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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신약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43: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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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1-15 ㅣ No.1153

[홍성남 신부의 '신약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43) 사제들


어두운 세상에서 길로 나서는 건 두려운 일입니다

 

 

- 현실 문제에 관여하는 사제들을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사제는 빨갱이라서 거리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이기에 그 뜻을 구현하려 나설 뿐이다.

 

 

■ 신부님들은 미사를 집전하는 성직자 아닌가요? 왜 신부님들이 세상 문제에 관여하는 것일까요?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는 복음 말씀을 보면 신학교에서 부르던 노래가 생각납니다. “진세를 버렸어라 이몸마저 버렸어라….”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신 제자들인 사제들. 그런데 가톨릭 사제들은 미운 털이 박힌 종교인 그룹에 속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제들은 빨갱이들로 불립니다. 그러면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환영을 받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공산국가에서는 미워할 뿐만 아니라 사제들의 힘이 커지지 않도록 감시하고 또 감시합니다. 심지어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국가들은 가톨릭교회의 세가 커지지 못하게 심한 견제를 합니다. 빨갱이 소리를 듣는 사제들이 빨갱이 국가에서 더 심한 홀대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권력자들은 가톨릭 사제들을 싫어하고 심지어 빨갱이라고 욕을 하는 것인가? 공산당은 왜 사제들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인가?

 

다른 종교인들은 자기 종교 안에만 머물면서 추상적인 논의에 몰두하는데 사제들은 현실 문제에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기 이익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사제단이 미워서 빨갱이라 하고, 공산국가에서는 자기들의 독재체제에 비판적인 사제단을 자본주의 국가가 보낸 간첩이라고 하면서 경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현실문제에 관여하는 신부들 심지어 주교들까지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입장을 바꾸거나 권력자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제들이 외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가진 것이 없어서입니다. 타종교처럼 가족이 있다거나 자기 소유의 재산이 있다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전전긍긍하거나 인사 문제에 연연하고 돈 많은 사람 앞에서 굽신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들은 자기 재산, 자기 가족이 없는 혈혈단신이라 누구 눈치 볼 것도 없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파견을 나가는 제자들에게 당부하십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10) 가진 것이 없어야 당당할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제들은 돈과 명예에 강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사제들은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 미사에 와도 특별석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권력자가 와도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나가서 인사하지 않습니다. 또한 신부생활에 족할 뿐 더 이상의 명예를 바라질 않습니다. 이렇게 어떤 것으로도 흔들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권력자들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사제들은 개개인을 보면 보잘것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어두움과 대적하는 작은 촛불과 같기에 주님의 제자라 불리는 것입니다.

 

 

■ 마태 10, 5-1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중략)”

 

[가톨릭신문, 2023년 11월 12일,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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