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월)
(녹)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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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유익한 심리학: 열 처녀와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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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0-31 ㅣ No.1150

[유익한 심리학] 열 처녀와 ‘지금–여기’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마태 25,1-13)의 이야기는 ‘하늘나라’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하늘나라를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데, 여기에서 하늘나라는 ‘신랑’ 자체다. ‘신랑’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비(非) 구원’ 상황으로 해석된다. 이야기는 지혜로운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 하늘나라를 차지하고, 어리석은 처녀들은 문밖에서 신랑과 함께 할 수 없는, 하늘나라 밖으로 떨어진다. 주인은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하는 어리석은 처녀들에게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마태 25,12)하고 매정하게 거절한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여기에서도 하느님 나라는 악한 것들이 물러나고 회복, 또는 구원되고 있는 것을 하느님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공간의 개념이라기보다 ‘지금-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상(實狀)’이라고 보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지금-여기’는 어떤 사건일 수 있으며 한편 ‘찰라’일 수도 있다. 참된 실상은 그냥 파악되지 않는다. 알아차리려고 애쓰지 않으면, 마음을 열고 두 눈을 부릅뜨고 깨어있지 않으면 부지불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이 세상사다.

 

“그러니 깨어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 “그날과 그 시간”은 신학적으로 종말을 의미하지만, 종말은 끝의 의미보다 완성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써, 우리의 인생에는 그때가 있음을 말해준다. 인간의 발달 과정에는 부모의 사랑이 필요한 때가 있고, 부모의 존중이 필요한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면 성장은 멈추고 왜곡과 혼란이 마음에 자리 잡게되어 성인이 되어도 성숙하지 못하게 된다. 누군가의 진실한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사람과 만날 수 없게 되고, 자신 안에 참된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면 평생 가면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게 된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라고 말하며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전도 1,3 공동번역성서)라고 외친다. ‘지금-여기’에서 때를 놓치고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아무리 애쓴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니 하늘나라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그 어떤 곳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우선 하늘나라는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한다.

 

필립보가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요한 14,8)라고 청하자 예수님께서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대답하신다. 그러면 지금 예수님을 볼 수 없는 우리는 아버지를 뵐 수 없는 걸까? 이러한 생각은 유치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시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아차리는 일, 매 순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진리, 참된 것을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때 진정 하느님 아버지를 알게 될 것이며 그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느님은 계시의 하느님이시니 당신 자신을 우리가 알아차리고 만날 수 있도록 열어놓으신 분이시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여기’에서 때를 놓치고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과 함께하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늘 말씀을 건네시는 하느님의 때를 놓치며 살아가는가? 문밖에서 아무리 간청한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마태 25,12)라는 냉혹한 말씀만 되돌아올 뿐이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13,12) 자기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은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인 셈이다.

 

[2023년 10월 29일(가해) 연중 제30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김정민 라자로 신부(아중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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