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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도서 안나 카레니나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안나와 레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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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도서 ‘안나 카레니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안나와 레빈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입니다. 이 소설은 인생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행복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역할이 일차적으로 사상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지 아니하고,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 감정과 갈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여, 독자가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 소설은 탁월합니다.
이 소설을 읽는, 단순하지만 부정확하지 않은 한 가지 방법은 안나와 레빈을 대비해 보는 것입니다. 안나는 도시의 귀족 사회라는 공간에서 불륜과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되고, 이상주의적 지주인 레빈은 농촌에서 가족과 행복, 신앙을 향한 여정을 가는 것입니다. 레빈이라는 인물 안에 톨스토이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레빈을 미화하지 않으며 안나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도 않습니다.
나이 들어 이 소설을 읽으며 톨스토이의 인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과 묘사, 문장력에 감탄을 거듭 했습니다. 특히 한 부분에서는 멈추어 한참 음미를 했습니다. 그것은 레빈과 키티의 결혼 장면입니다. 신앙 없이 살았던 레빈은 정교회 미사 안에서 결혼을 합니다. 미사 중 사제의 기도를 듣던 레빈은 깜짝 놀랍니다. 기도 속에 반복되는 ‘도와주소서.’라는 말이 자신의 마음을 두드렸기 때문입니다. “도와주소서. 이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알아챈 것일까.” 결혼을 앞두고 레빈은 자신이 합당하지 않다고 느꼈고, 어떤 가책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렇다. 지금의 나에게는 도움이야말로 가장 절실한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약함과 이중성을 넘어서 사랑이 한 뼘 자라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톨스토이는 케빈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후 저는 혼배미사 강론에서 이 장면을 자주 인용합니다.
첫 문장만큼 주목받지 못하지만 소설의 끝맺음도 좋아합니다. 소설은 안나의 자살로 끝맺지 않습니다. 대신 농촌에서 레빈의 가정 이야기가 한참 이어지다가 레빈의 독백으로 마칩니다. 그는 여러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약함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마부에게 화를 내고, 재치 없이 말하고, 자신의 공포 때문에 아내를 꾸짖고 그리곤 후회할 것이라고. 그렇지만 “나는 무엇 때문에 기도하는지 이성으로는 알지 못하면서 기도할 것이다.” “이제부터 내 생활은, 내 생활 전부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과는 무관하게 한 순간 한 순간 예전처럼 절대로 무의미 하지 않을 것이며, 틀림없이 선의 의미를 지녀 그것을 내 생활에 부여할 것이다.”
톨스토이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사랑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쓴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말하듯, 그가 정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인생에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기를 초월할 수 있게 하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말 아닐까요?
[2024년 4월 14일(나해) 부활 제3주일 서울주보 7면, 김우선 데니스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0 28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