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 (금)
(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레지오ㅣ성모신심

성모님 발현과 레지오: 프랑스 파리 뤼뒤박(1830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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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8-06 ㅣ No.888

[성모님 발현과 레지오] 프랑스 파리 뤼뒤박(1830년) ①

 

 

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긴 통로가 있으며 왼쪽에 이 수녀원을 창설한 빈첸시오 아 바오로의 성상이 있다. 빈첸시오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이 있는 곳이 경당의 입구이다.

 

 

1) 시대적 배경

 

1789년 프랑스 혁명에 의해 부르봉 왕조가 무너지고 부르주아와 시민계급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프랑스 제1공화정이 들어섰다.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였으나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여 유배되자 주변 국가에 의해 루이 18세가 즉위하여 다시 부르봉 왕조가 들어서게 되었다. 과거 왕정시대 때의 구제도가 부활하여 모든 것이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환원하게 된 것이다.

 

- ‘사랑의 딸회’ 수녀원 경당 제단에 모셔진 성모상

 

 

다시 시작된 왕정 체제는 이미 어느 정도의 권력을 차지한 시민계급과의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1830년 5월 총선거에서 공화정을 지지하는 부르주아, 시민계급이 하원을 장악하자 샤를 10세 국왕은 의회를 해산시키고 출판의 자유까지 제한하였다. 이에 부르주아, 시민세력은 왕정에 반대하면서 사회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1830년 7월 27일에 7월 혁명이 일어났고 국왕이 망명하는 등 프랑스 사회의 혼란이 계속되었다. 바로 이때 성모님이 변화와 혁명의 중심부인 프랑스의 파리시에서 발현하셨다.

 

 

2) 성모님의 발현

 

1830년 7월 18일 밤 12시경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이 창설한 ‘사랑의 딸회’ 수녀원의 경당에서 성모님이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에게 발현하셨다. 가타리나 수녀는 잠을 자던 중 세 번이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는데 침대 옆에 네댓 살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하얀 옷을 입은 어린아이(수호천사)는 “경당으로 가십시다. 성모님이 당신을 기다리십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경당으로 향하였다. 경당 안은 마치 자정미사를 진행할 때와 같이 모든 촛불이 켜져 있었고, 그녀는 제대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자정이 되자 성모님이 하얀 겉옷 위에 하얀 베일과 하늘색 망토를 입고 나타나시어 성소의 왼쪽에 있는 신부님의 의자에 앉으셨다. 가타리나는 일어나 성모님 곁으로 달려가 다시 무릎을 꿇고 손을 성모님 무릎 위에 얹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너에게 특별한 사명을 맡기길 원하신다. 너는 큰 슬픔에 빠질 것이나 은총을 입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마라. 프랑스에 혼란과 위험이 닥쳐올 것이다. 십자가와 신앙이 모독을 당하고 파리의 대주교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사랑의 딸회’ 2층 성가대석에서 본 경당 내부의 전경. 제단 상단에는 첫 번째 발현 때의 상황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11월 27일 오후 5시 30분경 가타리나가 경당 안에서 묵상을 하고 있을 때 성모님이 두 번째로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두 손으로 십자가가 붙어 있는 황금색 작은 지구본을 두 손으로 떠받치시고 하늘을 향하고 있었는데 이는 지구를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잠시 후 지구본은 사라지고 아래로 내린 성모님의 손가락에 있는 세 개의 반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성모님이 밟고 있는 커다란 지구본을 비추었다. 성모님은 “이 빛은 은총을 구하는 이들에게 베푸실 은총을 상징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모님의 발은 녹색 바탕에 노란 점이 있는 뱀의 목과 꼬리를 밟고 있었다. 이는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은 너(뱀)의 머리에 상처를 입힌다는 구절과 연관된 것이다. 이어 성모님의 머리 주위에 타원형의 판 같은 것이 나타나며 그 판에는 황금색 글씨로 ‘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기도문이 새겨져 있었고 성모님은 이 기도문을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 기적의 메달, 11월 27일 성모님이 보여준 모든 것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판이 돌면서 그녀는 뒷면을 볼 수 있었다. 판의 중앙에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십자가와 성모님을 상징하는 알파벳 M이 걸쳐진 문양이 있었으며 문양 바로 아래에는 예수님 성심을 상징하는 가시관을 쓴 심장과 성모님 성심을 상징하는 칼에 찔린 심장이 나란히 있었다. 성모님의 얼굴 주위에는 열두 개의 별이 빛을 내며 돌고 있었다. 성모님은 그녀에게 “지금 본 것을 그대로 재현하여 메달로 만들도록 하여라. 이 메달을 지니는 사람들은 큰 은총을 받을 것이다. 그 은총은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풍성하게 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사라지셨다. 12월 30일 성모님께서는 경당에서 묵상을 하는 가타리나에게 마지막으로 나타나시어 11월 27일에 당부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3) 기적의 메달

