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 (금)
(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는 레지오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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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8-05 ㅣ No.884

[레지오 영성]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는 레지오 되기를

 

 

제가 신학교에 입학했던 1984년, 그 시절 대신학교는 대구 사람들이 앞산이라 부르는 산 아래 동네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이 성 바울로 성당이 되었습니다. 신학교는 바깥세상과는 달리 매우 추웠습니다. 우리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시절에는 다른 학교 신학생들도, 선배들도 모두 신학교는 추워야 정상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앞산 밑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검소한 생활을 익히게 하느라 난방도 아주 조금만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4월이 되어 벚꽃이 만발했음에도 신학교만큼은 냉장고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거의 사월 말까지 오리털 파카를 입고 지냈습니다. 그 시절 외출 날이 되어 시내로 내려가면 저희들은 지나가는 사람 중에서 신학생을 쉽게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두꺼운 외투 차림이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바깥세상 계절이 변하는 것을 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계절이 바뀌든, 꽃이 피고 지든, 그런 것보다 지금 추운 환경이 먼저 피부에 닿고, 신학교 생활에만 몰두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학교 생활에 열중하고 사는 모습이 좋은지 아닌지를 떠나서 하여튼 시내에 가서는 계절에 맞지 않는 차림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고, 실제로 너무 더워서 비지땀을 흘리며 두꺼운 외투를 한 짐 안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누구나 옷장 정리를 합니다. 봄이 오면 다음 겨울에 입을 만한 옷들은 챙겨 넣고, 좀 가벼운 차림의 옷가지들을 손이 잘 닿는 곳으로 배치하지요.

 

계절이 바뀌면 옷을 갖춰 입는 방식과 종류가 바뀌어야 하듯 세상이 바뀌면 살아가는 방식도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살아가는 목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 년 전 레지오 마리애 사도직이 생겨났을 때, 그리고 70년 전 목포 산정동본당에서 첫 주회가 시작되었던 그때나 지금이나 레지오 마리애 사도직의 목적은 같은 것이고, 앞으로도 같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삶의 방식은 그 시절과는 같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내에서나, 사회에서나 어떤 공통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접근하는 삶의 방식이 그 옛날과는 많이 달라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지오 마리애가 사도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교본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본은 레지오 단원들의 공통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 걸어가기 위한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침들은 시대에 맞게 적응되고 변화될 때 살아있는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적을 위한 삶의 방식은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지금 온 세계 교회는 시노드를 진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시노드는 그리스 말로 함께라는 뜻의 ‘쉰’과 ‘걷다’라는 뜻의 ‘호도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함께 걷다’라는 뜻입니다. 온 교회가 하느님 나라의 건설과 인류 구원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함께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시노드는 몇 차례의 회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며, 교회가 그러한 삶을 이뤄가는 정신과 모든 과정을 ‘시노달리타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삶의 방식은 시대를 거치면서 적응과 발전을 거듭하였습니다. 초세기 교회에는 베드로 사도를 중심으로 한 열두 사도의 영적 권위에 의해 이루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교도권, 특히 주교님들과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가르쳐지던 모습으로 이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치면서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함께 모여 경청하고 소통하며, 공동체에 베풀어진 성령의 빛에 의하여 행해야 할 것과 거절해야 할 것을 식별하고, 다 함께 교회의 사명에 협력하고 참여함으로써 교회의 목적을 이루려는 방식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을 이르는 단어가 바로 ‘시노달리타스’라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시노달리타스’ 교회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한다면 우리 레지오 마리애의 삶의 방식에도 ‘시노달리타스’의 정신과 삶의 방식으로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 레지오 마리애의 방식이 오늘날에도 과연 사람들에게 유효하고 효과적인 방식인지 되물어 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 레지오 마리애 사도직에 경청과 소통의 과정, 성령의 말씀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식별의 과정을 통한 참여와 협력의 과정이 존재해야만 ‘시노달리타스’ 교회의 시대에도 레지오 마리애는 여전히 교회 안에서 신자들을 위해, 그리고 선교라는 세상 구원을 위한 사명에 있어서 효과적일 수 있고, 유효한 사도직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8월호, 김용민 안드레아 신부(대구대교구 사목국장, 대구 Se. 담당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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