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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학 칼럼: 사람의 얼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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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학 칼럼] 사람의 얼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그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거울이지요. 물론 겉모습만 보면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얼굴에 사람이 드러나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온 나라가 멸망하고 오랜 바빌론 유배 생활을 겪은 뒤 고향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의 사제들은 이 엄청난 고난의 역사를 통해 자신들이 누구인지 성찰하게 됩니다. 이들을 흔히 ‘돌아온 인텔리겐치아’라고 부릅니다. 민족이 겪은 고난을 반성하고, 나아가야 할 미래를 생각했던 사제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이런 반성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한 이해가 창조 서사에 담겨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하느님에서 찾았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Imago Dei)을 따라 창조된 존재라는 고백은 이런 이해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얼굴을 자신의 본성으로 삼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본성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창조 서사를 살펴보면서 언뜻 하느님의 얼굴을 그려볼 수는 있습니다. 그 본성은 당신의 ‘말씀’(로고스)으로 세상을 창조한 데서 비롯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그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존재가 하느님이십니다. 이 과제를 하느님은 인간에게 맡기신 거지요. 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창조 서사에 담긴 하느님 이야기는 인간이 바라는 본성, 인간의 인간다움을 하느님의 얼굴을 통해 표현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안고 있는 인간은 하느님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것에 하느님의 명을 따라 그에게 합당한 이름을 붙입니다. 이로써 인간은 이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가 되고, 그에 따라 존재하는 것들이 그 모습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론적 존재가 창조 서사가 이해하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얼굴은 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이 거울을 갈고 닦아 나를 그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의무입니다. 나의 얼굴은 하느님을 향해 있으며, 이 얼굴은 하느님을 향한 마음, 그 지향성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의 거울입니다. 그래서 나는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 책임은 또한 다른 사람의 얼굴에 대한 책임이기도 합니다. 나의 얼굴이 하느님을 향해 있듯이, 다른 사람을 향함으로써 그안에 있는 하느님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보고 싶으면 사람을 보십시오. 사람을 존중하고 그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 안의 하느님을 맞이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 어떤 얼굴도 멸시받거나 고통받도록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그렇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어떤 경우라도 인간은 신이 아니며, 우리 안에 감추어진 어두움을 부정할 수도 없는 존재가 인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 서사는 곧 인간의 호기심 때문에 생겨난 모순적 상황을 금지된 열매를 욕망하는 모습에서 찾았습니다. 창조 서사에 담긴 인간 이야기는 양면적입니다.
[2024년 2월 4일(나해) 연중 제5주일 서울주보 7면, 신승환 스테파노(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 0 113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