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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아들 -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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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아들’ - 2002년 작,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루마니아 태생의 유다계 작가 겸 인권 운동가인 엘리 위젤(Elie Wiesel)이 쓴 자전적 소설 «나이트»는 작가가 경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특별히 어린 소년이 교수형을 당하는 모습을 수용소 수감자들이 지켜보게 만드는 대목은 이 소설의 핵심을 꿰뚫습니다. 교수형을 당하는 어린 소년의 몸이 가벼워 30분이 넘도록 몸부림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수감자들은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물으며 절규합니다. 이에 주인공은 자신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저 물음에 대답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바로 ‘하느님은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형제 감독의 영화 <아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반복되듯 이어지고 있을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절규 섞인 질문에 대한 답이 되어줄 작품입니다. 영화는 목수인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분)가 소년원 출신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재활 센터에서 목공 기술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사회에 온전히 속하고자 애쓰는 청소년들에게 책임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 어느 날 소년 프란시스(모간 마린느 분)가 찾아옵니다. 프란시스의 등장에 올리비에는 당황합니다. 프란시스가 바로 5년 전에 자신의 아들을 살해한 범인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살해 당한 아들의 복수를 다짐하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아들을 살해한 범인을 향한 용서의 마음을 감상적 차원에서 섣불리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프란시스를 향한 올리비에의 시선을 덤덤하게 따라갈 따름입니다. 그 시선은 두려움으로 시작합니다. 아들을 죽인 살해범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은 두려움입니다. 이어서 호기심도 드러납니다. 저 아이가 왜 나의 아들을 살해했는지, 지금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등에 관한 궁금증을 품은 호기심입니다. 더불어 원망의 마음, 한탄의 마음, 절규의 마음도 보여줍니다. 이러한 갖가지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힌 가운데 올리비에는 프란시스를 향한 시선을 끝까지 거두지 않습니다. 목공일을 배워서 프란시스가 자립하기를 바라는 마음, 진심을 다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럼에도 내려놓을 수 없는 원망의 마음과 아들을 향한 그리운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프란시스를 향한 올리비에의 시선은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향한 아버지 하느님의 시선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하느님은 십자가상의 예수님이 감내한 고통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끌어안은 인류의 죄 안에도 계십니다. 우리 각자의 연약함, 세상 안에 굴레처럼 자리 잡은 부조리, 인류 역사 속 참혹한 범죄의 결과에도 함께 하십니다. 영화 속 프란시스를 향한 올리비에의 복잡한 시선에도 하느님은 함께 하십니다. 본격적으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지내며, 세상의 모든 고통과 번민 안에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아야 하겠습니다.
[2024년 3월 24일(나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서울주보 5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0 72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