‘함께’ 걸으시는 길입니다. 넓은 회중석은 두 제자와 ‘함께’ 묵으려고 들어가신 집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항해하는 배이기도 합니다. 성체를 영하는 제대는 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던 식탁입니다. 그뿐인가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면 높은 천장이 하느님이 머무시는 하늘처럼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견고한 벽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넓게 트인 공간을 에워싸며 우리를 ‘안’으로 감싸고 있습니다. 이런 공간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변화하는 내적인 힘을 더 깊이 느낍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성모 승천 대성당은 ‘통하여’, ‘함께’, ‘안에서’라는 세 개의 공간적 본질을 탁월하게 구현했습니다. 문을 열면 행렬 통로를 ‘통하여’ 나아가야 할 제대가 높이 솟은 지붕 아래 저쪽에서 보입니다. 제대 뒤에는 푸른 십자가가 빛나고 있고, 위로는 육중한 테두리 보가 나지막한 삼각형으로 비스듬히 깎여 있습니다. 그 위로는 높이 매달려 빛나는 조각물이 성령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려고 정사각형 평면에 회중석을 부채꼴로 배치했고, 제단은 회중석을 향해 상당히 많이 나와 있습니다. 평면의 모퉁이에서는 비스듬하게 뻗은 네 개의 기둥 위로 육중한 테두리 보를 두고, 그 위에 셸 구조의 거대한 지붕을 얹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붕은 십자로 교차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을 받으며 회중을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해 줍니다.

 

사제가 ‘마침 영광송’을 노래로 바치면 ‘통하여’, ‘함께’, ‘안에서’가 공간 속으로 넓게 울려 퍼집니다. 그러니 ‘마침 영광송’의 동작과 노래를 성모 승천 대성당의 공간과 함께 보고 듣고 받아들인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그 의미는 훨씬 더 높고 깊고 넓고 우렁차게 울릴 것입니다. 성당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를 공간으로 드러내는 건축이기 때문입니다. 성당을 지을 때뿐만 아니라 성당 건축을 보고 읽을 때, 이 세 전치사가 지니는 성당의 공간적 본질을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022년 7월 10일(다해) 연중 제15주일 서울주보 7면,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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