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 (금)
(홍)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성극ㅣ영화ㅣ예술

도서칼럼: 도서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나를 이끄시는 분 -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3-22 ㅣ No.113

[도서칼럼] 도서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나를 이끄시는 분’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모든 성인에게도 과거가 있고, 모든 죄인에게도 미래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옛 소련에서 스파이로 기소되어 23년간 포로로 살았고 지금은 ‘하느님이 종’으로 시복 후보자인 미국 예수회 신부 월터 취제크(Walter Ciszek, S.J. 1904-1984)의 삶에서 이 말의 의미를 실감하게 됩니다.

 

이분은 ‘청년기 러시아 선교’라는 청운의 꿈을 품고 로마 유학을 갔고, 폴란드에서 본당 사목을 하다가 전쟁 중 소련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곧 체포되어 모스크바의 악명 높은 루비얀카 감옥에서 5년을 보냈고,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져 15년간 강제 노동을 했고, 3년간 감시받는 노동자로 살았습니다. 이후, 1963년 포로 교환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와 두 권의 회고록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와 《나를 이끄시는 분》을 쓰면서 그 삶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시기에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건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어 낡은 위스키 잔을 성작 삼아 비밀리에 미사를 봉헌하는 이야기는 영웅적입니다.

 

그러나 취제크 신부님 이야기는 동시에 죄인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고문에도 버티던 정신력이 감옥에서 무너지면서 그는 자신이 바티칸 스파이라고 인정하는 서류에 서명했습니다. 이에 대한 죄책감도 견디기 힘든데, 취조관은 올가미에 걸린 이분을 진짜 스파이로 만들려고 공작을 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이를 끊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우유부단한 자신에게 그는 실망했습니다. 급기야 자포자기와 절망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로 자살이 생각의 지평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이분은 겟세마니의 예수님을 통해 자기에게 비치는 한 줄기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체험이 소련에서의 생활에, 아니 일생에 전환점을 맞는 계기가 됩니다. 교회 전통에서 말하는 ‘두 번째 회심’입니다. 이 절망과 회심의 체험이 있었기에 이후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삶이든 미국에서의 삶이든 이분은 ‘그분과 함께’ 살 수 있게 됩니다.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가 외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라면 《나를 이끄시는 분》은 내면의 성찰을 담은 책입니다. 저는 《나를 이끄시는 분》을 여러 번 읽었는데, 인생을 경험하면서 음미하는 지점도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영웅적인 모습에 감탄했다면, 점차 다른 면들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극한상황에서도 내적으로는 의미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어떻게 판에 박힌 일과와 강제 노동을 강요하는 수용소에서 하느님 현존을 감지하며 살 수 있었을까? 또 어떻게 이런 성찰을 길어낼 수 있었을까?’ 등등.

 

이분처럼 극적이지는 않아도, 우리 역시 성인과 죄인 사이를 오가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타인이나 자신에 대한 실망, 때로는 절망과 깊이 씨름해 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현재의 삶을 의미 없는 반복의 연속으로 ‘수용소’에서 사는 것처럼 느끼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순 시기 막바지, 취제크 신부님의 책을 읽으며 이분을 이끈 분을 만나는 것은 어떨까요?

 

[2024년 3월 17일(나해) 사순 제5주일 서울주보 5면, 김우선 데니스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25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