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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도서 지식인의 표상 - 아마추어 지식인, 신앙인의 사회적 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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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도서 ‘지식인의 표상’ 아마추어 지식인, 신앙인의 사회적 사명
지식인은 어떤 사람인가? ‘오리엔탈리즘’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의 표상》이란 책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지식인은 자기 전문성이라는 상아탑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공적인 문제에서 약한 사람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사람이라는 말이죠.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식인에 대한 사이드의 관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인의 사회적 사명에 대한 이해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이드에 따르면 권력에 진실을 말하는 지식인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고 무시되는 약자들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권력을 가진 이들의 편에 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식인은 “손쉬운 공식이나 미리 만들어진 진부한 생각들 혹은 권력이나 관습이 으레 말하고 행하는 것들을 거부”하기에 항상 고독과 영합 사이에 서게 됩니다. 게다가 그는 억압받는 이들 안에서도 승리자와 패배자가 나누어지는 현실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식인이 “집단적인 승리의 행진에 동참”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러니 그에게 지식인은 ‘지적인 망명자’였습니다.
사이드에게 권력에 진실을 말하는 지식인의 사명을 위협하는 것은 권력 유착이나 상업주의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영역 바깥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눈을 감는 ‘전문가주의’를 중대한 위협으로 보았습니다. 대신 지식인이 ‘아마추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아마추어라는 단어는 라틴어 amator(사랑하는 이)에서 나왔으니, 문자적 의미로 아마추어란 냉소주의나 두려움에 갇히지 않고 관심과 애정으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마추어 지식인은 “이윤이나 보상에 휘둘리지 않으며 전문성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고 여러 경계와 장벽을 가로지르는 연결점을 만들어 더 큰 그림을 그리려는” 지식인입니다.
여기서 잠시 자문해 봅시다. 사이드가 그리는 지식인을 보면 성경에 나오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저에게는 예언자의 모습입니다. 유다에 대한 애끓는 사랑에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지만 이해받지 못하고 고독 속에 탄식하는 예레미아, 자신은 예언자 무리에 속한 적도 없는 한낱 농부이지만 하느님께 붙잡혔다는 아모스 등 구약성경의 예언자부터, 당대 종교 전문가에게 단죄받고 권력에 넘겨지는 예수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사회적 사명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공동선, 연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상기하면, 사이드의 지식인론은 우리 모두에게서 멀리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웃에 대한 애정과 염려 속에 ‘아마추어’로서 관여하고 연대하는 것은 사회적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겠죠.
사이드는 세속적 지식인이었지만 자서전 첫머리에 12세기 수도승의 글을 인용하여 망명자로서 자기 삶을 그렸습니다. “고국이 달콤한 이는 초보자이고, 모든 땅이 고향처럼 여겨지는 이는 이미 강자이지만, 온 세상이 낯선 이는 완전한 자입니다.”
[2024년 6월 9일(나해) 연중 제10주일 서울주보 7면, 김우선 데니스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0 22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