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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7-8: 종교와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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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4-02 ㅣ No.1981

[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7) 종교와 폭력 (상)


종교 갈등 배경엔 종교 자체보다 세속적 이해관계 얽혀 있어

 

 

- 2015년 11월 16일 프랑스 파리의 한 음악당 인근에서 시민들이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11월 13일 IS가 벌인 조직적인 테러로 129명이 죽었다. 사진 CNS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국제무역센터 테러 사건 이후 세계의 모든 나라는 끊임없이 비인간적이고 비이성적인 테러리즘의 위협에 시달려 왔다. 런던과 파리, 니스 등 평화롭던 도시에 예기치 못한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시리아와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스리랑카 등지에서 대량 학살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테러와 폭력 사건의 원인과 배경에 항상 고질적인 종교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고 평한다. 종교는 원래 폭력의 고리를 끊고 사람을 갈등과 폭력으로부터 해방하고 평화로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데, 종교로 말미암아 폭력이 증가하고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너무 큰 모순이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 안에 종교와 폭력이 이미 오래전부터 동반자로 작동해 온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유럽에서는 중세 이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군주들 사이에 분열과 전쟁이 100년 넘게 이어졌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십자군 전쟁과 이슬람의 세력 팽창을 위한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도 우리는 지구 곳곳에서 종교의 차이로 인한 분쟁과 갈등이 배태되는 모습을 본다.

 

종교와 폭력의 연결 고리는 현실적으로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종교와 폭력이 연결되어 있다는 이 오랜 통념이 진실로 근거 있는 명제인지 우리는 좀 더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여정에서 분명히 종교의 이름을 걸고 응징과 복수와 폭력을 불사하는 이들이 여기저기 출현해 왔다.

 

그러나 종교에 온전히 투신한 많은 이들은 남을 괴롭히는 폭력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다. 오늘도 세계 구석구석에는 종교의 가르침을 진실로 실현하려는 수십만 명의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가난하고 굶주리는 이들에게 음식을 나누고, 병자들을 치료하고, 옥에 갇힌 재소자들을 방문하며 위안과 평화를 선물하고 있다.

 

나는 병원에서 하루에도 혼자 100명 가까운 환자를 진료하며 녹초가 되는 일정을 소화하다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휴일에 이주노동자와 노숙자 진료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봉헌하는 의료인(의사, 약사, 간호사 등)들을 여럿 안다. 그런데 안 보이는 데에서 이런 지고한 선행과 희생을 실천하는 이들은 스스로 크게 떠벌이지도 않고 나팔을 불지도 않는다.

 

언론은 매일 지속되는 이런 이들의 조용하고 드러나지 않는 활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몇 안 되는 과격분자들이 어쩌다 벌이는 잔인한 폭력과 극단적인 사건은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해설한다. 그리고 그 폭력의 주인공들이 특정 종교에 몸담은 일이 있으면 마치 그 종교 전체가 그에 가담한 것으로 낙인을 찍어 일반화하고 확대 해석한다.

 

현실 속에서 종교는 순수한 가르침이나 교리로만 존재하지 않고 조직과 제도와 사람을 통하여 세상 안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유지된다. 그래서 종교는 초연하게 정신적인 영역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세상에 영향을 주고 세상에 개입하고 세상과 어울린다. 종교는 항상 세상과 함께 작동해 왔다. 고대의 제국들은 종교를 바탕으로 실존했다. 동서양 제왕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권위와 정체성이 신들에게서 나왔음을 전제로 국가와 국민을 다스렸다.

 

이집트의 제왕은 태양신의 아들로 처신했고, 중국의 제왕도 스스로 하늘의 아들로 칭하고 제사장 신분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고대 국가들은 제정일치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실행했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임으로써 황제의 정치적 권위로 교회의 영역까지 개입하고 다스리려 하였다. 세속의 정치 지도자들은 종교를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최대한 활용했다.

 

사실 종교적 갈등으로 소개되고 해석된 사건의 배경에는 종교 자체의 차이보다는 갈등 당사자들의 세속적인 이해관계가 동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등이 일어나는 배경에는 종교적 가르침의 차이가 아니라 땅을 더 확보하려는 욕구, 땅에 매장된 석유, 금, 다이아몬드 같은 고가의 지하자원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국가 간에 전개되는 전쟁도 모두 물질적인 이해관계로 촉발된다. 제한된 공간에 묻혀있는 지하자원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소수가 독점하는 불의에 대해 다수가 분노할 때 갈등이 일어나고 분쟁이 터진다.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북아일랜드의 분쟁은 주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자들 사이의 충돌로 소개됐다. 그러나 이는 영국이 아일랜드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 야기된 분쟁이지,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다. 북아일랜드의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원래 자신들의 교회를 보유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들이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떨어져 나가 영국에 귀속하려 했던 것은 자신들의 종교가 프로테스탄트였기 때문이 아니다.