 

가타리나 수녀는 고해 신부인 알라델 신부에게 성모님의 발현을 알리면서 메달을 만들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신부는 1년 넘게 그녀를 관찰한 이후 그녀에 대한 믿음이 생기자 파리 대교구장에게 성모님의 발현과 메시지를 알렸다. 이에 파리 대교구에서 세밀한 조사를 한 결과 가톨릭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메달을 주조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1832년 6월 30일에 성모님이 지시하신 메달이 최초로 2,000개 제작되었다. 메달의 앞면은 성모님과 무염시태 기도문을, 뒷면에는 십자가와 M자 문양, 예수님 성심과 성모님 성심 그리고 12개의 별을 새겨 놓았다.

 

- 두 번째 발현 때 지구본을 들고 계신 성모상. 바로 아래에는 가타리나의 유해가 있다.(좌) ‘사랑의 딸회’ 수녀원의 정문. 수녀원이 작은 골목에 위치하여 성지 전체를 볼 수 없다.(우)

 

 

1832년 2월 파리에서는 콜레라가 창궐하여 2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이에 7월부터 ‘사랑의 딸회’에서 메달을 콜레라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많은 환자들이 전염병에서 회복되었다. 1834년 50만 개, 1835년 100만 개, 1839년 1000만 개, 가타리나 수녀가 선종한 1876년까지 무려 10억 개의 메달이 전 세계에 배포되었다. 특히 1842년 로마에서 유대인 알퐁스가 이 메달을 목을 걸고 성모님을 목격한 이후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기적이 일어나자 메달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초기 메달의 이름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메달, 즉 무염시태 메달이었으나 수개월 동안 메달로 인하여 수많은 치유와 가톨릭으로의 개종 등이 보고되면서 기적의 메달로 불리게 되었다.

 

 

4) 성모님의 발현 이후

 

1836년 7월 13일 파리시 대주교는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보고 뤼뒤박 성모님의 발현과 기적의 메달을 모두 공식적으로 공인하였다. 한편 카타리나 수녀는 성모님을 시현한 다음 해 1월에 파리시 외곽에 있는 호스피스로 보내져 46년간 연약한 노인과 병자, 가난한 이들을 돌보다가 1876년 70세의 나이로 선종하였고, 호스피스에 있는 성당의 지하묘지에 묻혔다. 1933년 시복 조사를 위해 그녀의 유해가 밖으로 꺼내졌는데, 전혀 부패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 후 그녀의 유해는 파리에 있는 ‘사랑의 딸회’ 경당에 있는 유리관으로 이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녀는 1933년 5월 28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47년 7월 27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경당의 제단 옆 유리관에 안치된 가타리나의 유해

 

 

19세기 초에서 중반까지는 유럽의 왕정체제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왕정과 공화정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이 있었고, 다윈의 진화론 등 과학의 발전으로 가톨릭교회의 혼란과 분열이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시대였다. 특히 이런 권력 이동을 주도하였던 프랑스에서의 사회적 혼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때 성모님이 파리시에서 발현하시어 성모님을 중심으로 교회가 외부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그나마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있었다. 성모님은 늘 그리하셨듯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가톨릭교회를 수호하는 역할을 하셨던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8월호, 2023년 8월호, 최하경 대건안드레아(서울 도곡동성당 인자하신 모후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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