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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신약으로 배우는 분석심리학: 세족식 - 연대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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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8-13 ㅣ No.1170

[신약으로 배우는 분석심리학] 세족식 : 연대의 기쁨

 

 

요한 복음 13장에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후 가톨릭에서는 세족식의 전통을 이어 발전시킨 것 같습니다. 물론 적지 않은 이들에게 낯설거나 좀 어색한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다른 사람의 몸을 씻어 주는 것은 아주 친밀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데다가, 특히 별로 깨끗하지 않은 발을 씻으려면 몸을 낮추고, 마음을 겸손하게 하지 않으면 더더욱 거부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아버지께로 건너가야 할 당신의 시간이 온 것을 아시고, 만찬을 베풀고, 제자들의 발을 씻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 주기 시작합니다. 이미 마리아가 향유를 바를 때, 장례식 준비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발을 씻어 준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법도 한데,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둔한 제자들은 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손사래를 치면서 아마도 어리석고 하찮은 제 발은 못 씻어 주십니다. 하고 말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당신을 씻어 주어야 나와 함께 새로운 몸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부분의 신학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많은 성경 학자들과 교회 박사들께서 좋은 말씀을 남겨 주셨기 때문에 저는 심리학적인 의미에만 좀 더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임상에서 상담을 하러 오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상처받은 감정, 그런 일이 일어난 상황 등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몸과 마음이 황폐해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선 의사들은 객관적으로 그 상황에 대해 듣고 말하게 합니다. 이때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토로하면서 어느 정도는 마음 속의 어두운 부분이 밖으로 나온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래서 일종의 마음을 밖으로 내놓고 씻는 준비를 하는 단계이지요.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감정들의 원인, 상황, 객관적인 성찰 등 힘든 과정을 찬찬히 거치게 되면서 마음속의 쓰레기 같은 것들이 정말로 깨끗이 정화되어 새롭게 변화되는 것 같다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전통 무속에도 씻김굿이 있지요. 억울하게 죽거나 너무 때 이른 죽음이거나 혹은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치게 겪어야 했던 영혼들의 마음을 씻어 주는 의례였습니다. 이렇게 정화하는 과정은 전 세계적으로 영성과 관련된 많은 의례가 있습니다. 아마 부처님 오신 날, 아기 불상에 물을 붓는 것을 보거나 해 보신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민족들은 물이 아니라 재나 잎사귀 혹은 약물 같은 것으로 몸과 마음을 씻기도 합니다. 자신의 상처뿐 아니라 잘못, 죄 등등을 밖으로 내놓게 되면 일종의 마음 청소 혹은 빨래, 목욕할 때와 비슷한 느낌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고해성사를 받고 날 때도 그런 비슷한 마음이 될 때가 있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는다는 것의 상징은 바로 그런 정화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은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당부하십니다. 이제 스승이자 주님이신 분이 떠나고 나면 서로가 서로를 정화해 주면서 연대하고 위로해 주면서 지난한 정화와 변모의 여정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서로 이해갈등 요인도 복잡해집니다. 이에 따라 사건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다양하면서 해묵은 찌 꺼기 같은 것을 오랫동안 지니고 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일종의 쓰레기를 안고 사는 것이지요. 특히 일이나 관계와 관련된 정신적인 문제가 지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역설적으로 그 쓰레기를 직면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몸을 돌보고, 자신의 감정을 어루만지다 보면 고통이 어느 틈에 해결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듯이 사랑하는 사람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겸손하게 상대방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정화의 과정에 동참해 보는 건 어떨까요. 하다못해 가족끼리 힘들고 고단한 발을 서로 마사지해 주는 것도 앉아서 이런저런 일을 갖고 말로 싸우는 대신이요.

 

[월간 빛, 2024년 8월호, 이나미 리드비나(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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