 

북아일랜드 종교 분쟁이 발생한 원인은 18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인들이 아일랜드에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북아일랜드에 이주 온 장로교인들은 가톨릭신자들을 밀어내고, 그들의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기득권을 차지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후 기존의 아일랜드 인들이 차별과 억압을 받았으며, 이들의 갈등은 무장 투쟁으로 발전했다. [가톨릭신문, 2024년 3월 31일,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종교와 폭력 (하)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에 하느님 이름 도용하지 말라"

 

 

- 2022년 미얀마 군사정권에 의해 파괴된 카야주 성 마태오성당. 사진 CNS

 

 

2019년 4월 21일 주님 부활 대축일, 스리랑카에서는 여덟 군데에서 253명이 죽고 500여 명이 다치는 엄청난 폭발 테러가 발생했다. 호텔 네 곳과 주택가 및 세 곳의 가톨릭교회가 피해를 보았다. 이는 불교도와 힌두교도 간에 벌어진 종교 갈등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비교적 특혜를 누렸던 소수파 타밀족과 다수파 싱갈족 사이의 충돌이었다.

 

많은 이들이 오늘의 자살폭탄 테러가 이슬람 과격파의 발명품이라고 알고 있으나, 사실은 1980년대부터 이미 스리랑카 타밀 타이거 게릴라 그룹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과격 테러리즘은 불교도와 힌두교도의 종교 갈등 때문이 아니라 타밀족과 싱할리족 사이의 문화적 이질감과 사회적 차별로 인해 빚어진 참상이었다.

 

미얀마의 로힝야 부족이 겪고 있는 참극은 현재진행형이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대대적으로 학살하고 추방하는 인종청소를 저질러왔다. 이 사태는 일반적으로 불교도가 대다수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인 로힝야 부족에게 가한 차별과 탄압으로 인식되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군부가 합법적인 선거로 수립된 정부와 충돌하며 정부를 전복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대규모 폭력 사태다. 

 

로힝야족은 이미 1780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이주하여 국경지대에 살아왔다. 군대가 자행한 폭력의 표적이 된 것은 이미 미얀마 여러 도시에 살고 버마어를 사용하는 무슬림들이 아니다. 군부의 목표는 전략적으로 장악이 필요한 지역에 사는 이방인들을 제거하는 데 있다. 그들의 종교가 다르기는 하지만 종교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 2019년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흐메드 알타예브 대이맘과 ‘종교 극단주의에 반대하는 인류 형제애 공동 선언’에 서명한 뒤 문서를 교환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현재 세계를 가장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사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이다. 이 사태의 함의는 대단히 복합적이다. 19세기 말 유럽 내에 반유다주의가 노골화되면서 유다인들 사이에는 유다 민족의 본향이었던 팔레스티나로 이주하려는 운동(시오니즘)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팔레스티나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하고 영국이 중동 지역을 점령하자 유다인들의 팔레스티나 이민이 가속화하고 유다인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시오니즘 대두에 크게 반발하였다.

 

192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유다인의 증가와 아랍인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는 아랍인들의 폭동,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유다인들의 시오니즘은 점점 국가주의적 성향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유다인 국가의 설립을 바라는 이들, 시오니스트들 대다수는 무신론자이거나 종교에 무관심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유다인에게 테러를 자행하는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들도 종교적 색채와는 무관한 마르크스주의 조직에 속한 이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그리스도교 출신도 이슬람 출신도 있었고 종교가 그들 투쟁의 우선적인 동기가 아니었다.

 

유다인과 팔레스타인 사이 갈등의 핵심은 땅이었다. 종교는 땅(상징적으로는 양측에서 성지로 자리매김하는 예루살렘)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동원된 구실이었다. 그러나 대중언론은 이를 유다인과 무슬림 사이의 분쟁이라고 단순히 포장하여 소개하였다. 사안의 중심은 한 지역의 땅덩어리를 놓고 두 개의 다른 정치공동체가 벌이고 있는 분쟁이다.

 

20세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류 역사에서 유례없이 가장 많은 희생자를 쏟아낸 주체는 합리적 이성을 앞세우는 이데올로기였다. 구체적으로는 나치즘과 공산주의였다. 둘 다 종교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모든 종교를 탄압하고 배척한 무신론적 이념체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들 사이의 갈등과 분쟁의 뿌리에 종교가 있다는 막연하고 왜곡된 통념을 떨쳐버려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9년 2월 4일 아랍에미리트 방문에서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예브와 공동으로 인류를 향해 이렇게 호소하였다.

 

“우리는 종교가 결코 전쟁, 증오, 적개심, 극단주의를 선동해서는 안 되고, 폭력이나 유혈 사태를 조장해서도 안 된다고 단호히 선언한다. 이러한 비극적 현실들은 종교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종교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데에 따른 결과들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강렬한 종교심을 악용하여 사람들을 종교 진리와 무관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종용해 온 종교 단체들의 곡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정치적 경제적 목표들이나 세속적이고 근시안적인 목표들을 달성하려는 목적에서 자행된다. 따라서 우리는 증오, 폭력, 극단주의, 맹목적 광신주의를 선동하는 데에 종교를 이용하는 행태를 척결하고, 또한 살인, 추방, 테러, 억압 행위들을 정당화하는 데에 하느님의 이름을 도용하지 않도록 모든 이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촉구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서로 싸우거나 죽이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이 그들의 삶과 그들이 놓인 상황 안에서 핍박과 멸시를 받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것도 아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데에 당신 이름이 악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가톨릭신문, 2024년 4월 7일,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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