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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 - 아무려면 어떤가? 모든 것이 은총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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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영화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 - 1951년 작, 감독 ‘로베르 브레송’ 아무려면 어떤가? 모든 것이 은총이니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1951년 작인 영화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원작으로 삼습니다. 소설과 영화는 당시 프랑스 사회의 모습에 비추어 사람들이 원하는 종교의 역할과 본질적인 종교의 존재 사이의 갈등을 다룹니다.
영화는 어느 젊은 신부가 북부 프랑스에 위치한 시골 마을의 본당 신부로 부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곳은 그가 처음으로 부임하는 본당으로, 자신이 맡게 된 첫 본당인 만큼 열성적으로 사목에 임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같은 그의 열성은 일시적인 평안과 휘발적인 위로로는 참된 구원에 다다를 수 없다는 확신에서 옵니다. 하지만 이전의 본당 신부들과 달리 마을 사람들의 성향을 맞추어주지 않는 주인공 신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습니다. 더구나 그의 병약한 몸은 마을 사람들과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여러 갈등을 빚으며 사목에 대한 회의에 빠지고, 세상 앞에 당당히 맞서던 마을 의사의 자살 소식에 충격을 받습니다. 삶 한가운데에서 표류하던 백작 부인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서 다시 용기를 얻지만, 그녀는 다음날 세상을 떠나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회의가 주인공 신부의 마음을 점점 더 곪게 만듭니다.
주인공 신부는 결국 위암 판정을 받게 되고, 한 때 신부였지만 이제는 환속한 친구가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친구는 주인공 신부가 병자성사를 받지 못하고 죽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를 두고 주인공 신부는 “아무려면 어떤가? 모든 것이 은총이니.”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주인공 신부의 마지막 모습은, 다른 한편으로는 실존적 · 신앙적 위기를 겪던 그가 제 죽음을 통해 비로소 하느님의 뜻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다가옵니다.
영화의 초반부에 주인공 신부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감자를 깎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으로부터 성 라파엘 아르나이즈 바론의 저서 〈어느 한 트라피스트 수도자의 묵상〉에 나오는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성인은 수도원에서 순무를 깎는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처음에는 순무를 깎는 자기 모습이 하찮게 여겨지다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순무를 깎는다면 이는 하느님께 영광이 되고 순무를 깎는 자신에게는 공로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단순히 순무를 깎는 일처럼 허무와 냉소, 무력감이 지배하기 쉬운 상황 속에서 신앙인으로서의 존엄과 사제로서의 사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 속 신부의 모습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는 ‘내가 신앙인으로서 이 정도의 모습만 갖추어도 충분하겠지.’라는 식의 교만함 혹은 ‘내가 신앙인으로서 노력한다고 해서 과연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라는 식의 패배주의에 휩싸인 신앙인들에게 시대를 초월하여 커다란 자극을 안겨주는 작품입니다.
[2024년 8월 18일(나해) 연중 제20주일 서울주보 5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0 97 0 |