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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문제풀이로서의 과학, 그 실(實)과 허(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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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칼럼] 문제풀이로서의 과학, 그 실(實)과 허(虛)
지구촌이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올여름 세계 곳곳에서 기상 관측 이래 최고 온도가 갱신되었습니다. 폭우와 대규모 수해의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으며, 반대로 어떤 곳은 심한 가뭄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일찍부터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환경 파괴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고,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이후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해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보다 좀 더 일찍, 더 구체적인 이론 모델과 수치를 가지고, 더 급박하면서도 애타게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낸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과학자들입니다.
이미 지난 세기부터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와 전(全)지구적인 기후변화, 그리고 그에 따르는 파괴적이고 재앙적인 결과들을 예측하고 경고해 왔습니다. 21세기 들어와 그 어조는 경고에서 애원으로 바뀌었고, 몇 년 전부터는 그들 중 상당수가 체념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인류가, 혹은 인류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어가는 이들, 곧 정치인과 기업인의 상당수가 과학자들의 경고와 애원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생각했고, 결국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재앙’이 돌이킬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 ‘재앙’의 전조가 눈앞에 보이는 지금에서야 많은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며 과학자들의 경고를 새삼 주목하고 있지만,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각자의 영역에 주어진 퍼즐 풀이 혹은 문제 풀이의 도사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과학자로서’ 하는 말을 우리는 신뢰하고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인류가 기후변화 앞에 속수무책으로 서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몇 십 년 전부터 이를 경고하며 온실가스의 대규모 감축을 거듭 주장했던 과학자들의 호소를 귀여겨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정확히 반대로, 어떤 과학자가 자신의 영역을 넘어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면, 그 말은 매우 조심스럽게 분별해야 합니다. 예컨대 과학자가 종교나 신앙,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가 아무리 ‘과학의 이름으로’ 말하더라도 쉽게 신뢰해선 안 됩니다. 거듭 말씀드린 것처럼 과학은 신앙의 영역을 다루지 않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또한 인간 삶의 아주 많은 영역들, 예컨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예술, 윤리 등도 자연과학의 문제 풀이 대상이 아닙니다.
한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선풍적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일부 과학주의적 무신론자들은 이 책을 자신들의 바이블로 여깁니다. 저도 이 책과 더불어 도킨스의 다른 저작들을 읽어 보았는데, 기대(?)에 비해 굉장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제 신앙과 반대되는 견해를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교리에 대한 이해가 너무 조악하고 오류로 범벅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철학과 다른 인문학에 대한 지식도 한숨이 나올 정도로 빈약했습니다.
재밌게도 ‘과학의 이름으로’ 신앙을 공격하는 도킨스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이들은 바로 과학자 자신들입니다. 그들이 신앙인이거나 종교를 믿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도킨스의 비판자 중 일부는 개인적으로 무종교인 혹은 무신론자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도킨스가 과학의 이름으로 신앙과 종교를 부정하는 것은 오류이고 모순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과학의 문제 풀이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23년 8월 6일(가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서울주보 6면, 조동원 안토니오 신부(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교수)] 0 78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